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 사회 1 - 존재의 방식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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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방면으로 미래를 조망하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수작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격파하며 인공지능의 위력을 뽐낸 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덤덤하던 일반 대중들도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도래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이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대중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고 일부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선우 작가는 전작 "스파링"과 "저스티스맨"으로 "정의"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당시 시대정신으로 대두되던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독자들과 평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영민함이 돋보였습니다. 그랬던 작가가 2년 만에 디스토피아 SF 소설을 신작으로 들고 나온 점은 다소 의아했습니다만 이번 선택으로 인해 시의적절한 문제를 꺼내드는 것이 작가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대형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한 신인소설가가 SF라는 장르소설을 선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SF 소설에 대한 한국 독자층을 고려하면 참으로 대담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조 사회"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배경으로 현시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미래 기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 전체를 제어하는 강 인공지능은 물론, 자율 주행 수준을 넘어서는 자율비행 호버카, 가상현실 기술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활용한 초확장 현실, 공각기동대를 떠올리게 하는 디지털 두뇌 기억 업로딩 기술, 이 모든 기술을 현실화할 수 있는 핵심인 나노 테크놀로지뿐 아니라 우주개척 SF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테라포밍 기술까지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통상 SF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는 특정 기술에 한정되기 마련입니다. 이는 작가가 구현한 세계 내에서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현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설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는 소설의 완성도와 직결됨은 물론 상업적 성공과도 연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미래 기술들과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대담함을 넘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작가는 아마도 가까운 근 미래에 펼쳐질 모습을 조감함에 있어 특정 기술에만 국한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큰 틀에서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미래에 구현될 법한 기술들 중, 우리 사회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요소들을 빠짐없이 조사하고 적용한 것 같습니다. 이런 기술들을 총망라함으로써 작가와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가 미래 사회를 모색하는 과정은 "모조 사회"와 "복지 자본 공동체"를 대비해 배치함으로써 더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독재와 통제의 중앙집권형 도시 국가 "모조 사회"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구성원 간의 평등과 조화를 중시하는 "복지 자본 공동체"라는 두 극단적 체제를 비교, 대비함으로써 독자에게 다양한 사고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개되는 각각의 모습과 기술은 필연적으로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암직한 기시감을 일으킵니다. 중요한 부분은 독자가 식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얼마나 설득력 있게 묘사되는가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해 집요하게 느껴질 만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도선우 작가의 장점이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전작 '스파링'의 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하나의 개념이 작동하는 원리를 차근차근 단계를 거치며 설명하는 그의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는 작가가 가진 최고의 특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끈덕지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하나하나 풀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설득력을 부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설명이 길어지고 자칫 독자들의 흥미를 잃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평소 SF를 즐겨 읽거나 미래기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장점을 한껏 느끼며 감탄을 하게 되는 반면, 가뜩이나 어려운 SF가 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스토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무슨 기술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는 '그렇다 치고 읽는' 신공을 펼치는 독자들이 다수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작가는 근 미래에 특이점이 도래했을 때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각종 기술들에 대해 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갖춘 대단한 미래 SF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 같은 인간으로 하여금 경외의 감정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SF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을지라도 무척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 이 정도로 스케일 크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완성도 높은 SF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 SF 소설의 역할에 충실한 사회파 SF 소설의 본보기


독자가 SF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킬링 타임 용일 수도 있고, 막연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장면들을 즐기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진지하고 적극적인 이유를 따져 본다면 미래를 그리고 있는 SF 소설을 읽음으로써 향후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변해 갈 것이며 그곳에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삶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향후 사회 변화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 속에서 세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고찰해 보는 사고실험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미래를 조망하는 것만으로는 SF 소설의 역할이 완성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미래향 가운데서도 갈등하고 고뇌하며 선택하는 '인간'이 그려져야 합니다. 이런 인간들의 속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이 좋은 SF 소설의 미덕이며 이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더욱 의미 있는 소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모조 사회"는 훌륭한 사회파 SF 소설이라고 할 조건들을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근 미래의 사회 속에서도 역사 속에 빠짐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 군상들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정인이 좌우하는 독재 통제 사회뿐만 아니라 조화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복지 자본 공동체조차 서로의 이해가 대립되는 순간이 오면 여지없이 이기주의가 등장하고 갈등과 반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정 등장인물의 능력이나 우연의 순간이 겹쳐 벌어지는 해피 엔딩 따위의 안일한 결론을 내지 않는 것도 눈여져 볼 만한 장점입니다. 특이점이 도래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의 핫한 이슈를 처리하는 작가의 선택은 세계적인 역사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주목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 예측되는 방향을 상정하고 비교적 냉정한 태도로 쓰인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자칫 독자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할 만큼 냉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나타나는 문제보다 훨씬 추악한 모습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며 때로는 과연 인류에게 밝은 미래가 있기나 한 것인가 회의를 가지게 될 지경인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작가의 이런 인식은 소설 속 "모조 사회"의 모듈에서 연출되는 가상현실의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로 설정되어 있고, 가장 희망이 없어 부작용과 오류가 적기 때문이라는 블랙 유머 같은 설정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제법 쓴웃음을 짓게 되면서도 반박하기 힘든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소설은 사회파 SF 소설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3. 대중성과 작품성의 조화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SF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이디어 기반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소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과학적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고, 나름의 논리적 개연성이 확보되기만 하면 이른바 유사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허용이 되는 것이 장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과학적인 하드 SF가 있기는 하지만 논리적 비약이나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이 검증 없이 포함되는 것은 소설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다수의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기반을 제거하더라도 무리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각 등장인물의 개성과 매력이 더해지고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됩니다. 폭발적인 전개와 뒤통수를 탁 때리는 반전까지 더해지면 독자들의 환호성이 터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방식의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소설 "모조 사회"는 과학적 검증에 할애한 분량이 다소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장황한 설명만 들어내면 더 스피디하고 흥미로운 소설이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그런 선택을 하였다면 저로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었을 뻔했습니다. 과학적인 치밀함 없이 전개되는 SF 소설이란 작품성의 관점에서는 크게 아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재미있게 읽었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와 같은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조 사회"는 스케일 큰 이야기의 줄기가 흘러감에도 각각의 사소한 디테일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국 SF 소설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현실 속에 등장하게 된다면 마치 성지순례처럼 이 책이 회자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소설이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확보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한 소설이었음에도 국내 SF 소설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안타깝지만 당장 이 소설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상황이 오기는 어려우리라는 슬픈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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