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보 완간 개정판 4.5.6 - 만인보 완간 개정판 전집 2
고은 지음 / 창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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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같은 천재들은 곡을 열심히 만들었다기 보다는 하늘이 그 곡을 내려주는 것이라 

이르더라. 곡을 만들려고 머리를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저절로 떠오른다는 것이

다. 다만 그는 떠오르는대로 적기만 할 뿐, 그것조차 떠오르는 것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

어 받아 적게 했다는 홍승찬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이 그러하다. 사람, 사람들에 대한 글을 적기 위해서 고은이 갖가지 말들을 조합해

보고, 굴려보고, 짜집기해 보고, 지워보다가 다시 적어보다가... 그렇게 한 편의 시에 각고의

노고를 더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정녕 그것이 아니라 그는 떠오르는대로 다만 적어 나가기

만 했을 것 같다는, 하늘이, 우주가 일러주는대로 다만 적기만 했을 것이라는, 그래서 그는 

천부적일거라는, 천재라는 생각이 그의 시를 대하면 늘 들듯, 여기서도 어김없다.

책 뒤편에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인명 찾아보기'가 있다. 세상에나! 어찌 이것이 시집이던가! 

단편소설집이지! 암, 소설집이고 말고!

"옥순, 칠룡, 용섭 어머니, 미제 분임, 어린 기섭, 전대복, 옥정골 고남곤......"이라 하지 않았다.

"옥순이, 칠룡이, 용섭이 어머니, 미제 분임이, 어린 기섭이, 전대복이, 옥정골 고남곤이......"라 

 

했다. 서민 냄새 사람 냄새 물씬물씬 난다. 


"침 뱉어 / 손 안에 기운 쥐고 있었다."

"곧 가야금 산조가 흥건했다."

"꼬끼오 하고 / 어둔 하늘하고 / 어둔 땅하고 갈라놓는 / 닭 울음소리"

"긴 빨래줄에 / 빨래 가득 널어 / 빨래장대 솟아올리는 기쁨 넘치며 / 
기어이 그 기쁨 노래 되어 / 낭랑하여라"

어려운 말도, 모르는 단어도 없다. 은유 많은 시만큼 골치 아픈게 또 있을까?

그럼에도 가슴 울리고, 감동 주고, 눈물을 주기도 하는 것이 <만인보>이구나.

온통 사람의 이야기 뿐이니 위로가 따로 없고, 위안이 따로 없다. 

"남의 곤한 아침잠부터 망치는 달봉이 / 이런 사람도 / 이 세상 살 까닭 있어 /
결코 약해지지 않고 살아간다 / 미제 달봉이 살아간다"

 

저렇게 악질인 사람도 살아가니 우리네도 살아가야지, 암, 살아가야하고 말고지.

이러한 책으로 30번까지라니, 만인보를 다 읽고 나면 지나가는 아무라도 사람이기에 그저 

 

반갑고, 고맙고, 미소쯤은 절로 줄 수 있을것 같다.

"이 땅 위의 물과 불이 언제나 굽실거리며 어질덤벙이었다"


"그년 시집 동네 사람들 / 얼마나 끕끕수 받아야 할까"

 

"그럴 때면 꼭 이웃에 말주비 있다"

 

"이주걱부려 쌓는다"

 

"해읍스름하게 흐린 날 / 심심찮다"

 

"한달가웃도 앓는데"

 

"꺼먹조끼, 꺼먹바지, 꺼먹고무신"

 

어질덤벙, 끕끕수, 말주비, 이주걱, 해읍스름, 한달가웃, 꺼먹, 등등 처음 보는 단어들도 더러

 

있어 어찌나 반갑다.

 

모르는 단어가 어찌 이리 반가운지 나도 잘 몰라! 하여간 반갑고 재밌다.

 

춘원 이광수가 시가 되어 있다. 그 빈정거림이 가히 후련하다.

 

양녕대군, 홍대용, 이몽학, 김춘추와 김유신, 황희, 도선 등등, 역사 속의 인물들이 시가 되어

 

있으니 이 또한 '고은'만의 매력이 아닐런가!

 

 

"여기서 도선은 고려의 국승 신승으로 받들어지나니

고려 불교 풍수로 돌아가고

그뒤의 조선도 유교 명단으로 돌아가매

이 어찌 딱한 자들의 수작인가

그저 뒤에 산 있고

앞에 흐르는 것 두면 되었지

어찌 그리 이 땅의 산수 귀하지 않은 데 없거늘

어디는 길하고 어디는 흉하더냐

 

왕건 이르기를

내가 점쳐서 정한 곳 이외의 땅에

함부로 절을 지으면

지덕 손상시키고

따라서 내 왕조 오래가지 못하리라

 

이런 말이나 하늘같이 믿어 마지않아

이 땅은

도선 풍수지리에 꽉 막혀버리고 말았다

 

모름지기 땅을 자유케 하라

사람이여 거기 비로소

먼저 네 땅을 자유케 하라

그 어디도 거룩하지 않은 곳 없는 땅으로부터

사람이여 거기 비로소

너 스스로 자유케 하라"     <도선 中에서>

 

 

그저 뒤에 산 있고 앞에 흐르는 것 두면 되었지...

이땅의 산수 귀하지 않은 데 없거늘...

 

이로써 나는 풍수지리에 대한 그간의 고정된 관념도 허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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