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생 6년 동안 방학이면 경남 합천군 묘산면 산제리, 할머니 댁에서 꼬박 지냈다.

지금 나의 정서의 대부분은 그 때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이루어진 것들이다.

 

할머니의 야채 소쿠리에서 풍겨나오던 풋풋한 풀 냄새, 여전히 기억한다.

비오는 날, 흙마당에서 튕겨지던 흙내음,

저녁무렵이면 피어오르던 굴뚝의 연기냄새,

깜깜하던 밤 마을,

창호지 문에 흔들리던 달 그림자,

부드러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던 나뭇가지  소리,

일렁이던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

담장 위의 채송화,

하얀 감꽃,

............

............

모든 것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풍경은 물론이려니와 그 냄새, 그 소리,

그 순간의 느낌까지 모두.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또 그리고 산제리 입구의 맑은 도랑과 마을 아래 청량하던 시냇물~

 

이 책만큼 강물을 아름답고 청량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책만큼 손녀의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따뜻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었으니, 번역이 정말 훌륭했지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그 시골이 떠올랐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 났으며,

마을 앞을 흐르던 그 맑은, 청량하던 시냇물이 떠올랐다.

 

나는 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돌봐드린 적이 없다.

모든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방학이 끝나서 대구로 돌아갈 때,

항상 할머니는 묘산면까지 내려와서 대구행 버스에 나를 태우시고는

그 버스가 떠날 때까지 창밖에서 나를 보고 계셨다. 서운함에 매번 목이 메이시곤 하셨고,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무척이나 가엽게 여겨졌고,

그래서 빨리 떠나지 않는 버스를 원망하기도 하고,

매번, 그만 돌아가시지 않고 그렇게 끝까지 지켜보고 계시는 할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이 때의 영향으로 인해 누군가와 헤어질 때 지금도 나는 서둘러 뒤돌아선다.

그런 할머니임에도 불구하고 편찮으실 때, 이 책의 제스처럼 애정어린 마음으로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

나의 할머니께 보답해 드리지 못한 애정을 나의 엄마, 아버지께는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더불어 나의 아이들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러한 애정을 나눌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에서 본 물의 정령 "쿠", 그 쿠가 맑고 청량한 강물에서 유유히

수영 하던 모습이 내내 겹쳐졌다. 리버 보이가 할아버지의 영혼인 것처럼 이 글에서는

느껴지지만 나는 내내 물의 정령 쿠를 연상했다.

 

 

 

 

 

 

 

 

 

 

*할아버지는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읽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사랑

하기도 쉬운 사람이었다.

 

*제스야, 난 그 친구를 좋아할 만큼 좋아하고 있단다.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것을 만나든 간에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알고 있니?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아빠 역시 슬퍼할 수 있을 만큼 슬퍼한 후에는 다시 마음을 추스를 것이다. 울어야 할

순간에 울음을 참으면 병이 난다.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린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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