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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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만. 처음 읽었을 때 인생이 너무 허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 읽어도 여전히 허무하게 한다. 오조가 작가 자신이라고 봤을 때, 유복한 집안 형편과 빈민들에 연민 사이에서 번민하면서 사회에 자리잡지 못하고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쉽지는 않다. 생물학적 성과 실제 느끼는 성이 일치하지 않은 성 때문에 방황하는 성소수자들이 이 작품에 공감하지 않을까. 자신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회의 벽에 부딪혀 끝내 좌절한 변희수 하사가 떠올랐다.


「직소」
처음 읽었을 때에는 참 독특한, 반전 있는 성경소설이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예수에 대한 가롯 유다의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 한없이 사랑해도, 그 사랑을 알아주지 않아 발생한 그 다음의 행동에 대한 변명.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 석 장을 본 적이 있다. - P9

인간이라는 존재는 왜 하루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일까. 정말 모두들 엄숙한 얼굴로 먹고 있군. 이것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어서, 가족이 삼시 세끼 시간을 정해 놓고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 밥상을 순서대로 늘어놓고 먹고 싶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밥알을 씹는 것은 집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하는 행위가 아닐까. - P15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라는 존재를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 P17

인간의 삶에는 서로 속이면서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 P26

어떻게 하면 저처럼 인간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행동이 속여도 건드리지 않으면 탈이 없다는 둥 똑똑하고 교활한 처세술과 마찬가지가 되는 걸까요.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 P91

여기에 끌려와서는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저의 이마에는 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겠지요.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 P130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 그분이 죽는다면 나도 함께 죽을 테다. 그 사람은 누구의 것도 아니야. 내 거야. 그 사람을 남의 손에 넘기느니, 차라리 그전에 내가 죽여 버리겠어. 「직소」 - P143

실로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저는 아아, 이제 이 사람도 내리막 뿐이다, 꽃은 시들기 전까지가 꽃인 것이다, 아름다울 때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분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남들이 아무리 미워해도 상관없어, 하루라도 빨리 저분을 죽여 드리지 않으면 안 돼 하고 괴로운 결심을 점점 더 굳혔던 것입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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