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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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시 '김중혁' 님이시다.

 

   저는 김중혁 작가님의 글을 무척 좋아합니다.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에세이류는 작가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가 저랑 궁합이 맞는지 안맞는지 어느정도 느낌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김중혁 작가님은 저의 Favorite 작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진중하고 심각한 글은 무척 부담스럽고 힘들거든요.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유머"와 "위트"라고 생각하니까요.

 

   이 양반 언제봐도 유머가 있습니다.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데 그저 어이없게 웃겨서가 아니라 내용있는 웃음을 주는 편입니다. 스스로 가볍게 만들어서 독자와의 간극을 줄일 줄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잘쓰는데다 그림까지 훌륭하니 역시 김중혁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해요 김중혁!!!

 

 

#2. 세상에 공장이 참 많다.

 

   이 '공장'이란 어감이 참 중공업스럽습니다. 뭔가 무겁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공대출신인 저도 그러니 아마도 대부분은 뭔가 친근하지 않고 딱딱하고 삭막하고 시끄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장하면 '라인'이라고 부르는 컨베이어 밸트에 사람들이 서서 각자 공정을 맡아서 제품을 차츰 차츰 조립해서 완성해 나가는 장면이 떠오르니까요. 실제로 공장은 무척 다양할텐데 일반적으로는 상상력의 한계인지 경험의 한계인지 떠올리는 장면은 늘 스테레오타입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처음 봤을 때 별 희한한 기획이라는 다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니 김중혁 작가라면 뭐, 잘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책은 꼭 읽을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얼마나 흥미롭고 독특한 곳을 다니며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섞은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무척 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장이 참 많습니다. 공장이란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곳이니까요.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는 블로거 각각이 생각공장 공장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은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무료인데다 원래 불량식품이 더 땡기기 마련이니 다들 의미는 있는 공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인간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p009

 

 

#3. 재미난 공장들, 더 재미난 생각들.

 

   작가가 재미난 공장들을 많이도 탐방했습니다. 소설가이자 글쓰는 직업이 직업인 만큼 제일먼저 종이만드는 제지공장에 다녀왔더군요. 글을 쓰는 일은 종이를 사용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나무들을 희생하는 일이니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낸다는 일이 자연보호와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책은 만들되 최대한 재생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근데 두번재로 들른 공장이 "콘돔"공장이라니 작가의 관심은 역시나 글 다음은 콘돔 거시기 인건가요? 심지어 다음 순서는 브래지어 공장입니다. 이게 한계레에 연재된 글이니 아마도 초반에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순서가 아닐까 라며 작가님을 보호해드려야겠습니다.

 

   지구본 공장도 있고 초코릿 공장, 엘피판 공장, 피아노 공장도 흥미로웠고 맥주 공장, 라면 공장 다 좋았지만 사실 저는 중간즈음에 끼어있는 '김중혁 글 공장 산책기'가 가장 관심이 가고 좋았습니다. 설렁설렁해보이고 늘 쉰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 김중혁 작가는 대충대충 이미지로 비쳐질 수 있고 저도 사실 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이 글 공장 꼭지를 통해 밝혀주고 있는 글쓰는 과정을 살펴보다보면 상당히 꼼꼼하고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글쓰기 시스템을 스스로 보유한 작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많이 쓴 유명 작가들 중에 하루키처럼 상당히 금욕적이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작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김중혁 작가도 이 범주에 넣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4.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조화를 생각하다. 

 

   아무래도 작가가 년식이 있다보니 공장에 들를 때마다 각 공장의 과거와 현재의 위상차이에 대한 단상이 많이 나옵니다. 저는 작가보단 다행히 어리지만 안타깝게도 작가의 회상이나 옛 기억들을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 흠... 좋아해야하는건지... 여튼 작가와 어느정도 연배가 맞아야 좀더 공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과거에 호황을 누렸으나 최근에는 운영이 어렵고 다른 활로를 모색하는 공장들도 꽤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엘피제작 회사 같은 경우, 요즘에 매니아들이 아닌 이상 엘피판을 사서 턴테이블에 올려서 듣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아 듣는 디지털 세대에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엘피가 사라지지 않고 생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공장분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의 경우도 아날로그 피아노가 사라져가긴 마찬가지 입니다. 도자기 공장 역시 예전만 못한 것은 물론 기술을 이어갈 후학을 찾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도 없을 뿐더러 누가 억지로 흐름을 만들수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무관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엘피와 시디, 비디오테이프와 디브이디, 아날로그는 부피가 크고 불편하지만 소수의 지지자가 있고, 디지털은 작고 간편하며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사용한다. 어쩌면 그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생각했다. 고속버스는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데려다 주지만, 많은 정류장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중략) 빠른 건 빠른 대로 중요하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건 또 그것대로 필요하다. 어떤 게 더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둘 다 필요하고,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p.182

 

 

#덧,   한 꼭지가 끝날때마다 끼어있는 "사물의 뒷면"이라는 쉬어가기 페이지도 무척 김중혁스럽게 좋았습니다. 내용 다채롭고 부담없고 재미있고 공감갈만큼 작가의 이야기가 좋은데다가 심지어 길지도 않으니 어찌 읽지 않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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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7
안치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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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대로된 한국형 탐정소설을 만나다.

 

   안치우 작가의 작품은 처음입니다. 이 작가의 근작 [재림]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첫인상처럼 느낀것은 글이 섬세하고 탄탄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표현도 깔끔하고 한편으로는 기교가 있지만 억지스럽지 않아 상당한 베테랑의 글처럼 여겨집니다. 가독성도 좋고 부자연스러움 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점도 장점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문학적인 용어나 단어를 사용하려 애를 쓴 듯한 모습이 조금은 거슬리기도 했지만(저 같은 사람은 평생 듣도보도 못한 단어들을 꽤나 사용하고 계십니다. '워낙에 일반인이 안쓰는 단어들'을 일부러 연구하시기라도 한 듯 특히 초반에 많은 단어들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훌륭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사실상 원 톱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권민'이라는 인물은 왠지 '셜록홈즈'스러운 지나친 능력자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넘칩니다. 남성적인 여성 '권민'과 대조적으로 여성적인 남성인 '승주'의 등장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변호사의 신분으로 탐정까지 하는 독고잉걸의 존재는 절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 들이 펼치는 한국형 탐정 보고서와 같은 이 작품들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춰 한국인의 일반적인 정서에 최적화된 스토리 전개로 편안하게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이 작품을 대하면서 문학적으로 훌륭하니, 완성도가 어떠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 해외에 나가서 뭔가 속이 느글거리고 있을 때, 김치에 라면을 끓여서 밥을 말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무척 좋았습니다. 역시, 우리것이 좋은 것인가 봅니다.

 

 

 #2. 민감한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용기있는 태도

 

   [재림]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심상치 않았습니다. 매우 기독교적인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종교, 교육, 정치적 견해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 종교문제는 입장차이가 있을 때는 심각하게 대립하기 십상인 주제입니다. 그런면에서 저자가 종교 중 특히 한국 기독교의 폐단과 잘못된 종교적 신념을 매우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훌륭하다고 할 만 합니다.

 

   이 책에는 [재림]과 [만남, 그리고 시작]이라는 두개의 작품을 실려 있는데, 표제작인 [재림]에서 종교의 맹목성과 일방적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면 재림의 프리퀄 겪인 [만남, 그리고 시작]에서는 해외 실종 유학생 문제와 더불어 이민사회의 문제, 대사관의 사대적 태도 등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날선 비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잘못하면 균형을 잃기 십상입니다. 이 작품은 아예 대놓고 까고 있는 실정이라 균형이 어떠니 할 것도 없이 속 시원하기는 합니다. 다만 표현방식에 문제라고 한다면, 비판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란 점입니다. 그리고 이 직설적 비판이 또 너무 길어서 작품에 잘 녹아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소설의 중간중간에 '한국 기독교의 폐단'이라는 논문이나 기고문을 여기저기 끼워넣어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한번 잘 들어봐라'하고 '내 생각엔 한국 기독교는 말이야~~~'하고 몇 페이지에 걸쳐 계속 잘못된 점을 늘어놓는 택시기사 아저씨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중간에 내리지도 못하고 무척 난감해지는 것입니다.

 

   좋은 작품이란 순문학이던 장르문학이던 상관없이 그 목적에 맞는 중심의 이야기가 물흐르듯 흘러가고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 주는 작품입니다. 그 은유가 가지는 힘으로 인해 독자는 작품을 읽고나면 자연스레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정신을 장착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 [재림]은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던 저자가 갑자기 작품속에 개입해서 작가의 생각을 쏟아내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비판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작품 자체로 보았을 때 상당히 아쉬운 문제점이 있었는데, 작품속의 연쇄살인범의 진정한 범행동기가 사실은 종교적 맹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자가 계속 밝히고 있듯이 애초에 종교적 보복이나 응징이 아닌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전력이 있고, 종교적 응징은 이 범인의 살인마적 충동을 더욱 부채질한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속에 노골적으로 묘사된 기독교적 혹은 종교적 맹신의 문제점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그런 잘못된 종교적 신념 때문에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교의 탈을 쓴 살인마는 역시나 종교적으로 왜곡된 맹목적인 신앙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은 애초에 잃었고 인간의 목숨마져 경시하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저자가 비판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종교가 문제라고 엄청 강하게 비판했는데 막상 결말을 보니 역시나 예상했던 방법으로 종교적 응징을 한 것으로 보여지기는 하지만 모양새야 어찌되었건 꼭 기독교적 응징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살인은 계속했을 사이코패스 같은 범인이었단 말입니다. 이게 비판하는 지점과 결론이 서로 사맛디 아니한 듯한 어색함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3. 프리퀄이 더 작가의 역량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

 

   [재림]은 좋은 작품이고 재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너무 힘을 준 소설입니다. 초반에 불필요하게 과한 문학적 단어의 남발(물론 그렇다고 문장이 이상하거나 하지는 않았음. 무척 좋았으나 나는 거슬렸다는 점!!)이 보였습니다. 공모전 당선 이후에 나온 작품이라 그런지 의욕이 넘쳐서 인지 작가의 목소리가 스토리를 뚫고 나와버려서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한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프리퀄격인 [만남, 그리고 시작]에서는 지극히 적절한 용어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문장표현이 빛나고, 이 소설의 주인공 들의 배경과 사연, 캐릭터를 잘 잡아주는 스토리가 인상깊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세명의 주인공에게 집중하게 되고 흥미를 충분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금 밋밋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재림]이 너무 과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재림]을 전진배치해서 자극적이고 이슈가 될만한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주인공들의 사연과 인연을 자연스레 설명하는 방식을 노린 것 같습니다. 좀 전형적일 수도 있지만 차라리 순서를 바꾸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랬다면 재림을 좀더 편안하게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두번째 작품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약간 힘을 뺀 느낌이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저는 [재림]에서는 사실 갸우뚱? 했다가 [만남, 그리고 시작]에서 작가의 작가적 역량이 충분히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음 작품부터는 이 사랑스런 세 탐정들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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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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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서는 독서와 전혀 다른 일이다.

 

   [장서의 괴로움]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아, 이 책은 읽지 않을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과한 책수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이 '장서의 괴로움'을 곧 겪게 될 것이 예견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끄덕없지만 이제 슬슬 대비를 해두자' 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책 때문에 아이 학교 핑계대고 무리해서 큰집으로 이사하고, 이사할 때 큰방을 서재로 꾸미려고 갖은 애를 다 쓴 우리 부부가 과연 아직까지는 안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서(藏書)는 말 그대로 "책을 모아두는 행위"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서적을 간직하여 둠, 또는 그 서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장서는 책을 읽는 행위와 엄연히 구분되는 말입니다. 장서가는 책을 구해서 간직해 두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마디로 책 욕심이 넘치는 사람, 수집욕이 가득한데 그 대상이 책인 사람을 말합니다. 대체로 책을 좋아하면 당연히 책을 많이 읽게 되겠지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보니 의외로 책을 많이 사고 모아두는 사람중에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비교적 악착같이 사놓은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나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계속 어필하고 있음...)

 

 

 

#2. 장서의 괴로움에 공감하다.

 

   세상에 무시무시한 장서가가 무척 많은가 봅니다. 이 책에서도 장서가들의 예가 많이 나오는데 거의 일본인들입니다. 일본사회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좁은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다다미 넉장크기니 다다미 여섯장 크기니 이런 표현들이 많이 나오던데 그저 몇평이냐가 편하지 크기가 잘 감이 안오긴 하지만 책장이 몇개 들어가니 하는 표현을 보면 그리 큰 집들은 아닌 듯 한데 이 좁은 곳에 그야말로 누울곳을 제외하고는 엄청나게 쌓아올립니다. 심지어 책 때문에 가구를 다 빼버린 사람들도 종종 있는 모양입니다.

 

   이 책에서도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적당한 장서의 범위는 책을 진열했을 때 책등이 다 보이도록 진열하고 어떤 책이 어디쯤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미 적당한 장서의 수준을 조금 넘기는 했습니다. 서재 책장엔 거의 뒷쪽 책이 안보일 정도의 이중주차..아니 이중주서가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뭐 표지에서도 예상이 가능하지겠지만 주인공은 물론 대부분 언급되는 인물들은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책을 사 모읍니다. 몰랐는데 일본에는 우리와 다르게 목재로 된 집이 무척 많은 모양입니다. 이런 집들은 모이면 무척 무거운 중량물이 되는 책을 많이 보관하기에 적절한 구조는 아닙니다. 중량에 약하다고 하네요. 실제로 집이 기울거나 내려앉은 사례도 있으니 말입니다.

 

   여튼 장서가는 결국 책을 모으고 보관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책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다고 책 사모으기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장서의 괴로움 따위를 애초에 생각할 필요도 없는거죠. 결국 계속 불어나는 책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상황은 훨씬 증세가 덜하고 양호하다보니 오히려 안심도 되고, 위안도 되더군요.

 

"집에 같은 책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또 사는 지경이면 이상적인 독서공간이 슬슬 위험해진다는 신호다. 좁은 방에서 궁색하게 살 때는 누구나 좀 더 넓은 방에 살고 싶고, 책을 더 소장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욕망이란 끝없이 증식하므로 '이걸로 충분히 만족해'라는 선은 어디에도 없다. 넓은 방에 살면서 책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땐 그 나름대로의 고뇌가 싹튼다."p53

 

   최근에도 같은 책을  중복으로 산 경험이 있는 저는 상당히 찔렸습니다. 그리고 욕망에 적정한 선이 없다는 것에도 깊이 공감하고 인정하게 되더군요. 저도 사실은 고뇌가 싹튼지 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집어 들었죠.

 

 

 

#3. 적당한 장서는 어느 수준인가?

 

   이 문제는 참 누가 나서서 딱 정해줄 만한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사정이 다르니 말입니다. 그러나 몇만권씩 있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책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상당한 압박감을 받게 됩니다. 마치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취하기 시작하면서 술이 사람을 마시는... (아니 술이 술을 마시는 건가?) 상황이랑 비슷하죠. 여튼 언제부터인가 탄력이 붙어서 스스로 제어가 안되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 책에서는 적당한 수준을 꼭 필요한 책 5백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 5백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된다."p150

 

   결국 몇권을 소장하느냐의 문제는 욕망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어떻게 보면 홈쇼핑 중독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사고 사고 또 사는 건 똑같은 거니까요. 다만 책을 산다는 이유로 조금 덜 나빠보이고 덜 세속적으로 보인다고 해야할까나. 어쨌거나 5백권은 대단한 금욕과 절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같은 범인에게는 불가능한 조건인 듯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부부가 모두 장서가 기질이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수집 자체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합니다.

 

"수집을 통해 수집된 물건으로부터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생각의 방향성을 얻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은 스스로 목적을 알 수 없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하지만, 수집한 물건은 언젠가 언어가 되고 문맥이 되어 사람을 지혜로운 길로 이끈다.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 지혜의 결정체가 되어 간다."p170

 

   약간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일정부분 공감이 가는 표현입니다.  책을 모으는 행위 자체는 맹목적일수도 있지만 이 책을 잘 활용한다면 장서가를 지혜로운 길로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책을 과감히 정리하는 지혜로운 길로 이끄는 것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4. 이 책의 한계들..

 

   이 책의 가장 큰 한계는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국인인데 말이죠. 이 사실에서 파생되는 이 책의 문제는 첫째, 주요 예시로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이 모조리 시대를 넘나드는 일본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췌 그 많은 인물들 중에 제가 알아들은 인물은  하루키, 가쿠다 미쓰요, 마츠모토 세이초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언급되는 작품들은 하나하나 생판 첨 들어보는 작품들이고 유명인들인 듯 한데 전혀 모르니 흥미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번째로는 모아두었던 장서가 소실되는 아픔에 대한 챕터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전쟁당시의 공습에 대한 묘사는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공습을 받는 부분에 대한 역사적 가치판단은 전혀 없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공습으로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취'라는 묘한 표현인데 이게 참 언제적 이야기인가 싶을 만큼 기묘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취'란 책을 제본부분을 절단해서 낱장으로 만든다음 그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스캐너로 스캔해서 디지털 파일화 하고 전자문서로 변환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책을 팔아서 처분하는 것 외에 이렇게 전자문서로 소장하는 것을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가만 생각하면 정말 할일 없는 사람들이나 할만한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300페이지 쯤 되는 책을 절단해서 페이지마다 스캔을 뜬다면 그 한권을 스캔하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됩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언급된 예시를 보면 4200권의 책을 '자취'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일본은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가 안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장서정리의 최후 수단으로 '1인 헌책시장'을 열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도 저같은 개인이 책을 깔아놓는다고 얼마나 사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따라하기 어려운 해결책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뭐, 그냥 알라딘 중고매장에 가져가서 매도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은 사고 싶고 사놓은 책은 읽었거나 안 읽었거나 한권도 내놓기 아까운 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의 조언처럼 책을 줄일때는 하나하나 골라서는 불가능하고 과감하게 불타버렸다고 생각하고 막 뭉터기로 버리거나 팔아야하는게 맞나봅니다. 여튼 저는 오십보 백보이기는 하지만 장서가 보다는 애서가이자 독서가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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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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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로잉'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결정해주는 탁월한 소재설정

 

   이 작품은 지구의 자전이 느려져 하루가 길어지는 '슬로잉'이라는 이상현상을 소재로 삼은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디스토피아 소설은 아니지만 작품속 현실을 보면 다분히 인류에 위협이 될만한 상황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런 상황은 인간들을 불안하게 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에 대혼란을 야기하고 악영향을 줍니다. 이런 상황 설정을 통해 인간의 본연에 숨겨진 불안, 분노, 나약함, 공격본능, 이성상실 등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들이 상당히 그럴듯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슬로잉'이라는 소재, 상황 설정은 무척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슬로잉'이라는 현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작가가 묘사하는 장면들의 면면은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도 앞날을 모르고 예측도 불가능한 상황이다보니 답답하기만 해 보입니다. 이와 동반해 '슬로잉 증후군'이라는 신체적인 이상현상까지 나타납니다. 이는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고 심리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하는 병리현상으로 표현됩니다. 예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인간이 얼마나 불안해하는가를 간접적으로 잘 표현해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개인적인 사건도 아니고 지구의 자전속도 변화라면 이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대혼란, 모두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이죠.

 

   사람들을 통제하고 나름의 규칙을 정해 끼워맞추려하는 것은 늘 권력 계층이고, 이 계층의 권력욕구를 뒷바침해주는 것은 일단 나의 생존이 중요하다 여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입니다. 무규칙의 상태, 규정할 수 없는 상태를 싫어하는 권력 기득권은 대자연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으므로 적어도 사람들의 행동만큼이라도 예측가능한 범주에 넣어두려 노력합니다.이에 응해 다수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생존본능에 충실히 일단 통제를 따르도록 서로를 종용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세력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합의에 벗어난 선택을 하는 소수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응징과 린치를 가합니다.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런 행동을 통해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하려하고 정신승리를 꾀하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이러한 인간들의 심리적 행동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2.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설명되는 세계는 담담하기만 하다.

​

    비록 '슬로잉'이라는 현상이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양식조차 바꾸어 놓을 만큼 강력하기는 하지만 이제 갓 성장하는 열두살 소녀에게는 그저 신기한 일일 뿐입니다. 소녀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현상으로 인해 가정의 분위기가 변하고, 학교에서는 더욱 고립됩니다. 이 와중에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기존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한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감정의 홍역을 치루기도 합니다. 그렇게 소녀는 성장해갑니다.

 

"어쩌면 슬로잉 이전부터 시작되었겠지만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개비와 나의 우정이 허물어지고 있었다는 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험난한 항해였다. 힘든 여정이 늘 그렇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일 수는 없었다."p132

 

   이렇게 힘든 성장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의외로 담담하고 잔잔한 가장 큰 이유는 서술자체가 과거회상식 서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식은 감정의 과잉을 방지하고 사건을 좀더 객관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대해 더욱 애틋한 감정을 느끼도록 해줍니다.  

 

 

#3. 성장은 험난하지만 그 기억은 아름답다. 

 

"그 시기를 회상할 때 머리속에 떠오르른 것 하나는 우리가 정말 빠르게 적응했다는 사실이다. 한때 익숙했던 것이 점점 낯설어졌다. 우리의 해가 정해진 시간에 드고 졌다는 사실이 놀랍게 생각되었다. 내가 한때 외로움도 수줍음도 덜 타는 행복한 소녀였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나간 시절에 대해서는 언제나 신화가 덧입혀진다고 나는 생각한다."p.147

 

   유래없는 변화속에서 성장통을 겪는 소녀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란하기만 합니다. 그 와중에 부모의 외도까지 목격하면서 더욱 불안정한 상태로 치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모습은 참으로 빛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녀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 줄리아가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일반적이고 공감할 만한 감정들이고 독자들의 어린시절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주인공이 예뻐보이고 사랑스럽고 대견하기까지 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지구 자전이 느려지건, 빨라지건 어떤 환경에 처하건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겪어왔던 애틋한 그 지난 시절의 기억은 과히 기적의 세기라 부를 만 합니다. 줄리아가 느낀 그 경험들은 바로 우리 모두가 겪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언젠가 소중히 꺼내 보듬을 지난날의 기억은 즐거움이든 슬픔이든 상관없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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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1. 경찰소설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 같은 경찰소설...

 

   요코야마 히데오가 '항복'을 선언했다는 광고 문안에서 불안한 마음은 사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만큼 독특하다는 설명에서 한 껏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대하며 읽으려했던 내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경찰소설이란 뭐다'라고 누가 정해주는 건 없지만, 적어도 경찰소설이라하면, 경찰이라는 조직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그 과정 중에 사회정의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보여지고, 등장 인물간의 소리없는 경쟁과 이해관계의 대립, 팀원끼리의 끈끈한 우정, 가정사와 직장생활에서의 갈등 등등. 경찰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놓고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꺼리를 얼마나 잘 엮어서 전달하는가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경찰소설의 백미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범죄자의 악랄함 또는 지능적인 모습, 누가 범죄자랄 것도 없이 어그러진 우리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좋은 접근 포인트입니다.

 

   이 소설 [교장]은 그 어디에도 해당사항이 없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경찰소설이 아니라거나 경찰소설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경찰학교소설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문제없이 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찰이 되어 일선에서 활약하기 이전의 신분인 경찰학교에서의 에피소드 연작집 같은 성격이므로 참으로 애매모호합니다.

 

 

 

#2. 말할 수 없는 과장과 부자연스러움이 불편하게 하는 작품.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에 한계가 지어지면 굉장히 어려운 법입니다. 사사키조가 제복수사를 쓰면서 평생 교통사고 한건 안날 것 같은 한적한 시골을 무대로 이야기의 배경을 한정 지은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털어놓은 것을 염두에 두면 작가가 뭔가 새로운 경찰소설을 만들어 내기 위해 경찰학교를 다루는 것까지는 참신했는데 경찰학교내로 한정된 공간에서 뭔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재미있을지, 뭔가 색다를지에 대해 히스테릭하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은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지나쳤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새롭기는 했습니다. 경찰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그런건 어차피 일반인이 잘 알지는 못하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답답했던 것은 뭔가 말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입니다. 가끔은 극적인 설정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정된 상황에서 극적효과를 위해 지나친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쇼킹한 일들이 연속되는 것인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첫번째 에피소드를 보면, 생명의 은인인 경찰 때문에 경찰학교에 오게된 주인공이 그 은인의 아들과 같은 학교 같은 기수로 입학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성적이 나쁘고 당연히 스트레스가 많겠지요. 반면 주인공 입장에서는 그 아들이 반갑고 한편은 마음이 쓰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뜬금없이 그 아들이 주인공을 붙들고 자기를 동정하는 것이 기분나쁘다며 동반자살을 시도합니다. 이거 이해가 되는 스토리입니까? 제가 이상한건가요?

 

   두번째 스토리도 말할 것도 없고, 새번째로 넘어가자 더 황당합니다. 힘든 경찰학교에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상황이 특수할수록 감정은 더욱 크게 느끼는 것이니까요. 그런 친한 두 사람 중 한명이 억울하게 무단으로 학교내를 탈출했었다는 모함을 받는 상황에 놓입니다. 주인공은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수 있지만 사정이 있어 부인합니다. 그 사정이란게 경찰학교 일기에 써놓은 글 때문에 알리바이를 증명해주면 본인이 퇴교당하는 상황이란 것입니다. 몇주 후에 알리바이를 부인한 세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억울한 일을 당한 친구에게 양쪽 고막이 다 파괴되는 린치를 당합니다. 그것도 그냥 폭력이 아니라 상상하기 힘든 악랄한 수법으로 말입니다. 이런 상황 '그럴 수도 있겠구나, 워낙 억울했겠어...'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되는 이야기입니까? 아니 유치원생도 아니고 곧 경찰이 되겠다고 지원한 사람들이 평생 동지가 될 동기들끼리 조금 못마땅하면 말도 안되는 보복을 일삼고 그냥 때려치고 나가버리고 그러는겁니까? 이거 도무지 현실감이라곤 없습니다. 웃기게도 강력범죄라고 해도 좋은 린치를 막 가하고는 그냥 나가버립니다. 그 뒷이야기는 없죠. 이게 경찰소설이 되려면 그 나간 가해자를 어떻게든 잡아서 그에 응당하는 죄를 법적으로 물어야지요. 교장안에서 경쟁하다가 목숨을 위협해도 봐주는 겁니까?

 

   저는 작가가 특수한 상황이라는 한계에서 오는 압박감에 너무 과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장르소설이라도 있을 법한 상황, 누가 읽어도 납득이 되고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판단이 동의가 되어야 하는 법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 균형을 잃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의 이 작품을 저로써는 도저히 좋은 평을 하기 힘듭니다. 좋은 점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쉽고 빨리 읽을 수 있게 가독성이 좋았던 점 정도입니다.

 

   제가 너무 한쪽 시각으로 좋은 작품을 폄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좋게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경찰학교 지원생도 사이코패스처럼 맘에 안들면 동기들을 막 죽이려하고 피도 눈물도 없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모르겠지만 꽉 막힌 제 상식으로는 그저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놓고 요코야마 히데오나 혼다 테츠야와 나란히 비교하기엔 애초에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별로 밀도없는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작품입니다. 대부분 이웃분들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쓰셨던 것을 생각하면 개인의 취향에 안맞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넓고 경찰소설은 많고, 꼭 이분 작품이 아니어도 재밌게 읽을 책은 많으니 '특색있고 좋은 작품을 하나 읽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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