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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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드보통의 책들에서 보는 목차가 참 마음에 든다.

이 책의 목차는,

 

방법론

사랑

자연

정치

 

이 大목차에 각각 다시 몇 개의 小목차로 나누어 진다.

이 목차들을 보면 그의 머리 속에는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어쩐지 목차만 보아도 그의 일목요연함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무겁고 크다. 모든 그림은 칼라인쇄되어 있고, 그래서 감상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예술감각이 무딘 나로서는 그림, 조각, 사진, 공예, 건물등등을 그의 쉽지 않은 풀이일지언정,

설명해 주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이 책 속에 도자기가 하나 나오는데 조선백자여서 의아했다. 도자기라면 중국도 엄청날텐데

하필이면 조선의 백자일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그는 2015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예술감독 이었더라. 아무렴, 그렇지!

어쩌면 이렇게 다방면으로 관심과 재능이 있을까 싶었더니, 또 역시 그의 부친은 은행가이면서

예술품 수집가였더라는. 어릴 때부터 보아온 것들이었을테니 그 안목이 가히 짐작된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미술관이 그리 가고 싶어져서 어제는 스틸아트 전시장을 다녀왔다.

docent라는 목걸이를 걸고 있던 안내원의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상당히 지루한 곳이었지

싶다. 나의 안목은 여전히 그대로더라는...ㅎㅎ

 

 

 

 

 

 

 

*한편으로 인생이 어떤 빛깔을 더 많이 띠어야 하는지 깨달아 즐거워지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자신의 삶은 대개 그렇지 않다는 절절한 느낌에 가슴이 아파온다. 아마 우리는 이

세계에서 사라진 그 모든 천진무구함 때문에 친절함에 아픔을 느끼는 듯 하다. 아름다움은

존재의 현실적 추함을 더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수많은 예술적 성취를 예술가의 '승화된' 슬픔이라고 보고, 결국 관객도 작품을

접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고 본다. 승화라는 말은 화학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단단한

물질이 액체 상태를 거치지 ㅇ낳고 직접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을 가리킨다.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많은 경우 슬픈 일들이 더 슬퍼지는 건 우리가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모든 장소, 모든 시대에 우리 앞에 진열되어 있진 않다.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렵게 깨닫는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수수께끼이며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타인에게

설명하거나, 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사랑받는 일에 대단히 서툴다.

 

*욕심을 더 내어 보다 유익한 배치를 생각하자면, 작품의 시공간적 기원과 무관하게, 삶의

곤경들을 다루는 작품들을 묶어 우리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바에 따라 전시할 수도 있다.

총명하고 솔직한 설명문이 도와준다면 미술관 관람은 우리가 가장 집중해야 하지만 시야에서

쉽게 놓치는 것들을 우리의 마음 앞에 붙잡아 둘 것이다.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사랑했던 것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곳이다. 작지만 중대한 차이다.

 

*진정 이상적인 미술관이라면 훌륭하고 중요한 것들을 매우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널리

보급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높은 벽 뒤에 보물을 쌓는

일에 열정을 쏟는 대신, 예술작품의 가치를 이 세계에 보다 널리 전파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진정한 예술 애호가라면 미술관의 상대적 중요성을 낮추는 데 사명을 두어야 한다. 현재

그곳에 수집된 지혜와 통찰은 애지중지 보호하고 미신처럼 숭배할 것이 아니라, 관대하게

아낌없이 세상에 퍼뜨러야 하기 때문이다.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 이 이야기의 주제는 회복력이다. 불운하고도 아주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진 않는다. 문제에 맞는 해결책은 어딘가에 있고

예상치 못한 일은 적응하면 된다. 어려움은 기회로 바뀐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피의 부모로

나약해지거나, 쉽게 흥분하거나 격노하지 않는 그들만의 삶의 중요한 방식은 믿음직하다.

 

*et in arcadia ego (에트 인 아르카디아 에고) - 나, 죽음은 여기, 삶의 한가운데에 있노라.

 

*예술의 혜택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예술을 언제 밀쳐두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정 시점이

되면 우리는 미술관이나 공원 안의 조각품을 떠나 예술의 진정한 목적인 삶의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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