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한 꽃들의 축제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소疏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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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금강경 해설을 생각했다면 의외의 해설임을 볼 수 있다.

 

우선 전체 32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금강경을 14분 까지의 해설로  마무리 한다.

 

소소한 해설 보다는 전체적인 의미에 더 치중하고자 함을 느꼈으며 그것은 결국 '자신을

 

믿으라.'는 그의 일침으로 마무리되는 듯 하다.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이,

나의 바깥에,

저쪽 권위에,

성자들에게,

이른바 선지식들에게,

책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천만 경계하시라.

자기 안의 힘과 가치를 믿고 따르라. 

인간의 몸은 그 자연 속에 고유한 이성이 거주하고 있다.

그 소리에 다만 귀를 기울이면,

그 자성(自性)이 스스로 길을 열어갈 것이다.

방하(放下),

즉 놓아줄 때 일은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잊어버림으로써 우리는 기억한다.>

 

 

<금강경>을 제대로 아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겠으나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그의 마지막

 

충고가 무척 훌륭하여 내가 이 경(經)을 공부하는 이유로 아주 합당해 보인다.

 

<언성을 높이거나,

울컥하는 일이 있거나,

주먹이 올라가다가도,

돈을 따지거나,

명예를 계산할 때,

문득 '아상'이며,

'복덕'이며,

'마음의 항복'이며,

'응무소주이생기심'이 떠오른다.

그 떠올림은 곧 행동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그것이 어느덧 인격이 된다.

그 인격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를 결정한다.

경전의 사구게는 그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심원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금강경>이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보시하더라도

이 경전의 사구게 하나를 수지독송하는 공덕만 못하다."고 했던 것이다.>

 

"장로 수보리"라는 단어를 금강경에서 처음 보고는 기독교에서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그것에 대한 어원의 풀이가 있어 궁금하던 부분이 해소 되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을 읽을 때도 다소 산만했었는데, 그 이유를 나의 집중력 탓이라 여겼

 

는데, 이 책도 그러하다. 읽다가 생각이 자꾸만 따로 흘러가버려 끝까지 다 읽는데 애를

 

먹었다.

 

저자는 분명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 같은데 내가 그의 재치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요구가 많고 불만이 많은 사람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래서 말은 늘 위태롭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말이 적다. 그렇지 않은가.

 

*분별은 이 세계 전체의 고통을 산출하는 무지의 핵심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그리고

그 경험 세계에 수반되는 모든 악은 잘못 된 구분에서 비롯된 생각이 구축한 것이다.

 

*제발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이 상습적 태도가 자기나 남에게 실은 가장 나쁜 독이기 쉽다는

것을 우리 모두 깊이, 깊이 반성해보아야 한다.

 

*그러니 의존을 그치고, "절벽에서 그만 손을 놓아라!" 나머지는 불성이 자연 길을 인도할 것이

다. 이를 어느 시인은 "잊어버림으로써 기억한다"고 썼다.

 

*불교에 입문한 사람들은 이 마음의 풍경이 그저 속상하고 안타까웠던 사람들이다. 무의식에서

라도 신호가 왔기에 독자들은 절을 찾고, 명상을 하며, 또 이 허접한 글을 쫓고 있을 것이다.

그 발심만으로 이미 절반은 이루어졌다. 그 신호를 따라 가다보면 절절한 계기와 절차를 거쳐

그리던 평화와 아타락시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뜻을 굳게 가지시기 바란다.

 

*풀을 돌로 누르듯이 망념을 제거하려 들지 말라. 그만큼 위험한 시도가 다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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