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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평점 :
도서관에서 9권을 빌렸는데
이 책은 역시나 제목때문에 선택에서 매번 밀려
결국은 가장 마지막에 잡게 될 줄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읽을수가 없어,
억장이 무너지고
마음이 갈기 찢겨 반쯤 읽다가 책을 덮는다.
겪어보지 않고 그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억울함을 어찌 견뎌낼까!
그 그리움을 어찌 견뎌낼까!
그 자책을 어찌 견뎌낼까!
다시 잡은 책의 말미에는
그래도 용케 이겨내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계기로 나도 앞으로는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사건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사회초년생들에게 더 부드러운 친절로 대할 것이다.
40대 초반에 아주 잠시 특성화고에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교무실 바로 앞에 교사용 화장실이 있었고,
세면대가 그렇게 지저분해도 누구 하나 그 세면대를 깨끗이 닦는 교사가 없더라.
오히려 그 세면대를 정리하는 나를 삐뚜름한 눈으로 보더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지저분할 때마다 세면대를 닦았다.
그리고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교사용 화장실을 학생들이 청소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교육일까를 수없이 생각했었다.
무엇이 교육일까?
"본보기"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교육의 첫걸음이지 않을까.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가정에서는 부모가,
사회에서는 선배가, 상사가 본보기가 되어 주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라도 보인다면
이런 가슴아픈 사건, 사고는 줄어들지 않을까.
기본 원칙만 지키더라도 이런 눈물나는 일은 줄어들텐데...
너무나 아픈 책이었다......
*그동안 거리에서 장애인을 못 봤다면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못 봤다면 그런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해도 들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듯, 특성화고 학생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 자연스레 비가시화 된다.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 다니고 학생이란 곧 전부 수능을 치는 예비 수험생으로 여기는 식이다. 비진학, 낯학교 아이들은 배제되고 특성화고 아이들은 고려되지 못한다.
*지하철을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뷔페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 운반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승강기를 수리하다가...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흩어진 사고의 기록을 모아놓으면 공통의 문제점이 보인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초반 적응 시스템이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모두가 꺼려하는 일이 조직의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다는 것, 학굥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전교육을 받기보다 '이런저런 거 조심하라'는 식으로 말 몇 마디를 듣고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고 욕설과 명령 등 비인간적인 대우에 노출됐다. 노동에 단련되지 못한 서툰 몸으로 야근까지 감당했다. 학습도 실습도 아닌 중노동에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그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자기 구제로서 죽음을 택했다.
*현장실습 나가는 건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애들한테 노동자의 권리를 정확하게 교육을 시켜서 내보내야 한다는 거예요. 실습생이 해야 할 일과 아닌 일에 대해서 과감하게 아이들이 선을 그을 수 있게 가르쳐야 돼요. 최소한 한 달은 노동교육을 시키고 난 다음에 내보내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가장 아프더라고요. 뭐냐면, 아이들이 실습 나가는 그 현장에 '어른'이 있었다는 거죠. 제대로 배웠든 못 배웠든 그 일을 계속해온 어른이 있었는데, 열여덟 살, 열아홉 살 먹은 아이들이 그 현장에 가서 노동인권을, 자기 권리를 애들이 주장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애들을 돌봐줘야 하는 어른들이 많았다고요. 그런데 안 그랬다는 거지. 그게 지금도 아프고 너무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