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 18현 - 조선 선비의 거울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문묘는 서울시 명륜동에 있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성균관 대성전(보물 제 141호)과 동무,서무(사적 141호)를 총칭하는 공간으로, 현재 동무와 서무(대성전앞 동서양측 전각)는 비어있고, 대성전에 대성지성 문선왕 공자를 중앙 정위로 하여 4성(증자,안자,맹자,자사), 공자의 제자 10철, 송현 6현(정호,주돈이,소옹,,정이,주희,장재) 그리고 동국18현(최치원,설총,정몽주,안향,정여창,김굉필,이언적,조광조,김인후,이황,성혼,이이,조헌,김장생,송시열,김집,박세체,송준길)의 위패가 동서로 봉안되어 있다.(382p에 봉안위차도 참조) 이 책은 바로 이 대성전에 봉안된 동국(해동) 18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조선왕조실록>의 상소문과 졸기(卒記)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151호로 1866권 887책(국역본은 모두 413권)이며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기록 유산으로 지정한 우리문화의 위대한 문장의 보고(寶庫)이다. 졸기란 <조선왕조실록>에 등재된 명문장의 한 유형으로 조선시대 때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날짜의 실록에 고인의 생애를 기록한 글로서 조선왕조에만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아울러 행장도 더러 인용되고 있는데 행장(行狀)이란 망자와 가장 가까웠거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최상위 문장가의 글을 받는 것으로, 죽은 사람을 기리는 문장 중의 한 유형으로 묘지명이라는 이름으로 돌에 새겨져서 금석문으로 남아있는 글을 말한다.(35p,85p, 89p)

이 책은 특별하면서도 객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나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내용 자체의 어려움이라기 보다 실록에서 인용된 글이 너무 길어서 일일히 챙겨 읽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특히 회재 이언적에 관한 글은 94p에서 109p까지가 전부 상소문이라서 꼼꼼히 읽기가 어려웠고, 매 인물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상소문과 졸기는 특별하였지만 구지 이렇게 시시콜콜한 애기까지 다 읽어야 할까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용 중간중간에 신선한 부분이 여러 곳 있었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웠던 "이이의 십만대군 양병설"과 "설총의 이두 창제설"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이이의 경우의 그의 저작들 어느 곳에도 십만대군 양병설을 주장한 곳이 없고, 설총의 경우에도 설총생존 이전의 <서동요>등에서 이두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설총이 이두를 창제한 것이 아니라 이두를 집대성한 것으로 봐야 마땅하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342p) 아울러 송시열의 예송문제에 대한 자세한 언급도 신선했다.(268p)  내가 사는 대전에 우암 송시열의 남간정사(강학당)와 동춘당 송준길의 동춘당(별당)이 있다. 남간정사에 있는 기념관에 가장 큰 글자 한 글자가 표구되어 있다..그 인상깊은 글자는 바로 恥(치)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된 우암 송시열이 생원시에서 논술하여 급제한  "일음일양지위도 (一陰一陽之爲道)"에 관한 글도 직접 볼 수 있다.

작년 도서관 독서모임에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카는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에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케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최신사댁 세째딸이 한강을 건넜다."라는 사실은 과거에 존재했다해도 역사적 사실이 되지 않는다. 즉 과거의 어떤 사실이 현재에 어떤 의미(대화)를 줄 때만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 사실의 과학적인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다 중요한 문제는 역사의 한부분이 현재에서 말해질 때 왜 하필 수많은 사실중에 그 사실이 현재시점에서 선택되었냐는 것이다. 역사란 아무리 객관적인 취사선택이 되었다해도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그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오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역사의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혼란스러워 역사알기를 회피하고 있다. 특히 해방직후 좌익과 우익 갈등 그리고 친일파들의 득세, 재벌경제사 등에 관한 책들은 가슴이 먹먹해져 다시는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히 유익하고 든든하고 읽을 만하다. 이제와서 사대주의적 문묘가 무슨 자랑이냐고 힐난할 지 모르겠으나, 결코 버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우리민족의 통한(痛恨)의 역사라면 차라리 명륜당이 있고 죽음을 불사한 현인들이 있는 역사를 반추하여, 보다 긍정적으로 역사를 비춰볼 수 있는 시각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