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짐승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2014.9.13~9.16

 

에밀 졸라의 작품은 지난해 말 읽었던 '작품' 이후 간만이다.

 

자크 랑티에가 나온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의 세 아들 중, '작품'에서는 큰 아들인 끌로드, '제르미날'에서 막내인 에티엔에 이어 둘째 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거기에 막내딸인 나나의 생을 다룬 '나나'만 읽으면 그의 자식들의 일대기를 모두 읽게 되는 셈이다.

 

'인간짐승'은 참 잔혹한 작품이다. 여기에 나오는 죽음들이 잔혹하다. 제르베즈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읽는 것도 고통이지만, 여기서는 칼에 목을 맞아죽고, 기관차에 치어 죽는 등 참 독하게도 죽는다. 사람 뿐 아니라 말들도 다리가 잘려나가 버둥대다 죽어간다. 작가는 이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데, 그가 그려낸 이 참상이 진실된 세계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을. 흔히 잔인한 영화의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이것이 세계에 더 가깝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짐승'에서 묘사된 비참한 죽음들은, 특히 작가가 살던 19세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짐승'은 살인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다룬다. 먼 옛날부터, 아주 머나면 옛날부터 인간은 살인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 '교육'을 통해, '문화'를 통해, '법과 제도'를 통해 그 본능을 억제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지만, 자크의 경우처럼 이유없이 살인욕구가 유독 강하게 발현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성적인 충동과 맞물려. 살인 본능이 태초에 기원을 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러한 사람은 요즘 세상에도 뉴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교육을 잘못 받은 것인지, 만화나 비디오게임이 그들의 심성을 망가뜨린 것인지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졸라 식으로라면 이들은 태초로부터의 인간 본성에 충실한 인간들인 것이다. 짐승의 본성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인간들인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작품은'철도'라는 당대의 소재를 다룬다. 세탁소(목로주점), 백화점(여인들의 행복백화점), 탄광(제르미날), 예술(작품) 등 그는 제2제정 시기에 등장하는 사회현상에 대해서 예리하게 관찰하여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철도다. 여기서 철도는 여러 인간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삼키는 존재이다. 많은 사람이 인간의 살인본능의 실현도구로서의 철도에 희생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막판에는 급기야 '괴물'로 표현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과연 그것 뿐일까? 철도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문명의 진보'를 상징하고 있지 않을까?

 

기관차가 도중에 산산조각내버린 희생자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기관차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로 인해 뿌려진 피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 571쪽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진실에의 강한 열망을 가진 에밀 졸라의 태도이다. 조금 역설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진실을 밝히느냐 마느냐의 열쇠를 쥔 카미라모트 사무총장은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풀어가고 있는 예심판사인 드니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진실이 말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진실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오. 개개인의 이익도, 심지어 국가 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말이오... 계속 정진하시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신경쓰지 말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시오."

- 546쪽

 

이 문장이 문득 나를 섬찟하게 했다. 다음의 문장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 에밀졸라, '전진하는 진실', 박명숙 역, 은행나무

 

드레퓌스 사건에 즈음한 졸라의 외침이다. 앞선 말이 마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그의 변론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런데 시기적으로 '인간짐승'은 드레퓌스 사건에 앞서 있다.(드레퓌스가 유죄판결을 받은 때는 1894년이고,  '나는 고발한다'는 논설문 기고는 1898년의 일이다) 그는 국가의 집단 최면에 진실이 가려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는, 평소의 소신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졸라와 그의 자연주의 작품을은 너무도 생생하고, 외면하고 싶을만치 잔인한 인간성을 묘사하고 있다. 박찬호나 봉준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기가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지금의 세계를 부정하려는 자기기만이기에 나는 내일도 그의 다른 작품을 읽으련다.

에밀 졸라, 인간짐승, 드레퓌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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