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책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해서 도서관을 갔더니 같은 제목으로 하나는 만화이고, 하나는 책이더라.

그것도 한 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권이더라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두 7권이며,

만화가 "스테판 외에"는 프루스트의 이 책들을 해마다 한 권씩, 12년에 걸쳐서 12권 분량의

만화로 완성할 예정이라는 안내가 있다.

 

중학교때던가, <걸리버여행기> 원본을 읽고는 축약본이 주는 재미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해서, 이후로는 어떤 책이든 축약본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는데,

이번엔 예외적으로 축약본인 이 만화를 먼저 읽었다.

 

기억을, 추억을 꺼집어내게 하는 것들에는 보이는 것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냄새, 소리, 맛, 분위기등등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에 격하게 공감한다.

홍차에 적셔 먹는 마들렌느에서 마르셀은 콩브레 시절을 속속들이 떠올리듯이,

내게도 그러한 것들이 여럿있다.

굴뚝연기냄새, 비 떨어지는 흙냄새, 풋풋한 풀냄새,

대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 아궁이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

그 부드러운 눈이 쌓여 뒷산에서 들리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등등에서

수 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할머니 댁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먼 산, 기와 위에 예쁘게 핀 채송화, 하얀 감꽃,

간혹 새벽이면 먹을 수 있었던 이웃집이 가져다 주시는 제삿밥,

꼬불꼬불 말려나가던 호박 줄기, 맑은 물이 쉼없이 콸콸거리던 또랑,

동네 우물가의 청개구리, 비오는 날이면 엉금엉금 기어나오던 뒤안의 두꺼비,

무섭던 도깨비, 귀신이야기, 창호지 문에 어른거리던 달 그림자.... 

그리고 예쁜 우리 할머니와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던 그 값지고 소중한 할머니 집...

 

지금은 감자밥 해주시던 그 예쁜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안계시고,

나의 자연에 대한 모든 정서의 뿌리를 만들어 주었던 소중한 할머니의 집도 없다.

다만, 그 냄새와 향기와 느낌, 소리는 여전히 저 깊은 곳에 살아있어서

나도 프루스트만큼 세세하지는 못하지만 가득하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17~19세기의 서양 사교계는 상당히 속물적인 느낌이 든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 강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러하다. 남에게 비쳐지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모두에게 너무도 당연해 보이던 시대인가 보다.

 

아래 글은 한 아저씨가 마르셀을 초대하면서 마르셀에게 하는 말이다.

누가 내게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라면서 이런 표현을 한다면,

더구나 어린이였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그는 평생 나의 우상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와서, 잠시 이 늙은이의 말벗이 되어 주게나...

우리 집에 올 때는 솔로몬 왕처럼 백합같이 흰 비단 옷을 입고,

머리에는 다채롭게 빛나는 생각들을 담아서 오게나.

특히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절기가 절기인 만큼 마지막 얼음 위로 부는 상큼한 바람 한 줌 가져다 주게나.

마치 오늘 아침부터 두 마리 나비가 문턱을 맴돌면서 예루살렘 장미가 어서 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듯, 이제 막 틈새로 불기 시작한 그 상큼한 바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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