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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 ㅣ 현대 예술의 거장
피터 F.오스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죽을 때 듣고 싶은 음악이라는,
<책은 도끼다-박웅현>의 언급으로 들었던 것이 Aaron Rosand의 연주였다.
무심히 듣던 때와는 다르게, 누군가의 추천은 절정 부분에서의 감동을 한층 더
깊게 했다. 그러나 그 절정 부분 외에는 다소 지루함마저 들어 전곡을 다 듣는
일은 아주 드물었는데.
어느날, David Oistrakh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는데,
아! 다른거라. 지루할 새가 없이 전곡을 다 듣게 되고 또 듣게 되더라.
<Fabio Biondi의 비발디 사계>를 법정스님 선호하시었 듯,
연주자와 지휘자에 따라서 내가 더 선호하게 되는 곡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곡 위주였던 나의 취향이 연주자에게 쏠리게 되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대부분 Glenn Gould의 피아노 연주로 듣다가,
한 날, 유튜브에서 그의 연주 모습을 보는 순간, 온 마음이 그에게로 꼽혀버렸다.
독특한 자세, 입으로 따라 부르는 흥얼거림, 심지어는 음악에 맞춰 지휘하는 동작은,
베토벤과 굴드와 내가 하나가 된 듯 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그의 피아노, 스타인웨이 CD318에 대한 이야길 인터넷에서 읽은터라,
그의 일대기가 무척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빌리고는 기대에 차있었는데,
결론은 겨우겨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는...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의 대략적인 일대기와 그의 음악이었는데,
이 책에선 그가 전화 통화한 내용, 심지어 그가 복용한 약들과 그 횟수까지 상세히
언급하고 있어, 내가 한 사람의 사생활을 이렇듯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더니 급기야 끝까지 지루했네.
마지막 장엔 굴드의 사인까지 의학적 용어들과 함께 상세히 나열되어 있어,
과연 저자가 의사임을 실감하기엔 충분했지만...많이 아쉬웠다.
<병리학자는 오른쪽 공동 안에 있는 경동맥 역시 피가 엉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동맥에 피가 엉김으로써 글렌의 오른쪽 뇌는 금방 순환성 손상을 입고...
동맥혈관 벽에 미약하게 동맥경화 증상이 있었지만...
오른쪽 뇌가 부풀어 올라 왼쪽보다 컸고, 뇌피질이 파괴되어 피를 흘리는 부분도...>
그의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사인만 알아도 마음이 안타깝고 슬픈데,
이렇듯 상세한 의학적 설명은 그를 추도하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피아노의 천재인 그가 라디오 제작자와 영상물 제작자로 일한 시간들이 많았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으며, <항상 자신의 건강을 염려했지만 그 걱정때문에 오히려
건강하게 살지 못했>던 그의 짧은 일생이 여간 애도스러운게 아니다.
<기묘한 것은 진공청소기 없이 연주할 때보다 갑자기 소리가 더 훌륭하게 들릴 뿐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휩싸여 실제 소리를 듣지 못했던 연주 부분이 가장 훌륭했다는
점이다>
바로 옆에서 청소하는 진공청소기 소리 때문에 자신의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
에서, 내면의 소리에 따라 연주했더니 더 훌륭하더라는 그의 이 이야기에서 베토벤이
생각났다. 소리를 필요로 하는 일에 소리없이 그 일을 더 훌륭히 해낸다는 것,
천재들이란 이러한가 보다. 그래서 천재인가 보다.
인터넷 어느 블로거에서 읽은, 그의 피아노, 스타인웨이 CD318에 얽힌 이야기는
이 책에는 없네. 엄청 드라마틱 하더라만, 그저 떠도는 이야기일 뿐인가 보다.
그 길고 긴 손가락과 비정상적으로 큰 엄지 손가락으로 연주했을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 책을 읽는 동안 그의 흥얼거림과 함께 수 번 들었다.
옷장이 자신을 너무 빤히 쳐다봐서 다른 방으로 그 옷장을 옮겼다는 글렌 굴드.
그 글렌 굴드의 우수에 찬 매력적인 눈이 책 표지에서 나를 너무 빤히 보고 있어,
나도 책을 엎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