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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다산 1~2 세트 - 전2권 ㅣ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평점 :
다산 정약용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책을 접하니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과 레벨을 같이 할 정도로 훌륭한 분으로 생각되며 종이돈 지폐에는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신사임당, 이순신 장군 만 있으니 다음에 만드는 지폐에는 넣어야 할 것 같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사람이 깡촌 바닷가에서 귀양살이를 하니 많이 힘들고 버려진 사람이 되어 고민과 갈등이 승화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나오지 않았을까.
전라도 강진에서 인심 좋은 주모를 만나 방을 하나 얻게 되고 고을 아이들 훈장 선생으로 후배 양성에 기여를 하고 아들 2명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 책을 많이 읽어라고 독려 그리고 시골에 가지 말고 한양 수도 근처에 살아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당부를 하였다. 이는 지금 서울에 사람이 모이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저서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많은 책을 집필하였고 벼슬로는 암행어사를 시작으로 병조 참지, 형조 참의 등을 지냈으며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의 생활이 이어진다.
다산은 어린 시절에는 주자학을 공부하였고 성년이 된 이후 천주학을 공부하게 된다. 천주학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이유가 있어 멀리하게 되고 이 시대에 이름을 날린 사람을 살펴보면 백두산을 7번 올라간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박제가 유형원 등이 있다.
집필한 목민심서의 서문에 보면 "일모일발무비병이, 급금불 걔, 필만국" 이 있는데 "나라가 털끝 하나 병들지 않는 것이 없다. 지금 당장 고치고 바꾸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 라는 내용으로 이것을 임금이 봤으면 바로 사약을 내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선의 관료들은 다산의 의미 있는 경고를 듣지 않고 있다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는 꼴이 되었다.
18년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18년을 살고 7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벼슬을 하며 정조에게 총애를 받으며 잘 지내다 순조가 제위에 오르자 노론 세력이 천주교를 탄압하게 되고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포항 장기로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신유사옥 즉 정조가 죽고 천주교 탄압 사건으로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이 일어났으며 인간 평등, 내세사상, 제사를 무시 한 것에 대한 조정의 탄압을 받게 된다. 양반을 없애야 하는 이유도 있어 노론의 파들은 이때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조의 총애를 받던 사람들 모두 쳐 낸다.
지금 양반의 계급은 없지만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로 최저 임금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 명품이나 술값으로 연봉의 금액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천민과 노비라고 하지는 않지만 노비처럼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있기에 정치를 올바르게 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남인과 노론의 세력을 유효 적절하게 관직에 두려고 하였으며 지식을 갖추었는지 성품은 괜찮은지 그리고 덕과 청렴을 기준으로 삼았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 망나니 역할을 하여 권력을 누린 사람도 있지만 신하의 눈치 보느라 명령을 제대로 못한 왕도 수두룩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책들이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산의 책도 한강의 부친께서 쓴 장편 소설로 찾는 사람이 많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계급의 사회에서 과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조선시대는 귀양을 가서 2~3년 만에 풀려나지 않았는 것 같다. 18년이나 유배 생활을 했으니, 자기를 위해 여러 명이 목숨을 내놓았지만 모르쇠로 나오니 권력의 힘은 인정을 해 줘야 한다.
다산 정약용을 보면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였을 텐데 왜 정조의 신임에 타 조직의 질투를 몰랐을까? 어느 정도 화친을 하여 눈에 멀어지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했었다. 정치를 하려면 말이다. 정권이 바뀌면 피바람 몰아치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이런 처사를 보면 모두 권력이 영원히 갈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