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자살
조영주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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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소름이 끼치도록 으스스하지만 끝까지 놓칠 수 없는 읽는 재미가 보장된 스릴러

조영주 작가의 신간 "혐오자살"은 제목만 보면 자칫 심각한 사회파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깊은 주제의식으로 똘똘뭉친 소설임은 분명합니다만, 이번 소설의 경우는 읽는 재미와 긴장감이 보장된 페이지터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항상 몇 챕터씩 끊어 읽는 제가 단박에 끝까지 읽었으니 말입니다.

조영주 작가의 장편 중에 "트위터 탐정 설록수"는 애초에 조금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이고 "홈즈가 보낸 편지"나 "붉은 소파"는 꽤나 묵직하고 무거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근작인 "반전이 없다"는 가독성이 꽤나 좋은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보면 이 양반의 소설이 가독성 넘치게 쉬이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나중에 차근차근 따져 보기로 합시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혐오자살"이라는 제목만 듣고 혹여 또 무겁고 읽기 힘든 소설이 아닐까 우려한 적이 있었는데, 저자는 잘 읽힐 거라고 장담하면서 "이 소설이 스릴러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는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혐오자살"은 미스터리와 범죄 스릴러 소설입니다. 훌륭한 스릴러 특유의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합니다. 그렇기에 독자입장에서는 책을 놓는 순간까지 방심하지 못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며 읽게 됩니다.

여기에 고약하게도 시간의 흐름과 서술자가 시시각각 바뀌면서 독자를 힘들게 합니다. 고도로 훈련된 전문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 들어간 거라고나 할까요?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는 의문이 많아지고 이런 의문은 후반부로 갈수록 농축되고 농축되어 터지기 일보직전의 깊은 똥마려움 같은 심정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공중 화장실에서 참고 참아 터질 것 같은데, 안에 있는 사람은 나올 듯 나올 듯 나오지 않을 때의 그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야 이 소설의 미친 텐션과 흐름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스릴러들이 독자들이 따라오기 좋도록 친절하게 긴장감을 조성했다고 풀었다가를 반복하며 적당한 텐션으로 대중성을 확보한다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에라이 그런게 어딨냐 6년을 준비했으니 막 밀어붙여 주겠다!"라고 작성한 것처럼 사건을 휘적휘적 휘몰아치며 독자를 몰아세웁니다. 아마 나보다 체력이 약한 독자들은 읽다가 여럿 나가 떨어질걸??? (이라고 하면 안되겠지요... 흐음..)

구성 자체가 복잡하고 시점도 자주 바뀌면서 집중하지 않으면 흐름을 잃을 위험이 조금 있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결국 사건을 다각도로 보여주기 위해서며,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각각의 사정과 형편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매우 입체적이며 풍성한 재미와 맛이 있는, 그러면서도 끊을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히 유지되는 수준 높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 소설만 봐도 작가가 얼마나 머리가 큰지.. 좋은지 알 수 있습니다. 읽기만해도 머리 아픈데 이걸 써낸 닝겐은 도대체 어떤 닝겐이란 말입니까...)

 

 

2.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어 돋보이는 주제의식

 

"혐오자살"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만연한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 혹시 이런데도 모른척 한 것 아닐까?",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라고 말입니다. 아파트라는 특수한 환경을 배경으로 사용함으로써 현대인들의 표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의 특수성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문제들. 이를테면 층간 흡연, 층간 소음, 음식물 쓰레기 무단투기 등의 생활 속 혐오와 불편을 유발하는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불법체류자 문제, 인종차별은 물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심각한 범죄인 조직폭력, 치정살인, 비관자살, 성매매 등의 문제까지 폭넓게 녹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이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호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게 하며 은연중에 차별과 불평등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더욱 문제는 이런 악의가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그리하여 서로 서로 타협하도록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유독 일체감을 중시합니다. "단일민족"으로부터 시작해, 뭐든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혐오의 정서와 태도가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부분을 예민하게 캐치하여 소설속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매우 소설적인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이런 소설속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면 독자들이 불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혐오자살"은 의문의 사건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 진행에 잘 버무려 주제의식을 녹아냈습니다. 독자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강요당하는 느낌없이 한 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무거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애이불비"와 같이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심각하지만 흥미진진하고, 흥미진진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균형감. 이 지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3. 조영주 작가의 가장 큰 장점, 세밀한 캐릭터 묘사가 더욱 빛나는 소설

 

 

소설에서 중요한 인간성의 탐구는 소설 속 인물의 성격 창조를 통하여 성취된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었는데 만약 소설속 인물의 성격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그 소설의 인물은 죽은 것이 되고, 따라서 그 소설은 실패작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현실감은 있되 현실은 아닌 소설의 특성을 생각하면 현실속에 있을 법한 인물이지만 또 전형적이지는 않는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 소설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영주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은 항상 생동감이 넘칩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작가의 생명력을 갈아넣어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이 창조되었습니다. 심지어 소설의 핵심 인물인 준혁은 두 명이나 등장합니다. 처음부터 등장해 혼란을 조장하는 여주인공 명지를 비롯 독특한 캐릭터 준혁과 김준혁, 이들은 모두 정말 희한한 인물들임에도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동정하게 되기도 합니다.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들 때문에 헤깔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납득할 수 밖에 없는 인물상이며 독자는 자연스레 이들에게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주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제 각각 특징과 사연이 있고, 그 또한 납득할 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 소설 속 행동이 이해가 갑니다. 조연에 불과한 공인중개소 사장이나 아파트 경비원 마저 개성이 살아있어 나름의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잠시 등장하는 옆집 아주머니조차 허투루 묘사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등장하는 비중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핵심적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김나영 형사는 "혐오자살"을 넘어서는 살아있는 캐릭터입니다. "붉은 소파"에서 창조된 김나영 형사가 성장해 이 소설 속에서 중요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이후 "반전이 없다"에서는 베테랑 형사의 면모를 보입니다. 작가의 소설 속에 살아 숨쉬며 성장해나가는 캐릭터를 지켜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입니다. 이쯤되면 다음 소설에서 억지로라도 소환하고 싶은 애정 캐릭터가 됩니다.

복잡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막 넘어가는 가독성으로 장르 소설의 미덕을 갖추고, 이 시대에 만연한 혐오의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와 주제 의식이 살아있는 진중한 사회파 소설의 미덕을 갖추었으며,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캐미를 통해 독자들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미덕을 다방면으로 갖춘 이 소설은 조영주 작가의 피와 땀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트위터 탐정 설록수"를 시작으로 다양한 장,단편과 에세이까지 읽어온 독자로서 "혐오자살"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성장을 보노라면 이 또한 인간승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조영주는 살아서 혐오자살을 남겼는데, 저는 그 동안 무얼했나 반성하게 만드는 밤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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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탐정 마환 - 평생도의 비밀
양시명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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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한국적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훌륭한 소설

양수련 작가님의 장편소설 "바리스타 탐정 마환"은 한국의 전통 민화, 그 중에서도 "평생도'에 얽힌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엮어 낸 탐정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한국적 디자인의 표지부터 제목과 부제, 책 표면의 촉감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 이 소설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며 독자를 만족시키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사실 민화의 평생도라는 소재는 대부분 독자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흥미를 끌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평생도라면 그렇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원래 정상적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소재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성공한 양반이 아닌 최하층 "노비가 그린 평생도"라는 설정입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노비의 평생도라는 소재는 의외로 흥미를 마구 자극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마환은 탐정들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다양한 사건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탐정처럼 되어버린 그런 인물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도 마환은 결코 본인이 잘난 탐정이라는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사건을 의뢰하러 온 사람이 마환의 관심을 끄는 일을 맡겼기에 점점 휘말리는 구조로 짜여있습니다. 그렇기에 전혀 불편한 감정 없이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독특한 혼령인 "할"의 존재까지 더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할"이 그냥 미스터리한 존재로 그치지 않고 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사연까지 밝혀지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상호 관계가 조화롭습니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나름의 매력이 있고 개성이 살아있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2.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촘촘한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

"바리스타 탐정 마환"은 일반적인 장르 소설과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장르소설의 특징을 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외로 차분한 느낌이 특징적입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휘몰아 내달리는 장르소설이 아닙니다. 작품 속 각 인물의 상황과 사연과 관계를 따박따박 꼼꼼하게 풀어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진행해나갑니다. 이 과정이 직선적이지 않고 입체적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인물 간의 사건과 각 인물의 감정, 욕망, 행동과 결과들이 산발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각 흘러 다니던 선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훌륭하고 정교한 회화 같은 작품을 이룹니다.

100년 전이라는 과거 상황에 맞게 공간적으로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한창 계급 제도가 무너지고 혼란스럽던 시기의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어쩌면 복잡해서 독자가 흥미를 잃을 위험도 있지만 이야기를 잘 풀어가며 강약 조절을 하고 있어 불편함 없이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평생도라는 소재와 이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사연, 과거와 현재, 한국과 일본이라는 여러 가지 요소를 균형감 좋게 잘 짜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타고난 센스가 좋은 건지,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하고 퇴고를 열심히 한 건지 알길은 없지만 결과물이 무척 훌륭합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애끓는 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르소설에서 이런 방식으로 부모의 사랑을 주제의식으로 잡으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지나친 감정 과잉을 받아내기 불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엄청 애정 하는 혼다 테쓰야의 "소울 케이지"에 등장하는 부성은 이해는 하나 공감은 어려운 지나친 감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묘사되는 노비 말복의 부성은 충분히 공감이 갔습니다. 부성 뿐 아니라 아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주인공 마환과 마환이 아버지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감정도 매우 충분히 지나치게 잘 공감되었습니다. 안타까움도 느끼면서 이야기에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한국적 탐정소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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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홈즈의 마지막 사랑 카페 홈즈
김탁환 외 지음 / 손안의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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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카페 홈즈를 배경으로 이런 작가님들의 작품이라니 엄청 기대되네요. 지난번 책보다 표지도 깔끔하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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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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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편함을 넘어 현실로 다가온 대재앙 : 지구온난화


미국 부통령 앨 고어의 다큐멘터리 환경 리포트 "불편한 진실"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은 지도 벌써 10년 이상이 흘렀군요. 그 영상 속 그래프에서 본 수치들은 매우 극적이어서 마음이 심히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가 했던 행동이라는 것이 이 영상의 내용을 반박하는 측의 주장들을 찾아보며 '그래, 지구 환경이 그렇게 갑자기 나빠질 리가 없지. 우리 자식이나 손자뻘 때쯤 가면 좀 나빠질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 지구온난화라는 대재앙의 실체에 대해 자세히 풀어낸 책 [2050 거주불능 지구]를 읽고 보니 저만 외면했을 뿐 지구는 꾸준히 온도 상승을 성실히, 극적으로 해 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들의 무지한 행위에 대한 결과로 말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액션이 있으면 리액션이 있기 마련입니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뉴욕 매거진>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2017년 자사 매거진에 기고했던 환경 리포트 [거주불능 지구]를 더욱 상세히 풀어내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은 "상세히"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구체적인 데이터와 이론과 예시 등이 빡빡하게 가득 실린 책입니다.


지구온난화는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왔습니다. 누구도 모른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이나 미세 플라스틱 문제 등은 국가적 차원에서 신경을 쓰는데 비해 기후변화 부분만큼은 개인은 물론 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숨이 턱 막힐 만큼 긴박하고 심각하고 총체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차지하더라도 일단은 무엇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책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지구온난화 현상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이며 기후재난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 꼼꼼하게 정리해 알려주고 있는 책입니다. 하아...



2. 지구온난화 현상이 초래할 전방위적 변화들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거치며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자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우리 인류가 겪어야 할 변화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너무 빨리 더워져 폭염으로 고통받을 것이고, 빈곤과 굶주림이 닥칠 것이며, 빙하가 녹아내려 많은 도시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불쯤은 '불장난'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로 산불이 심해질 것이고, 각종 대형 재난이 일상화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가뭄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바다의 순환 시스템이 붕괴되어 대멸종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도저히 마실 수 없을 만큼 공기가 오염되고 더 강하고 빠른 독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들이 나타날 것이며 이런 각종 재난들로 인해 경제는 무너지고 국가 간 개인 간의 자원전쟁이 발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문제들이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미리 써버린 현 인류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온난화의 결과이며 그로 인해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느끼는 진정한 문제는 저자의 대재앙 스토리가 과거처럼 그저 회피해버리거나 과대망상에서 나온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이미 현실에 다가오는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면서 급격한 변화의 변곡점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합리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급격한 기후변화의 시대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날카롭습니다.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을 비난하는 것으로 충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을 비난해서 끝나는 문제도 아닙니다. 개인의 행동으로 해결될 만큼 개인 차원의 문제일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옴짝달싹하기 힘든 심각한 지경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현세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제도가 흔들릴 만큼 치명적이며 마치 판타지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구원자로 등장했던 기술은 비용과 효용성의 한계에 막혀 실용성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불편한 상황과 모순을 겪어도 '역사는 큰 흐름으로 보면 항상 진보한다'라는 믿음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자는 해결이 요원한 거대한 문제 앞에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한 종말론적 사고와 태도, 회피와 금욕주의는 물론 여기에 한 술 더 떠 기왕 망친 거 될 대로 되라며 아예 '체념'해 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지구온난화라는 실체적 화두 앞에 일어날 다양한 변화들을 빠짐없이 꼼꼼히 짚어보고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한 내용들을 접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써 내가 하는 일련의 에너지 최소화, 자연보호 행동 등이 크게 영향도 줄 수 없으면서 책임 회피에 불과할 수 있고, 자기만족적 행위를 넘어서기 힘들다는 지적까지 받아버리니 그야말로 넉다운, 아노미 상태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챕터 한 챕터 넘길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뒷골이 땡기면서 잠이 쏟아지는 자기보호회로가 작동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무서운 책인 것입니다.


3.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이 어려운 두 가지 핵심 요소와 남겨진 과제


이 책에서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난제이며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 나열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일반 독자가 꼼꼼히 따지며 읽기에 지나치게 심각하고 복잡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훨씬 간단하고도 쉽게 설명한 내용이 기억납니다.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책은 외계지성체라는 단어 때문에 외계인에 대해 쓴 터무니없는 책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질 수 있는 책이지만 후반부에서는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매우 거시적이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애초에 환경 문제가 대두되게 된 데에는,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에는 세 개의 낯익은 주범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요인으로, 과생산•과소비를 지향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현재의 시장자본주의입니다. 둘째는 정치적 요인으로서, 민주주의 체제입니다. 정부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꿔버리는 체제지요. 셋째는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 간 경쟁 체제 속에서 범국제적 기후협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민족국가 체제입니다. p220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최준식, 지영해. 김영사. 2015


지영해 교수는 환경 문제가 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정치적 요인으로 민주주의 체제,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민족국가 체제가 서로 맞물리면서 해결을 막고 있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요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거대한 문제는 개개인이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해 절대적으로 무지하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을 만큼 사안이 크다 보니 눈을 닫고 이를 외면하는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입니다. 보다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 적극적인 환경운동가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거짓과 선동으로 치부하며 적극 거부하는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가장 큰 불안 요인은 인간 자체입니다. 인간의 판단과 행동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다양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입니다.


거대한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는 책일수록 사안이 지닌 문제점과 모순에 대한 화려하고 자세한 설명에 비해 대안과 해결책 제시가 허술하거나 하나 마나 한 일반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 역시 이런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는 대안과 해결책 제시보다는 기후재난이 가진 심각성과 긴박함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고 보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쉽게도 저자는 스스로 제기한 환경재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이 문제가 가진 구조적인 난점에 대해 국가를 초월하는 전 지구적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이고 막연한 전망을 내놓습니다. 게다가 인류 원리 개념을 끌어와 지구상의 온 인류가 '한 사람'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언 듯 생각해도 일어날 수 없는 방식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 이상의 답이 없는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온 인류가 '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애초에 지구상에 환경재난 문제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아무쪼록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종말적인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해결책에 대한 공통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제 아이들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지구에서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비록 답답하고 답이 없는 것 같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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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사회 1 - 존재의 방식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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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방면으로 미래를 조망하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수작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격파하며 인공지능의 위력을 뽐낸 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덤덤하던 일반 대중들도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도래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이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대중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고 일부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선우 작가는 전작 "스파링"과 "저스티스맨"으로 "정의"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당시 시대정신으로 대두되던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독자들과 평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영민함이 돋보였습니다. 그랬던 작가가 2년 만에 디스토피아 SF 소설을 신작으로 들고 나온 점은 다소 의아했습니다만 이번 선택으로 인해 시의적절한 문제를 꺼내드는 것이 작가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대형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한 신인소설가가 SF라는 장르소설을 선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SF 소설에 대한 한국 독자층을 고려하면 참으로 대담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조 사회"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배경으로 현시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미래 기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 전체를 제어하는 강 인공지능은 물론, 자율 주행 수준을 넘어서는 자율비행 호버카, 가상현실 기술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활용한 초확장 현실, 공각기동대를 떠올리게 하는 디지털 두뇌 기억 업로딩 기술, 이 모든 기술을 현실화할 수 있는 핵심인 나노 테크놀로지뿐 아니라 우주개척 SF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테라포밍 기술까지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통상 SF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는 특정 기술에 한정되기 마련입니다. 이는 작가가 구현한 세계 내에서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현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설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는 소설의 완성도와 직결됨은 물론 상업적 성공과도 연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미래 기술들과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대담함을 넘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작가는 아마도 가까운 근 미래에 펼쳐질 모습을 조감함에 있어 특정 기술에만 국한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큰 틀에서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미래에 구현될 법한 기술들 중, 우리 사회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요소들을 빠짐없이 조사하고 적용한 것 같습니다. 이런 기술들을 총망라함으로써 작가와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가 미래 사회를 모색하는 과정은 "모조 사회"와 "복지 자본 공동체"를 대비해 배치함으로써 더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독재와 통제의 중앙집권형 도시 국가 "모조 사회"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구성원 간의 평등과 조화를 중시하는 "복지 자본 공동체"라는 두 극단적 체제를 비교, 대비함으로써 독자에게 다양한 사고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개되는 각각의 모습과 기술은 필연적으로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암직한 기시감을 일으킵니다. 중요한 부분은 독자가 식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얼마나 설득력 있게 묘사되는가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해 집요하게 느껴질 만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도선우 작가의 장점이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전작 '스파링'의 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하나의 개념이 작동하는 원리를 차근차근 단계를 거치며 설명하는 그의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는 작가가 가진 최고의 특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끈덕지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하나하나 풀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설득력을 부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설명이 길어지고 자칫 독자들의 흥미를 잃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평소 SF를 즐겨 읽거나 미래기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장점을 한껏 느끼며 감탄을 하게 되는 반면, 가뜩이나 어려운 SF가 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스토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무슨 기술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는 '그렇다 치고 읽는' 신공을 펼치는 독자들이 다수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작가는 근 미래에 특이점이 도래했을 때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각종 기술들에 대해 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갖춘 대단한 미래 SF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 같은 인간으로 하여금 경외의 감정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SF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을지라도 무척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 이 정도로 스케일 크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완성도 높은 SF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 SF 소설의 역할에 충실한 사회파 SF 소설의 본보기


독자가 SF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킬링 타임 용일 수도 있고, 막연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장면들을 즐기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진지하고 적극적인 이유를 따져 본다면 미래를 그리고 있는 SF 소설을 읽음으로써 향후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변해 갈 것이며 그곳에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삶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향후 사회 변화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 속에서 세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고찰해 보는 사고실험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미래를 조망하는 것만으로는 SF 소설의 역할이 완성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미래향 가운데서도 갈등하고 고뇌하며 선택하는 '인간'이 그려져야 합니다. 이런 인간들의 속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이 좋은 SF 소설의 미덕이며 이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더욱 의미 있는 소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모조 사회"는 훌륭한 사회파 SF 소설이라고 할 조건들을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근 미래의 사회 속에서도 역사 속에 빠짐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 군상들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정인이 좌우하는 독재 통제 사회뿐만 아니라 조화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복지 자본 공동체조차 서로의 이해가 대립되는 순간이 오면 여지없이 이기주의가 등장하고 갈등과 반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정 등장인물의 능력이나 우연의 순간이 겹쳐 벌어지는 해피 엔딩 따위의 안일한 결론을 내지 않는 것도 눈여져 볼 만한 장점입니다. 특이점이 도래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의 핫한 이슈를 처리하는 작가의 선택은 세계적인 역사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주목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 예측되는 방향을 상정하고 비교적 냉정한 태도로 쓰인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자칫 독자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할 만큼 냉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나타나는 문제보다 훨씬 추악한 모습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며 때로는 과연 인류에게 밝은 미래가 있기나 한 것인가 회의를 가지게 될 지경인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작가의 이런 인식은 소설 속 "모조 사회"의 모듈에서 연출되는 가상현실의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로 설정되어 있고, 가장 희망이 없어 부작용과 오류가 적기 때문이라는 블랙 유머 같은 설정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제법 쓴웃음을 짓게 되면서도 반박하기 힘든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소설은 사회파 SF 소설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3. 대중성과 작품성의 조화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SF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이디어 기반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소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과학적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고, 나름의 논리적 개연성이 확보되기만 하면 이른바 유사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허용이 되는 것이 장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과학적인 하드 SF가 있기는 하지만 논리적 비약이나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이 검증 없이 포함되는 것은 소설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다수의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기반을 제거하더라도 무리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각 등장인물의 개성과 매력이 더해지고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됩니다. 폭발적인 전개와 뒤통수를 탁 때리는 반전까지 더해지면 독자들의 환호성이 터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방식의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소설 "모조 사회"는 과학적 검증에 할애한 분량이 다소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장황한 설명만 들어내면 더 스피디하고 흥미로운 소설이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그런 선택을 하였다면 저로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었을 뻔했습니다. 과학적인 치밀함 없이 전개되는 SF 소설이란 작품성의 관점에서는 크게 아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재미있게 읽었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와 같은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조 사회"는 스케일 큰 이야기의 줄기가 흘러감에도 각각의 사소한 디테일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국 SF 소설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현실 속에 등장하게 된다면 마치 성지순례처럼 이 책이 회자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소설이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확보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한 소설이었음에도 국내 SF 소설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안타깝지만 당장 이 소설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상황이 오기는 어려우리라는 슬픈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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