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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자살
조영주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1. 소름이 끼치도록 으스스하지만 끝까지 놓칠 수 없는 읽는 재미가 보장된 스릴러
조영주 작가의 신간 "혐오자살"은 제목만 보면 자칫 심각한 사회파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깊은 주제의식으로 똘똘뭉친 소설임은 분명합니다만, 이번 소설의 경우는 읽는 재미와 긴장감이 보장된 페이지터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항상 몇 챕터씩 끊어 읽는 제가 단박에 끝까지 읽었으니 말입니다.
조영주 작가의 장편 중에 "트위터 탐정 설록수"는 애초에 조금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이고 "홈즈가 보낸 편지"나 "붉은 소파"는 꽤나 묵직하고 무거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근작인 "반전이 없다"는 가독성이 꽤나 좋은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보면 이 양반의 소설이 가독성 넘치게 쉬이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나중에 차근차근 따져 보기로 합시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혐오자살"이라는 제목만 듣고 혹여 또 무겁고 읽기 힘든 소설이 아닐까 우려한 적이 있었는데, 저자는 잘 읽힐 거라고 장담하면서 "이 소설이 스릴러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는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혐오자살"은 미스터리와 범죄 스릴러 소설입니다. 훌륭한 스릴러 특유의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합니다. 그렇기에 독자입장에서는 책을 놓는 순간까지 방심하지 못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며 읽게 됩니다.
여기에 고약하게도 시간의 흐름과 서술자가 시시각각 바뀌면서 독자를 힘들게 합니다. 고도로 훈련된 전문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 들어간 거라고나 할까요?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는 의문이 많아지고 이런 의문은 후반부로 갈수록 농축되고 농축되어 터지기 일보직전의 깊은 똥마려움 같은 심정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공중 화장실에서 참고 참아 터질 것 같은데, 안에 있는 사람은 나올 듯 나올 듯 나오지 않을 때의 그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야 이 소설의 미친 텐션과 흐름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스릴러들이 독자들이 따라오기 좋도록 친절하게 긴장감을 조성했다고 풀었다가를 반복하며 적당한 텐션으로 대중성을 확보한다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에라이 그런게 어딨냐 6년을 준비했으니 막 밀어붙여 주겠다!"라고 작성한 것처럼 사건을 휘적휘적 휘몰아치며 독자를 몰아세웁니다. 아마 나보다 체력이 약한 독자들은 읽다가 여럿 나가 떨어질걸??? (이라고 하면 안되겠지요... 흐음..)
구성 자체가 복잡하고 시점도 자주 바뀌면서 집중하지 않으면 흐름을 잃을 위험이 조금 있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결국 사건을 다각도로 보여주기 위해서며,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각각의 사정과 형편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매우 입체적이며 풍성한 재미와 맛이 있는, 그러면서도 끊을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히 유지되는 수준 높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 소설만 봐도 작가가 얼마나 머리가 큰지.. 좋은지 알 수 있습니다. 읽기만해도 머리 아픈데 이걸 써낸 닝겐은 도대체 어떤 닝겐이란 말입니까...)
2.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어 돋보이는 주제의식
"혐오자살"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만연한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 혹시 이런데도 모른척 한 것 아닐까?",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라고 말입니다. 아파트라는 특수한 환경을 배경으로 사용함으로써 현대인들의 표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의 특수성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문제들. 이를테면 층간 흡연, 층간 소음, 음식물 쓰레기 무단투기 등의 생활 속 혐오와 불편을 유발하는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불법체류자 문제, 인종차별은 물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심각한 범죄인 조직폭력, 치정살인, 비관자살, 성매매 등의 문제까지 폭넓게 녹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이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호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게 하며 은연중에 차별과 불평등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더욱 문제는 이런 악의가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그리하여 서로 서로 타협하도록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유독 일체감을 중시합니다. "단일민족"으로부터 시작해, 뭐든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혐오의 정서와 태도가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부분을 예민하게 캐치하여 소설속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매우 소설적인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이런 소설속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면 독자들이 불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혐오자살"은 의문의 사건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 진행에 잘 버무려 주제의식을 녹아냈습니다. 독자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강요당하는 느낌없이 한 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무거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애이불비"와 같이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심각하지만 흥미진진하고, 흥미진진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균형감. 이 지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