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_비움은 자유다
성철 스님이 유명한 사람이 된 이유는 말과 삶이 완전히 일치했던 수행자라 한다. 한국 불교에서 이론이나 명성보다 수행 그 자체로 존경을 받은 인물은 많지 않은데, 해당이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생을 구하는 일에는 소홀한 점이 대도 대고 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만나러 왔을 때 삼천 배를 해야 만나 준다고 하여 씁쓸하게 돌아 갔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불편함이 생긴다. 불교가 말하는 자비는 중생의 수준에 맞게 다가가는 것인데, 과연 그 방식이 상대의 처지를 고려한 자비였느냐는 의문이다. 수행자의 기준에서는 평등이었을지 모르지만, 대중의 시선에서는 지나치게 단호하고 배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성철 스님의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보다는 거리감을 남겨 주었으며 무엇이 중생을 위하는 일인지 궁금하다.
권위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를 만나려면 삼천 배는 하고 와야지, 그럼 불전에 가서 같이 삼천 배를 하자고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해인사 백련암에서 장좌불와 수행을 하여 세간에 관심을 모았다. 사람을 잠을 자지 않고는 살 수 없기에 앉아서 쪽 잠을 잤다고 볼 수 있으며 지도자가 아니라 수행자로 살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라고 했는데, 빌려온 책을 반납을 하지 않는 것 이 또한 욕심이 아닌가 질문에 소유의 대상이 아니고 수행의 도구였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석연찮다. 사회 정서에서 꼭 필요한 책은 구입을 하던지 아님 양해를 구하고 제가 오랫동안 사용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의 보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성철 스님이 모순이 없는 성인이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평가 기준으로 보면 불편하고 거친 구석이 많은 수행자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대중에게 설명하거나 오해를 풀 의지가 거의 없었고, 그 결과 그의 행적은 신화처럼 전해지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법정 스님에 대한 일화는 대체로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고 삶 자체가 말보다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잘 알려진 일화를 통해 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법정 스님을 떠올리는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역시 무소유와 관련된 것이다. 법정 스님은 자신이 쓴 책 무소유가 큰 인기를 얻자 그 인세가 쌓이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그 돈을 개인의 소유로 두지 않고 절을 짓거나 필요한 곳에 모두 내놓았다.

심지어 말 년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책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글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저자의 이름이나 명성은 필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일화는 일상의 소박함에 관한 것이다. 스님은 늘 같은 옷을 오래 입었고 물건이 낡아도 쉽게 버리지 않았다. 누군가 새 옷이나 좋은 물건을 가져오면 고맙게 받되 꼭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건네주곤 했다.
그에게 소유란 가지느냐 마느냐 문제가 아니라, 붙잡느냐 흘려보내느냐 문제였다. 그래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묶어두지 말라는 뜻에 가까웠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법정 스님의 성품은 잘 드러난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길게 설교하지 않았고 질문에 짧게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이는 그 침묵이 차갑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님은 상대의 인생을 대신 정리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답을 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도록 여백을 남기는 쪽을 택했다.
말 년에 모든 흔적을 정리한 일화도 유명하다. 법정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자신의 책 절판을 요청했고, 유품 역시 최소한으로 남기길 바랐다. 장례 또한 조용하게 치르길 원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남긴 말과 이름이 또 다른 집착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법정 스님의 일화가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극적인 수행이나 강한 메시지 때문이 아니다. 그분의 삶이 말한 것과 거의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행동들이 쌓여 하나의 태도가 되었고 그 태도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쥐고 있고,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무소유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아왔고, 비움의 가치 또한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무소유 비움은 자유다는 익숙한 개념을 다시 꺼내 드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왜 우리가 여전히 비우지 못하는지, 그리고 비움이 왜 말처럼 쉽지 않은지 정면으로 다룬다. 무소유를 도덕적 선언이나 고상한 철학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인이 얼마나 많은 것에 붙들려 살아가는지 구체적인 장면과 언어로 보여준다. 물건, 관계, 성과, 비교, 인정 욕구까지, 우리는 이미 소유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비움의 결과보다 과정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비운 뒤 곧바로 행복해졌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비움의 과정은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소유를 줄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지탱해 주던 익숙한 구조를 잃게 되고 그 빈자리를 마주해야 한다. 무소유는 금욕이나 절제가 아니라, 자신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확장된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구분하는 힘이 곧 자유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비움은 멈춤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며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여백이라고 말한다. 과도한 일정과 목표를 내려놓았을 때 삶의 밀도가 오히려 높아졌다는 경험담은 특히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는 바쁠수록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생각할 시간조차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속도를 줄이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행위임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당장 모든 것을 비워야겠다는 결심이 들기보다는 하나쯤 내려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무소유_비움은 자유다 극단적인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삶에서 조금씩 여백을 만들어보라고 권하며 자유는 더 많은 선택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선택지를 줄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소유를 줄이는 것은 삶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삶을 다시 채울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저자의 시선은 오래 남는다. 무언가를 더 얻고자 지친 사람에게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주는 동반자가 된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