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도서] 순이삼촌 1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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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 무엇이길래 양민이 죽창에 무참하게 죽어가야 한단 말인가!


내가 지금껏 살아 온 날들을 둘러 보면 

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러한 것들을 경험도 못해보고 

억울한 죽임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읽는 내내 억울하고 분해서 억장이 무너졌다.

너무 처참하고 잔인해서 과연 사람이 이럴수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죽창이라니!

뾰족한 죽창이라니!

그 뾰족한 것이 바로 내 가슴을 찌르는 듯한 무서움에 몸서리가 쳐진다. 


사람을 해치기 위해 누군가는 대나무를 뾰족하게 만들었을 것 아닌가!

세상에나!

그게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무서운 세월이었다. 

정말 무서운 세월이었어!


젖을 먹이지 못해 생후 4개월 된 아기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엄마 마음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감당해낼 수가 있을까!

그러한 세월을 살아 낸  우리의 선조들,


지금의 이 풍요로운,

흘러 넘쳐서,

버리기를 수없이 해도 흘러 넘치는 이 시절이 오히려 죄스럽다. 









* 가마솥에 달궁달궁 삶아갖고 국물을 나눠주겠다는 거 아닌가


*마침내 사람들이 뭣에 홀린 듯 스적스적 앞으로 걸어나와 방리별로 자리 잡고 앉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그런데 한발짝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주춤주춤 커지는 듯싶더니, 솥뚜껑 앞에 당도하자 별안간 무섭게 커져올랐다. 


* 나는 잊어먹고 있던 낱말들이 심층의식 깊은 데서 하나하나 튀어나올 때마다 남모르는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추억의 심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 머릿 속은 고향의 풍물과 사투리로 그들먹해지는 것이었다. 


* 귀리집은 두 눈을 슴뻑슴뻑해서 눈물을 나온 구멍으로 다시 길어넣는다. 


* 기꺼운 마음에, 가슴이 주체 못할 지경으로 왈랑왈랑 달떠오른다. 


* 풀주머니 쥐어짜듯 두 손으로 아프게 젖을 쥐어짜도 그저 젖꼭지 끝에 이슬 슴슴 맺히듯 할 뿐이었다. 


* 허기진 뱃심으로 담가를 들자니 자연 허리가 새우등 모양으로 휘고 발이 허청허청 헛논다. 


* 노형에 생긴 호열자가 다른 지방으로 전염될까봐 이 고개에다 돌을 쌓고 가시나무를 베어다 길을 차단하고 사람 왕래를 막았다. 호열자는 순구 또래의 어린것들을 무더기로 죽이고 물러갔다. 죄익사상인가 뭔가 하는 것도 딱 호열자병을 닮았다. 그건 호열자처럼 무섭게 번지고 일단 거기에 걸리면 꼭 죽게 마련인 무서운 전염병이다. 호열자 때문에 돌을 쌓아 두달 동안이나 길을 차단하던 이 도령마루에 한동안 좌익 사람들이 읍내 토벌군 차가 못 오게 여러차례 돌을 쌓더니, 이베는 토벌군 쪽에서 계엄령까지 내리고 성을 쌓아놓았구나.


* 누구는 편리하게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전쟁이란 으레 그런 거다, 그게 전쟁의 메카니즘이라는 것이다, 전쟁이 그렇게 시킨다, 그 사람들이 특히 잔인해서 그런 게 아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 통에선 어느 때 어이서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월남 땅 밀라이 사건을 보라,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전쟁 중에 일어난 게 아니다. 6. 25 터지기 두해 전 일, 그러니까 그건 전쟁이 아니라 죄익폭동 진압이었다. 폭동 진압에서 삼만이 죽었다니!


*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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