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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야기 -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 ㅣ 이숲의 과학 만화 시리즈
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해설 / 이숲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1. 인간의 속성을 이용한 비과학적 거짓말과 속임수, 검은 의도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돋보이는 글과 그림들
인간이 참 재미있는 점은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가 한번 생기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되더라도 좀처럼 그것을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경향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한번 정한 태도를 바꾸기 싫어 자신의 견해와 부합되는 것만 받아들이고, 듣기 싫은 소리, 다른 이야기는 아예 외면하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 사회에 기이한 현상이 되고 이는 사회병폐로까지 나아갑니다. 여기에 이런 인간의 속성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면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집단체면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줌으로써 정치인, 대기업, 초대형자본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세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정신병동이야기]의 저자 대릴 커닝엄은 이 책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분야를 중심으로 몇가지 테마에 대해 바람직한 과학적 태도는 어떤 것인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비과학적이고 근거가 빈약한 잘못된 인식들이 무엇인지를 쉽고 객관적이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테마는 전기충격요법, 동종요법, 웨이크필드 사건의 진실, 달 착륙 조작설, 기후변화, 진화론, 카이로프랙틱, 과학부정론 등입니다. 일단 각 테마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되어있고 역시나 몇가지 사례를 적절히 들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줍니다. 이중에 가장 생소한 용어는 아마도 카이로프랙틱이 아닐까 합니다. 쉽게 말해 약물이나 수술등의 치료행위없이 의사(치료사)의 손만으로 뼈맞추기나 맛사지 등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대체의학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냥 의료행위로 봐도 될 듯 합니다.
각 테마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 접근방법과 적용법을 잘 설명해줌과 동시에 어리석은 인간의 견해지키기, 신앙과도 같은 근거없는 믿음이 불러일으키는 나쁜 결과에 대해서 조목조목 경고합니다. 여기에 사례나 근거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이란, 비과학적이면서 대중의 편중심리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을 향한 표현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실체가 없는 막연한 음모론에 대한 허구와 폐해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참, 그리고 이번 책은 칼라라 더 보기가 좋았습니다. [정신병동이야기]의 심플하고도 묘한 분위기가 제법 사라진 듯해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2. 대릴 커닝엄은 어쩌다가 과학이야기를 그리게 되었는가?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정신병동이야기]에서 비교적 사적인 영역에 대한 문제를 담론화하고 많은 이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그가 왜 특정 분야도 아닌 광범위한 수준의 과학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요? 본인이 어떤 소재로 어떤 글 또는 그림을 그리던 제가 감놔라 배놔라 할 문제는 아니지요. 하지만 솔직히 생뚱맞았습니다. 이 생뚱맞음은 전편을 읽고난 직후 다음편을 집어들면서 제 나름은 기대했던 바가 있었는데 막상 내용을 보니 '어엉?? 이것은 뭔 소리다냐?'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게 만든데서 온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카이로프랙틱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책의 각 챕터 배치순서 때문이었습니다. 목차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저자가 관련이 있었던 정신과 의료행위와 관련된 내용에서 출발해서 점점 달 착륙이니 기후변화니 하더니 급기야 진화론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의료관련 테마로 돌아갔다가 최종적으로 과학의 적정성을 옹호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마도 진화론에 이르러서는 좀 너무 많이 나갔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물론 순서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과학자도 아닌데 왜 과학의 유용론을 흑백논리에 가까운 강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랄까? 뭐 그런 마음이 저도 모르게 들어서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3. 좋은 내용, 고민해 볼 것이 가득한 테마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편하다...
흠.. 제글의 논지가 뭔가 이책을 엄청 비판하는 뉘앙스가 되는 거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이 책의 최대 미덕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쉽게, 시각적으로 잘 표현되어 전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자칫 속거나 빠져들기 좋은 바과학적 방식들에 대한 확실한 경계심과 판단근거를 제공하는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뭔가 불편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과학적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전제를 너무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나머지 저자가 비과학적이라 문제가 있다고 상정한 것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비판함으로써 A or B 인데 A가 아주아주 나쁘니 당연히 B아니냐? 이런 식의 논리 전개가 진행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태도가 너무 확실하다보니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것들에 대한 앎의 즐거움도 느낄 겨를이 없이 모르는 사람 험담하는데 끼어든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어버리는 겁니다. (이책을 읽어보신 다른분이 '뭔 헛소리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부분은 상당히 미묘한 부분이라..) 이 책의 맺음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밝힙니다.
" 이 책은 과학과 비판적 사고를 옹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치 어린 양떼처럼 뛰어난 과학자들을 무조건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적 사고와 절차를 소개했을 뿐, 과학계를 홍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p.180"
이글을 머리말에서 밝혀주시지... 어떻합니까? 저는 이미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심하게도 과학계를 두둔한다고 느껴버렸는데... 서두에 밝혔듯이 인간은 한번 생긴 견해를 어지간하면 철회하기 싫어하는데... 나라고 다를리 있나?
제가 가장 불편한 부분은 조금 극단적으로 정리해서 "과학=진리"라는 견해였습니다. 저는 이런 정의에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한 기본적인 대명제 자체를 가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것 자체도 하나의 큰 믿음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막무가내 신앙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은 오류가 발견되면 정정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좀더 합리적으로 수렴해간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일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르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과학=진리"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신앙과도 같은 믿음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과학적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여러가지 일들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자연의 파괴와 오염, 빈부격차, 정보격차 등등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해왔습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불완전한 과학이라는 생명체가 불완전한 방법으로 세상을 조작하다보니 오류가 꽤나 많이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과학의 혜택과 피해를 동시에 맛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자가 [정신병동이야기]로 너무나 지지를 받다보니 너무 의욕에 불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 흥미롭군~~'하며 잘 읽어놓고는 이래저래 엄청 나쁜 책인냥 지적질 아닌 지적질을 하고 있는 저는 다시 [정신병동이야기]를 정독하면서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