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 용,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
권성욱 지음 / 미지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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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THE SINO-JAPANESE WAR) 용,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

저자 권성욱 / 미지북스 출판사 / 2015. 2. 10 / 페이지 916 / ISBN 9788994142388

1937년 7월 28일 아침 8시 베이핑-톈진-탕구 전역에 걸쳐 일본군은 쑹저위안군을 일제히 공격하였다. 조선군 제20사단과 지나주둔군 주력은 베이핑 남쪽의 요충지인 난위안(南苑)과 펑타이를, 관동군 독립보병 제1여단과 제11혼성여단은 시위안(西苑)을 각각 공격하여 펑즈안의 제37사단과 장쯔중의 제38사단에게 치명타를 가하였다.   - p.215


8월 14일 오전 7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자싱(嘉與) 비행장에서 출격한 제35중대 소속의 전투기 편대가 구름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공군의 대규모 공습의 시작이었다. 또한 황푸 강을 항해하고 있는 제3함대 기함 이즈모의 머리 위로 커티스 호크 복엽 전투기와 노스롭-2E 경폭격기 수십대로 구성된 대편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불덩어리를 토해내는 대공포화의 화망을 뚫고 맹렬하게 공습을 퍼부었다. - p.242


난징 시장대리이자 헌병대 부사령관으로 광화먼의 방어를 맡아 마지막까지 싸웠던 샤오산링 소장은 난징이 함락되자 탕성즈의 후퇴 명령을 거부하고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쯔진 산을 수비하던 제159사단 부사단장 뤄처췬 소장은 남은 부하들과 함게 일본군을 향해 돌격하다 적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는 등 진두지휘하던 수많은 여단장, 연대장들이 순국하였다. 일본군 역시 적어도 1만여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그에 대한 보복은 포로들과 힘없는 민간인들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 p.284


한커우 비행장에는 일본 제5항공군 산하 제8비행사단 3개 전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오후 12시 7분 "B-29 다수 접근 중!" 한커우 상공에서 경계 비행 중이던 정찰기로부터 다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경보가 울리고 허둥지둥 뛰어나온 조종사들이 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던 전투기에 탑승했다. 한 대, 한 대 차례로 출격했지만 40대도 채 되지 못했다. 그들의 눈앞에는 하늘을 뒤덮는 어마어마한 대편대의 무리가 항적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 p.533

우리에게는 "난징 대학살", "731부대"로 알려져 있는 중일전쟁. 1937년 7월 7일 이른바 루거우차오 사건을 시작으로 제국주의 일본은 중국을 전면적으로 침공합니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마찬가지로 손쉽게 승리하리라고 여겼지만 중국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무려 8년 1개월에 걸쳐 처절한 전쟁이 진행되었고 중국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자 더욱 무모하게도 미국을 공격했다가 결국 두발의 원폭을 맞고 패망합니다.

 

​시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나 태평양전쟁을 다룬 서적은 많이 있지만 중일전쟁은 태평양전쟁의 도입부로서 간단히 한 페이지 정도 할애할 뿐입니다. 일본 도쿄대 역사교수인 가토 요코의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와 같은 책도 있지만, 일본인의 관점에서 일본이 중국 침략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간략하게 서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윤휘탁 교수의 《중일전쟁과 중국혁명》이나 신승하 교수의 《중화민국과 공산혁명》역시 중일전쟁 시기의 중국 정치, 사회를 다룰 뿐 중일 전쟁 그 자체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실상 전무하다해도 좋을 정도이죠.

그런 점에서 이번에 미지북스에서 나온 《중일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중일전쟁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만주 사변 이전인 1928년 장제스의 중국 통일부터 시작하여 만주사변과 만주국의 건설, 상하이 사변, 2.26사건과 시안사건, 루거우차오 사건, 쌍방 100만명 이상이 투입되어 베르뎅 전투 이래 최대의 혈전이라 불리었던 쑹후 항전, 난징의 혈전, 중국의 동계 공세, 태평양전쟁과 카이로 회담, 일본의 패망과 전후 처리까지 약 20년에 걸친 동아시아 역사 전반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선을 중일 양국에만 국한하지 않고,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개입과 갈등, 소련과 일본의 대규모 분쟁이었던 장구펑과 노몬한 전투,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향하는 과정 등 주변의 정치적 상황을 중일전쟁과 연계하여 설명합니다.

/ 사진과 지도와 함께 보는 사실적인 묘사 /

책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 두툼한 하드커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군요. 또한 큼직큼직한 활자 덕분에 인문학 서적치고는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눈이 전혀 피로하지 않다는 점. 인쇄 상태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중간중간에 당시의 사진과 주요 전투 지도, 도표 등을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난해하고 딱딱하기 쉬운 여타 전쟁사 서적들과 달리,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직접 있는 것처럼 매우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서술하여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뒤가 궁금해 만든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입니다.

/ 풍부한 자료와 흥미로운 읽을거리 /

 

만주사변부터 일본의 항복까지 ​중일전쟁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는 물론이고, 1930년대 장제스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중국군 현대화 계획, 중일 전쟁의 해전과 항공전, 노몬한 전투, 전후 중국의 친일파 청산과 주일 주둔군의 파견, 배상금 문제 등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에는 여타 책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풍부한 읽을 거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편전쟁 이래 중국의 혼란과 일본은 왜 제국주의화 되었는가, 그리고 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는 과정, 그리고 전후 일본의 부흥과 일본이 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둔감한지에 대해서까지 이 책 하나로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알 수 있을 정도 입니다.

 

또한 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중일전쟁 중 사용된 양국 군대의 주요 무기(소총, 기관총, 야포, 군함, 전차, 항공기 등)와 군사 편제, 계급장 등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의 중공군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흔히 중국군을 "낡은 소총을 들고 인해전술을 펼치는 군대"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이미지가 얼마나 잘못된 편견인지 깨닫게 됩니다. 중국군은 기계화 부대와 항공기, 군함을 보유하였고 중일전쟁 내내 바다와 하늘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중일전쟁과 우리 역사의 관련성입니다. 이봉창 의사의 천황 암살 미수 사건이 상하이 전투를 불러왔고, 상하이 전투 직후 일본군의 전승 행사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으로 다리를 잃은 일본군 장성과 외교관이 십수년 후 맥아더 장군 앞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이런 걸 보면 중일전쟁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이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 역사와 얼마나 밀접한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또한 광복군 창설을 놓고 중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간의 갈등, 허무하게 끝난 국내진공작전, 장동건 주연의 블록버스터 영화 《마이웨이》로도 제작된 노르망디의 조선인과 일제의 조선인 강제 징용, 위안부 문제, 일본에 의해 제2의 오키나와가 될 뻔했던 제주도의 결전 계획 등 국사책을 통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도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 역사적 논란을 부를만한 예리한 지적 /

만주사변 당시 장쉐량은 장제스의 명령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물러났다, 중일전쟁에서 마오쩌둥은 유격전술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장제스 정권은 부정부패하고 무기력했으며 내전에만 광분하였다. 중국 근대사에 얼만큼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통념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장제스는 장쉐량에게 물러나지 말 것을 지시했지만 부하들의 배반과 일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장쉐량은 장제스의 명령을 무시한 채 물러났습니다. 1930년대 내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단일화된 중앙 정부의 확립과 군의 현대화, 열강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 등 장제스 정권의 항일을 위한 물적 기반의 구축,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던 마오쩌둥과 팔로군이 항일은 커녕 어떻게 세력 팽창에 광분하였으며 전후 내전에 대비하였는지에 대해서도 각종 자료를 근거로 설명합니다.

 

저자는 팔로군 개개인은 열심히 싸웠지만 마오쩌둥과 공산당 지도부가 얼마나 이중적이었으며 그동안의 통념은 대륙을 차지한 중공이 역사의 승자로서 만들어낸 허구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시각은 이전에 제가 읽은 조너선 펜비의 《장제스 평전》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근래에 와서 중국 역시 지나치게 미화되었던 마오쩌둥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장제스 정권과 중일전쟁의 항전 역사를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첫째로 장제스의 힘을 약하게 해주었다. 둘째로 우리의  공산당 지도부의 근거지와 군대 확충을 도왔다. 한때 30만명에 달했던 우리 군대는 불과 2만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과 8년 전쟁을 치루면서 우리 군대는 12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것이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 마오쩌둥의 "일본의 침략에 감사한다" (p.491)

약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쉬운 문체,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 등 읽는 내내 도무지 책을 덮을 수 없어서 설 연휴 동안 단숨에 읽었습니다. 더욱이 동아시아 역사에 많은 관심이 있기에 중일전쟁사는 제게는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근래에 본 책 중에서 최고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G2인 중국과 G3인 일본, 중국은 고도 성장하는 반면 버블 경제로 "잃어버린 20년"인 일본의 성장이 지지부진하지만 여전히 두 나라는 서로 만만찮은 상대입니다. 중국은 인구와 영토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핵무기를 보유한 반면, 일본은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경제 규모 역시 거의 대등합니다. 그동안 경제 논리를 앞세워 민감한 정치적 문제는 피해왔지만 국력이 비슷해지면서 두 나라는 다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죠. 과거사 문제는 물론이고, 센카쿠 열도(다오위다오)와 조업권을 놓고 갈수록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조만간 무력 충돌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두 나라의 첨예한 갈등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역시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일전쟁사는 반드시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이 전쟁사를 떠나, 동아시아 역사와 정치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필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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