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
루츠 슈마허 지음, 김태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1. 사람을 설득한다는 것

 

  사람을 설득해서 무언가 행동이나 생각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실생활에서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고 상식에 준한 논리를 전개해 나갈때 공감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이책은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책입니다. 이 책을 두페이지 정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이다지도 비상식적인 상황을 예랍시고 들고 있는 걸까? 독자를 바보 천치로 아는건가?'입니다. 말도 안되는 상식 이하의 극단적인 예를 들어 편협한 결론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작가가 유명한 저널리스트라는 점과 그동안 여러권의 베스트셀러를 저술했다는 사실을 의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책의 첫머리 내용입니다. 저자가 집에서 사용하려고 커피머신을 샀는데 카푸치노를 마셔볼 심산으로 우유통을 밀어 넣었더니 '자동 세정 기능'때문에 갈색 물을 쏟아 내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대기중이란 표시가 나왔고, 무려 30분이나 사용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알아낸 정보라며 겨우 카푸치노 버튼을 누릅니다.(이 대목에서 저자가 정상이하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일반적인 정상인이라면 직관적으로 버튼 모양이나 아이콘만으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거겠죠). 이때 때마침 늘 그렇다는 듯이 "커피 찌꺼기를 비우세요"라는 경고등이 들어옵니다. 찌꺼기를 비우고 다시 동작시키려고 했더니 이번엔 더 흔치 않은 "석회제거"경고가 딱 그 타이밍에 들어옵니다. 새로 산 머신인데도 말입니다(유럽에는 물에 석회질의 함유가 높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새로 산 머신이라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상할때로 상해서 커피마시기를 포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집에 커피머신이 있습니다만 과연 자동커피머신을 이용하는 사람중에 자동세정기능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거기에 하필 커피 찌꺼기가 꽉찬데다 석회질 제거 마저 겹치는 상황이 과연 누구나 '자동커피머신을 사용하다보면 늘 겪는 일이지...'라고 생각할 만한 상황일까요?

 

  이 책은 전체에 걸쳐서 이런식의 비상식적이고 극단적이고 흔치 않은 경우를 예를 들어 주장을 전개합니다. 제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순전히 이 말도 안되는 책을 그럴듯한 제목으로 포장해 팔아먹는 저자나 이걸 번역해서 버젓이 유통시키는 출판사를 이해할 수가 없고 무척이나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후반부는 예가 떨어졌는지 다소 상태가 나아지기는 합니다만 전반적인 책의 주장 자체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든 내용들입니다. 일일이 예를 들기도 피곤할 정도입니다.

 

 

#2. 부자집 아저씨의 투정은 가족들에게만

 

  이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부자집 아저씨의 철딱서니 없는 자랑질 섞인 투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을 살 때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기계와 문명, 현대사회를 적절히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피상적이라도 담겨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책의 내용은 뭐냐...

 

1. 나 졸라 부자다

2. 전자제품이 나오면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산다~~~

3. 난 맘에 안들면 또 사면 되는데 사용법 따위는 절대 안본다~~

4. 에이. 이건 별로다 도저히 못쓰겠다~~~

5. 욕하면서 나 또 산다~~~

6. 나 졸라 부자지????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냥 무분별하게 계속 삽니다. 절대 사용법을 익히지 않고 막무가내로 기계가 말을 안듣는다고 합니다. 매뉴얼이 두껍다고 투정합니다. 거의 유아 수준입니다. 이런 식이 된건 저자가 지나치게 자기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비약적인 전개를 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체가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소비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인 핸드폰이 10개라고 합니다. 가족들꺼 합치면 20개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크게 연관이 안되는데 굳이 자기 자동차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 차를 슈퍼카라고 부른다."랍니다. 그래서 각종 운전 상황들을 알려주고 경고도 울리는데 자기는 뭐가뭔지 전혀 모르겠답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남들이 슈퍼카라고 부르는 비싼 차를 샀으면 최소한의 사용법은 익혀야합니다. 그게 그 비싼 자동차를 사용하는 자의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소비입니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물건을 사기 전에 내가 쓰기에 적당한 물건인지 어떤 식으로 사용하면 되는지 충분히 고민하고 알아보고 사야합니다. 고가의 전자제품을 구입했으면 사용법을 잘 익혀서 고장없이 잘 사용하면 됩니다. 그게 자신없으면 안사면 되지요. 돈은 넘처나니 물건은 무작정 사놓고선 매뉴얼은 두껍다고 투털대며 안읽고 맘대로 사용하려다 고장내고는 결론이 뭐냐?

 

"옛날 구석기 시대가 편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미칩니다. 도데체 왜 이런게 책으로 나왔는지 의문입니다.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무분별한 소비를 자제하자" 정도겠습니다.

 

참, 이 저자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또 하나 있습니다. 책의 말미 감사의 말에 뜬금없이 버락 오바마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랑 유치원을 같이 다녔다나 뭐래나? 그게 이 책의 내용과 어떤 부분에서 연결이 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버락 오바마 유치원 동기니 대단하다고 생각하라는 건지 전반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유치함의 극치입니다.  

 

#3. 매뉴얼이 두꺼운 이유, 제품에 쓸데없는 기능이 많은 이유

 

  책 내용에 저자가 매뉴얼이 두껍다고 투정을 하는데 매뉴얼이 두꺼운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기본적으로 들어가야할 제품정보와 사용법, 규격, AS관계등의 정보가 들어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월드와이드 판매 제품인 경우는 불필요한 매뉴얼 제작비용증가를 막기위해 여러 나라 말로 되어있는 한가지의 간단 매뉴얼 들이 들어가게 됩니다. 두번째로는 제조사 입장에서는 경험에서 나온 방어장치일 수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할머니가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말리겠다며 집어넣어서 죽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전자레인지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제조사가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매뉴얼에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넣으면 안된다"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다보면 매뉴얼에 최대한 광범위하게 예측 가능한 모든 종류의 경고문을 다 집어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황당한 이유로 매뉴얼이 두꺼워지기도 합니다.

 

  또 하나 제품에 불필요하게 이런저런 기능이 많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만 들자면 이렇습니다.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려고 다양한 기능을 넣는다는건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는 내용이되겠습니다. 그런데 설계자가 물건을 개발할때는 사실 기능을 최대한 심플하게 해주는게 좋습니다. 그러나 마케팅부서나 영업부서는 이런 경우 좋은 핑계거리가 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판매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면 마케팅부서에서 "그러게 우리가 요구한 여러가지 기능을 다 넣어줬으면 사람들이 많이 사고싶어했을겁니다.", 영업부서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 기능들이 누락되었기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팔려고 해도 소비자가 외면해서 못팔았습니다." 이런거죠. 그래서 사실 정작 소비자는 거의 쓰지도 않는 효용없는 기능들이 계속 들어가게 됩니다.

 

  위에서 든 두가지는 아주 단편적인 이유와 시각일 뿐입니다. 요는 뭐냐.. 이런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했으면 최소한의 공부나 케이스 스타디나 하다못해 취재를 조금이라도 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저 기계에 기능이 많아서 불편하니 구석기시대가 좋다는 주장만 정해놓고선 모든 예를 거기에 끼워맞추려고 과장되고 왜곡시키다보니 읽는 사람은 마냥 눈쌀을 찌부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4. 총평 : 내가 멍청이라고 생각되면 단순한 기계를 사라. 합리적으로 소비하면 기계탓 할 일이 없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네사 2013-07-1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님이 다 하셨더군요. 공감 백번 누를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어요.
진짜 이 책은 쓰레기여요. 저도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서도, 차마...그 말을 못했다는...ㅋㅋㅋ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박하와 우주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1. 범죄 피해자학이라..

 

  이책은 범죄 피해자에 대해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범죄 피해자학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범죄 피해자학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생각들과 유사한 정의를 내리는지 아니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부각하는지 여부가 궁금했습니다. 아울러 범죄 피해자학의 발전으로 실제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범죄 피해자학의 내용과 실제 기여여부를 궁금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과거에는 범죄의 발생시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자,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우습게도 이차적인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범죄에 대한 범인과 범죄동기, 목적 등을 밝히는 것에 치우쳐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특히 성범죄 피해자의 취급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범죄 해결방안 찾기에만 골몰하던 분위기에서 피해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쪽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금 살펴보니 저의 기대처럼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돕는데 집중되어 있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피해자가 범죄를 유발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것에 주안점을 둔 부분도 있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논점이 다시 직접 범죄의 피해자에서 피해자 가족으로 확대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범죄를 유발했다손 치더라도 그 피해자의 가족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또 다른 고통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복잡하고 어렵고 답이 안나오는 문제입니다.  

 

 

 

#2. 이거 뭐 딱잘라 뭐라고 규정짓기가 애매하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한마디로 어떤 장르라고 말하기가 조금 모호합니다. 단순 스릴러라고 하기도 어렵고 미스터리라고 하기도 뭐하고 환타지는 더더욱 아닙니다. 형식적으로는 사회파 미스터리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만 딱히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신선하다고도 할 수 있고, 산만하다고도 할 수 있어 딱잘라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적어도 정통 미스터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목적 자체가 독자에게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거나 박진감 넘치는 하드보일드 액션을 선사하는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뛰어난 형사나 탐정, 영웅이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불편함을 느낌과 동시에 뒷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이거... 장르가 뭐라고 해야할까요?

 

 

 

#3. 묵직한 메시지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감나는 심리묘사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와 실감나는 디테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묵직한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설정은 외상후 증후군을 겪고 있는 10명의 범죄피해자들이 폐쇄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들어와 겪게 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이에 반응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 반전을 통한 심층적인 메시지로 연결됩니다. 어차피 던져진 메시지를 얼마나 이해하는가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독자의 몫이기는 합니다만, 생각없는 범죄자의 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하기가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달래기 위한 유일한 방법 중 하나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사죄일 것입니다. 이를 풀기위한 실마리와 같은 노력이 이 책의 말미를 통해 제시되지만 온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처절함만 남습니다.  

 

  또하나의 강점은 10명의 범죄피해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적절하고도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는데 있습니다. 이 부분은 작가의 실제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리얼리티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막연히 상상해서 쓰는 것과 간접 체험이라해도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과는 전달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나게 됩니다. 초, 중반의 긴 분량을 통해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결국 이런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 과유불급의 한계와 일장춘몽의 허망함

 

  이책의 깊이 있는 메시지와 섬세한 심리묘사 등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전반적인 이야기가 재미가 덜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주제에 이정도의 전달력을 보여준 것만도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짐에 따라 심장이 쫄깃해지는 맛이 부족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몰입을 방해한다고 느낀 점은 작가가 너무 많은... 다양한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의욕이 좀 과했다고나 할까? 중심 스토리가 박차고 나가야하는데 전체의 핵심이 마지막 반전에 가 있다보니 읽는 내내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아, 이 등장인물은 이런 스토리가 있어서 이러는구나, 저 등장인물은 또 이런 스토리가 있군...'이게 10명인데다 장박사 스토리까지 겹치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렇게 벌이다가 허무하게 죽어나갑니다. 그리고 대망의 두둥... 일장춘몽식의 대 반전이 나타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반전은 사실 이전에 읽은 "종료되었습니다"에 비하면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습니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자면 너무 스포일러라 어렵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면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와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의 결말 반전은 사실상 유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표절이냐 여부를 따진다면 결코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반전의 종류가 같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류의 반전을 "일장춘몽"류라고 정리를 했습니다만 궁금하신 분은 두 작품을 다 읽어보시면 아실 듯 합니다.  

 

  음악쪽으로 비교하자면 이를테면 잔잔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해서 끝나는 부드러운 음악이 있는가 하면 기승전결을 갖추어 벌스부분에서 몰아치며 마지막을 스크림으로 끝내는 노래가 있는 것이지요.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곡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편곡을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경연같은 곳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A라는 곡과 B라는 곡이 둘다 애절한 사랑노래에다 1절 잔잔히 2절에서 감정을 상승시키다고 후렴구에서 폭팔적으로 울고짜면서 마무리를 촤하~~ 질러주고 끝내는 것이 구성이 똑같다고 해서 A와 B가 표절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종료되었습니다'와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가 둘다 사형제도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마지막 반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한쪽을 표절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종류가 비슷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심지어 이야기의 접근이나 풀어내는 방식은 아주 차이가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가 출간되기 전에 저자가 이 반전의 유사함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이 책의 작가 후기의 한부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범죄자들에 대한 어떠한 처벌로도 쉽게 치유되어질 수 없는 범죄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며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대화를 통한 뜻밖의 성과로, 이 소설의 반전을 포함한 이야기 대부분의 골격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옮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적어도 제 상식으로는 일반적으로 작가가 후기를 이런 식으로 "반전을 포함한,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등의 표현을 굳이 쓰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쓰는데 오래걸렸을 뿐이다 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역시 드문 일입니다. (이런 내용을 후기에 자세히 적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또한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가 2012년 4월에 출간되었고, 이 책은 2012년 3월에 저작권 등록을 마쳤으니 관련이 없다라고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료되었습니다는 2011년 12월에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타면서 바로 저작권 등록이 되었을테니 굳이 그런 식으로 따지면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제 생각에는 굳이 이런 식으로 해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첫째로는 작가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류의 논란은 두 작품 모두에게 흥행, 판매면에서 이익입니다. 이 척박한 출판 환경에서 책 내용으로 논란이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일부러 책을 찾아서 읽도록 만드는 동력이 있다는 것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이상 환영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차기작으로 작가적 역량을 보여주며 논란을 잠재우면 가장 좋습니다. 일일이 대응하면 논란의 진위여부와는 무관하게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런 거죠. '그래? 당신 말이 맞는지 틀린지 나는 모르겠고 앞으로 당신이 쓴 책은 안보겠어.' 여기서 더 나가면 주위에 '그 작가 작품은 보지도 마'하고 다닐테죠.  

 

 

#5. 결론적으로...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매우 잘 짜여진 이야기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은 것이 재미와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었고, 또 하나 너무도 자주 등장하는 순문학적 표현의 문장들이 약간의 이질감과 불편함을 주었지만(저는 개인적으로 담백하고 간단 명료한 문장을 좋아하는지라..) 주제가 좋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앞으로 더 정제되고 다듬어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아지똥별 - 가장 낮은 곳에서 별이 된 사람, 권정생 이야기
김택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의 주인공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별"은 오랜기자생활을 하셨고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하셨던 김택근 선생님이 우리나라 동화 역사상 가장 많이 알려진 책 중 하나인 [강아지똥]의 저자 권정생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자서전 및 여러 자료를 토대로 동화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데뷔작 '강아지똥' 표지>

 

  처음 아무런 정보없이 이 책을 받았을 때, 제목을 읽고 띠지의 '성인 동화'라는 표현에 걸려서 마뜩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페이지를 넘기고 나자 바로 저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깊은 공감과 아픔과 존경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아프고 상처받고 외로운 삶을 살아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아끼고 사랑하며 아름다운 동화를 써내셨습니다. 인지세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안동소재 작은 교회의 예배당 종지기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아끼고 아낀 10억이 넘는 인지세를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하시고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난 권정생이라는 한 인간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이 책은 성인(成人) 동화가 아닌 성인(聖人) 동화였습니다. 

 

 

 

#2. 전쟁에서 기인된 수많은 아픔들, 어그러진 삶의모습들...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권정생 선생님은 어릴 때 이미 두번의 전쟁을 경험합니다. 한번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인한 일본의 패전을 두눈으로 보셨고,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합니다. 누구보다 전쟁의 위험과 잔인함을 가까이에서 겪었습니다. 전쟁통에 본인을 비롯한 배고픈 사람들은 생존본능으로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타인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보다도 더 인간성이 상실되는 현실을 몸소 겪으며 인간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셨던거 같습니다. 부산에 거주하며 일할 때 유일하게 친하던 기훈이 의문을 안은채 죽음을 맞고, 늘 성경을 품에 안고 정생을 전도하려 하던 명자는 어느새 윤락가 직업여성이 되어 버리는 상황을 겪으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이땅에는 전쟁의 공포를 빌미로 권력을 위해 사람들을 사상과 이념으로 가르고 서로의 대치를 조장하는 이익세력들이 존재합니다. 이 들을 향한 권정생 선생님의 목소리는 일관되고 명확합니다.  

 

"어디서 빌어먹던 뼈다귀 귀신인지 모르는, 사상이니 이념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면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p.158

 

   


#3. 권정생 선생이 꿈꾸던 세상은..

  선생은 교회 종지기로 있으면서 어스름 새벽녁에 종을 칠때마다 염원하고 염원합니다.  

 

"전쟁이 없어지고, 주림이 없어지고, 슬픔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사막에도 샘이 솟고, 무서운 사자와 어린애가 함께 뒹굴고, 독사의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 장난치고, 다시는 헤어짐도 죽음도 없는 그런 나라가 오기를....." p.132

 

  그러나 이런 막연한 꿈만 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행동했습니다. 

 

"나는 여지껏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태까지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외로운 만큼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p133
 

  그리고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라는 작품속에서 자기방에 놀러온 생쥐의 입을 통해 세상에 말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가 나눠서 먹고 입고 즐기며 살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하루 먹을 것만 먹고, 입을 것만 입으면 되는 거지요. 하니까 우리들은 가난하지 않아요 모두가 부자예요. 아저씨, 사람들은 거지가 있고 왕이 있고 양반이 있고 상놈이 있고, 왜 그렇게 아래위가 복잡한 거예요? 복잡한 건 모두가 가짜랍니다. 속이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저렇게 눈가리개를 만드는 거죠. 참 뻔뻔스러워요." p.147~8

 

 

 선생은 혼자 잘 살겠다고 이웃을 팽개친 사람들, 뭇 생명을 죽이면서 태연히 생명의 존엄을 입에 올리는 인간들, 총칼을 들고 평화를 얻어보겠다는 어리석은 무리들, 신의 말씀을 팔아먹는 어둠의 세력들, 그리고 이념에 갇혀 이념을 무기로 휘두르는 시대의 폭군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지구촌이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터전인 땅을 버린 도시화 시대를 걱정스럽게 바라봅니다. 농촌이 거대한 감옥처럼 변해버리는 현실을 우려합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물려줄 아름다운 미래가 없는 것과 그 속에서 살아갈 가여운 어린아이들을 걱정합니다.  

 

  평생 결혼도 하지않고 병마와 싸운 선생은 이런 안타까움을 수많은 동화에 담으시고 이 땅을 떠나셨는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분의 생각과 가치가 그의 동화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까지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던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강아지 똥> 중에서

 

 

#4.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마지막장을 넘기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두가지 정도가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첫째는, 과연 일제시대부터 6.25전쟁 시기를 거치며 겪었던 선생의 이야기를 지금 세대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입니다. 특히나 역사의 왜곡과 소모적인 이념 대립이 끊이지 않는 이 나라에서 선생의 의지와 삶으로 보인 교훈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요? 과연 지금의 10대가 이 이야기를 저와 같은 울림으로 받아들이게 될지요...

 

  둘째는, 이 책 전반에 걸쳐 기독교적 색채가 너무도 짙다는 점입니다. 색체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가 유행중인 이 시점에, 기독교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세속화되어 전방위적으로 공격받고 있는 이 시대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세례를 너무나 깊이 받은 우리 세대가 이 책을 통해 선생의 아름다운 마음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서서히 조금씩이라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 2007년 3월 31일에 쓴 마지막 유언장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강 부하
우용표 지음 / 시드페이퍼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1. 팍팍한 직장인의 삶은 누구책임?

 

  저는 좀 되는데로 흘러가는 데로 사는 사람입니다. 꼼꼼하게 인생을 설계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최고가 되는 삶... 조금도 부럽지 않은 삶입니다. 저는 경쟁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부류입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 밟고 올라가야 한다.'라는 것이 어그러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조금만 고민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공동체적 마인드로 조금 부족한 사람도 다함께 잘 살아 갈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이상적인가요? 저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딱 질색입니다.  

 

  우용표 대표님이 집필하신 '최강부하'를 읽었습니다. 이 책이 저랑 상극이고 전혀 안맞을 거라는 것쯤은 제목만 봐도 자명했습니다만,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 읽는 것은 길게봐서는 나쁜 독서습관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저는 이런 책이 나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좀 대충 살면 안되겠습니까? 조금 능력이 부족해도 감싸안아주는 조직이 있으면 안되겠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물론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남기라는게 최강부하, 좀비부하를 나눌 만큼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중간한 나이에 회사에서 나와도 딱히 더 나은 갈 곳이 없는 것이 작금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조직사회에 진입조차 못한 채 '아파야 청춘이다'라는 기성세대의 치사한 변명을 들으며 속을 삮이는 청년들이 넘쳐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상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개개인의 열심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10명중, 100명중, 1000명 중 최고가 되어 본인은 살아남을 지 어떨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결국은 경쟁에서 밀리고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뭘해도 밥그릇을 위협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권력에 도전하면 밥그릇을 치워버립니다. 마찬가지로 한 조직에서 권위에 도전하거나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으면 너무나 태연하게 밥그릇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마치 태고적부터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당연시 여깁니다. 자본이 최고입니다. 돈이 무소불위의 권력입니다. 이것이 한 직장인이 최강부하가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입니까?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닌 레미제라블이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2. 처절한 현실에 대안은 있는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분명한거 같습니다. 어차피 개개인이 바꿀 수 없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럼 그 속에서 다같이 굶어 죽을 것이냐, 도태될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 입니다. 저자는 직장인 모두가 어차피 다같이 성공하고 잘 살아 갈 수 없는 구조라면 당신이 '최강부하'가 되어 살아남아라는 교훈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매우 불편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직장인이 피부로 이러한 현실을 느끼고 있기에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이고 팔리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참 궁금한 것이 많아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를 꽤나 읽었었습니다. 읽으면서 불끈하며 '그래 나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꺼야?'하던 시절도 있었네요. 최강부하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 중 너무 신선하다거나 몰랐던 이야기라거나 이런 내용은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결국 주장하는 바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최강부하의 조건으로 오너십, 팔로어십, 파트너십, 셀프 리더십 등으로 구분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이쪽분야에 정통하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상당히 잘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책 전반에 면면히 어려운 상황을 강조하고 살아남을 것을 촉구하는 부분은 미래가 불안한 직장인들에게 상당히 와 닿을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실용서로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를테면 "파트너십 : 동료, 후배를 이끄는 힘"의 내용을 들여다보아도 파트너십을 발휘해야하는 이유가 '함께 공존, 공생하는 방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파트너십이 제시된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라 해도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현실을 모르고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고 욕을 먹는다면 할 수 없지만 이건 결과가 자명한 게임입니다. 100명중에 한명이 살아남는다면 나머지 99명은 다 놀고 자빠진 좀비부하일까요? 100명 모두가 최강부하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치더라도 결국 승자는 한명뿐인 게임입니다. 상대평가의 장이죠. 미안하지만 모두가 최강부하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반사이익을 받는 사람은 오너뿐입니다. 어차피 그들 중 더 높이 올라가는 자리는 정해져 있단 말입니다. 더 좋은 방법은 승자를 여러명으로 룰을 바꾸는 것입니다. 모두가 승자라면 더 좋겠네요. 이런 관점에서 협동조합으로 대안을 찾고 있는 선진국 모델을 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하긴 우리나라... 협동조합에서 조차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많아 그나마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모두가 위너인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최강부하를 읽으면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습니다. 

 

 

#3. 서평도서란...

 

  시드페이퍼에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읽고 마음에 안들면 리뷰를 안올리면 되는데 서평을 위해 받은 도서는 안 올릴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았다고 거짓말을 쓰는 것도 더 싫습니다. 그나마 최대한 자제했다고 자부합니다.  

 

  저자 우용표님에게도 죄송합니다. 이 책이 반드시 필요하고 유익하게 활용할 많은 분들이 계실텐데 괜히 초를 치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가치관, 인생관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책 리뷰에다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는 세대한탄을 섞어넣은 부분도 죄송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또 담아야겠기에 그리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료되었습니다 - 모든 미해결 사건이 풀리는 세상,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
박하익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놀랍고도 참신한 설정...

 

  이 책에서 가장 좋은 점을 뽑으라면 바로 참신하고도 기발한 설정입니다. 평소에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그런건 나도 생각해봤던건데?'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극히 건실하고 건강한 정신세계로만 살아온 저로써는 참 기묘한 생각을 했구나 하며 감탄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도 하고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것도 같은'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면 무거운 주제가 더욱 이야기를 짓눌러 끝까지 끌고 가기 힘들텐데 이 책은 결말 부분까지도 '뭐지? 이게 어떻게 되는거지?'하는 생각으로 이끌려가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참신하고 독창적인 설정이 가져다주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추리소설의 미덕...

 

  추리소설을 읽는 맛이라면 긴장감, 빠른 전개, 대반전 등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만, 저에게 있어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기대하는 가장 큰 미덕은 재미와 문제의식의 적절한 조화입니다. 사실 [종료되었습니다]를 읽을 때 이 정도의 묵직한 사회문제를 거침없이 다룰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습니다. 뭔가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그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독자의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대 반전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종료되었습니다]를 집어들며 기대했던 바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정도까지 강력범죄 처벌과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생각 못했는데 상당히 거침없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를 던져주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뭐? 하는 애매함이 남습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일까요? 적잖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곳곳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소 작위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설명하고자 하는 부분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이렇다 저렇다 교훈을 던지려는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분더러 그에 대한 반응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이것참 다 읽고 나서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고민스럽습니다.  

 

 

#3. 용서하는자와 용서받은자...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근데 내가 어떻게 다시 그사람을 용서하냐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밀양"이 떠올랐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여주인공 신애의 아들을 유괴하고 죽인 범인을 교도소에서 마주 대한 장면입니다. 종교에 기대어 어렵게 범인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 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범인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아 마음이 너무나 평안하고 당신의 용서 따위는 아무 의미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상처받은 자가 상처를 준 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자가 이를 극복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처를 준 자를 용서해야 합니다. 이 때 상처를 준 자의 진심어린 사죄 없는 용서는 살얼음에 의지해 강을 건너는 행위와 같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밀양에서의 범인처럼 혼자 엉뚱한 데서 용서받았다는 소리를 지껄이게 두면 안되겠습니다. 죄책감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는 현실 앞에 직접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 가족까지도 오랜세월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암담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런 고통은 언제 누구에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종료되었습니다]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설 내용의 방법론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물론 무리가 있지만 그 의의만은 고민해보아야 하겠습니다.  

 

 

#4. '일장춘몽'의 편리함...

 

  이 책의 긴장감 넘치는 가독성과 재미, 묵직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저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바로 제가 궁금해했던 그 반전이었습니다. 물론 범인이 누구인가? 도 역시 반전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 전체의 반전이자 결론은 결국 마지막 장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있어 이 마지막장은 잘 끌고가던 이야기를 한순간에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안타까운 반전이었습니다. 이런 식이란 겁니다.  

 

작가 : "잘 들어봐. 내가 한번은 죽었다 깨어났어"

나 : "으잉?? 뭔소리야.."

작가 : "잘 들어보라니깐 사실은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하게 된거라니깐"

나 : "으응?? 그럴수가 있나? 진짜야? 진짜 그런일이???"

작가 : "파하하.. 꿈속에서!!!!"

나 : "A~~C~~~ 뒤질라고!!!!!"

 

  마지막 반전을 대한 저의 기분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실망이 상당히 컸습니다. 왜냐면 설정이 정말 독특하고 기발했고, 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도 무난하고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초반부터 중반을 지나 결말에 다가갈때까지도 계속 궁금했습니다. '와.. 이렇게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들은 어떻게 설명하려고?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나?' 하면서 '이제 내용이 얼마 안남은거 같은데 슬슬 정리를 해줘야 될텐데...' 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일장춘몽]이더라." 이거지요... 이런 반전은 안됩니다. 이런 식이면 아무 얘기나 막해놓고 마지막에 "꿈이라니깐"하면 다 끝나는 거죠. 차라리 반전으로 독자를 놀래키는 걸 포기하더라도 중간 중간에 아니면 초반에 힌트를 줘서 살짝 알려주었더라면 황당함이 덜 했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반전은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비슷한 류의 반전을 막장에 넣은 이야기를 생각해오고 있었습니다만 [종료되었습니다]를 읽고보니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첨언 : 그러나... 재미는 있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