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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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자기 스스로에게 맞서 일어섰으며 스스로를 벌한 자에게
틀림없는 자비를 베풀었음을 보았기 때문이지요."(p71)

"그대가 그 누구의 심판자도 될 수 없음을 특별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는 이 심판자야말로 자기 앞에 서 있는 자의 죄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지상에는 죄인의 심판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게 될 때야 비로소 심판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p91)



조시마 장로의 생애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했다. 특히 p50의 신비로운 
방문객, 이 이야기가 이 책 전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조시마 장로는 
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워낙 흥미진진하게 느꼈던터라 어서어서 
알고 싶어 만사 제쳐두고 읽었으나, 아직 2권에서는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없구만.

"스스로에게 맞서 일어섰으며..."
금강경에 "마음의 항복"이란 말이 나온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영화가 러쎌 크로 주연의  
"A beautiful mind"라고 이르는 글을  <금강경(心想事成)-우승택>에서 읽고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와 유사했던 드라마가 조인성 공효진 주연의 "괜찮아 사랑이야"지 싶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맞서 일어서는 것은 마음의 항복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 천재 수학자 존 내쉬는 번연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결국은 자신의 마음이 일으킨 허상임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 받아들임을 마음의 항복이라 <우승택>은 말하더라.
글로써 이렇게 적기야 쉽지만,
그건 정신적인 병이니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 책에서의 신비로운 방문자도 
스스로에 맞서 일어섬으로해서 내면의 평화를 얻게 된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밝힌다는 것, 
정신적인 병만큼이나 마음의 항복을 받기 어렵지 않겠나!
정신적인 병과 양심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어쩐지 나는 연관지어 생각되어진다.
나는 내 마음의 항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에 맞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얼마나 양심적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살해되고, 
그의 첫째 아들, 드미트리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붙잡혀 간다. 
이런이런... 친부살해라니... 
어서어서 3권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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