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 -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 이숲의 과학 만화 시리즈
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해설 / 이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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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인간의 속성을 이용한 비과학적 거짓말과 속임수, 검은 의도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돋보이는 글과 그림들

 

   인간이 참 재미있는 점은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가 한번 생기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되더라도 좀처럼 그것을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경향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한번 정한 태도를 바꾸기 싫어 자신의 견해와 부합되는 것만 받아들이고, 듣기 싫은 소리, 다른 이야기는 아예 외면하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 사회에 기이한 현상이 되고 이는 사회병폐로까지 나아갑니다. 여기에 이런 인간의 속성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면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집단체면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줌으로써 정치인, 대기업, 초대형자본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세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정신병동이야기]의 저자 대릴 커닝엄은 이 책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분야를 중심으로 몇가지 테마에 대해 바람직한 과학적 태도는 어떤 것인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비과학적이고 근거가 빈약한 잘못된 인식들이 무엇인지를 쉽고 객관적이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테마는 전기충격요법, 동종요법, 웨이크필드 사건의 진실, 달 착륙 조작설, 기후변화, 진화론, 카이로프랙틱, 과학부정론 등입니다. 일단 각 테마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되어있고 역시나 몇가지 사례를 적절히 들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줍니다. 이중에 가장 생소한 용어는 아마도 카이로프랙틱이 아닐까 합니다. 쉽게 말해 약물이나 수술등의 치료행위없이 의사(치료사)의 손만으로 뼈맞추기나 맛사지 등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대체의학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냥 의료행위로 봐도 될 듯 합니다.

 

   각 테마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 접근방법과 적용법을 잘 설명해줌과 동시에 어리석은 인간의 견해지키기, 신앙과도 같은 근거없는 믿음이 불러일으키는 나쁜 결과에 대해서 조목조목 경고합니다. 여기에 사례나 근거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이란, 비과학적이면서 대중의 편중심리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을 향한 표현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실체가 없는 막연한 음모론에 대한 허구와 폐해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참, 그리고 이번 책은 칼라라 더 보기가 좋았습니다. [정신병동이야기]의 심플하고도 묘한 분위기가 제법 사라진 듯해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2. 대릴 커닝엄은 어쩌다가 과학이야기를 그리게 되었는가?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정신병동이야기]에서 비교적 사적인 영역에 대한 문제를 담론화하고 많은 이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그가 왜 특정 분야도 아닌 광범위한 수준의 과학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요? 본인이 어떤 소재로 어떤 글 또는 그림을 그리던 제가 감놔라 배놔라 할 문제는 아니지요. 하지만 솔직히 생뚱맞았습니다. 이 생뚱맞음은 전편을 읽고난 직후 다음편을 집어들면서 제 나름은 기대했던 바가 있었는데 막상 내용을 보니 '어엉?? 이것은 뭔 소리다냐?'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게 만든데서 온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카이로프랙틱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책의 각 챕터 배치순서 때문이었습니다. 목차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저자가 관련이 있었던 정신과 의료행위와 관련된 내용에서 출발해서 점점 달 착륙이니 기후변화니 하더니 급기야 진화론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의료관련 테마로 돌아갔다가 최종적으로 과학의 적정성을 옹호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마도 진화론에 이르러서는 좀 너무 많이 나갔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물론 순서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과학자도 아닌데 왜 과학의 유용론을 흑백논리에 가까운 강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랄까? 뭐 그런 마음이 저도 모르게 들어서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3. 좋은 내용, 고민해 볼 것이 가득한 테마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편하다...

 

   흠.. 제글의 논지가 뭔가 이책을 엄청 비판하는 뉘앙스가 되는 거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이 책의 최대 미덕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쉽게, 시각적으로 잘 표현되어 전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자칫 속거나 빠져들기 좋은 바과학적 방식들에 대한 확실한 경계심과 판단근거를 제공하는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뭔가 불편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과학적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전제를 너무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나머지 저자가 비과학적이라 문제가 있다고 상정한 것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비판함으로써 A or B 인데 A가 아주아주 나쁘니 당연히 B아니냐? 이런 식의 논리 전개가 진행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태도가 너무 확실하다보니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것들에 대한 앎의 즐거움도 느낄 겨를이 없이 모르는 사람 험담하는데 끼어든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어버리는 겁니다. (이책을 읽어보신 다른분이 '뭔 헛소리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부분은 상당히 미묘한 부분이라..) 이 책의 맺음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밝힙니다.

 

" 이 책은 과학과 비판적 사고를 옹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치 어린 양떼처럼 뛰어난 과학자들을 무조건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적 사고와 절차를 소개했을 뿐, 과학계를 홍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p.180"

 

    이글을 머리말에서 밝혀주시지... 어떻합니까? 저는 이미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심하게도 과학계를 두둔한다고 느껴버렸는데... 서두에 밝혔듯이 인간은 한번 생긴 견해를 어지간하면 철회하기 싫어하는데... 나라고 다를리 있나?

 

   제가 가장 불편한 부분은 조금 극단적으로 정리해서 "과학=진리"라는 견해였습니다. 저는 이런 정의에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한 기본적인 대명제 자체를 가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것 자체도 하나의 큰 믿음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막무가내 신앙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은 오류가 발견되면 정정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좀더 합리적으로 수렴해간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일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르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과학=진리"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신앙과도 같은 믿음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과학적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여러가지 일들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자연의 파괴와 오염, 빈부격차, 정보격차 등등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해왔습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불완전한 과학이라는 생명체가 불완전한 방법으로 세상을 조작하다보니 오류가 꽤나 많이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과학의 혜택과 피해를 동시에 맛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자가 [정신병동이야기]로 너무나 지지를 받다보니 너무 의욕에 불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 흥미롭군~~'하며 잘 읽어놓고는 이래저래 엄청 나쁜 책인냥 지적질 아닌 지적질을 하고 있는 저는 다시 [정신병동이야기]를 정독하면서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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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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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문장, 훌륭한 가독성, 그리고 편치 않은 마음...

 

   저는 김려령 작가의 작품은 처음입니다. 물론 대부분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기는 하지만... [너 를 봤어]는 성인잔혹동화같은 느낌입니다. 아주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그만 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읽고 싶었습니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묘한 감정을 가져가도록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세계관은 이해할만한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징글징글한 것이었습니다.  작품 속에 그려진 인간과 사랑의 모습이 사실은 당연하다, 마땅히 그러하다 인정하면서도 너무 싫어 지긋지긋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번듯한 작가입니다만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폭력의 진원지는 잘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질낮은 돼지표 본드가 들러붙은 것만 같은 가족력입니다. 주인공은 이런 과거에 휘청이는 존재입니다. 멀쩡하고 번듯한 그의 일상은 가끔 이런 과거와 만날 때 한순간 일그러지고 맙니다.

 

   그 와중에 결혼에도 실패합니다. 사랑의 시작이자 완성으로 선택한 결혼이 아니라 지긋지긋함에서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이었기에 시작부터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이라 할만한 운명적 사랑을 만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참으로 지질이도 진부한 사랑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진부하다 할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서사자체의 힘도 있지만 저자의 문장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읽는 사람이 이 부분을 잘 관통하면 이 작품은 높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깊이있고 파괴력 있는 작품이 됩니다. 그러나 공감에 실패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참으로 고지식하고 답답한 스테레오타입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불편한 대화와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뭔가 좀더 평범하고 무난한 것이 편안합니다. 중간 중간 품어나오는 어둠의 기운과 잔인함이 참으로 싫었습니다. 다 읽고나도 따스한 사랑의 느낌보다는 스산하고 불편한 마음을 쓸어내릴 따름입니다.

 

 

#2. 나는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주인공의 실패한 결혼은 사실은 주인공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누구의 선택도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지식하다보니 사랑도 결혼도 헐리우드식 환상으로 접근해선 결말이 비극적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의무와 책임을 동반합니다. 그도 그의 아내도 그 부분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자살합니다. 아내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그녀를 철저하게 나쁜 인간으로 기억하고 증언합니다. 주인공 스스로도 그 과정에서 참담하겠으나 어쩌면 스스로 아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면제부를 스스로에게 받는 과정으로 삼은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모두에게 철저하게 나쁜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라...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증언할지 궁금했습니다. 내 아내가 나의 과거를 따라 사람들을 만나면 나란 인간이 어떤 인간이었다고 회상할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습니다. 아니, 두려웠습니다.

 

" 사람을 저렇게 대할 수도 있구나. 전에 개천에서 나오려는 사람은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아내는 개천에서 나오려는 사람 손 뿌리치고, 끌어당기려는 사람 손 잘라내고, 홀로 올라오는 사람 짓밟는 사람이었다." p.157

 

"아내가 아끼고 믿는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 속에만 있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자신이 만든 인물과만 소통했다. 그러니 밑바닥까지 내려간 처절한 삶이라도 기어이 손잡아 끌어올리는 것이다." p.158

 

    길게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교훈을 받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평가들을 반면교사 삼아 똑바로 살아야 겠습니다.

 

 

#3. 사랑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과도 같다. 하지만..

 

   무겁고 딱딱하기만 했던 주인공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합니다. 당연히 스스로도 놀랄만한 일일 분더러, 가까운 사람들도 금방 느낄 만한 변화입니다.  

 

" 나와의 만남은 늘 무겁고 어떤 재미없는 강의처럼 눅눅했다. 내가 그러하니 독자들도 그럴 수밖에. 농담이라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소설, 소설, 소설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정수현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소설만 보여준 것이다. 그런 나를 윤도하, 서영재, 이 두사람이 변화시켰다. (중략) "내 것은 다 가졌으면 좋겠는 사람이, 지금 있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나. 예상치 못한 큰 박수를 받았다." p162~3

 

   "The power of love"라는 곡이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역시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던 견고한 창이 틀째 바뀌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존재합니다. 이런 사랑의 창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참으로 깨지기 쉬운 창문입니다. 사람은 가까이하다보면 반드시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좋지만 하던 순간은 어느새 서로의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복잡한 문제로 돌변합니다. 이것을 잘 극복하느냐 아니야에 따라 튼튼한 창이 되기도 하고 깨어져 바람이 숭숭불어드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4. 마지막은...

 

   재미있고 괴롭게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에필로그는 조금 사족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임팩트 있게 끝난 이야기를 작가가 너무 자세히 설명하고 친절하게 끝내고 싶었던거 같습니다. 파괴력 있는 이야기를 쓴 작가가 너무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넋이 되어서라도 그 이후 상황을 친절히 중계방송하는데 불필요한 친절함이라 느꼈습니다. 강하고 묵직하게 맞고 넉 다운 된채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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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 이야기 이숲의 과학 만화 시리즈
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 함병주 / 이숲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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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보다 더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 정신질환..

 

   와우북때 망설이다가 못사서 아쉬웠던 [정신병동 이야기]를 이제야 만났습니다. 워낙 제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특히 노여사가 흥미있어 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대릴 커닝엄은 책의 말미에도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밝히지만 저자 스스로도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워낙 심약한 사람입니다. 오랜 기간 세상에 적응 못하고 살아가다가 정신병동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온라인을 통해 그림을 올려던 것이 사람들의 폭팔적인 반응과 지지를 얻으면서 일약 스타가 된 케이스입니다.

 

   세상에 일이 되려고 하면 이런식으로 풀려나가는 것인가 봅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오는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여튼 그런 이유로 이 만화가 탄생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실상 저자는 상당히 간단한 만화들을 욕심없이 그려나갔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 출간되면서 짧은 만화 에피소드 뒤에 해설이라는 형식으로 고대안암병원 정신과 의사이신 함병주 박사님(대충 박사겠지뭐..)의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 해설이 사실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짧고 간결한 만화의 사족이 될 수도 있고, 좀더 폭넓은 이해를 돕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사정을 덧붙여 설명하기 때문에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이 [정신병동 이야기]이니 만큼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들은 대표적인 정신병리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치매, 망상, 자해, 정신분열, 조울증, 자살충동 등입니다. 이 책은 정보전달에 목적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짧고 간결하게 각 현상에 대해 정확한 정의와 실제적인 증상, 치료양상 등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에피소드들은 소개하면서 저자는 정신질환도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시선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 하는 듯 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치매 에피소드를 보다보니 얼마전 읽었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가 떠올랐습니다. 페코로스에서는 주인공이 치매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따뜻하고 긍정적이어서 밝은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독특한 만화였다면(그러고 보니 둘다 만화 스토리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치매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우울합니다. 아마도 저자의 성향과 태도와 관계가 있는 듯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정신질환들이 좀더 객관화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너무 심각하지 않게 처리하려는 노력도 옅보이곤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견과 선입관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정신질환에 고통받으면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정신질환이라는 것이 이를테면 그냥 감기나 관절염, 당뇨병 등등 당연히 치료받는 질환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의외로 정신질환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런 멘트를 하면서 '혹시 나를 미친놈인가? 또는 정신질환이 있나?'하고 생각할까봐 걱정한다던지 하면 안된다는 말이라니까는...)

 

 

#2. 이상하게 매료되는 그의 그림체와 에피소드들...

 

   이 분의 그림이 참 독특합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적인 회화체도 아니고 상당히 절제되고 생략된 형태의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이 책의 분위기는 이 그림체가 좌우하는 듯합니다.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단순화된 그림으로 캐릭터를 살리고 느낌을 살린다는 것은 상당한 재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만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단순 간략화된 그림과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글이 어울려 정보전달 기능을 충실히 해줍니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들에 녹아있는 등장인물간의 대화가 은근히 매력적이고 때로는 상당히 웃음을 자아냅니다. 유머 코드가 살짝 숨어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저자의 성향이라 생각됩니다. 사람들을 대하면 말할 수 없이 수줍어하지만 사실은 위트와 유머가 넘칩니다. 그러기에 조심스럽게 에피소드속에 이런 코드를 녹여두는 것이죠. 대놓고는 못하니깐^^

 

   이상하게도 매력이 있고 거부감이 안드는 것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경험담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히 쓰고 그렸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저자가 일하면서 환자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마음을 썼다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본인이 비슷한 어려움을 충분히 겪어 보았기 때문에 통상 직업인이 가지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웠겠지만 오히려 그런 사실 때문에 독자에게 충분한 공감을 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 쉽게 설명해서 알아듣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설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전문용어 없이, 어려운 표현 없이 꼭 필요한 사항만 정확히 전달해주는 간결성입니다. 여러가지 정신질환에 대해서 한번쯤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합니다.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을 그 환자의 관점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저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저 환자의 가족이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자연히 하게 만들어 줍니다. 참 쉽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내가 이런 정신질환의 증상들이 나타나면 꼭 초기에 정신과를 찾아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내 주변에 저런 전조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꼭 치료받도록 권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열린 마음과 태도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을 들여 읽은 책 치고는 상당한 정보와 태도의 변화를 갖게 해준 것 만으로도 이 만화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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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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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할 것인가, 구하려 노력할 것인가? 명확한 주제의식

 

   이미 제목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는 이 작품은 거의 "셀프 스포일러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려 했었나 싶을 정도의 제목입니다. 개인적으로 읽기전에 책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이미 가지고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늘 애정하고 칭송해 마지않는 세이초옹의 작품 중에 베스트에 한번도 거론되지 않는 작품이라는 것이 세이초옹의 컬랙션 중에 이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를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저야 뭐 말할 것 없이 재미있게 읽었지만 고전이라고 치더라도 미스터리로써 상당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어찌되었건 이 책에서 던지는 주제의식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대형 사고나 참사의 순간에 그것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단 한명이 되더라도 구하려고 노력할 것인가?의 문제의식입니다. 그리고 어느쪽이 되었건 우리는 그 선택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관용을 배풀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해묵은 문제이기는 합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보니 똑 떨어지는 답이 나올 수도 없고, 앞으로도 합의에 이르기는 힘드리라 봅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자신의 작품의 소재로 활용함과 동시에 사회에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책 속에서 대형 교통사고의 현장을 찍은 작품이 "독자 뉴스사진 연간상" 최고상을 수상한 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심사위원은 이 사진을 최고상에 선정하며 이런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사진 한 장이, 운전자들의 경계심을 다잡고 교통사고가 감소하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참혹한 사진이지만 감히 연간 최고상으로 정하여 여기 발표한다." p10 

 

   하지만 이런 잔혹한 사진을 선정한데 대한 독자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촬영자로서는 인명을 구하는 것보다 '천재일우'의 결정적인 셔텨 찬스에 더 혹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이기심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 '공명심'의 배후가 귀사의 연간상이라는 영예와 상금, 지면발표라는 명예를 향한 야심이 작용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p.21

 

   이제 여기에 대한 해명과 투고가 반복되면서 지지와 반대가 엇갈립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같은 상황을 두고 무엇을 더 중요시 하느냐와 개인의 기질과 성향, 가치관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갈리게 하는 것이겠지요. 이러다가 반대의견을 가진 한 독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싶을 지경까지 갑니다.

 

"신문은 수백만 명이 접하는 매체입니다. 매일매일 암울한 뉴스가 보도됩니다. 적어도 사진만으라도 밝은 것을 보고 싶은 건 저만의 바람일까요? 흐뭇한 풍경이나 따뜻한 인간관계를 보여 주는 사진이 실린다면, 석간일 경우 일가족이 단란하게 모인 저녁 식탁에서 밝은 화제가 되어 흐뭇함을 줄 것이고, 조간이라면 세상에 희망을 느끼며 일터로 향할 수 있을 겁니다." p26

 

   당연히 이 독자의 바람은 그만의 바람입니다. 신문뿐 아니라 지금으로 치자면 TV뉴스와 인터넷 뉴스에 밝고 따뜻한 광경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면 과연 사람들이 흐뭇해 할까요? 굳이 신문방송학 원론을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들이나 신문, 방송 계통에 일하는 종사자가 듣는다면 비웃을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뉴스를 바라지 않습니다. 시청률은 바닥을 치다못해 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은 현실이지요.

 

 

   자, 그러면 불행한 일을 목격했을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옳을까요? 바로 지체없이 구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우선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여러 독자들의 지적처럼 과연 바로 한사람이라도 구하겠다고 뛰어드는 것이 가능은 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역사 플랫폼에서 실수로 한 사람이 선로로 떨어졌다고 합시다. 저쪽에서 열차가 플랫폼으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신은 지체없이 선로로 뛰어들어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옳다면 말입니다. 머리속으로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가 처한 현실이 되면 이게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닙니다. 왜냐면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 연습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바로 반응하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처럼 선로밑에 자주 내려가 본 사람이고 거기 구조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짧은 순간에 판단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승객들이 열차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플랫폼 바로 아랫쪽에 사람이 피신할 만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혀 구조를 모르고 경험도 없는 이가 사람을 구해야된다는 마음만으로 어설프게 뛰어내려서 끌어올리려 했다가는 둘다 끔찍한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며칠전에 민방위훈련에서 응급구조 강사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신이 아무리 돕고 싶어도 다치거나 부상당한 사람에게 도와주도 좋은지 의사를 확인하기 전엔 절대로 도와서는 안된다. 의견을 구하지 않고 도왔다가는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지게된다.'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 사람이 의식을 잃었을 경우엔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마침 그때 이 책을 들고 있었는데 이거 듣다보니 참 기분이 착찹했습니다. 돕는데도 법적인 책임을 먼저 걱정해야하다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가? 하고 말입니다.

 

   불행한 일에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사람을 구하러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잘 훈련된 사람일 따름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과 내가 그 상황에서 행동하는 것은 조금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유포하는 행위는 어떨까요? 사실 SNS가 활성화 되면서 트위터를 통해 사고를 실시간으로 알리고 그 사건소식을 접한 주변사람들이 즉각 도움을 준 미담을 통해 SNS의 유용성이 알려진 바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개인의 정보를 유출한다거나 끔찍한 사고를 여과없이 올려 여러사람을 당황케한 경우도 많습니다. 요컨대, 단순이 그 행위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 어떻게 취급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이초가 그린 이 문제의식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해결되지 않은 동일한 무게를 지닌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매체의 모양새만 바뀔 따름입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지나칠 정도로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나칠 정도의 선명함 때문에 오히려 주제가 흐려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모든 캐릭터와 서사가 한점 주제로 모아지는 느낌이 아니라 주제는 이미 던저져 내동댕이 쳐지고 그 곁가지만 계속 변죽을 울리는 느낌이 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책을 덮을 때쯤엔 이미 그 주제는 식상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킁..

 

 

#2. 오래된 작품에서 만나는 새로움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신문기사, 독자투고 활용은 지금에 와서 보아도 매우 반갑습니다. 최근에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잘 적용했다는 나오키상 수상작품 '누구'를 보면 현대인의 SNS 사용을 잘 활용한 표현 방식이 눈에 띕니다(물론 우리나라의 '트위터탐정 설록수'에서 이미 써먹은 거지만 말입니다). 10만분의 1의 우연에서 언급되어 인용되는 기사나 독자투고 등을 보면 지금에 와서 독특하고 신선하다는 트위터 인용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오늘날 개개인이 1인 미디어가 되어 자신의 정치적 견해,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생각, 먹는 것과 사는 것 등의 일상의 소소한 것들, 각종 정보 등을 노출하며 표현의 욕구를 드러냅니다. 이 가운데 정말 개인적인 것들도 있고 여러사람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런 1인 미디어가 모여 거대한 빅데이터를 형성합니다. SNS의 발달 이전에는 그저 신문사에 독자투고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정도였겠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고자하는 것은 결국 똑같다고 봅니다.

 

   고전의 경우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설정과 표현들이 옛스러워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우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 처럼 그 당시의 상황에서의 일반적인 표현일 뿐인데도 지금 시대에 너무도 유사하게 맞닿아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단순히 주제의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의 이런 면도 다분히 현대적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아니 세상이 겉모양만 조금씩 바뀔 뿐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양복만 입던 사람이 힙합복장으로 갈아입기만 한 것과도 같은 거랄까요?

 

 

3. 구조적 완결성의 아쉬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구조적인 부분이었습니다. 한 아마추어 작가의 공명심이 불러온 큰 사고와 그 사고 당사자의 애인이 개인적으로 사고의 진실을 파헤치는 시도가 나옵니다. 한편 그 과정에서 사고를 일으킨 아마추어 작가는 그 위기를 파악하고 거기에 대응해 선수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 작품의 긴장감은 여기에서 형성됩니다. 과연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이 승리할 것인가? 진실을 덮으려는 사람이 성공적으로 덮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주목하면 꽤나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 긴장감은 '어떻게?'의 긴장감일뿐 '누가?'의 긴장감은 아닙니다. 파헤치는 자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쯤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예상처럼 파헤치려는 자의 집요함이 승리하고 결과적으로 작가는 인과응보를 당합니다. 참으로 고전적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여기에 뜬금없이 대마초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지난하게 이어집니다. 마치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더욱 뜬금없이 복수의 칼날이 이 작품을 선정한 심사위원에게까지 미칩니다. 이정도 되면 막가자는 이야기입니다. 복수를 자행하는 사람은 법적 정당성이 없습니다. 결국 그도 살인자일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라도 공감을 얻어야합니다. 하지만 단순 동기유발자까지 없애려는 태도는 살인마의 그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 역시도 좀 지나친 설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는 애인이 사고사했다고 일까지 그만두고 사건을 쫏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고도 지적합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처럼 일을 안하면 당장 생계가 어려운 불황의 시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만큼 사랑했기에 복수할 수도 있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삶의 목표가 없다가 생긴 집요한 삶의 목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이 좀더 살려면 진행을 타이트하게 했어야 합니다. 세이초옹 스타일상 그게 아니라면 각 캐릭터의 속사정을 더 공감가도록 짰어야 할 듯 합니다. 설득력이 부족할 만큼 성긴 동기부여에 지나친 복수심은 그동안 세이초옹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그 만의 매력과 비교해 보아도 여러모로 아쉽기만 합니다.

 

   이 작품이 이렇게 완성도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을 단행본으로 쓴 것이 아니라 연재물로 썼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중간 중간에 서사와 무관할 만큼 지나치게 자세히 카메라 이야기며 대마초 이야기가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은 연재물의 분량 채우기 였을거라 여겨집니다. 지금에 와서 세이초옹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없는 우리나라에 이 양반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작품이 더 아쉬움을 크게 갖게 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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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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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작가 딱 내 스타일이다.

 

   아시다시피 제가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구력이 기껏 1년 남짓이다 보니 대부분 잘 아는 척한(그저 이래저래 주워들어서..)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게 거의 없습니다. 김중혁 작가도 그중 한분인데, 이 양반에게 호감이 생긴건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으면서 입니다. '이 양반이 누구지? 아, 좀비 썼던 작가구나~~'하면서 찾아보다 이 책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찾아읽게 된 것이지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의 경우에는 제목에 저자의 철학이나 책의 색체가 잘 표현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는 제목만으로도 믿고 사보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제 스타일을 아니까 이런 제목은 무조건 공감이 가게 되어 있는 그런... 읽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 책이란 말이지요. 이 책에는 저자의 성향과 기질과 스타일과 인생철학이 농담과 우스갯 소리에 얹혀져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게 저에게 너무 잘 와닿고 공감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각잡고 진지하게 인생철학을 설파하는 스타일은 정말이지 딱 싫다보니(당장 그래 너 잘났다.. 라는 못난 반응부터 나오게 되는... ) 이런 즐거운 넉두리들이 정겨운 것이지요.

 

   퍼플제이님의 최근 글 때문에 생각이 나서 굳이 언급을 해보자면 김중혁작가님 스타일에 대해서 성격유형검사 방법 가운데 DISC 행동유형검사를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장황하게 DISC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고 정말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행동유형을 크게 4가지 Factor로 나누어서 각 factor별 비중을 검사해서 성향을 파악하는 뭐 그런 테스트1가 되겠습니다. 이게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보니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D는 Dominace 즉, 주도형입니다. 지배적이란 거죠. I는 Influence, 사교형입니다. 시끄럽고 재밌는것만 찾는 경향이... S는 Steadiness, 안정형입니다. C는 Conscientiousness 신중형입니다. 이 에세이만 봐서는 김중혁작가님은 일단 누가 뭐래도 I가 높게 나오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C도 높게 나오실 듯합니다. 저는 I가 높은 사람은 무조건 좋아합니다. 잘 맞기 때문에. 크크..

 

   저는 I가 극단적으로 높고 D와 C는 거의 없습니다. S도 비교적 높게 나오고요. 이렇게 조합하면 저의 행동유형이 딱 나옵니다. 어떤 모임에 가면 저는 심각한 주제와 상관없는 농담의 연속...(주로 헛소리라고 표현됩니다._)를 계속 하면서 이왕이면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리고 대체로 주도자나 목적에 매우 협조적이됩니다. 주도적이고 일방적이고 목적지향적인 D형인 사람을 보면 미칩니다. 데이터를 엄청 준비하고 껀껀이 따지고 드는 C형도 너무 힘들죠. 저는 무슨 일이건 "유도리"를 중시하니깐. 상황봐서 하는거...ㅋㅋ 여튼 중요한건 제가 김중혁 작가님 같은 스타일, 적어도 이런 글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 맞다는 것입니다. 좀 시간을 걸리겠지만 이분 작품도 다 읽어봐야 할 작품인 것으로^^

 

 

#2. 또 하나의 재미, 엉뚱발랄 카툰에 있다.

 

   저는 글을 잘 쓰는 것, 글을 재미있게 쓰는 것 더 나아가서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한껏 로망과 부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나는 왜 공대에 갔던가... 왜 전자공학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했던가(나한테 맞는지 안맞는지는 생각조차 안하고... 그거야 뭐 고민하는거 싫어해서 그런거지만서도..)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합니다. 인문학을 공부했다면 지금쯤 철학관을 차리고 개량 한복에 수염을 기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막연히 공대를 가야 돈벌이가 된다는 생각만으로 그렇게 결정을 했던 것이죠. 지금에 와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생각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에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이나이 먹도록 모르는데 말입니다.

 

   김중혁 작가를 보면서 더욱 부러웠던건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은 물론 잡학에 능통하다는 점입니다. 글 뿐아니라 그림도 같이 잘 그린다는 것은 자기 표현에 있어 상당한 시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글에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을 한다. 이것은 대단한 표현수단을 겸비하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하다못해 블로그를 하나 꾸미려고 해도 내가 그림솜씨가 있다면 남의 이미지 가져다 쓸일 없이 원하는 이미지를 내 마음에 쏙 들도록 그려서 꾸밀 수가 있겠지요. 사소한 모든 생활속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표현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재미난 카툰을 자신의 손으로 그려내는 저자의 모습은 참으로 부럽기만 합니다.

 

   내용이야 뭐 익히 예상할 만큼 엉뚱하고 재미있고 발랄합니다. 가끔은 '아, 이 아저씨 장난하시나? 이게 웃기냐? 이게 웃겨?'하는 마음이 속에서 불쑥 들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어찌되었건 이 양반의 엉뚱한 상상력은 빛이 납니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있어야 재미난 글을 쓸 수 있는 것인가? 하며 또 한번 놀랍니다. 그림체가 아주 귀여운 것도 마음에 쏙 듭니다.

 

 

#3. 웃긴 척해도 진중함과 깊이는 베어난다.

 

   그저 재미있고 가볍고 웃기기만 해서는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기 힘듭니다. 가벼운 웹툰이 많이 팔리지만 읽고나면 그저 재미있었다. 하고 말아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책은 다행히 진중함과 진지함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책의 곳곳에 슬쩍 슬쩍 삶에서 고찰한 깊이있는 내용들을 심어두었습니다. 그걸 진지하게 서술하면 읽는 사람이 조금 질리게 되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잘 섞어 흩뿌려 두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후반부의 '손을 잡으면 우리가 된다' 파트입니다. 이 파트는 2009년 한겨레에 연재한 글이다보니 평소의 장난스러운 필체가 쏘옥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진중함과 깊이가 더 잘 드러납니다. 벌써 꽤나 시간이 흘러버려 지금 시점에서는 철지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작가가 이 세계와 그 당시 일어났던 사회현상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의미부여하는 패턴이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훌륭한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4. 뭐라도 되겠나?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어살린다" 따위의 말들입니다. 천재가 훌륭한 아이디어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실상 저 표현은 이렇게 바꾸어야 맞는 말입니다.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부려먹는다"로 말입니다. 저따위 소리를 늘어놓는 집단에 속해 있는 일은 적잖이 괴로운 일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휘휘 겉돌다가 튀어나와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 책에서 계속 말해주는 바와 같이 좀 훌륭하지 않아도,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두가 훌륭하면 서로 잘났다고 싸우기만 할 뿐입니다. 각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비록 역할이 조금 작더라도 충분히 배려하고 보상하는 지혜가 필요할 따름입니다. 훌륭한 것이 능력이 출중한 것과 동일시 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휼륭한 것 = 능력이 출중한 것 = 많은 일을 하는 것 = 많이 가지는 것"되어 버리면 수많은 나머지 덜 훌륭한 이들은 그저 입맛만 다시게 되는 것이죠. (내가 좀더 잘나서 많이 가지는 구조였다면 절대 이런소리 입밖에 안낸다..)

 

   느긋함을 인정하고 좀 모자람을 인정해주는 세상이 될 날이 오겠나?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뭐가 되어도, 뭐라도 되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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