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작다고 해서 행하지 않고, 악이 작다고 해서 행해서는 안된다.
- 촉나라의 수장 유비
삼국지는 언제 읽어도 새롭다. 수백 명의 인물과 얽히고설킨 전쟁의 기록, 배신과 의리, 야망과 몰락의 드라마가 고스란히 담긴 인간사 앨범이다. 하지만 김태현의 삼국지 인생 공부는 그 낡은 이야기의 껍질을 벗기고 그 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 공부를 이끌어 낸다. 단순히 유비나 조조, 제갈량의 전략을 다시 풀어내는 책이 아니라, 그들의 결정, 관계, 한계를 통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김태현은 삼국지 덕후로서 열정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삼국지의 영웅들을 경영학자처럼 분석하고, 심리학자처럼 해부하며 철학자처럼 해석한다. 삼국지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욕망이 만들어 낸 복합적인 서사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삼국의 영웅들이 먼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의 직장 상사, 동료, 혹은 나 자신으로 다가온다. 유비의 온화함은 리더십의 덕목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지나친 감정 의존과 결정력 부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조조의 냉철함은 효율적인 판단력의 모델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적 신뢰를 파괴하는 냉혹함의 극단이기도 하다. 김태현은 이 양면성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삼국지의 위대한 인물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바로 그 결함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책의 인상적인 부분은 유비의 눈물에 대한 해석이다. 많은 이들이 유비를 따뜻한 리더의 전형으로 기억하지만 김태현은 그 눈물 속에 무력함과 외로움 책임의 무게가 뒤섞여 있다고 말한다. 울음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 감당해야 할 리더의 고통을 정화하는 행위였다. 이 부분에서 리더십을 권력의 크기가 아닌 책임의 깊이로 정의한다. 그래서 그는 진짜 리더는 결정을 내린 뒤에도 불면의 밤을 견디는 사람이라고 적는다.
반면 조조에 대한 해석은 통쾌하다. 흔히 악인으로 그려지던 조조를 김태현은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냉정한 전략가로 본다. 그는 조조가 단지 야심가가 아니라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냉철함의 화신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그 냉철함은 인간적인 온기를 갉아먹었고 결국 그를 고독한 승리자로 만들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성과와 관계의 균형이라는 현대적 화두를 끌어온다. 조조는 유능했지만 외로웠고 유비는 따뜻했지만 약했다. 그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과제라는 것이다.
제갈량에 대한 해석도 깊다. 천재 전략가로 추앙 받지만 김태현은 그의 실패에도 주목한다. 출사표는 충성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소모 시키는 완벽주의자 고백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다 스스로를 불태웠고 그 결과 한 시대의 리더십은 후계 없이 끝났다. 이 대목에서 모든 완벽 주의는 결국 자신을 태운다는 문장으로 제갈량의 비극을 정리한다.

삼국지 인생 공부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영웅들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김태현은 그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를 냉철히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금 사회 속에서 부딪히는 인간관계, 리더십, 조직의 문제를 삼국지의 거울로 비춘다. 그리하여 이 책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인간학이 된다.
저자는 곳곳에서 삼국지를 삶의 교과서로 삼은 자신만의 인생 철학을 드러낸다. 그는 말한다. 삼국지는 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기록이다. 싸움의 방식보다 중요한 건, 싸움을 멈출 때를 아는 일이다. 이 문장은 책의 핵심을 압축한다. 끊임없이 경쟁하라고 더 이기라고 외치는 시대 속에서 김태현은 삼국지의 영웅들을 통해 멈춤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승자의 자세라고 그는 말한다.
삼국지 속 수많은 인물들이 떠오르지만 그들이 각자의 욕망과 한계를 품은 인간으로 기억된다. 김태현은 삼국지를 통해 세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통해 삼국지를 다시 읽게 만든다. 그 결과 독자는 책을 덮으며 이렇게 깨닫게 된다. 세상을 읽는 눈은 결국 사람을 읽는 눈이다.
삼국지 인생 공부는 삼국지를 다시 배우려는 사람보다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전쟁보다 인간이 더 치열했던 시대의 기록을 김태현은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말한다. 이기는 법보다 중요한 건 함께 살아남는 법이다. 이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