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무섭지 싶었는데, 아니더라.
자연재해도 무섭더라, 공포더라, 두렵더라, 죽음과 근접터라.
갈라진 도로를 보면 순식간에 쫘~악 하고 더욱 깊고 넓게 벌어질 것만 같다.
아파트내의 크고 작은 지진의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파트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공포가 소름 끼치게 엄습해 온다.
샤워할 때 흔들리면 어쩌나 싶어 지진 이후 샤워를 못하고 있다.
흔들리는 느낌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고,
겨우 눕기라도 할라치면 심장이 다 쪼그라들어 콩알만해져 숨 쉬기가 버겁다.
먹을 생각도 없어 하루 종일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른다.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고,
엘리베이터 탈 때는 조마조마하다.
밤이 되면 '멘붕'의 의미를 알게 된다.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집 앞 공원으로 나왔는데,
이 와중에 시에선 공원에 장미를 심고 있더라.
도시의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꾸며지고 있다는 것에 상당히
불만스럽던 차, 이 재난 속에서 장미를 굳이 지금 저렇게 심어야만
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니 어찌나 화가 올라오던지!
-포고 고 은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제발 그냥 놔 둘 것
...
더이상 발명하지 말 것
...
이로부터 발견과 발명 그리고 모든 발전
극형에 처함
...
아, 고은의 이 시처럼 제발 그냥 좀 놔두었으면,
자연 그대로 도시를, 나라를 제발 그냥 놔두었으면...
불안에 못 견딘 나는 결국 대구로 피난을 오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