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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하는 숙제 ㅣ 산하어린이 10
이오덕 지음 / 산하 / 1990년 12월
평점 :
'이오덕', '권정생'의 책을 읽으면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진다. 내 아이들의 교육도 잘못 시킨
것 같아 후회스럽고, 되돌릴 수도 없음에 더욱 한탄스럽기만 하다.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한
아이들의 마음을 병들게 한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다.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책
제목에 가슴이 얼마나 뜨끔했는지, 알고서야 그러겠나, 모르기때문에, 욕심때문에 그르친
일이 어디 육아뿐이랴. 공부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듯 내 아이들도 학교공부야 어차피 즐겁게 할 수는 없다 생각했고, 그렇
더라도 해야하는 것이 스스로를 키우는 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인가, 역시 내가 그랬듯 내 아
이들의 성적도 좋지는 못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다그치지 말걸... 온통 아쉬움 투성이다...
나는 내 아이들을 많이도 아프게 한 듯해 미안하고 미안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는 '숲노래'님이 떠오른다. 그의 마음이 꼭 이 책과
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더니 아이들을 위한 그의 결정이 얼마나 아이들을 위한 것이며,
훌륭한 것인가가 이해된다. 어쩌면 그는 이오덕 선생님의 후계자인가 싶어진다.
옮겨 쓰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책을 살까, 필사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몇몇만
옮긴다. 아주 훌륭한 책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서로 점수를
많이 따려고 다투면서 사람답지 못한 마음과 태도를 배웁니다. 남의 위에 올라서는 곳을 영
광으로 생각하고, 돈과 권력이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도 학교가 아닐까요?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사람의 마음이 착하고 깨끗하지 않다면 인간사회는 싸움과 굶
주림과 비참한 죽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악한 상태에서는 과학의 발달이 더
한층 해독을 가져옵니다.
*목숨을 귀중히 여기는 정신은 인간이 행복을 찾는 모든 생각의 바탕이 되며,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의 근원이고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살림이 넉넉해서 시설 좋은 학교에서 걱정없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피와 땀으로
살아가는 아이들만큼 참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아이들이 있는 한, 여러분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의 마음엔 병든 열매밖에 맺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공부에서 전체 성적을 등급으로 매긴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책을 전혀 읽지
못하는 어린이들 가운데는 흙으로 놀라울 만큼 여러가지 모양을 잘 만들어 내는 어린이가 있
는가 하면, 토끼 기르기에 대해서 선생님보다 더 잘 아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이
짐승을 기르거나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보다 더 소중학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
람의 재주란 온갖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시험 점수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다니 당치도 않
은 일입니다. 모두가 남다른 재주와 성품을 가졌으니 모두가 제 하는 일에 1등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아저씨는 몹시 찡그린 얼굴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까요? 그 아저씨는 집에 무슨
걱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 어린애를 병원에 두고 온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어릴 때부터
늘 괴롭게 살아왔고 괴로운 생각만 하다가 어른이 되어서 그만 웃을 줄도 모르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면 이런 어린이는 진실을 보는
눈이 열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짜 선생님이라 해서 사람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진짜 자격증을 가졌다
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인격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진짜와 가짜를 가릴려면 사람의 인격과 인간됨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졸업장이나 자격
증으로 사람의 값을 매겨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법의 질서를 아주 무시하
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질서는 지켜야 하고 법은 존중해야지요. 그러나 법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 잘못된 점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사람된 도리와 정의가 바
로 설 수 있게 더욱 이치에 맞는 법을 만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임을 잊지 말아야
겠어요.
*들새를 기른다는 것은 기르는 게 아니라 사실은 가두어 죽인다는 말입니다. 새뿐 아니라 소도
닭도 개도 돼지도 모두 그렇지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는 거짓이 많습니다. 여러분, 교실에서
물고기를 끝까지 기른 일이 있습니까?
*글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가장 쓰고 싶은 것을 본 대로 느낀대로 정직하게 써야 합니
다. 그래야만 남들이 읽어서 맛이 나고, 쓰는 사람도 즐겁고, 쓰는 이의 마음도 자라나게 됩니
다. (...) 선생님들은 상 타기 위한 글과, 의무로 교육청 같은 데 내어야 하는 글을 어린이들에게
쓰게 느라고 거짓스런 꾸미기를 가르칩니다. 이렇게 거짓글을 지어 내도록 가르치는 근거를 선
생님들은 소설가나 시인들이 글을 쓰는 방법에서 찾고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문학 작
품을 쓰는 어른들은 실제로 있었던 얘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얘기를 만들어 냅니
다. 말하자면 거짓 얘기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얘기니까 실제로 있었던
얘기보다 더 참된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그런 글을 쓸 필요가 전혀없고
쓸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른들 글 쓰는 흉내를 내어서는 안되지요. 어린이들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겪은 사실을 정확하게 써야 글이 되고 공부도 됩니다. 문학 작품의 기초는 이렇게 해야
닦아집니다. 이것이 어린이들의 글과 어른들의 문학 작품이 다른 점이지요.
*교육이란 학생들에게 착한 마음씨를 심어 주고 고운 마음을 갖게 하며 참된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 점수를 나쁘게 받고 멸시를 당하는 어린이가 불행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른
바 우등생이란 어린이들도 교만해지고, 제 욕심만 차리고 살아가는 태도를 자랑스럽게 배우게 되
는 것이니 이만저만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사람 아닌 길이요, 사람 안 되는 공부랍니다.
*아이들의 공부란 하고 싶을 때 한 달을 가르치는 것이, 하기 싫은 때 한 해를 가르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잘못되어 있는 것은 학교 밖의 사회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고, 둘째는
책을 읽는 것입니다.
*사람보다 곤충이나 짐승이 아름답지만, 곤충이나 짐승보다 또 더 아름다운 것이 나무라고 나는
생각 합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나온 아이를 도시에 보내 못된 풍습에 병들게 하지 말고 이런 산골에서
깨끗한 공기와 물 마시고 땅 파며 사람답게 살도록 하면 얼마나 졸겠습니까?
*남들이 모두 간다고 덩달아 따라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세요. 백 사람이 다 그 길을 가더라
도 그것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면 딱 잘라 물리치고 제 혼자라도 다른 길을 가세요. 백 대
일이지만 조금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조금은 외로울 것입니다. 그 외로운 것이야말로 소중합
니다. 백 대 일이라도 백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이라고 무엇이든 꼬박꼬박 순종해서 듣도록 해서는 안되겠다. 잘못 시키
는 일은 따르지 않도록 하고, 때로는 반항하는 마음까지 갖도록 해야겠다. 그래야만 우리 어린
이들이 참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가꾸어 나갈 수 있겠다 하고요.
숙제도 그렇지요. 1학년 어린이가 두 시간이거 세 시간이고 엎드려 베껴 써야 하는 숙제, 잠자
는 시간조차 빼앗기는 숙제는 아무리 선생님의 명령이라도 해 가지 않을 권리가 당당하게 우리
어린이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뭐, 벌을 받는다고요? 벌을 좀 받으면 어때요? 벌이 그토록 무서
운가요? 사람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벌 같은 걸 좀 받을 필요도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받는 벌은 몸과 마음을 더욱 튼튼하게 키워 가는 데 도움이 되는 단련이요, 시련임을 알아야 합
니다. 그런 단련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면 영광으로 생각하세요. 예수님은 십자가의 벌을 받으
셨지요. 시험 점수 따기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까짓 점수 한 점이라도 더 따려고 버둥거리
고, 상장이란 것을 타려고 악착같이 재주를 피우고, 결석 한 번 안 한 것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은 결코 큰 사람 못 됩니다. 사람다운 사람 못 됩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하늘과 땅에 닿는 것이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생물에 통하는 것입
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거짓이 없고 헛된 욕심이 없고 저와 남을 한몸으로 압니다. 어린이 마음
은 호랑이나 뱀같은 흉악하고 흉칙스럽게 보이는 동물까지도 어린이같이 착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린이 마음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린이 마음이 된다면 이 세상이 바로 천당이 되지요. 어린이 마음을 죽
을 때까지 지니고 살아간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