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박하와 우주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1. 범죄 피해자학이라..

 

  이책은 범죄 피해자에 대해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범죄 피해자학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범죄 피해자학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생각들과 유사한 정의를 내리는지 아니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부각하는지 여부가 궁금했습니다. 아울러 범죄 피해자학의 발전으로 실제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범죄 피해자학의 내용과 실제 기여여부를 궁금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과거에는 범죄의 발생시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자,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우습게도 이차적인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범죄에 대한 범인과 범죄동기, 목적 등을 밝히는 것에 치우쳐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특히 성범죄 피해자의 취급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범죄 해결방안 찾기에만 골몰하던 분위기에서 피해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쪽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금 살펴보니 저의 기대처럼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돕는데 집중되어 있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피해자가 범죄를 유발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것에 주안점을 둔 부분도 있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논점이 다시 직접 범죄의 피해자에서 피해자 가족으로 확대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범죄를 유발했다손 치더라도 그 피해자의 가족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또 다른 고통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복잡하고 어렵고 답이 안나오는 문제입니다.  

 

 

 

#2. 이거 뭐 딱잘라 뭐라고 규정짓기가 애매하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한마디로 어떤 장르라고 말하기가 조금 모호합니다. 단순 스릴러라고 하기도 어렵고 미스터리라고 하기도 뭐하고 환타지는 더더욱 아닙니다. 형식적으로는 사회파 미스터리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만 딱히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신선하다고도 할 수 있고, 산만하다고도 할 수 있어 딱잘라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적어도 정통 미스터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목적 자체가 독자에게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거나 박진감 넘치는 하드보일드 액션을 선사하는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뛰어난 형사나 탐정, 영웅이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불편함을 느낌과 동시에 뒷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이거... 장르가 뭐라고 해야할까요?

 

 

 

#3. 묵직한 메시지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감나는 심리묘사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와 실감나는 디테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묵직한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설정은 외상후 증후군을 겪고 있는 10명의 범죄피해자들이 폐쇄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들어와 겪게 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이에 반응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 반전을 통한 심층적인 메시지로 연결됩니다. 어차피 던져진 메시지를 얼마나 이해하는가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독자의 몫이기는 합니다만, 생각없는 범죄자의 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하기가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달래기 위한 유일한 방법 중 하나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사죄일 것입니다. 이를 풀기위한 실마리와 같은 노력이 이 책의 말미를 통해 제시되지만 온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처절함만 남습니다.  

 

  또하나의 강점은 10명의 범죄피해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적절하고도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는데 있습니다. 이 부분은 작가의 실제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리얼리티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막연히 상상해서 쓰는 것과 간접 체험이라해도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과는 전달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나게 됩니다. 초, 중반의 긴 분량을 통해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결국 이런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 과유불급의 한계와 일장춘몽의 허망함

 

  이책의 깊이 있는 메시지와 섬세한 심리묘사 등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전반적인 이야기가 재미가 덜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주제에 이정도의 전달력을 보여준 것만도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짐에 따라 심장이 쫄깃해지는 맛이 부족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몰입을 방해한다고 느낀 점은 작가가 너무 많은... 다양한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의욕이 좀 과했다고나 할까? 중심 스토리가 박차고 나가야하는데 전체의 핵심이 마지막 반전에 가 있다보니 읽는 내내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아, 이 등장인물은 이런 스토리가 있어서 이러는구나, 저 등장인물은 또 이런 스토리가 있군...'이게 10명인데다 장박사 스토리까지 겹치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렇게 벌이다가 허무하게 죽어나갑니다. 그리고 대망의 두둥... 일장춘몽식의 대 반전이 나타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반전은 사실 이전에 읽은 "종료되었습니다"에 비하면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습니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자면 너무 스포일러라 어렵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면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와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의 결말 반전은 사실상 유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표절이냐 여부를 따진다면 결코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반전의 종류가 같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류의 반전을 "일장춘몽"류라고 정리를 했습니다만 궁금하신 분은 두 작품을 다 읽어보시면 아실 듯 합니다.  

 

  음악쪽으로 비교하자면 이를테면 잔잔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해서 끝나는 부드러운 음악이 있는가 하면 기승전결을 갖추어 벌스부분에서 몰아치며 마지막을 스크림으로 끝내는 노래가 있는 것이지요.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곡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편곡을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경연같은 곳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A라는 곡과 B라는 곡이 둘다 애절한 사랑노래에다 1절 잔잔히 2절에서 감정을 상승시키다고 후렴구에서 폭팔적으로 울고짜면서 마무리를 촤하~~ 질러주고 끝내는 것이 구성이 똑같다고 해서 A와 B가 표절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종료되었습니다'와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가 둘다 사형제도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마지막 반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한쪽을 표절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종류가 비슷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심지어 이야기의 접근이나 풀어내는 방식은 아주 차이가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가 출간되기 전에 저자가 이 반전의 유사함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이 책의 작가 후기의 한부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범죄자들에 대한 어떠한 처벌로도 쉽게 치유되어질 수 없는 범죄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며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대화를 통한 뜻밖의 성과로, 이 소설의 반전을 포함한 이야기 대부분의 골격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옮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적어도 제 상식으로는 일반적으로 작가가 후기를 이런 식으로 "반전을 포함한,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등의 표현을 굳이 쓰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쓰는데 오래걸렸을 뿐이다 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역시 드문 일입니다. (이런 내용을 후기에 자세히 적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또한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가 2012년 4월에 출간되었고, 이 책은 2012년 3월에 저작권 등록을 마쳤으니 관련이 없다라고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료되었습니다는 2011년 12월에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타면서 바로 저작권 등록이 되었을테니 굳이 그런 식으로 따지면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제 생각에는 굳이 이런 식으로 해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첫째로는 작가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류의 논란은 두 작품 모두에게 흥행, 판매면에서 이익입니다. 이 척박한 출판 환경에서 책 내용으로 논란이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일부러 책을 찾아서 읽도록 만드는 동력이 있다는 것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이상 환영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차기작으로 작가적 역량을 보여주며 논란을 잠재우면 가장 좋습니다. 일일이 대응하면 논란의 진위여부와는 무관하게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런 거죠. '그래? 당신 말이 맞는지 틀린지 나는 모르겠고 앞으로 당신이 쓴 책은 안보겠어.' 여기서 더 나가면 주위에 '그 작가 작품은 보지도 마'하고 다닐테죠.  

 

 

#5. 결론적으로...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매우 잘 짜여진 이야기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은 것이 재미와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었고, 또 하나 너무도 자주 등장하는 순문학적 표현의 문장들이 약간의 이질감과 불편함을 주었지만(저는 개인적으로 담백하고 간단 명료한 문장을 좋아하는지라..) 주제가 좋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앞으로 더 정제되고 다듬어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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