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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일어나서 일하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씩 날새며 일하지만 일어날때마다 상당한 스트레스가 쌓인다. 처음엔 직장 자체에 대한 회의감마저 일었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운명이려니 하고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또한 저자의 말을 빌면 "고(苦)"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새벽의 새로운 기운을 느낀다. 새벽에 하는 생각들은 명료하다. 조금이나마 깨어있음의 이미를 느낀다. 이럴 때 짬짬이 서평을 읽기도 하고 서평을 쓰기도 한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제목에 다소 실망했다. 번뇌리셋이라. 현대적 느낌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지만 뭔가 대중을 의식한 냄새가 난다. 역시 책표지에 이 책은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이고 "일본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라고 써있다. 저자의 말처럼 다소 유쾌하지 않은 반발의 에너지(진에 瞋恚)가 일렁였다. 번뇌가 그렇게 말처럼 쉽게 청소될 수 있는 의식이란 말인가. 컴퓨터 리셋하듯 쉽게 리셋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단 말인가.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한다(샤르트르). B는 birth(탄생)이고 D는 death(죽음)이며 C는 choice(선택)의 약자이다. 과연 그렇다. 우리는 삶과 죽음사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사회속에서 하나의 가치관을 선택해야하고 견지해야하며 판단의 갈림길에서 항상 최선의 해답을 찾아내야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번뇌의 밑바탕이다. 종교도 알고보면 그 중 하나의 선택일 뿐이고 스스로 찾은 삶의 위안책일 뿐이다. 저자는 불교의 입장에서 우리들의 번잡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쉽게 알려주고 있다. 그 실효성에는 다소 의문이 가지만 많은 일본책자들이 그러하듯이 얇고 작은 책에 색상도 화려하다. 사실 처음 책장을 열기전에는 일본 스님의 일본빛깔의 일본식 불교의 모습은 궁금했다. 거기다가 동경대 출신의 스님이니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불교관련 책자에서 지식을 충족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 읽는 일본스님의 불교에 대한 생각이니 탐(貪)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생각보다 휠씬 쉽다. 여성스럽고 가볍다. 책표지의 저자 사진일 것 같은 모습은 비구승인지 비구니승인지 알 수 없었지만 책을 읽는 도중에 저자가 비구니승임을 암시하는 글이 있어서 겨우 비구니스님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 만화는 잘 보지 않아서 4컷짜리 삽화는 처음 몇쪽만 읽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읽을 셈으로 건너뛰었다. 마지막 번뇌 리셋 레시피는 아주 유효했다. 이 레시피는 불교의 기본상식인 삼독(탐貪, 진嗔, 치癡)과 삼학(계戒,정定,혜慧) 그리고 오온(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과 삼법인(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대하여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탐욕은 계율로, 진노는 선정으로 무지는 지혜로 다스린다는 불교의 정법이 더욱 빛났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삼독에 관한 설명이었다. 우치(愚癡)를 뇌안에서 빙글빙글 계속 회전하는 망상의 회전에너지로 설명하고, 분노를 유쾌하지 않은 대상을 밀어제치고 배제하려고 하는 반발의 에너지로, 탐욕을 괘감을 주는 것을 더 끌어들이려는 인력에너지로 설명한 부분은 다른 어떤 설명보다 쉽고 명쾌했다. 특히 우치(愚癡)에 관한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헤매임의 카르마(업 業)가 늘면 점점 더 머릿속에서만 사고가 헛도는 공전(空轉) 인격이 구성됩니다. 그러면 서서히 집중력, 결단력, 명석함, 지구력 같은 능력이 쇠퇴해 버립니다. 그리고 또 마음이 뇌 안에서 은둔(隱遁)해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눈앞에 놓인 일에 몰두되지 않아 눈앞의 일이 시시한 것으로 느껴지는 함정에 빠지고 해보자는 끼가 쇠퇴하여 갑니다. 어떤 일이든 사물을 즐기기 위한 필수 조건은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몰두하는 것입니다.(133P)"
불교에서 무지는 알고 모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깨어있지 않는 몽롱한 상태를 말한다. 수많은 시선이나 수많은 잡생각들에 빠져 헤맬때 우리는 우리자신을 잊어버리고 몽롱한 좀비(zombie)가 된다. 물론 탐욕이나 분노 또한 멀쩡한 인간을 허수아비로 만들지만 치(癡)야말로 우리삶을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언제쯤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한숨 한번 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