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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제목이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표지의 그림은, '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죽여야만 하는 섣부른 청춘, 그들의 모습일까?,,, 했다.
다 읽고 보니,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그들에게 내가 지레 했던 추측이 미안해서 죄스러움마저... 든다.
김애란의 책들은 불평이 없다.
그냥 그럼을 받아들임만 보일 뿐이어서, 내게는 그것이 긍정으로 보여서 김애란의 책들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단편은 하나하나의 단편대로, 장편은 장편대로 각각의 이야기들이 결코 겹치지 않으며 비슷하지 조차 않고, 하나하나가 다 펄펄하게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 살아온 것이 곧 저자의 여러 장,단편 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모습이라, 또한 내 이웃의 어느 누구의 이야기가 되기도 할 터이다 싶으니 섣불리 휙휙 지나칠 이야기들이 없고,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 뙬 때마다 숙연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은 아마도,
"문학은 전혀 생색내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그만의 속도로 우리를 돕는다."
라고 말한 저자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 지우는 어려서부터 지우개를 좋아했다..작고 말랑한데다 한 손에 쏙 들어오고 값도 비싸지 않아서였다. 훌쩍 키가 자란 뒤에도 지우는 종종 우울에 빠져들 때면 손에 미술용 떡지우개를 쥐고 굴렸다. 그러면 어디선가 옅은 수평선이 나타나 가슴을 지그시 눌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대단히 훌륭한 사람은 될 수 없어도 그럭저럭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일었다. 물론 그런 기분은 잠시 뿐이고, 나쁜 일은 계속 일어나며 사람들은 쉽게 잊는다는 걸 알았지만. 스스로에게 희망이나 사랑을 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해 지우는 자신에게 겨우 '할일'을 줬다. 그중 하나가 연필 가루 위에 연필 가루를 얹는 일, 선 위에 또 다른 선을 보태는 일이었다. 지우는 그걸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었다.
* "가난이란......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뺨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누군가 집을 떠나 변해서 돌아오는 이야기, 지우는 그건 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 결말을 잘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 여기지는 않았다.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름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지우는 그 과정에서 겪을 실망과 모욕을 포함해 이 모든 걸 어딘가 남겨둬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뒤 저쪽 세계에서 혼자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엄마와 용식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