넓은 땅 중국인 성격지도 - 그들을 탐구하라! 중국이 쉬워진다!
왕하이팅 지음, 차혜정 옮김, 송철규 감수 / 새빛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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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사람은 이념을 논하고 광둥 사람은 장사를 논하며, 베이징 거리에는 구호가 만연하고 광둥거리에는 광고가 넘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이징 사람들 정치에 관심이 많다. - 34p- 돈을 벌고 싶으면 선전(深圳심천) 남자를 찾고, 즐겁게 놀고 싶으면 베이징 남자를, 안심하고 살고 싶으면 텐진(天津) 남자를 찾으라는 말이 있다. -70p- 고대 황제가 중시하는 두 지역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는 쓰촨(四川)이요 하나는 산시(山西)다. 쓰촨에서는 곡식과 돼지만 충분하면 천하를 안정시킬수 있고 산시에서는 식초와 이 지방의 술 분주(汾酒)만 있으면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다. -151p- 산시에 가보지 않고 식초맛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관운장(관우關羽)는 전형적인 충신으로 산시사람을 대표한다. -152p-"

  이 책은 중국인의 시각으로 중국 각지역에 따른 중국인에 대한 성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중국인들을 한 눈에 이해하기 딱 좋은 책이다. 중국이란 나라가 좀 넓은가. 우리나라보다 44배나 땅 면적(남한의 96배)이 큰 나라가 중국이다. 오죽하면 자기나라외 다른 민족들은 전부 오랑캐라고 불렀고 그들의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으며, 원나라를 제외하고는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더 넓은 땅을 찾아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강(江)은 장강(長江)을 말하고 하(河)란 황하(黃河)를 의미한다. 세계 4대발명품인 인쇄술, 화약, 종이, 나침반이 전부 중국에서 발명되었으며, 서양의 종교개혁이나 르네상스도 중국문화의 전파로 이룩되었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저자는 중국전역을 "화북, 화동, 화남, 화중, 서북, 서남, 동북, 특별자치구(홍콩, 마카오), 대만 등 아홉군데로 크게 나누고  각지역을 다시 삼십군데로 세세히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화북의 화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화(華)이다. 지역이 하도 많다보니 관심이 있는 지역이거나 유명한 지역이 아니면 일일히 기억하기 힘들다. 다 읽고나는 후에도 내용중에 있었던 모택동(마오쩌둥)이 무슨성에서 태어났고 동정호가 어디에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겨우 생각나는 거라고는 작년에 지진이 일어난 사천성, 공자의 고향 곡부가 있는 산동성, 먹거리 천국 광동성 등이다. 이것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어서 그나마 그 지역의 위치가 확실한 느낌으로 자리잡았을 뿐이다. 

 "똑똑한 사람은 작은 장사를 하고, 정직한 사람은 큰 장사를 한다. -155p- 참새가 날아갈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산시 상인이 있다.  어음을 발명한 산시 상인은 진상이라 불렀고, 안후이의 상인은 휘상이라 불렀다.  -157p- 안후이 사람이 없으면 장사꾼이 없다 -235p- 명황제 주원장, 제나라 재상 관중, 유방을 도운 장량, 청나라의 개혁가 리홍장, 삼국지의 오나라 명장 주유 등이 안후이성이 배출한 인재들이다. -241p- 산둥사람들의 성격에 가장 큰 영양력을 끼친 3성(三聖)은 산(太山), 강(黃河), 성인(孔子)이다. -252p-"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맨앞에 나와있는 지도를 계속해서 돌아와 봐야했다. 그것은 위치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도가 너무 빈약한 것 아닌가 싶었다. 지도 한 면 정도는 좀 자세하게 성도(성의 수도)나 주요도시가 기록되었다면 이해하기 쉬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명승지도 같이 표시되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지역명의 의미 즉 하남(河南)은 황하의 남쪽이라던가 산동(山東)은 어느산(太行山)의 동쪽이라서 산동이라던가 그런 설명이 역자 주석으로 덧붙여 있었다면 휠씬 지역명을 기억하기 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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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니체 - 예술가적 철학자 New 니체 100배 즐기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유진상 엮음 / 휘닉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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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뜨거운 여름날 왜 하필 니체란 말인가. 참을 수 없이 무더워진 날씨때문인가 아니면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존재의 초라함때문에 무거운 가면이라도 덮어 쓰고 싶은 얄팍한 욕구때문인가. 그러나 프리드리 빌헬름 니체(1844-1900)는 결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긍정적 삶을 노래한 "생의 철학자"이다. 우리가 그를 "생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당시 유행하던 이성적 합리주의나 과학적 실증주의에 대항하여 틀에 박힌 인간상을 거부하고 인간 고유의 생명력과 생동감넘치는 삶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생의 철학자들은 죽음 이후의 내세보다 살아 숨쉬는 현재의 삶를 중시했다. 내가 다른 철학자보다 니체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때문이며, 그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계보학적 철학작업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렀다.

 "이미 원하는 것을 소유한 자는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한다. 그 때문에 그는 타인들로부터 '강자' 또는 '억압자'로 불린다. 그래서 소유욕은 늘 부정적인 취급을 받는다. 반대로 원하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한 자는 상대적으로 '약자'이며 '소외된자'로 인식된다. 그래서 사랑은 늘 긍정적인 취급을 받는다. 얻지 못했을 때 그것은 사랑이 되고 얻었을 때 그것은 소유가 된다. -즐거운 학문- 186p "

  이 책은 니체의 여러 저서들에서 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들을 발췌하여 잠언처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철학서가 아니라 시집처럼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사실 니체의 철학과 니체의 글들은 여타의 철학자들 논문처럼 난해하지않고 시처럼 아포리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너무 짧아 감정의 맥이 쉽게 가라앉았고 지나치게 여백이 많아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낙서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각장 사이사이에 있는 흑백사진은 명화보다 휠씬 보기 좋았고 이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의 무게있는 글을 원한 사람이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약간 실망할 것이고, 니체란 이름에서 풍기는 중압감때문에 니체를 멀리했던 사람이 이 책을 접한다면 즐거운 환호성을 지를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습관화된 관찰은 여러 현상들을 단일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사실들이라고 부른다. 또 이 사실들과 다른 사실들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있다고 생각해서 각각의 사실들을 고립시킨다. 그러나 현상에 머물러서 '있는 것은 오직 사실뿐'을 외치는 실증주의자들에 반대해서, 나는 말하리라. 사실은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해석뿐이라고. -권력에의 의지 - p272 "

  니체은 진리를 문제삼기보다는 진리를 찾으려는 욕망을 문제삼았다. 만약 누군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는다면 그는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종교에 대해 묻는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말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철학의 외부에서 왜 철학자들이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지 되물었다. 그리고 철학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물었고, 철학 자체가 얼마나 건강한 지를 물었다. 철학 자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건강한 생명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니체는 철학자라기 보다 철학을 진단하는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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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18현 - 조선 선비의 거울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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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는 서울시 명륜동에 있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성균관 대성전(보물 제 141호)과 동무,서무(사적 141호)를 총칭하는 공간으로, 현재 동무와 서무(대성전앞 동서양측 전각)는 비어있고, 대성전에 대성지성 문선왕 공자를 중앙 정위로 하여 4성(증자,안자,맹자,자사), 공자의 제자 10철, 송현 6현(정호,주돈이,소옹,,정이,주희,장재) 그리고 동국18현(최치원,설총,정몽주,안향,정여창,김굉필,이언적,조광조,김인후,이황,성혼,이이,조헌,김장생,송시열,김집,박세체,송준길)의 위패가 동서로 봉안되어 있다.(382p에 봉안위차도 참조) 이 책은 바로 이 대성전에 봉안된 동국(해동) 18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조선왕조실록>의 상소문과 졸기(卒記)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151호로 1866권 887책(국역본은 모두 413권)이며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기록 유산으로 지정한 우리문화의 위대한 문장의 보고(寶庫)이다. 졸기란 <조선왕조실록>에 등재된 명문장의 한 유형으로 조선시대 때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날짜의 실록에 고인의 생애를 기록한 글로서 조선왕조에만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아울러 행장도 더러 인용되고 있는데 행장(行狀)이란 망자와 가장 가까웠거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최상위 문장가의 글을 받는 것으로, 죽은 사람을 기리는 문장 중의 한 유형으로 묘지명이라는 이름으로 돌에 새겨져서 금석문으로 남아있는 글을 말한다.(35p,85p, 89p)

이 책은 특별하면서도 객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나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내용 자체의 어려움이라기 보다 실록에서 인용된 글이 너무 길어서 일일히 챙겨 읽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특히 회재 이언적에 관한 글은 94p에서 109p까지가 전부 상소문이라서 꼼꼼히 읽기가 어려웠고, 매 인물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상소문과 졸기는 특별하였지만 구지 이렇게 시시콜콜한 애기까지 다 읽어야 할까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용 중간중간에 신선한 부분이 여러 곳 있었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웠던 "이이의 십만대군 양병설"과 "설총의 이두 창제설"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이이의 경우의 그의 저작들 어느 곳에도 십만대군 양병설을 주장한 곳이 없고, 설총의 경우에도 설총생존 이전의 <서동요>등에서 이두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설총이 이두를 창제한 것이 아니라 이두를 집대성한 것으로 봐야 마땅하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342p) 아울러 송시열의 예송문제에 대한 자세한 언급도 신선했다.(268p)  내가 사는 대전에 우암 송시열의 남간정사(강학당)와 동춘당 송준길의 동춘당(별당)이 있다. 남간정사에 있는 기념관에 가장 큰 글자 한 글자가 표구되어 있다..그 인상깊은 글자는 바로 恥(치)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된 우암 송시열이 생원시에서 논술하여 급제한  "일음일양지위도 (一陰一陽之爲道)"에 관한 글도 직접 볼 수 있다.

작년 도서관 독서모임에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카는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에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케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최신사댁 세째딸이 한강을 건넜다."라는 사실은 과거에 존재했다해도 역사적 사실이 되지 않는다. 즉 과거의 어떤 사실이 현재에 어떤 의미(대화)를 줄 때만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 사실의 과학적인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다 중요한 문제는 역사의 한부분이 현재에서 말해질 때 왜 하필 수많은 사실중에 그 사실이 현재시점에서 선택되었냐는 것이다. 역사란 아무리 객관적인 취사선택이 되었다해도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그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오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역사의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혼란스러워 역사알기를 회피하고 있다. 특히 해방직후 좌익과 우익 갈등 그리고 친일파들의 득세, 재벌경제사 등에 관한 책들은 가슴이 먹먹해져 다시는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히 유익하고 든든하고 읽을 만하다. 이제와서 사대주의적 문묘가 무슨 자랑이냐고 힐난할 지 모르겠으나, 결코 버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우리민족의 통한(痛恨)의 역사라면 차라리 명륜당이 있고 죽음을 불사한 현인들이 있는 역사를 반추하여, 보다 긍정적으로 역사를 비춰볼 수 있는 시각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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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의 조건 - 장자에게 배우는 CEO가 읽는 클래식 1
이인호 지음 / 새빛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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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1장 절욕, 제2장 허심, 제3장 여유, 제4장 자족, 제5장 유희, 제6장 장자의 인생,

제7장 장자와 중국문화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뒷표지에는 " 장자가 말하는 처세의 지혜: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라는 크고 빨간 글씨가 인쇄되어 있으며, 

그 다음엔 작고 검은 글씨로 " 메추라기가 산속에 둥지를 틀어도 가지 하나에 불과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탐해도 배밖에 못 채운다(소요유)" 라는 글이 써있다. 이 책은 이렇게 

소제목에 맞는 장자의 글이 발췌 인용되고 다시 저자의 생각과 장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서술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맨처음부터 끝까지가 정확하게 총 300페이지이며

두꺼운 양장본으로 되어있지만 중간 중간의 여백을 감안하면 책값은 좀 비싼편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장자(곽상본)는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까지 모두 33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내편은 장주(장자의 성명)의 글이고 나머지는 제자나 추종자의 글이라고 추측되며

장주 사후 6백년 뒤 위진시대의 곽상(곽상본)이 편찬했다고 한다.(12p)혹은 52편이란 기록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외편의 산목편과 지북유편을 좋아한다. 지북유편은 지혜(話者)가 북쪽지역을

노닐면서 일어난 일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 중 생사관(生死觀)이 너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 책에는 없는 부분이다."인지생기취야(人之生氣取也), 사람의 생이란 기가 모인 것이다.

취즉위생(聚卽爲生) 산즉위사(散卽爲死) 기가 모이면 태어나고 흩어지면 죽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말막히면 자주 사용했던 말 "知者不言이요 言者不知"란 말도 지북유에서 나온다.

"인간의 생명은 백마가 틈을 스치듯 잠시일 따름이다.(지북유)-96p-" 이 책에서도 인용되어 있다.

자주 듣게되는 산목편의 "곧은 나무는 먼저 잘린다. 감미로운 샘물은 먼저 마른다.-124p-"도 참 좋다.

이 책에는 한자원문이 나와있지 않다. 직목선벌(直木先伐) 감정선갈(甘井先竭)-묵점 기세춘의 장자_

나는 어떤 책을 인용할 때 책의 출처와 원문을 번역한 글과 함께 실어주는 책을 좋아한다. 특히 한문의

경우에는 그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해서 좋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원문을 실지 않아서 상당히 아쉬웠다.

삼불후(三不朽)에 대한 글도 잠깐 나오는데(94p) 훌륭한 인격(入德), 불멸의 업적(入功), 위대한 작품

(入言)에 대한 원전이 <춘추좌씨전>이라는 주석이 빠져 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자주 애용

하는 이태백의 시 <춘야연 도리원서>의 한구절 153p에 잠깐 나오는데 역시 원문과 역주가 빠져있다.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光音者 百代之過客(광음자 백대지과객)....

무릇 천지는 만물이 묵어가는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라. 부평초같은 인생 꿈만 같으니..."

 

천박한 자들이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천박한 자들의 웃음을 사지 않으면 도가 아니다. -66p-

행색이 초라한 것은 빈곤한 탓입니다. 정신이 불안하면 고달프지요. 이몸은 빈곤할 지언정

고달프진 않습니다.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 났을 뿐이지요.(산목) -265p-

 

경제학과를 다닐때 행복은 욕망분의 성취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행복=성취/욕망)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아마 그런 의미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욕망과 욕심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접몽(제물론 -76p-)이니

일장춘몽이니 인생무상이니 하며 무슨 대자유인이나 된 모양으로 현실을 도외시하고

욕망을 버렸으니 행복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조삼모사(朝三暮四)

한 원숭이 꼴이 아니겠는가. 헛되고 올바르지 못한 것은 마땅히 절제하고 지양해야 할

것이지만 건전하고 올바른 마음을 가질려는 노력은 마땅히 고양되고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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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철학, 답하는 종교
하카리 요시하루 지음, 김청균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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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사이타마대학 명예교수 하카리 요시하루의 [종교철학입문]을 번역한 것으로

일본의 방송대학 교재로 여러해 동안 사용한 [종교의 철학]을 저본(底本)으로 한 종교철학 입문서이다.

책의 제목은 폴 틸리히(1886-1965)의 "철학과 종교는 비소유와 소유, 묻는 것과 답하는 것의 사이에 있다"

라고 한 말에서 역자가 차용한 말인데 종교가 진리를 소유하고 철학은 소유하지 못했다는 말이나

철학이 진리를 묻고 종교는 답하는다는 것은 다분히 분석적이고 이분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철학을 영위하는 능력인 이성의 관심에 대해 [순수이성 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나는 이성의 모든 관심(사변적 관심도 실천적 관심도)은 다음의 세가지 물음으로 집약된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형이상학)

2)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도덕)

3)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종교) "  -14p -

 

이 책은 크게 종교철학의 과제로 가는 방법으로 제2장 - 제10장까지 세계3대종교(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예로 들어 설명했고, 종교철학의 과제인 구제문제,절대자문제,신앙의 문제 등을 제11장 - 15장까지 설명했다.

즉 애매모호한 종교일반의 문제보다 접근하기 쉽은 구체적인 개별종교의 발생과정이나 교리 등을 먼저 설명한 뒤

각 종교(3대종교)의 구제, 절대자, 신앙, 진리문제 등을 논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일반의 문제를 생각하도록 했다.

사실 나는 20대까지 기독교 신자, 30대에는 불교 신자, 40대 이후부터는 무신론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각 종교의 대한 대략적인 모습은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이 책을 읽는데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몇군데 인상깊었던 부분에서 역시 내가 안다고 할수 있는 것은 내가 무명무지하다는 사실이란 것이었다.

 

먼저 현대는 무신론, 니힐리즘의 시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익히 들어온 바에 의하여

종교는 범신론에서 다신론, 다신에서 유일신,유일신에서 무신론으로 흘러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니힐리즘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역주가 없었음) 그래서 일명 네이버 형님에게 물어보니

니힐리즘이란 "라틴어의 ‘무()’를 의미하는 니힐(nihil)이 그 어원, 허무주의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불교의 사법계(四法界)에서 사사무애(事事無碍)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었다. (86p)

4법계에서 법계는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의 세계관에 의하면 4개의 법계가 있는데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계(理事無碍界), 그 마지막이 바로 사사무애계이다.

이사무애는 반야경의 공즉시색,색즉시공과 동일한 의미로 "理卽是事 事卽是理"와 같은 의미인데

사사무애는 사(事)와 사(事)에서도 그 즉비논리가 통한다는 것이다.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가 예수이지만, 예수가 부처요 무함마드가 될 수 없듯이

이러한 "사사무애법계 같은 관점이 그림자조차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사무애법계관은 유신론도, 범신론도, 신비론도 아니며 유신과 무신을 모두 초월하고 있다.

 

칸트는 모든 판단을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분석판단은 단순한 논리적 판단으로 여기에서 진리의 의미는 무모순성으로 따지고

종합판단은 실재적 판단으로 여기에서 진리는 인식과 대상과의 일치 여부를 의미한다.

보통 진리는 이렇게 인식되어지는 것에서 그 모습을 들어내고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철학적 진리는 객체적이지만, 종교적 진리는 단순히 객체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주체적이다.

종교의 구제문제에서도 구제는 개별적이고, 바로 나의 구원이요 나의 해탈이기에 주체적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상생공존해야 옳으며 그 누구에게도 주장할 수 없고 주장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현대라는 시대를 진단할 때 그 현상으로 도덕(moral)의 근원적 퇴폐를 말한다.

그런데 작가는 도덕의 근원적 퇴폐를 부도덕(immoral)이 아니라 무도덕(amoral)이라 말하고 있다.

임모럴(부도덕)은 그나마 도덕을 전제하고 있지만 에이모럴(무도덕)은 도덕 자체를 부정한다.

이 에이모럴의 본질이 바로 니힐리즘(허무주의)이고 이 니힐리즘이 바로 무신론인 것이다.

이러한 니힐리즘(허무주의)은 존재와 가치에 대한 확실성의 상실을 말한다.

그리고 존재의 니힐리즘은 불안이나 권태같은 인간의 근본기분 속에 나타난다.

불안은 특정한 대상이 있는 걱정과는 달라서 특정한 대상이 없음에도 왠지 불안하고

권태는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체의 모든것에 대하여 느끼는 근본기분이다.

근본기분으로서의 불안은 모든것에 대한 과잉관심이고, 이것은 다시 초조로 나타나며

근본기분으로서의 권태는 모든것에 대한 무관심이고, 이것은 다시 무감동으로 나타난다.

불안과 권태의 근원은 인간존재의 니힐리즘이고 그것은 무(無)의 현상이다. 아울러

가치의 니힐리즘은 어떠한 행위를 위한 보편적인 원리나 윤리적 판단의 무(無)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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