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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 (10주기 스페셜 에디션)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문학판 / 2021년 1월
평점 :
모독 :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
어찌하여 제목을 '모독'으로 했을까 싶어 사전 풀이를 보았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 작은 도시 여기저기 뒹구는 게 화석 연료의 마지막 쓰레기인 비닐 조각, 스티로품 파편, 찌그러진 페트병 따위 등 생전 썩지 않는 것들이었다. 뚱뚱한 식당 주인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P.226)>
이해가 된다, 이해가 돼.
이 책의 제목이 왜 '모독'이 되었는지를.
그녀가 이 여행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여행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네팔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와
유튜브에서 몇 개의 네팔 트레킹에 대한 다큐를 찾아 보게 한다.
이 책은 무려 97년도에 쓰여졌으니
지금의 네팔은 얼마나 변화해 있을까?
여행객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모독'으로 오염되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 꿈을 꾸었는데 무산되었고
다시 네팔 트레킹 꿈을 꾸어볼까 하는데......
어느 날 문득 둘 다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텐가!
사진이 충분히 들어앉아 있어, 그것도 칼라로!! 너무 좋다.
그녀의 여행객으로서의 자세나 태도 등도 배울만하다.
*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의 키가 낮아져 관목숲이 되고 식물한계선을 넘으면 모진 풀밖에 못 자라고, 이끼만 남다가 아무것도 못 자라는 땅이 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나무보다 풀이 더 강하고 풀보다 꽃이 더 강하는 건 처음 알았다. 풀도 없는 데서 꽃을 보게 되다니.
* '옴마니반메훔'을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 좋은 데서는 곧잘 차를 마시는 저들과, 경치 좋은 데서는 고기부터 굽고 보는 우리하고 과연 어느 쪽이 더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때 마침 나는 병적일 정도로 우리의 쓰레기 문제에 절망하고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내남직없이 잘 먹고 잘사는 것까지 쓰레기에 기식하는 살찐 구더기 같다고, 극단적인 비하를 하고 싶을 때였으므로 그 극ㄹ은 질식 전에 숨통을 터주는 한 가닥의 청량한 바람 같았다.
* 이방인이 티벳에서 장려한 사원과 수많은 불상을 보는 일은 눈에는 최고의 사치요 충격이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마음의 평화나 기쁨은 못 느꼈다. 호화와 사치를 극한 불상과 이 땅의 극빈층이 저절로 대조가 되어 불상에서 느끼고 싶은 자비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밖으로 나와보니 이 작은 도시 여기저기 뒹구는 게 화석 연료의 마지막 쓰레기인 비닐 조각, 스티로품 파편, 찌그러진 페트병 따위 등 생전 썩지 않는 것들이었다. 뚱뚱한 식당 주인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 그러나 서로 얼마에 샀나를 비교하다 보니 너무 깎게 된 것이 그리 잘한 일 같지는 않다. 국내에서 하찮게 쓰는 몇백 원을 가지고 우리끼리 경쟁을 하는 것은 재미라 쳐도, 현지인에게 적절한 이익을 보장해주고 마음도 덜 상하게 하는 것은 그들보다 몇십 배의 국민 소득을 가진 우리가 지킬 바 체통이 아닐는지. 큰 가게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남자들이지만 상품의 대부분이 수공예품인 걸 보면 잘살기 위한 여자들의 수고가 후진국일수록 혹독하다는 게 경험으로 와 닿는다.
*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