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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김영연 지음 / 문학세계사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나이가 들어 가장 두려운 것이 치매다. 암도 무서운 병이지만 최근 의술이 발달되어 초기에 발견을 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치매는 아직 답이 없으며 뇌가 노화 되어 머리에 넣어 두었던 생각이 사라지는 무서운 병이다. 초기에 출입문의 비번이 생각나지 않고, 좀 더 진행이 되면 집을 찾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더 심해지면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갓 태어난 어린애처럼 모든 것을 보호자가 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쯤 되면 삶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책 속에 와 닿는 글이 있어 옮겨본다.
"사람은 삶이 고달프거나 현재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 자신이 가장 온전하게 사랑 받고 보호 받았던 시절로 돌아가려 한다. 엄마에게 그곳은 조건 없는 사랑이 존재하던 공간이자 풍파에 깎이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삶이 어렵고 힘이 들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 같다. (Page 44)
처음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를 펼치면, 제목이 이미 한 편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치매와 한옥, 그리고 딸과 엄마라는 조합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설다. 거창한 사건으로 독자를 끌어당기지 않는 대신 아주 느린 속도로 깊숙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누구의 집 안에 조용히 초대 받은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엄마의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딸에게도 나의 뜻을 전해 놓아야 한다고 하며 생명은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일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가장 깨끗하다고 하며 정신이 온전할 때 4가지를 꼭 전해야 한다. 미안합니다, 용서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화려한 서사가 아니라 생활의 결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방식이어서 담담하지만 읽다 보면 감정의 밀도가 점점 짙어지고 책의 중심에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그 곁을 지키는 딸이 있다. 저자는 서울 혜화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인 유진하우스에서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사계절을 기록한다. 치매를 닥친 재난으로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가랑비가 스며들 듯 서서히 삶을 바꾸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돌봄의 현실은 고단하지만, 문장은 지나치게 비장해지지 않는다. 덕분에 연민보다 공감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고 치매를 둘러싼 공포나 절망을 과장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흔들리는 관계의 결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많은 간병 에세이가 병실이나 집 안의 폐쇄된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비해 이 책의 배경은 여행자들이 드나드는 열린 한옥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 속에서 치매 어머니와 딸의 하루가 흘러간다. 낯선 이들이 오가는 풍경, 계절의 변화, 한옥 특유의 숨결이 이야기 곳곳에 스며들며 책의 정서를 환기한다. 돌봄이 고립이 아니라 관계의 확장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실제로 작품은 혜화동 골목 공동체와 열린 공간이 돌봄의 무게를 나누는 과정을 따뜻하다.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기보다, 사소한 장면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엄마의 말 한마디, 걸음의 속도, 반복되는 일상 동작 같은 순간들이 잔잔하게 포착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치매를 거대한 비극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달라지는 과정으로 보게 한다. 읽다 보면 어느새 돌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돌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켜내는 일이면서 동시에 무엇인가 조금씩 내려놓는 과정이다. 효심이나 헌신을 미화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과 동시에 찾아오는 피로, 죄책감, 순간적인 원망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많은 간병 에세이에서 느끼는 거리감은 지나친 숭고함에서 비롯되곤 하는데, 이 책은 그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가고 있다.
엄마를 향한 애틋함과 돌봄의 버거움이 한 문장 안에서 공존하는 순간들, 바로 그 지점에서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방식이다. 치매를 다룬 이야기에서 시간은 흔히 잃어버림의 방향으로만 흐르기 쉽다. 그러나 시간은 단순한 소실의 서사가 아니며 기억이 희미해지는 만큼 새로운 관계의 방식이 만들어진다. 엄마와 딸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지만, 대신 더 느리고 더 단순한 소통의 길을 찾아간다.
한 모녀가 혜화동 한옥에서 보낸 사계절을 통해 종합적으로 보면 이 책은 치매 간병에 대해 예상보다 따뜻하고 자극적인 눈물이 나 극적인 사건을 찾는 독자에게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치매를 다룬 많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드물게도 삶의 존엄과 일상의 온기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읽고 나면 누구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고 싶어진다. 이런 변화야말로 좋은 에세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깊은 흔적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