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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라 - 영혼의 철학자 몽테뉴 인생 수업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고봉만 옮김 / 아를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죽음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말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거나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책 죽음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라는 이 두 가지 태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죽음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각을 제안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무겁거나 음울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문장들에 놀라게 한다. 마치 오래된 걱정을 친구와 나누다가 어느 순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경험과도 비슷하다.
책의 첫 장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학습해 왔는지 다룬다. 어릴 적부터 부모나 사회는 죽음을 두려움의 그림자로 가르쳤다.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른들, 금기시되는 죽음의 언어 혹은 텔레비전 속 사건 사고가 무심코 각인 시킨 두려움 하지만 이런 사회적 학습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을 모른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무조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뼈 있는 지적이 담겨 있다. 불확실성은 불행이 아니라 가능성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은 죽음을 단순히 공포가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다시 데려온다.

책의 중반부 죽음과 맞닿은 여러 가지 삶의 이야기가 나오며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을 서술하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태도가 의외로 평온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남겨둔 일에 미련을 가지기보다 함께 했던 기억과 작은 기쁨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죽음 앞에서 사람이 진짜로 붙드는 것은 결국 사랑과 기억 뿐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안겨주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책은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알려준다.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가 곧 삶을 바라보는 태도라는 주제로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결코 우울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를 충만하게 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오늘 하루의 대화가 마지막 대화일 수도 있다는 가정은 우리의 말투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하고 관계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죽음이 알려주는 삶의 지혜를 배우자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누구의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순간, 죽음은 내 일이 아니라고 마음속에서 밀어내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회피의 태도가 사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순간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고 오히려 두려움이 줄어든다. 내가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담담히 인정할 수 있다면 지금의 선택과 행동이 훨씬 단단해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책의 후반부는 철학적 사유와 더불어 종교적·문화적 맥락까지 아우른다. 불교에서 무상, 기독교에서 구원, 동양 전통에서 말하는 조상의 의미 등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며 죽음을 해석한다. 덕분에 한 가지 시각에 갇히지 않고 보다 넓은 프레임으로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죽음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이 결국 모두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길이라는 결론이었다. 문화권은 달라도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지혜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다리를 보여주는 안내서에 가깝다. 삶만 강조하는 책은 현실을 반쪽 짜리로 만들고 죽음만 강조하는 책은 절망을 불러온다. 그러나 죽음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두 가지를 연결해 하나의 원으로 만들어낸다. 죽음을 이해하면 삶이 더 깊어지고 삶을 충실히 살면 죽음도 담담해진다. 이렇게 선순환의 고리를 제시하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충만함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마음 상태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경험은 흔치 않다. 어떤 책은 지식을 주고 또 다른 책은 위로를 주지만 이 책은 지식과 위로를 동시에 건네면서도 실제로 삶의 태도를 바꾸게 만든다. 하루를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새삼 단단해지고 있다.
삶이 왜 허무하게 느껴지는지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가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제목은 그래서 역설적이면서도 진실하다. 죽음을 모른다는 것은 모르는 그대로 두라는 뜻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것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 시간을 현재의 삶에 쓰라는 권유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죽음을 다루지만 삶의 책이다. 무겁지 않고 오히려 가벼워지는 이유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힘이 있고 따뜻함도 같이 준다.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움의 그림자로 두지 않고 삶과 나란히 걷는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시각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아 일상의 순간마다 삶을 조금 더 깊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