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수필 2 - 수필에 길을 묻다
법정(法頂) 외 지음, 손광성 외 엮음 / 을유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서운 년 

마흔을 훌쩍 넘겼던 해의 어느 날, 부모님이 우리집에 왔다. 구석방에서 남편을 앉혀놓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관심도 없었다. 부모님이 가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무서운 년이래."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 푼의 돈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더없이 완강했다.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포기하겠나.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았다.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를 자퇴해라. 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 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놈도 없고, 학문에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 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 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 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 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 광경을 부모님이 보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등록금을 줬다. 

그날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부모님이 그렇게 선선히 등록금을 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동생들에게 한 일장 연설을 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부모님은 남편에게 "쟤는 무서운 년이니까 너도 조심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편이 나처럼 무서운 년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과 연민을 표했다. 백수였음에도 남편은 평생 내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받았다. 오로지 나와 살아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점선(1946. 4. 24 경기도 개성~2009. 3. 22 서울)                                              

이화여대에서 공부했으며 1972년 홍익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해 여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앙데팡당 전에서 제8회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화단에 데뷔했다. 1983년 이후 2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6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1987~1988년 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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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0-04-2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수필 중 단연 으뜸으로 느껴진 것이어서 옮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