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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김형석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15년 10월
평점 :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세 권째 김형석 교수님의 책을 읽고 나니 <국기에 대한 맹세>가 떠오른다.
이 맹세도 일부 구절이 달라져있던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아마도 교수님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맹세로써 가슴에 새길 수 있는
마지막 분이 아니실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할 수 있는 마지막 어른.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만 살아서 내가 국가를 위해 해야 하는 일보다
국가가 내게 해 주어야 하는 것에 더 민감한 시대에 살고 있지 싶다.
교수님의 100년 인생은 정말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윤동주 시인은 너무나 옛날 옛적 사람이었는데, 세상에나, 교수님은 윤동주 시인과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니, 김일성과 같은 마을이었다니!
살면서 가끔은 가치관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모르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동성애 같은.
<물론 우리는 이웃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에 절대적인
부정적 가치판단과 제약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선하고 고귀한 가치판단과 선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소수의 우리가 좋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의 전체적 질서까지
훼손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사회질서란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더라도
사회는 성장할 수 있으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가치와 질서는 보존, 육성되어야 한다.
동성애의 문제도 그렇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동성애를 하는 것이 옳으며 그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동성애를 반대는 하지 않아도 선한 가치와 질서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p.300 >
이 구절을 읽는데 맞아, 내 생각도 바로 이것이었어! 라고 무릎이 탁 쳐지는 것이다.
또하나의 애매했던 나의 관점이 확연히 정립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들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 때문에 책을 읽는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가 보인다.
지역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또한 나는 무엇을 남기고 죽을 것인가?
고귀하고 훌륭한 본보기가 계시니 이 어찌 고맙지않으랴!
*나 혼자 남았다.
모친과 아내까지 떠나간 집은 비어 있는 공간이다.
아내를 보낸 뒤, 얼마 동안 여행을 했다. 미국에 있는 세 딸들의 집도 방문했다. 두 달
가까이 걸렸다.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갑자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없어졌다.
내 인생의 책임은 다 끝냈다. 모친과 아내는 아쉽지 않게 보내드렸다.
그런데 내가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내 마음의 집이 비어 있는 것이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버스나 택시를 탈 때는 반드시 승하차 시에 인사를 한다.
내가 친절과 감사의 뜻을 표하면 그들도 친절과 교양을 쌓아갈 수가 있다. (...) 나는 지금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대신 해주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린다. (...) 나는 교인이다.
그러나 교회를 위한 기도는 별로 드리지 않는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해야
하며 교회보다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 기도드리는 정성과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학(미국 오스틴 대학)에서는 150년 동안 시험 감독은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학생들은 비록 이 과목때문에 실격하거나 학교를 떠나게 된다고 해도 자기를 믿고 있는
교수와 친구를 배반하는 부정행위는 자기 인격에 대한 배반이기 때문에 범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모두가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점이 아메리카의 벍은 장래라고 믿기에 이르렀다.
*부인은 어린애도 없는 자기가 아무 일도 없이 집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민망하고
자기도 일을 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시민 같아 미음이 편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는데 교회에 헌금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사회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얘기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말을 통해 이 가정은 미국 사회를 생각하고,
미국 정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버릇이 없다는 뜻은 배우지 못했다, 본받을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 예의범절을 모른다,
공경심이 없다, 더불어 살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정신적 가치와 질서를 모르거나 해친다,
독선적 사고 때문에 더 고귀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인격과
선한 노력을 폄하하거나 해친다 등등의 인간관계와 그 규범을 말하는 것 같아, 찰학적
용어를 빌리면 인간애의 정신을 훼손시키며 사회의 선한 질서를 악화시킨다는 뜻이다.
*그분(스코필드 박사)은 박정희 정권 기간을 한국에서 지냈다. 박 정권의 좋은 점을 얘기
할 때는 우리와 함께 편히 얘기를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단점이나 마땅치 않게 여겨
지는 정책을 말할 때는 반드시 "나, 대통령에 대한 불만스러운 얘기를 해도 괜찮겠어요?"
라는 양해를 구하곤 했다. 나는 그에 비하면 제자격인 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꼭 갖추곤 했다. 나도 배우고 싶은 면이 많았다.
*구체적이고 필수적이면서 실천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청소년기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의 체험을 터득하도록 이끌어주는 일이다. 봉사의 실천이 사랑의 정신을 키워주며
그것이 곧 행복과 인생의 보람임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 봉사정신이 없는 지도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인생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무엇을 남겼는가
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때때로 존경하는 사람들의 동상이나 기념관을 대하는 때가 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들을 위해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뜻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자녀들에게 상속해주는 것은 법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과 제도라고 믿고 있다. 그 세금이 후대들을 위한 복지 혜택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나 찾아온다. 그러나 죽음을 체험해본 사람은 없다. 죽음은 순간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후에는 삶이 끝났기 때문에 죽음도 사라진 뒤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죽음은 관념적으로 삶과 더불어 있다. 죽음이 있는 곳에는 삶이 없으나
삶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영결식에 가보면 그때마다 꼭 알려지는 식순이 있다. 그 사람의 태어남부터 죽음까지의
경력이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주어졌던 유일하면서도 전체적인 삶과 그에 대한 평가다.
그 안에는 두 가지가 들어 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가'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는가'다. 그 내용에 따라 그의 일생이 나타나며 평가된다.
*죽음의 의미도 그러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 뜻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주어진 삶을 다
바치고 싶은 무엇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죽음을 극복하는 참되고 영원한 삶의 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