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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것에 대해 유죄이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내적인 죄의식만으로도 상당히 고통스러워 한다.
그를 보며 양심의 문제라면 우리는 정말 한순간도 죄인 아닌 순간이 없겠구나
싶으니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도 같다.
그렇다면 천주교에서 날마다의 기도에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싶다.
그래, 그런가보다... 그래서 내가 본 천주교 방송에서 그들은 늘 용서의 기도를
했던 것이구나...
"병적인 윤리의식",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을 때 이것이 나를 엄청나게 덮쳤고,
이로 인해 나의 분별심이 좀은 완화되어 짐을 느꼈다.
어떤 사람이라도 다 이해되어져야하는거구나 싶었다.
병적인 윤리의식을 <인간실격>에서 느끼기는 어렵지 않았는데,
이반 표도로비치에게서 찾기는 참 어렵네.
도스토예프스키는 글을 너무 어렵게 쓴 건가?
1권을 읽으면서 번역이 더 자연스러웠더라면 좋았을텐데 싶었으나,
3권까지 다 읽고 보니 이 번역이 최선이었지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증오와 질투가 비슷한 말이라면
표도르, 미챠, 그루셴카, 이반, 카챠의 애정행각을 좀 이해할 수 있을려나.
어쩌면 러시아적인 기질로만 이해되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재판의 마지막 부분,
검사와 변호사의 긴긴 논고는 책 전체에서 내내 이야기 해 왔던 사실들의 중복이라
읽기가 지루했으며, 갑자기 알료샤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마무리 지어진 마지막 장면은
비록 알료샤의 뜻 깊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급 당황스럽긴 했네.
"참칭자"란 단어 뜻을 몰라 검색해보니,
흥미롭게도 이 책 속의 인물들,
드미트리, 그리고리, 표도르, 이반이란 이름은 러시아의 역사 속 인물이었더라.
마지막 장면, 알료샤가 그를 따르는 아이들에게 한 말의 일부분.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것은
앞으로의 인생을 위하여 뭔가 훌륭한 추억,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 갖게 된 추억보다
더 숭고하고 강렬하고 건강하고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입니다.
... 인생에서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갖게 된다면 그 사람은 평생토록 구원받은 셈입니다."
아이들이 일류샤를 위해 했던 선행을 오래도록 기억하라는,
그러한 선행이야말로 구원이라는 뜻일게다.
아이들의 화해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런 아이들의 선한 영혼은 보호 받아야 하고, 사랑 받아야 한다.
알료샤와 일류샤의 이름이 비슷한 것도 의도적이지 않나 싶다.
콜랴가 병든 일류샤를 위해 그의 개, 페레즈본을 부르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 아이들과 알료샤를 보니 <청구회 추억-신영복> 과 딱 계합 되더라.
훌륭한 멘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진리이다.
한 여자를 아버지와 아들이 경쟁적으로 좋아하고,
형의 약혼녀를 좋아하는 동생,
어린 아들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 아버지,
사생아 스메르쟈코프,
거기에 친부살해라는 비정상적인, 자극적인 소재들이지만,
다 읽고 보니 오히려 이런 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죄의 범위를 어디로까지 둘 것인가?
과연 불법적인 것만이 죄인가?
그 죄를 누가 판단 할 수 있는가?
죄인이 죄인을 벌할 수 있는가?
죄에서 구원 받을 길은 있는가?
구원 받으면 용서 되는가?
사랑과 용서는 진정 구원의 길인가?
아담과 이브의 죄가 나의 죄인가?
인류의 죄를 대신한 예수의 거룩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벌하시는가?
살인 한 스메르쟈코프는 자살했고,
내적인 죄의식에 허덕이는 이반은 병 들었으며,
살인자가 될 뻔 했던 미챠는 법적인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있다.
죄이든, 죄의식이든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것에 대해 유죄이다."
드디어 성경을 읽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책은 빌려두었는데 아~ 정말! 주석의 글자는 너무너무너무 작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