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철학, 답하는 종교
하카리 요시하루 지음, 김청균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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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사이타마대학 명예교수 하카리 요시하루의 [종교철학입문]을 번역한 것으로

일본의 방송대학 교재로 여러해 동안 사용한 [종교의 철학]을 저본(底本)으로 한 종교철학 입문서이다.

책의 제목은 폴 틸리히(1886-1965)의 "철학과 종교는 비소유와 소유, 묻는 것과 답하는 것의 사이에 있다"

라고 한 말에서 역자가 차용한 말인데 종교가 진리를 소유하고 철학은 소유하지 못했다는 말이나

철학이 진리를 묻고 종교는 답하는다는 것은 다분히 분석적이고 이분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철학을 영위하는 능력인 이성의 관심에 대해 [순수이성 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나는 이성의 모든 관심(사변적 관심도 실천적 관심도)은 다음의 세가지 물음으로 집약된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형이상학)

2)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도덕)

3)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종교) "  -14p -

 

이 책은 크게 종교철학의 과제로 가는 방법으로 제2장 - 제10장까지 세계3대종교(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예로 들어 설명했고, 종교철학의 과제인 구제문제,절대자문제,신앙의 문제 등을 제11장 - 15장까지 설명했다.

즉 애매모호한 종교일반의 문제보다 접근하기 쉽은 구체적인 개별종교의 발생과정이나 교리 등을 먼저 설명한 뒤

각 종교(3대종교)의 구제, 절대자, 신앙, 진리문제 등을 논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일반의 문제를 생각하도록 했다.

사실 나는 20대까지 기독교 신자, 30대에는 불교 신자, 40대 이후부터는 무신론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각 종교의 대한 대략적인 모습은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이 책을 읽는데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몇군데 인상깊었던 부분에서 역시 내가 안다고 할수 있는 것은 내가 무명무지하다는 사실이란 것이었다.

 

먼저 현대는 무신론, 니힐리즘의 시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익히 들어온 바에 의하여

종교는 범신론에서 다신론, 다신에서 유일신,유일신에서 무신론으로 흘러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니힐리즘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역주가 없었음) 그래서 일명 네이버 형님에게 물어보니

니힐리즘이란 "라틴어의 ‘무()’를 의미하는 니힐(nihil)이 그 어원, 허무주의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불교의 사법계(四法界)에서 사사무애(事事無碍)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었다. (86p)

4법계에서 법계는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의 세계관에 의하면 4개의 법계가 있는데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계(理事無碍界), 그 마지막이 바로 사사무애계이다.

이사무애는 반야경의 공즉시색,색즉시공과 동일한 의미로 "理卽是事 事卽是理"와 같은 의미인데

사사무애는 사(事)와 사(事)에서도 그 즉비논리가 통한다는 것이다.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가 예수이지만, 예수가 부처요 무함마드가 될 수 없듯이

이러한 "사사무애법계 같은 관점이 그림자조차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사무애법계관은 유신론도, 범신론도, 신비론도 아니며 유신과 무신을 모두 초월하고 있다.

 

칸트는 모든 판단을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분석판단은 단순한 논리적 판단으로 여기에서 진리의 의미는 무모순성으로 따지고

종합판단은 실재적 판단으로 여기에서 진리는 인식과 대상과의 일치 여부를 의미한다.

보통 진리는 이렇게 인식되어지는 것에서 그 모습을 들어내고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철학적 진리는 객체적이지만, 종교적 진리는 단순히 객체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주체적이다.

종교의 구제문제에서도 구제는 개별적이고, 바로 나의 구원이요 나의 해탈이기에 주체적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상생공존해야 옳으며 그 누구에게도 주장할 수 없고 주장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현대라는 시대를 진단할 때 그 현상으로 도덕(moral)의 근원적 퇴폐를 말한다.

그런데 작가는 도덕의 근원적 퇴폐를 부도덕(immoral)이 아니라 무도덕(amoral)이라 말하고 있다.

임모럴(부도덕)은 그나마 도덕을 전제하고 있지만 에이모럴(무도덕)은 도덕 자체를 부정한다.

이 에이모럴의 본질이 바로 니힐리즘(허무주의)이고 이 니힐리즘이 바로 무신론인 것이다.

이러한 니힐리즘(허무주의)은 존재와 가치에 대한 확실성의 상실을 말한다.

그리고 존재의 니힐리즘은 불안이나 권태같은 인간의 근본기분 속에 나타난다.

불안은 특정한 대상이 있는 걱정과는 달라서 특정한 대상이 없음에도 왠지 불안하고

권태는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체의 모든것에 대하여 느끼는 근본기분이다.

근본기분으로서의 불안은 모든것에 대한 과잉관심이고, 이것은 다시 초조로 나타나며

근본기분으로서의 권태는 모든것에 대한 무관심이고, 이것은 다시 무감동으로 나타난다.

불안과 권태의 근원은 인간존재의 니힐리즘이고 그것은 무(無)의 현상이다. 아울러

가치의 니힐리즘은 어떠한 행위를 위한 보편적인 원리나 윤리적 판단의 무(無)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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