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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진의 시대유감 - 나는 고발한다, 당신의 뻔한 생각을
정영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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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진의 시대유감
책의 제목처럼 시대 유감 내용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는다. 가수 나훈아처럼 왼쪽 니는 뭐 했는데 와 같이 전기가 흘러 통하는 느낌을 받는다. 내용 중에 AI 판사가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항목으로 지정을 하고 싶다. 바둑 선수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AI 판사도 이와 못지않게 일을 잘 할 것으로 생각이 들며 미래에 꼭 필요한 항목이다.
AI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여 판결을 하지 않기에 투명함이 가장 으뜸으로 힘없는 서민이 가장 좋아할 것으로 판단되며 사회 질서가 올바르게 세워질 것으로 생각이 된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어필할 때 간단 명료하면 삶에 대한 방향이 뚜렷하고 내용이 길어지면 포장이 되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많은 경험치가 묻어 나는 내용이다.
이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어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은 적어 본다. 꽤 잘나가는 CEO나 기업의 회장 집은 어리어리 하고 정원에는 수영장이 구비 되어 있다. 늘 바쁜 업무에 집에 잘 갖춰진 인프라를 사용하지 못하고 퇴근을 하면 녹초가 되어 잠자기 바쁘다. 이렇게 꾸며진 집은 누가 제대로 누리면서 살까? 바로 집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가정부다. 가정부는 청소와 빨래를 다 하고 난 후 정원의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의 시간을 갖는다면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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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들은 줄어든다. 일찍 집에 가서 쉬고 싶은 것도 있지만,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즉 에너지를 뺏는 사람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기에 한 사람 두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이 사라진다. 이건 당연한 현상이며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금전 적인 문제에 씀씀이 차이가 나면 돈이 없는 사람이 눈치를 보고 멀리하려고 연락이 와도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게 자연의 이치이며 생의 섭리다.
경제적 자유의 한계는 어디 쯤인가? 내가 뭔 가를 소유하고 싶거나 무엇을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 할 수 없다면 이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 자유의 한계는 사람마다 다르며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는 정도의 여력이 되면 경제적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번 뿐인 인생 폼생폼사 즉 욜로족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의 대열에 꼭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부자가 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투 잡을 뛰는 것을 기본이며 잠을 줄이고 남들처럼 여행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왜 똑같이 해서는 부자가 되지 못하기에 돈을 찾아 나서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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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미래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 변화가 거의 없어 매너리즘에 해당이 되는 경우가 많고 헤쳐 나와야 하는데, 동기부여가 없으니 에너지가 쏟아 나지 않는다. 책의 저자는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한번 깊이 있게 고민을 해 보라고 강조를 한다.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고 약간의 음식을 준비해서 자기에게 묻고 또 물어보라고 한다. 그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하니 한번 시도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상이 털리는 것이 두려워 장관직을 사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관을 하고 싶어도 시켜주지 않아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게 이 시대의 현실이며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알려준다. 거북이 등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제거해 주는 것이 현실에 맞는 작업인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거북이와 같이 따개비도 지구의 바다에 살아갈 존재가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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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사회 즉 악어와 악어 새의 위치는 아닌 듯하다. 따개비는 거북이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 않으니 떼내어야 한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하루를 시작하면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많이 나온다. 바쁜 출근 시간 교차로를 지나는 과정에 끼어들어 급 브레이크를 밟게 만드는 차량, 155mm 포탄으로 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운전을 더럽게 배운 사람 이 사회에 둘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인상이 더러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불편함을 느낀다. 동물의 왕국에서 임팔라가 사자를 만나 목덜미가 물렸다고 해서 임팔라가 화를 낼 수 있을까? 이처럼 이사회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잘못을 한 사람을 끝까지 따라가서 응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에 9명은 그냥 보내준다. 왜 그런 선택을 할까? 무시를 하고 넘어간다. 저런 지저분한 사람과 상대하며 대화를 하기 싫은 것이다.
모처럼 바른 길을 걷지 않고 역행을 하는 사람 내용을 잘 꼬집어 줘 청량음료 마시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런 내용의 글은 누가 읽어 봐야 하는지 답이 나와 있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