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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집 에디션)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조동진의 “제비꽃”의 전주를 들으면 눈물이 고일 듯하다.
용돈이 무척 부족했던 대학교 때의 내가 그리 측은하고 안쓰러운 모습으로 떠올라서이다.
대학교내 식당의 지하에서는 빵 굽는 시설이 있었는지, 점심시간에 풍겨대는 빵 굽는 냄새는 사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강렬한 유혹이었지만 난 사먹은 적이 없다... 용돈을 아껴 쓰느라... 버스비를 아낀다고 학교에서 경산시내까지도 걸어갈 만큼이었으니... 어찌 갓 구운 빵이란 호사랴!!
한창 멋을 부릴대로 부릴 수 있는 꽃청춘 이었건만 그 드라이기 하나 사 달라는 말을 엄마께 못하던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러워 어깨를 다독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조동진의 “제비꽃” 전주를 들을 때마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어린 시절의 가여운 내가 자꾸 떠올라 독후감을 이것으로 대신한다.
지금의 나는 다른 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빵을 보는 것이 더 즐겁고 기분 좋으며, 예쁜 옷으로 멋을 부리고 나온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 훨씬 더 유쾌하고 정겹다. 나는 잘 자랐다.
그리고 잘 견뎌내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나와 비슷한 모든 이들도 잘 견뎌내시길, 부디 잘 견뎌내시길, 부디 꼭 그러하시길! 견뎌냄이 있은연후에야 성장이 있는 것이더라.
(한편으로는 나는 무척 포시랍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진정으로 견뎌내었을 것에 비하면 나의 견뎌냄이란 표현은 어불성설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일이 가장 큰 일이지 않나를 생각하며 나의 견뎌냄을 칭찬해 보기도 한다)
* 집 주인이 아무리 깔끔해도 수납공간이 적으면 장식장 위에 김치통과 애들 상장을 동시에 올려둘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
* 어쩌면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게 순도 높은 진심 같아, 앞으로도 같은 답을 할 것 같아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상실감으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적절함'의 거리를 둘이 힘을 합쳐 구겨버렸다. (...)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찝찝한 후회나 반추를 안 하게 만드는 사람, 상대에게 사진이 판별당하거나 수집당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 근본은 따뜻하되 태도는 선선한 술친구 였다. 물론 소문과 정치 없는 일터는 없고 직장에서 진심이니 우정이니 하는 걸 바라는 것 또한 천진한 태도임을 알았지만, 살면서 '일단 만나면 기분좋아지는 사람'은 뜻밖에 드물고, 있더라도 그 수가 점점 줄기 마련임을 깨달은 기태는 희주와의 인연을 귀하게 여겼다.
* 살맛난다 할 때 그 살맛이 이 살맛이구나
* 돈이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별게 맞다는 말로 입을 떼었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 간병이나 수술로 형제끼리 동 각출할 일이 생기는데, 똑같은 상황이라도 내 살림이 빠듯하면 '형은 왜 그거 밖에 안 내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인인 것 같다고, 반대로 내 상황이 좀 여유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자연스레 넘어가지더라고 했다. 자기가 원하는 건 큰 성공이나 호사까진 아니어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왔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 사다리 마지막 칸에 기적적으로 오른 자신과 달리 '요즘' 입사한 친구들은 어느 정도 한국의 정교한 계급 필터를 거친 이들처럼 보였기 대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자신이 쥐고 태어난 걸 과소평가하는 것 같았다. 계급성은 지우고 나이라는 약자성만 내세운 채 신문에서 읽은 말로 앞 세대에게 자주 적의를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뭘 굳이 읽지 않고도 언제든 쉽게 품을 수 있는 게 적의이기도 했다.
* 당신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을 보면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두의 안식과 평안을 빕니다.
* 나는 늘 부러웠거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 그땐 미처 몰랐지만 아마 헌수 마음 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해선 안 되는 말, 할 수 없는 말 등이 뒤엉키지 않았을까?
*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