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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공자의 수사학 : 군자의 리더십과 인성론 - 군자의 리더십과 인성론
안성재 지음 / 어문학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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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수사학(修辭學)’ 이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사실제목의 ‘공자’보다는 ‘수사학’에 관심이 갔다. 공자는 누구라도 알고 있는 동양의 성인이라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공자님이 수사학에 대해서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이 책의 제목이 다소 생소했기 때문이다. 수사학의 사전적 의미는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의미 전달에 효과적인 문장과 어휘를 사용해서 설득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표현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보통 서양의 레토릭(rhetoric)을 동양에서는 수사학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나에게 수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연상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올 초에 시학과 같이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접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주어진 경우에 가능한 모든 설득 수단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수사학의 본성은 변증술과 짝을 이룬다고 하였다.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종류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모든 연설이 말하는 사람, 주제 듣는 사람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되는데 이에 따라서 심의용 연설, 법정 연설, 과시용 연설로 수사학을 구분하였다.

   이러한 수사학에 대해 공자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이 책을 펼쳤다. 하지만 내 예상은 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 논어(論語)의 ‘술이부작(述而不作)’에서 정확하게 빗나갔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사학(修辭學)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나 글을 그럴 듯하게 꾸미는 것인데 공자님은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원론적으로 수사를 부정하고 있다. 수사하면 바로 사문난적(斯文亂賊)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미언] 공자가 이르시기를 : “서술하지만 창작하지 않고, 믿어서 옛것을 좋아하니, 슬그머니 나를 노팽에 견주어본다.”

[대의] 공자가 이르시기를 : “객관적인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임의로 지어내지 않으며, 또 옛 성현들의 도를 믿고 따르는 나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노팽에 비유하여 표현해본다.”

언뜻 보기에도 이는 서양의 레토릭과 아무런 관련이 없거니와, 심지어 공자의 글쓰기 혹은 말하기 이론으로 간주하기에는 더 큰 무리가 있어 보인다. 더욱이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표현은 글쓰기나 말하기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5p-

이 책의 편제는 위와 같다. 논어의 한 구절을 미언으로 글자 그대로 풀이하고, 대의로 그 뜻을 풀이한 후 저자의 그렇게 생각한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전체적으로 논어의 한 구절를 소제목으로 하여, 이 소제목에 대하여 유교경전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구절을 근거로 풀이하였다. 즉 단순하게 논어만을 풀이한 책이 아니다. 고로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소제목들을 보면 그나마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짐작은 할 수 있다.

소제목을 열거해 보면 “ 5.군자 : 참된 지도자, 6. 도 : 지도자의 통치이념, 7. 덕 : 강함과 유함을 조화롭게 실천하는 강조, 8. 중화(中和) : 덕의 양대 요소, 10. 인(仁) : 진심으로 섬기고 따르는 어짊, 11. 의(義) : 신분에 따른 의미를 다하는 의로움, 12. 예(禮) : 조화를 위한 절제와 통제, 13. 악(樂) : 예를 보완하는 온유함” 등 전부 21가지가 있다.


 

   이렇게 어려운 많은 내용을 전부 다 요약할 수 없고 또 리뷰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흥미롭게 읽은 의(義)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고 리뷰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의(義)는 정의(正義: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는 단어와 가깝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예기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 염이불귀(廉而不劌), 의야(義也)

모가 나지만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이, 의로움이다. -禮記 聘義(빙의)-

故國有患(고국유환), 君死社稷(군사사직), 謂之義(위지의).

大夫死宗廟(대부사종묘), 謂之變(위지변).

따라서 나라에 환난이 있음에, 임금이 사직에 목숨을 거는 것, 그것을 일컬어 의라고 한다. 대부가 종묘에 목숨을 거는 것, 그것을 일컬어 변이라고 한다. -禮記 禮運(예운)-

이는 의라는 거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자세를 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다고 여기는 것일까. 이어서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한자 생략) 무엇을 의라고 일컫는가?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은 착하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합당한 행동을 하고, 아내는 순종하며, 어른은 은혜를 베풀고, 어린이는 따르며, 임금은 진심으로 섬겨서 따르고, 신하는 충후해야 하니, 이 열 가지를 사람의 의라고 일컫는다. -예기 예운- 

(중략) 따라서 의(義)는 사실상 신분과 계급상의 서열을 명확하게 하고 그 서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를 목숨 걸고 지키는 것이 된다.” -199p~2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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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전쟁사의 재조명
이덕일 지음 / 만권당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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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5일 일본의 아베신조는 A급 전범 도조히데키 등의 합사된 도쿄 구단키타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납부했다. 또한 이날 일본 총무상 등 각료들과 여야 의원 80여명은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2013년에는 아배신조 총리가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참배를 단행했고, 이후에는 매년 공물을 보내고 있다. -15P-

위 글을 보면 일본 정치인의 행태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선출되거나 여야 당대표가 선출되면 어김없이 현충원에 참배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 이유를 이 책에서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들어 지적하고 있다. 즉 신사 참배가 문제가 아니라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신사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어떻게 해서 A급 전범들이 분류되고,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지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군은 처형당한 전범 7명을 화장해 도쿄만에 뿌렸다. 그러나 1948년 12월 15일 고이소 구니아키의 변호인 산몬지 쇼헤이가 유골 일부를 회수해 근처의 흥선사에 맡겼다가 1949년 5월 이즈산의 흥아관음사에 비밀리에 안장했다. 그 후 전범들이 다시 일본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한 1960년 8월 16일 아이치현의 산가네산의 정상에 옮겨서 ‘순국칠사묘’로 현창되었다. 인류를 전쟁으로 내몬 전범들이 순국자로 화려하게 재등장한 것이었다. 만일 독일에서 나치 전범으로 사형당한 인물들의 유골을 몰래 수습해 ‘순국지사묘’라고 추앙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유럽 각국에서 단교 조치에 나설 것이고, 독일 내부적으로도 ‘나치즘 군국주의 청산법’, 아우슈비츠 부인에 관한 처벌법’ 등에 의해 사법 처리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사법처리는커녕 1978년 일본에 우경화 바람이 불 때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 14명을 합사했다-36P-”

이와 더불어 저자는 1945년 9월에 열린 일본 전범들을 처리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철저하게 전승국의 관점과 이익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의 행적에 국한하고, 1905년 을사늑약부터 40년 동안 한국을 침략한 전범들은 모두 누락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일왕과 재벌을 전범 기소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군국주의의 최정점에 있는 일왕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과 같고, 만주 침략과 중국 침략은 재벌들과 긴밀한 공조 속에 이루어진 것이고 낙후된 일본 경제는 전쟁에 의해서만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으므로 재벌들은 침략전쟁의 직접적인 수혜자였음에도 일체의 처벌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책제목에서 보이듯이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의 아나키즘 독립전쟁사’일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스포일러 일 듯 해 과감히 생략하고, 제 3장에서 언급된 ‘고종은 왜 망국 군주가 되었는가’에 대해 언급하고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만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집단 망명으로 일제 점령에 항거한 세력이 있는데, 이들의 당파적 배경은 대부분 소론 계열이며 사상적 배경은 양명학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 가지 더 웃기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만동묘 복설’에 관한 것이다.

“최익현의 스승이었던 화서 이항로는 대원군이 내린 벼슬을 사양하면서 ‘만동묘 복설’을 요구했는데. 최익현 역시 1873년 11월 재차 올린 상소에서 황묘(만동묘)를 없애버리니 임금과 신하 사이의 윤리가 썩게 되었다면서 만동묘 복설과 서원 복구를 건의했다. 만동묘는 군사를 보내준 명나라 신종과 명나라 마지막 임금 의종을 제사지내는 곳으로 우암 송시열이 세운 것이다. 의종(1628~1644)을 끝으로 명나라는 망한지 230여 년이 되었는데, 청나라도 아니고 망한 명나라를 사대하는 만동묘 복설을 요구할 정도로 이항로와 최익현의 현실 인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최익현의 대원군 비판 상소를 계기로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140P-”

일단 역사적 큰 사건들을 대략적으로 나열하자면, 1876년 강화도 조약,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운동, 갑오경장, 청일전쟁 1895년 민비시해 1896년 아관파천 1904년 러일전쟁 1905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을사늑약 1909년 안중근 의거, 1910년 한일병탄 늑약 등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1910년 한일병합(?)이 되기 전까지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종은 개화를 표방했으나 정작 정권은 민청 수구파의 손에 있었다.

“ 급진개화파가 추진하는 조선의 대개혁을 추인하는 듯했던 고종은 상황이 달라지자 태도를 바꾸었다. 고종은 신정부가 대개혁을 단행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마음은 이미 신정권을 떠나 있었다. 고종은 적은 병력의 신정권이 방어하기 곤란한 창덕궁으로 이어할 것을 거듭 요청해 관철시켰고 청군 1500명이 돈화문과 신인문을 공격하면서 수세에 몰린 개화파는 갑신정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개화를 추진한다면서 정권은 수구 세력에게 주고, 부국강병한 근대 국가 건설에 목숨을 걸었던 개화당을 제거했다. 아울러 고종은 갑신정변으로 급진개화파를 제거한 후 일본군과 손잡고 동학농민혁명군을 진압했다.-149-”

동학농민운동관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조선정부(고종)는 동학농민군과 연합함으로써 일본의 침략 저지에 나서야 했으나 오히려 관군을 일본군에게 붙여 개혁을 요구하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앞장섰다. 즉 한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인 임금과 신하가 한통속이 되어 망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아 놓은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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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혁명 - 홍익인간형 플랫폼국가로 가는
최동환 지음 / 물병자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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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혁명이란 책 제목이 거창하다. 우리나라가 과연 어떻게 어떤 식으로 대혁명을 이룰 수 있을까. 대혁명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대혁명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유사 이래로 대혁명이 있었던 적도 대혁명이 가능한 때도 없었다. 모든 것을 갈아엎는 주체적인 힘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한국대혁명을 말하고 있다. 홍익인간형 플랫폼국가로 가는 한국 대혁명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홍익인간형 플랫폼 국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저자는 플랫폼 국가를 허브국가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플랫폼은 기차역이라고 설명한다. 역에서 사람들이 기차에 탑승하기 위해 만든 승강장이 플랫폼이다.

“플랫폼국가는 항상 양극단의 세력이 만나는 교차영역에서 발생하여 양극단을 연결하며 신뢰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증폭하면서 발생한다. 그 양극단이 만나 연결되는 경계면의 영역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의사소통과 신뢰와 힘의 증폭이 이루어지는 ‘온힘의 영역’이다. ‘온’이란 순수한 우리말로 전체를 의미하며 100을 의미한다. ‘온힘’은 대립하는 양극단의 영역을 소통과 신뢰를 통해 연결하여 전체인 ‘온’을 만들어 능력과 가치를 증폭하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의 영역이다. 이를 중용이라고 해도 좋지만, 순수한 우리말 ‘온힘’이 더 풍부하고 심원한 의미를 담는다. 플랫폼국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의 동일률과 모순율과 배중률 그리고 칸트의 이율배반과 헤겔과 마르크스 변증법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온힘의 영역을 구축하여 양극단을 통합하며 성립한다. 개벽상태는 천하대란을 극복하며 플랫폼국가의 만들어가는 첫 번째 상태이다.” -18p-

저자는 홍익인간형을 설명하면서 역사철학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이원론적 유토피아론과 순환적 역사관 과 ‘홍익인간 모형’이다.

“ 지난 3천 년 간 동서양을 지배해온 사상은 차라투스트라의 이원론적 유토피아론이었다. 이원론과 유토피아론이 결합할 때 그것은 정치와 종교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원리가 되었다. 이 원리가 역사를 설명하면서 창조와 종말이 직선적으로 설명되는 일환론(一環論)의 역사관이 된다. 이 일환론을 완전히 부정하며 역사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장쇠멸의 과정으로 거치며 순환한다고 주장하는 역사관리 순환사관이다. 이는 고대인들의 우주순환론과 이든 할둔과 슈팽글러와 토인비가 설명한다. ‘홍익인간 모형’은 역사순환론의 생명쇠멸의 과정을 인정한다. 그러나 역사순환론과 다른 새로운 생명의 과정을 설명한다. ‘홍익인간 모형’은 단순환 순환론이 아니라 개인과 국가와 사회에 주어진 상태들을 최적화하여 순환론을 극복하는 이론체계라는 점에서 순환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하면 인간 개인과 대중은 자신이 중심에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간의 존엄성인 인존성을 바탕으로 전체 과정안의 모든 상태들을 자율과 자치의 힘으로 능동적으로 최적화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각 상태를 최적화할 때 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와 능력을 증폭시키면서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147p~148p-

저자는 위 설명이외에도 플랫폼국가 기본모형을 도형을 제시하여 설명하면서, 음양오행과 개벽상태와 태극과 64괘 등 동양철학에 나오는 용어를 사용했다. 아울러 산업혁명, 유럽 플랫폼국가의 흥망성쇠, 영국과 러시아의 교훈, 포스트 전체주의 국가 중국, 반도체 문명, 서양철학, 백범사상 등을 소제목으로 하여 홍익인간형 플랫폼 국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왠지 현실적이거나 구체적이지 못하고, 관념적이며 이상적인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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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사람혁명 -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힘
신동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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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간웅 조조가 현세들어 잘 나가는 기업의 CEO처럼 각광을 받고 있다. 초한지에서는 유방이 장량과 한신의 도움으로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고, 삼국지에서는 한나라가 황건적의 난으로 기울어 갈 때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각축을 벌이다 위촉오시대를 만들어간다. 삼국지관련하여 어느 책에서는 천지인에 비유해  땅을 잘 지킨  수성의 손권, 그리고 너그러운 인성의 유비 그리고 조조를 하늘이 내린 인물로 그럴 듯하게 분류해 놓았다. 

  아울러 저자가 편역한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통치학>에서는 후흑학의 도(道)인 면후심흑(面厚心黑)를 말하며 삼국지의 영웅들을 색다르게 평가한다. 면후심흑이란 "천하의 두꺼운 낯가죽과 천하의 시커먼 속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유비는 낯가죽이 뻔뻔한 면후의 대가로 난관에 봉착할때 마다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통곡하여 패배를 성공으로 바꾸어 놓았고, 조조는 시커먼 속마음을 가진 심흑의 대가로 여백사를 죽인 뒤에 "내가 남에게 버림을 받는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굴은 온후한 듯 두꺼워야 하고 속마음은 그 누구도 알수 없을만큼 시커먼 면후심흑(面厚心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에 비하여 비교적 얕고, 본문의 내용은 삼국지의 내용과 시중에 깔린 여타의 전략적인 성공지침서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조조의 인물상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현대적 관점에서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열다섯장으로 나누고 사자성어을 함께 곁들여 풀어 놓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조조의 인재등용정책이 드러난 "제5장 십보방초(十步芳草 열 걸음 안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있다) 인재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편이었다. 사실 인재가 중요하고 그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누구나 절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간쓸개 다내놓고 인재를 얻고 그 인재을 내 수족처럼 믿고 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조조는 현세의 CEO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난세의 영웅임에 틀림없다. 

 

  본문보다 해설편은 오히려 저자의 색깔과 집필 의도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우리가 흔히 읽는 삼국지는 원대말기 나관중이 <조만전>과 <이동잡어>등을 토대로 쓴 <삼국연의>를 번역한 역사소설이다. 그래서 실제 유비나 조조와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관중의 원본이 아닌 청대의 모종강부자가  개정하여 쓴 개정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은 얼치기 창작 삼국지가 횡행하고 있어 제대로 된 역사상의 인물 조조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삼국지만 읽으며 한 해를 다 보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삼국지와 관련된 이 책을 읽으니 다시금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다. 왜 구지 현세와서 조조같은 사람이 조명받아야 하는가.  왜 하필 하후씨 조맹덕인가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조조가 득인(得人)의 천재, 용인(用人)의 연금술사이기 때문인가. 내 보기엔 오히려 성공과 출세가 제일 화두가 되어버린 현 세태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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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식인의 죽음 - 김질락 옥중수기
김질락 지음 / 행림서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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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라고 하면 사춘기 적에 읽었던 사랑의 체험수기가 떠오른다. 그 시절엔 읽을거리가 부족해서 갱생지에 펜팔할 수 있는 주소들이 적힌 삼류잡지나 체험수기만을 모아 따로 펴낸 책들도 촌구석에서는 귀했다. 그리고 그 때는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체험수기들은 제법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옥중수기라고 하여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나 감옥에서의 체험담을 담은 <야생초>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같은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옥중 체험수기가 아니라 옥중에서 직접 쓴 북한 공산주의 체험수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것도 성장소설형식의 장편소설이라 할 만큼 훌륭한 글솜씨를 자랑하고 있는 소설같은 수기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했던 1960년대 지은이 김질락(가명 이영수)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다 친삼촌 김종태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와 <청맥>의 주간이 되고,  통일혁명당 발기인이 되었으며, 학사주점을 운영하던 이문규와 같이 입북하여 북한의 실상을 보고 돌아온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가지 관점에서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이 믿는 사상을 위해 죽음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인간정신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어떻게 가능한가였고, 두번째는 그렇게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확고한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 어떤식으로 변화되었고 어떻게 새로운 생각이 가능한가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초반부는 성대했으나 그 마지막은 미약했다. 특히 북한을 다녀온 것으로 수기가 아쉽게 끝나버려 맥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본 것을 계기로 사상의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 났는지, 그렇다면 검거되기 전에 왜 자수하지 않았는지, 사형이 선고되고 난 후에야 살기위해 전향을 했는지 그런 이후의 애기가 빠져 있다.  그런 면에서 혹시 이런 반공 수기를 써야만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유혹이 있었거나  예상치 못했던 사형집행때문에 북한을 나녀온 이 후의 이야기를 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우리나라 근대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마음 한구석에 울분과 화가 치밀어 온전하게 사물들을 대면하고 있을 수 없다. 특히 815부터 625와 419사이는 차라리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게 속편할 정도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망국과 동족간의 이념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그 흔한 노벨문학상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미약한 국력이나 언어의 장벽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살아야 할 사람은 다 죽어 버리고 죽어야 할 사람만 살아 남아서 부끄러움조차 사라져버린 이 땅에  무슨 의리가 살아 있고 무슨 진리가 남아 있겠는가. 요즘 세대는 공산주의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불온서적이 있을 리 없고 주암산에 다녀온 어느 지식인의 죽음엔 더욱 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오로지 색과 욕과 술이 있을 뿐이다.

" 유물론적 변증법은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에서 우연을 인정한다. 변증법의 기본 이론은 물질을 정의하되 물질을 물건이나 물체와 구별하고 모든 물체의 궁극적 구성인자를 물질이라 정의한다. 그것은 분명 인식론의 영역이며 과학은 아니다. 그들은 모순이 격화되면 투쟁의 상태가 일어난다는 유물론만 알았지 모순도 투쟁도 맥을 못추는 반야의 세계는 모른다. 무수상행식하고 무안이비설신의하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하고 오장이 개공인 상태를 깨달을 만한 큰 지혜가 없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가리켜 아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종교가 현세적인 권위를 결코 영원을 지배하는 권위 위에 두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에는 사랑을 주고받고 사람을 용서해 주는 관용의 창구가 없다. 다만 지령의 창구가 있을 뿐이다. - 122P, 329P에서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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