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울 속에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78
헬런 매클로이 지음, 강성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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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와 공포 - 1
- [어두운 거울 속에], 헬런 매클로이 / [지푸라기 여자] 외, 까뜨린느 아를레이, 1949~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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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을 더 빌려보기 위해 이번에 떠오른 키워드는 '여성' 작가였다.

물론, 중학교 시절 내게 '장편'을 읽을 수 있는 힘을 준 게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였다지만, 
내게 그녀는 그냥 '추리소설' 작가였다. 
그녀 작품의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와 함께 유명한 등장인물인 미스(Miss) 제인 마플(마플 양)이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 속에서도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를 '여성' 작가로서 따로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동서미스터리북스> 책장 앞을 여전히 서성이던 중 내가 아직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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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해 두겠는데요, 기젤라 폰 호헤넴즈 선생님, 만일 당신이 그 정신과 의사 친구(베이질 윌링)에게 포스티나 클레일 선생에 대한 말을 써보냈다면 틀림없이 후회할 거예요."
- [어두운 거울 속에], <제2장>, 헬런 매클로이,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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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스터리 또는 추리소설 자체의 신비롭고 비밀스러우며 고요한 상황설정을 좋아한다. 
사건의 전개와 그 실마리를 푸는 과정은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겠지만, 그 사건의 발생과 상황은 꼭 고요한 신비주의적 설정으로 독자를 이끌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어본 미국 여성 '미스터리' 작가 헬런 매클로이(Helen McCloy:1904~1994)의 대표작 [어두운 거울 속에(Through a Glass, Darkly)](1949)의 분위기 또한 상당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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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훗 교장이 도전적으로 베이질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당신이 짐작하시지도 못했던 일이지요?'
'정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알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베이질은 사려깊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괴테지요. 괴테의 회상록 제1권. 금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회색 슈트. 에밀리 사제(트)와 토드 래플레이크 이야기. 독일어로는 '도플갱어(살아있는 영혼)', 그리스어로는 '에이돌론', 고대 이집트어의 '카', 영국 민화에 나오는 '페치'. 그러니까 당신이 방에 들어왔을 때, 또는 거리나 시골길을 걷고 있을 때 당신 앞쪽에 버젓이 오체를 갖춘 제3차원의 색채가 명확한 사람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움직이기도 하고, 광학의 법칙에 따라 명암과 그림자가 만들어지기도 하지요.'"
- [어두운 거울 속에], <제6장>, 헬런 매클로이,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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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와 마술적 요소의 미스터리 소설 대가라고 하면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가 유명하기는 하나, 최근 나는 그의 작품들에서 흥미롭고 재미지기는 해도 다소 억지스런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주 조금 실망하기도 했더랬다.

헬런 매클로이 또한 그런 신비주의적 요소 중 하나인 '도플갱어'를 주제로 하여 하나의 '미스터리' 소설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독후감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그 진행과정이 내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어느 기숙여학교에서 벌어진 '도플갱어' 사건은 그 자체로도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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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십대 초반부터 괴테가 우연히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여러 번 봤다고 썼다는 그의 '회상록',
19세기 본인과 똑같은 분신이 자주, 그리고 동시에 등장하면서 학교를 열여덟 번이나 옮겨 다니다가 자취를 감췄다던 프랑스어 교사 에밀리 사제(트) 이야기(1845년, 리보니아의 에밀리 사제 전설, [어두운 거울 속에], <제11장>).
그 이후 독일어로 '동시에 걷는 사람'을 뜻한다는 '도플갱어'는 고대 그리스의 '에이돌론'(Idol의어원)이나 이집트의 '카'처럼 육신과 별도로 동시에 공존하는 '생령' 또는 '영혼'의 의미와 같다는데, 우연히 나타난 '도플갱어'를 만나게 될 경우 불행한 사고를 당하거나 죽게 된다는 불길한 징조로 알려져 왔다.
물론, 괴테는 본인을 꼭 닮은 도플갱어'와 몇 번 마주쳤음에도 불행하게 죽지는 않았다지만.

헬런 매클로이의 대표작 [어두운 거울 속에](1949)의 줄거리를 보면, 이와 같은 '도플갱어' 현상으로 기숙여학교에서 두 번째 쫓겨나는 미술교사 포스티나 클레일 선생이 자신과는 악연과 같은 관계로 엮인 동료 여교사 앨리스 에이티슨의 살인사건에 먼 거리를 두고 나타난 '도플갱어' 현상으로 인해 이상하게 연루되고, 종국에는 모종의 계략에 의해 '어두운 거울 속에(Through a Glass, Darkly)' 비치도록 설계된 자신의 '도플갱어' 생령 현상의 환상을 보고는 심장마비로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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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여학교 동료교사인 독일어 선생 기젤라 폰 호헤넴즈의 연인인 정신과 의사 베이질 윌링은 기젤라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고 일련의 '도플갱어' 사건을 파헤치던 중, 상속으로 얽힌 '도플갱어' 조작 사건을 들춰내지만 용의자는 마지막까지 혐의를 부인한다. 
즉, 정신과 의사 탐정 베이질 윌링은 독자에게 사건의 전모를 '범인'에게 설명하면서 풀어내는 한편, '범인'은 그러한 상황증거로만은 본인을 법정에서 기소당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 항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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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마지막까지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도록 미스터리 가득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미국인 베이질 윌링)은 그런(초자연적 도플갱어 생령) 현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승복할 수 없는 모양이군요! 나(기젤라 폰 호헤넴즈)는 유럽에서 자랐기 때문에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우리의 고대문명은 모든 신앙에 회의적이에요. 미국사람이 거의 종교에 가깝도록 숭배하는 현대과학에 대해서까지도. 우리의 문명은 수많은 지적인 혁명을 거쳐 이루어졌기 때문이지요. 어떤 세대의 '과학'이 다음 세대에는 '신화'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나 보아왔어요. 전기의 역사는 이제 겨우 2백 년 밖에 안 돼요. 겨우 10년 전만 해도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핵분열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었지요. 오래된 격언 가운데 가장 슬픈 구절이 있잖아요? '이것도 또한 지나가리(Hoc quoque transibit).'
과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바로 가까이에 있어요. 책 속에뿐만 아니라 풍습이며 가정에도, 낡은 성이나 성채는 역사책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대부분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곳에 있어요..."
- [어두운 거울 속에], <제12장>, 헬런 매클로이,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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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플갱어'와 같은 '초자연적' 생령 현상은 현실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정상적인 소설의 결말일 수는 있겠지만, 유럽의 오랜 지적 전통에 따르면 과학과 합리주의로 점철된 이 모든 문명은 어쩌면 인간 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회의주의로 회귀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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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가 범인의 계략이라는 주인공인 미국인 베이질 윌링 박사의 '합리주의'와, 이에 반해 그 일련의 살인사건이 실제 '생령 현상' 때문일 수 있다는 용의자 레이먼드 배이닝의 '초자연주의'가 마치 이야기 속 '도플갱어'처럼 미스터리하게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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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거울 속에](1949)는 여성 작가 헬런 매클로이의 묘사와 설정이 끝까지 신비롭게 전개되는 소설이다.


한편, 매클로이의 소설을 마을 도서관에 반납하고는 그냥 돌아서지 못하고 계획에도 없게 다시 대출한 책도 또 다른 '여성'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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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프랑스 작가 까뜨린느 아를레이(Catherine Arley : 1935~?)의 [지푸라기 여자](1957)와 [눈에는 눈](1960)이다.

'꼭두각시'라는 의미인 [지푸라기 여자(The Woman of Straw / La Femme de Paille)]는 거대 부호와 결혼하여 인생역전을 꿈꾸는, 제2차 대전 전후 독일의 폐허 함부르크의 가난한 미혼여성 히르데갈데 마에나의 이야기인데, 종국에는 비극의 원인이 거부인 칼 리치몬드의 충실한 비서 안톤 콜프의 계략으로 밝혀지는 이야기다. 
소설 전반부 내내 '팜므 파탈' 연기를 훌륭하게 수행하며 목적을 달성한 듯한 여주인공이 결국 안톤 콜프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반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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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푸라기 여자' 히르데갈데는 악인에게 복수하는 또 한번의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고는,
종국에 상속을 위해 부자 남편을 독살한 누명을 쓰게 되고 그 누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체념한 채 스스로 목를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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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반에 비서 안톤 콜프와 짜고 늙은 부자를 꼬셔내는 다분히 연극적 상황부터 결혼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대한 소설 전반부의 묘사가 상당히 섬세하고 흥미진진하다. 
마치 연속극처럼 다음 상황이 궁금하여 펼친 책을 덮지 못하게 한다.

베일에 싸여 신상을 별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프랑스 '여성' 소설가 까뜨린느 아를레이의 소설은 '추리' 또는 '미스터리' 보다는 일종의 '서스펜스'에 가깝기도 하고, 여주인공의 세속적 욕망을 소재로 한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데 얼핏 읽다보면 현대극 막장 드라마의 본류 같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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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 까뜨린느 아를레이가 발표한 또 다른 소설 [눈에는 눈(Le Talion)]은 모세 율법에서 '탈리오'라 불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목숨에는 목숨을'이라는 원시적 법률 정신이 모티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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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 아가트는 [지푸라기 여자]의 히르데갈데 마에나와는 비할 수도 없이 '악녀'다. 아니, 정확하게는 '악마'라기 보다는 타고난 이기적 탐욕주의자인 여자의 본성이 '악인'에 가깝다는 소설적 메시지가 깔려 있다.
이런 경우 생래적 '악인'인 본인은 자신이 악당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타인이나 환경의 탓으로 돌리면서 애써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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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이 바로,
원시적인 고대 율법 '눈에는 눈'(Le Talion)이 작동되어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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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사업가 남편 쟝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된 아가트가 살인 계획을 짜서 남편을 죽게 만들고 다른 부자 남자한테 환승결혼하는 과정은 하나의 '완전범죄'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눈에는 눈'의 율법 관념에 따라 주변 사람 모두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죽어나가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는 본격 막장 드라마의 감흥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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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뜨린느 아를레이 두 소설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풍부한 묘사를 곁들인 막장극의 내용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랜시스 아일즈와 프리먼 크로프츠, 리처드 헐로 대표되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형식을 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범인이 애초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완전범죄'를 실현하고 이에 자만에 빠지지만, 결국 스스로의 헛점을 모르다가 그로 인해 파멸한다는 '사필귀정'의 비극적 서사다.
물론 비극의 주인공 또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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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 핼런 매클로이와 까뜨린느 아를레이의 미스터리 서스펜스 소설들에서는 여타 추리소설에서보다 좀더 신비주의와 공포의 색채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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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나는,
내 추리소설 여정의 원류와도 같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여사로 다시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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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작품이자, 여주인공'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잠자는 살인(Sleeping Murder)](1976)부터 시작한다.

'여성' 추리소설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 속 '신비'와 '공포'를 새삼 상기하면서 말이다.

***

1. [어두운 거울 속에(Through a Glass, Darkly)](1949), Helen McCloy, 강성희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지푸라기 여자(La Femme de Paille)](1957) / [눈에는 눈(Le Talion)](1960), Catherine Arley, 이가림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잠자는 살인(Sleeping Murder)](1976), Agatha Christie, 김윤정 옮김, <황금가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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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여자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6
까뜨리느 아를레이 지음, 이가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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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와 공포 - 1
- [어두운 거울 속에], 헬런 매클로이 / [지푸라기 여자] 외, 까뜨린느 아를레이, 1949~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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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을 더 빌려보기 위해 이번에 떠오른 키워드는 '여성' 작가였다.

물론, 중학교 시절 내게 '장편'을 읽을 수 있는 힘을 준 게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였다지만, 
내게 그녀는 그냥 '추리소설' 작가였다. 
그녀 작품의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와 함께 유명한 등장인물인 미스(Miss) 제인 마플(마플 양)이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 속에서도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를 '여성' 작가로서 따로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동서미스터리북스> 책장 앞을 여전히 서성이던 중 내가 아직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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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해 두겠는데요, 기젤라 폰 호헤넴즈 선생님, 만일 당신이 그 정신과 의사 친구(베이질 윌링)에게 포스티나 클레일 선생에 대한 말을 써보냈다면 틀림없이 후회할 거예요."
- [어두운 거울 속에], <제2장>, 헬런 매클로이,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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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스터리 또는 추리소설 자체의 신비롭고 비밀스러우며 고요한 상황설정을 좋아한다. 
사건의 전개와 그 실마리를 푸는 과정은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겠지만, 그 사건의 발생과 상황은 꼭 고요한 신비주의적 설정으로 독자를 이끌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어본 미국 여성 '미스터리' 작가 헬런 매클로이(Helen McCloy:1904~1994)의 대표작 [어두운 거울 속에(Through a Glass, Darkly)](1949)의 분위기 또한 상당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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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훗 교장이 도전적으로 베이질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당신이 짐작하시지도 못했던 일이지요?'
'정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알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베이질은 사려깊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괴테지요. 괴테의 회상록 제1권. 금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회색 슈트. 에밀리 사제(트)와 토드 래플레이크 이야기. 독일어로는 '도플갱어(살아있는 영혼)', 그리스어로는 '에이돌론', 고대 이집트어의 '카', 영국 민화에 나오는 '페치'. 그러니까 당신이 방에 들어왔을 때, 또는 거리나 시골길을 걷고 있을 때 당신 앞쪽에 버젓이 오체를 갖춘 제3차원의 색채가 명확한 사람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움직이기도 하고, 광학의 법칙에 따라 명암과 그림자가 만들어지기도 하지요.'"
- [어두운 거울 속에], <제6장>, 헬런 매클로이,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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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와 마술적 요소의 미스터리 소설 대가라고 하면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가 유명하기는 하나, 최근 나는 그의 작품들에서 흥미롭고 재미지기는 해도 다소 억지스런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주 조금 실망하기도 했더랬다.

헬런 매클로이 또한 그런 신비주의적 요소 중 하나인 '도플갱어'를 주제로 하여 하나의 '미스터리' 소설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독후감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그 진행과정이 내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어느 기숙여학교에서 벌어진 '도플갱어' 사건은 그 자체로도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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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십대 초반부터 괴테가 우연히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여러 번 봤다고 썼다는 그의 '회상록',
19세기 본인과 똑같은 분신이 자주, 그리고 동시에 등장하면서 학교를 열여덟 번이나 옮겨 다니다가 자취를 감췄다던 프랑스어 교사 에밀리 사제(트) 이야기(1845년, 리보니아의 에밀리 사제 전설, [어두운 거울 속에], <제11장>).
그 이후 독일어로 '동시에 걷는 사람'을 뜻한다는 '도플갱어'는 고대 그리스의 '에이돌론'(Idol의어원)이나 이집트의 '카'처럼 육신과 별도로 동시에 공존하는 '생령' 또는 '영혼'의 의미와 같다는데, 우연히 나타난 '도플갱어'를 만나게 될 경우 불행한 사고를 당하거나 죽게 된다는 불길한 징조로 알려져 왔다.
물론, 괴테는 본인을 꼭 닮은 도플갱어'와 몇 번 마주쳤음에도 불행하게 죽지는 않았다지만.

헬런 매클로이의 대표작 [어두운 거울 속에](1949)의 줄거리를 보면, 이와 같은 '도플갱어' 현상으로 기숙여학교에서 두 번째 쫓겨나는 미술교사 포스티나 클레일 선생이 자신과는 악연과 같은 관계로 엮인 동료 여교사 앨리스 에이티슨의 살인사건에 먼 거리를 두고 나타난 '도플갱어' 현상으로 인해 이상하게 연루되고, 종국에는 모종의 계략에 의해 '어두운 거울 속에(Through a Glass, Darkly)' 비치도록 설계된 자신의 '도플갱어' 생령 현상의 환상을 보고는 심장마비로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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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여학교 동료교사인 독일어 선생 기젤라 폰 호헤넴즈의 연인인 정신과 의사 베이질 윌링은 기젤라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고 일련의 '도플갱어' 사건을 파헤치던 중, 상속으로 얽힌 '도플갱어' 조작 사건을 들춰내지만 용의자는 마지막까지 혐의를 부인한다. 
즉, 정신과 의사 탐정 베이질 윌링은 독자에게 사건의 전모를 '범인'에게 설명하면서 풀어내는 한편, '범인'은 그러한 상황증거로만은 본인을 법정에서 기소당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 항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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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마지막까지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도록 미스터리 가득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미국인 베이질 윌링)은 그런(초자연적 도플갱어 생령) 현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승복할 수 없는 모양이군요! 나(기젤라 폰 호헤넴즈)는 유럽에서 자랐기 때문에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우리의 고대문명은 모든 신앙에 회의적이에요. 미국사람이 거의 종교에 가깝도록 숭배하는 현대과학에 대해서까지도. 우리의 문명은 수많은 지적인 혁명을 거쳐 이루어졌기 때문이지요. 어떤 세대의 '과학'이 다음 세대에는 '신화'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나 보아왔어요. 전기의 역사는 이제 겨우 2백 년 밖에 안 돼요. 겨우 10년 전만 해도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핵분열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었지요. 오래된 격언 가운데 가장 슬픈 구절이 있잖아요? '이것도 또한 지나가리(Hoc quoque transibit).'
과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바로 가까이에 있어요. 책 속에뿐만 아니라 풍습이며 가정에도, 낡은 성이나 성채는 역사책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대부분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곳에 있어요..."
- [어두운 거울 속에], <제12장>, 헬런 매클로이, 1949.
​
​
결국, '도플갱어'와 같은 '초자연적' 생령 현상은 현실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정상적인 소설의 결말일 수는 있겠지만, 유럽의 오랜 지적 전통에 따르면 과학과 합리주의로 점철된 이 모든 문명은 어쩌면 인간 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회의주의로 회귀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도플갱어'가 범인의 계략이라는 주인공인 미국인 베이질 윌링 박사의 '합리주의'와, 이에 반해 그 일련의 살인사건이 실제 '생령 현상' 때문일 수 있다는 용의자 레이먼드 배이닝의 '초자연주의'가 마치 이야기 속 '도플갱어'처럼 미스터리하게 공존한다.
​
[어두운 거울 속에](1949)는 여성 작가 헬런 매클로이의 묘사와 설정이 끝까지 신비롭게 전개되는 소설이다.


한편, 매클로이의 소설을 마을 도서관에 반납하고는 그냥 돌아서지 못하고 계획에도 없게 다시 대출한 책도 또 다른 '여성'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
바로 프랑스 작가 까뜨린느 아를레이(Catherine Arley : 1935~?)의 [지푸라기 여자](1957)와 [눈에는 눈](1960)이다.

'꼭두각시'라는 의미인 [지푸라기 여자(The Woman of Straw / La Femme de Paille)]는 거대 부호와 결혼하여 인생역전을 꿈꾸는, 제2차 대전 전후 독일의 폐허 함부르크의 가난한 미혼여성 히르데갈데 마에나의 이야기인데, 종국에는 비극의 원인이 거부인 칼 리치몬드의 충실한 비서 안톤 콜프의 계략으로 밝혀지는 이야기다. 
소설 전반부 내내 '팜므 파탈' 연기를 훌륭하게 수행하며 목적을 달성한 듯한 여주인공이 결국 안톤 콜프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반전을 남긴다. 
​
이 '지푸라기 여자' 히르데갈데는 악인에게 복수하는 또 한번의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고는,
종국에 상속을 위해 부자 남편을 독살한 누명을 쓰게 되고 그 누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체념한 채 스스로 목를 맨다.
​
소설 초반에 비서 안톤 콜프와 짜고 늙은 부자를 꼬셔내는 다분히 연극적 상황부터 결혼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대한 소설 전반부의 묘사가 상당히 섬세하고 흥미진진하다. 
마치 연속극처럼 다음 상황이 궁금하여 펼친 책을 덮지 못하게 한다.

베일에 싸여 신상을 별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프랑스 '여성' 소설가 까뜨린느 아를레이의 소설은 '추리' 또는 '미스터리' 보다는 일종의 '서스펜스'에 가깝기도 하고, 여주인공의 세속적 욕망을 소재로 한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데 얼핏 읽다보면 현대극 막장 드라마의 본류 같다는 느낌도 든다.
​
1960년에 까뜨린느 아를레이가 발표한 또 다른 소설 [눈에는 눈(Le Talion)]은 모세 율법에서 '탈리오'라 불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목숨에는 목숨을'이라는 원시적 법률 정신이 모티브다. 
​
이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 아가트는 [지푸라기 여자]의 히르데갈데 마에나와는 비할 수도 없이 '악녀'다. 아니, 정확하게는 '악마'라기 보다는 타고난 이기적 탐욕주의자인 여자의 본성이 '악인'에 가깝다는 소설적 메시지가 깔려 있다.
이런 경우 생래적 '악인'인 본인은 자신이 악당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타인이나 환경의 탓으로 돌리면서 애써 외면한다.
​
이 지점이 바로,
원시적인 고대 율법 '눈에는 눈'(Le Talion)이 작동되어야 하는 곳이다.
​
부자 사업가 남편 쟝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된 아가트가 살인 계획을 짜서 남편을 죽게 만들고 다른 부자 남자한테 환승결혼하는 과정은 하나의 '완전범죄'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눈에는 눈'의 율법 관념에 따라 주변 사람 모두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죽어나가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는 본격 막장 드라마의 감흥을 남긴다.
​
까뜨린느 아를레이 두 소설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풍부한 묘사를 곁들인 막장극의 내용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랜시스 아일즈와 프리먼 크로프츠, 리처드 헐로 대표되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형식을 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범인이 애초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완전범죄'를 실현하고 이에 자만에 빠지지만, 결국 스스로의 헛점을 모르다가 그로 인해 파멸한다는 '사필귀정'의 비극적 서사다.
물론 비극의 주인공 또한 '여성'이다.
​
'여성' 소설가 핼런 매클로이와 까뜨린느 아를레이의 미스터리 서스펜스 소설들에서는 여타 추리소설에서보다 좀더 신비주의와 공포의 색채가 짙다.
​
그렇다면 이제 나는,
내 추리소설 여정의 원류와도 같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여사로 다시 돌아와야겠다.
​
'여성'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작품이자, 여주인공'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잠자는 살인(Sleeping Murder)](1976)부터 시작한다.

'여성' 추리소설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 속 '신비'와 '공포'를 새삼 상기하면서 말이다.

***

1. [어두운 거울 속에(Through a Glass, Darkly)](1949), Helen McCloy, 강성희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지푸라기 여자(La Femme de Paille)](1957) / [눈에는 눈(Le Talion)](1960), Catherine Arley, 이가림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잠자는 살인(Sleeping Murder)](1976), Agatha Christie, 김윤정 옮김, <황금가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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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 폭력이 펼쳐지는 시대마다 누가 숨은 이득을 챙기는가
던컨 웰던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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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과 '제도'로 풀어 낸 전쟁의 역사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던컨 웰던, 2025.
​
​
세상 모든 것이 '역사'로 수렴된다고 믿는 내게, 
미술과 전쟁 또한 '역사' 이야기가 된다. 

'역사'를 고리타분하다 생각하고 책을 잘 팔리게 하기 위해 달지 말아야 할 제목 속 단어 중 하나로 '역사'가 포함되는 슬픈 문명의 시대에, '역사'를 좋아하는 나는 그러므로 대중적일 방도가 없다. 시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를 넘어서니, 당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
​
"경제학에서는 특히 전쟁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바로 '유인(incentives)'과 '제도(institutions)'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들어가며>, 던컨 웰던, 2025.
​
​
경제학을 '사회적 생산'과 '개인의 교환' 중 하나로 당파를 정하여 선택적으로 이해하는 또 한편의 나는 '정치경제학'은 선호하지만 주류 경제학은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은 없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던컨 웰던(Duncan Weldon:1982~)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전쟁'의 역사를 해석해 내는데, 
그의 키워드는 '유인(incentives)'과 '제도(institutions)'다.
​
국역 제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다. 실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어쓴 전쟁의 '역사' 이야기지만, 재미없는 '역사'를 제목에 넣은 대신 사람들의 주목을 확 잡아끄는 '돈'이라는 단어로 상쇄하고자 한 느낌이다. 내용은 '돈의 역사'도 '역사' 속 '돈'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학살극을 일으킨 다양한 '유인' 중에는 '돈'도 있을 수 있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 속 폭력 전문가 집단의 조직화된 권력형태인 '국가'라는 '제도'의 본질적 토대는 경제적 관계이겠지만 역시 '돈'이 다는 아니다.
​
​
"영국 역사에서는 '보물'이 집중적으로 묻힌 시기가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로마의 통치가 끝난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이며, 두 번째는 그보다도 훨씬 많은 '보물'이 묻힌 17세기 중반이다. 17세기 중반 잉글랜드는 내전으로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렸다. 오늘날 전쟁의 대가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이는 '피와 보물(blood and treasure)'이라는 표현도 이 시기에 널리 퍼졌다. 당시에는 말 그대로 사방에서 '피'가 낭자한 가운데, 많은 사람이 '보물'을 땅에다 묻어 재산을 지키고자 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들어가며>, 던컨 웰던, 2025.
​
​
던컨 웰던의 '경제학적 전쟁사'인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2026)의 원제는 [피와 보물(Blood and Treasure)](2025)이다.
​
경제적 '유인'으로 '전쟁'이 발생되고 이 전쟁의 대가로 남는 '피와 보물'은 '제도'로 발현되며, 이 '제도'는 또 다른 '유인'을 낳고는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 일련의 과정이 '전쟁의 역사'가 된다. 
17세기 중반 영국 내전 중에 사람들은 '피'의 전쟁 후를 기약하며 수많은 '보물'을 땅에 묻었지만, 결국 대부분의 묻힌 '보물'들은 전쟁의 승자가 차지했을 것이다. 이들은 '보물'이라는 전쟁의 대가를 '유인'으로 '피'의 전쟁을 치렀고, '피와 보물'을 가지고 '제도'를 만들고는 이 '제도'를 무기로 다시금 '전쟁의 역사'를 쓴다. 
​
다시 강조하지만, 제1장 바이킹부터 마지막 17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펼쳐내며 저자 던컨 웰던이 말하는 '유인(incentives)'은 '경제적'인 것만 뜻하지 않고, '제도(institutions)'는 국가기구 등의 물적 기반 뿐만 아니라 문화와 문명 등도 포함한다. 
​
경제학자인 저자가 풀어내는 '전쟁의 역사'에서 '유인'과 '제도'는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
​
"숙련된 장궁병을 다수 보유하기 위해서는 잉글랜드처럼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상명하달식으로 정책을 추진해 궁술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했다. 통치자들은 사실상 장궁병을 보유할지 말지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 궁술을 익히는 문화를 주입할지 말지를 놓고 선택해야 했던 셈이다... 이 사례에서 한 국가가 특정 기술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좌우한 것은 그 국가의 '제도(institutions)'였다.
...
대외 안보와 대내 안보 중 어느 쪽을 우선할지는 통치자가 어떤 '유인(incentives)'에 따라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었다. 통치자는 누구를 가장 두려워했는가? 자국의 귀족들이었는가, 아니면 이웃 나라들이었는가?"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3. 군사력의 모순 - 왜 일부러 질 낮은 무기를 사용했을까 1066~1450>, 던컨 웰던, 2025.
​
​
11~15세기 유럽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했던 영국(잉글랜드)은 중앙집권적 국가제도를 통해 모든 장정들에게 쇠뇌보다 장궁을 훈련시키면서 효율적으로 많은 전쟁을 이겼다. 반면 국내 귀족들의 군사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던 당시 유럽 대륙의 프랑스를 위시한 국가들은 영국과의 전투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질(효율성) 낮은 무기'인 쇠뇌를 고수했다. 왕권에게는 대외 전투보다 반란과 내전이 더 무서웠던 거다. 조선 말 고종도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외세보다 동학농민혁명군을 더 두려워하여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자국의 민중반란을 진압했다.
​
​
"... 군인들이 전장에서 얻은 부로 인간의 지식을 확장하게끔 이끈 것은 이러한 '제도(institutions)'적 틀에 기반한 '유인(incentives)' 체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
부유한 군인들은 전쟁에서 얻은 부로 지적 활동이 꽃피우도록 자금을 댔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6. 르네상스 - 이탈리아 전쟁의 진정한 승자들 1422~1559>, 던컨 웰던, 2025.
​
​
15~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유인'과 '제도'로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승전의 대가로 전취한 '피와 보물'로써 또 다른 '제도'를 지향한 지식과 학문의 발전이 견인한 결과다. 
귀족군부 가문정권의 과시욕과 사치욕이 새로운 인문학을 후원하고 르네상스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
​
"흔히 그래왔듯, 전쟁은 국가의 주요 결정권자들을 움직이는 '유인(incentives)'의 구조를 바꿔놓았으며 새로운 '제도(institutions)'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11. 미국 남북전쟁 - 해밀턴 모멘트와 달러의 탄생 1790~1865>, 던컨 웰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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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세기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과정에서도 지금의 미합중국을 만든 중앙은행과 국가부채 통합 등의 노력으로 점차로 다져지는 미국 달러화 또한 전쟁의 주요한 '유인'과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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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은 잘만 활용하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유인(incentives)'의 역할과 '제도(institutions)'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의 관점을 받아들이면, 어떤 사건이 벌어진 원인을 설명하고, 겉보기에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의 의미를 적절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16. 베트남전쟁 - 경제학자의 그릇된 판단이 끼친 폐해 1955~1975>, 던컨 웰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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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월트 휘트먼 로스토라는 경제학자는 도식화된 주류경제학을 주장했던 인물로서 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폭격과 대학살만을 고집한 군사정책을 주장했고 그와 같은 군사전략은 결국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전으로 귀결되었다.
​
제1~2차 세계대전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부터 본격화된 대규모 폭격의 '총력전'의 역사로 진화했고, 현대 '총력전'은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 산업발전의 힘을 배경으로 한 국가를 대폭격 한 방으로 끝장낼 수 없게 했다. 제2차 대전 일본의 원자폭탄 투하는 일제 항복의 계기가 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현대전에서 로스토 식의 대폭격은 국가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건과 국제원조의 계기로 작용했고 전쟁은 오히려 장기화되었다.
​
​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정부가 경제 전반에 새로운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은 같았지만, 두 나라는 민간이 주도하는 '민주 국가'의 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독일에서는 군의 요구를 무엇보다 우선했으며, 민간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
이렇듯 '총력전'은 단순히 군수물자 생산을 극대화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총력전'의 핵심은 더 많은 군사 자원을 확보하면서도 민간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13. 세계대전 - 승패는 더 이상 무력이 결정하지 않는다 1914~1945>, 던컨 웰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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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후 전국민 개병제를 토대로 진행된 '총력전'에서, 자본주의 산업혁명과 결합한 경제력은 현대전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전쟁의 승패는 더 이상 무력이 아닌 경제력(재건력)이 좌우한다.
​
경제학적 '유인(incentives)'과 '제도(institutions)'는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다. 
​
경제학자 던컨 웰던은 이를 '피와 보물(Blood and Treasure)'로 은유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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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Blood and Treasure)](2025), Duncan Weldon, 윤종은 옮김, <윌북>,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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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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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소설'의 원조, 아시모프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아이, 로봇]/[흑거미 클럽], 아이작 아시모프, 1940~1973.


"'당신은 '초자연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오, 핸리?'
헨리는 대답했다.
'이렇다 할 일정한 견해는 없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 있으면 믿고 있을 뿐입니다.'
'좋아! 당신은 신뢰할 수 있겠소. 여기 있는 편견과 선입관에 젖은 '합리주의자'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소.'"
- [흑거미 클럽], <뚜렷한 요소(The Obvious Factor)>, 아이작 아시모프,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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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 숲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전집]을 선택했더랬고, 그 '전집'을 따라 다른 출판사인 <북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전편을 읽었다.

그러나 솔직해 지자면 지난 6개월 동안,
난 아직 군대간 아들이 없는 자리가 허전하여 다른 복잡한 책이 읽혀지지 않고 있고,
격주 토요일 마을 뒷산 종주 후 마을 도서관에 들러 '미스터리' 숲을 마저 거니는 게 아직 좋다.

SF와 '미스터리' 소설의 '가교'라는 생각에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 1920~1992)의 '본격파' 추리소설로 불리는 [흑거미 클럽(Tales of the Black Wodowers)](1972~1973)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대출했건만, 또 다시 나는 마을 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 책장 앞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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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른바 '로봇 3원칙'을 담은 SF 로봇소설 시리즈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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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먼저 미스터리 소설을 쓰고 그 공력으로 나중에 SF 로봇소설을 쓴 줄 알았다. 그러나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던 만 19세 청년이었던 아시모프가 1940년대 초 당시 처음 발표한 소설 <로비>가 최초의 로봇소설이었고 이후 글쓰기에만 매진하던 천재 아시모프가 1970년대에서야 비로소 '심심풀이' 삼아 추리소설을 써봤다는 건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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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심심풀이'라 생각했느냐면,
그의 1970년대 추리소설 [흑거미 클럽]은 여타 미스터리 추리소설처럼 심각한 '살인사건'이나 복잡한 트릭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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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매우 '단순'하면서 독자의 허를 찌르는 가벼운 사건들을 실험적으로 다루는 단편소설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 닮아 있다.

'흑거미(The Black Widowers) 클럽'은 부인들은 배제한 채 매달 전문직 남성들이 모이는 사교모임인데, '홀아비들(widowers)' 모임으로 자칭하며 매월 돌아가며 '호스트'를 지정하여 그가 초대손님을 초청하고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모임은 저녁 만찬과 디저트 시간을 곁들이는데, 회원 여섯 명에게 그림자처럼 식사 시중을 드는 '헨리'라는 정체불명의 급사가 매번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푸는 방식이다.

[흑거미 클럽]의 12가지 에피소드 중 살인사건은 한 번 나오는데(<일요일 아침 일찍>), 나머지 이야기들은 초대손님이 소개하는 이야기 중 '거짓말'(<회심의 미소>, <사실을 말한다면>, <뚜렷한 요소> 등), 시험 부정행위(<가짜 Ph>)와 성서 또는 문학(셰익스피어 전집)과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을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어느 나라 대표?>, <가리키는 손가락>, <이상한 생략> 등)에 관한 회원들의 자유분방한 해석 이후 급사 헨리가 연역해내는 추리의 결과물이다. 즉, 회원들의 복잡한 추리들이 대부분 소거되고 남은 힌트 중 헨리가 '단순'한 핵심 포인트를 잡아내어 등장인물과 독자들의 허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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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 <회심의 미소(The Acquisitive Chuckle)>(1972)에서 사기꾼 같은 동업자를 속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은 인물로 소개되는 급사 헨리는 회원 중 누구도 그의 정체는 모르지만, 본인은 '탐정'도 했었음을 암시하는 60대 초로의 신사로 추정된다. 그는 모임 시간 내내 음식을 세팅하면서 초대손님과 회원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항상 마지막에 질문 몇 가지를 하고는 그 동안 펼쳐진 추리의 곁가지들을 소거하면서 '단순'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그렇다면 이로써 킹, 퀸, 룩, 나이트, 폰이 나온 셈이로군요. 여섯 종류의 말 가운데 남은 건 비숍(주교) 뿐입니다...'
...
헨리는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애트웃 씨가 가지고 계신 체스의 네 비숍을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샌더슨 씨는 애트웃 씨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시어 팔거나 버리거나 또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 마이크로 필름은 비숍들 가운데 하나 속에 들어 있을 겁니다..."
- [흑거미 클럽], <이상한 생략(The Curious Omission)>, 아이작 아시모프,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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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추리는 복잡하지 않다.
SF 로봇소설의 선구자답게 '마술'이나 '미신', '초자연'이나 '신비주의'는 배격하는 '합리주의자'다.


"나로서는, 모든 '불가능성'이 제거된 다음에 남는 게 '초자연'이라면 그것은 누군가가 허위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 [흑거미 클럽], <뚜렷한 요소>, '후기', 아이작 아시모프,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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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사 헨리의 겸손한 자세 배후에는 아시모프의 철저한 '합리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이 관점은 그의 로봇소설의 근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지구에서만 사용하는 로봇을 판매했어요. 내가 일하기 전에 말이에요. 물론 말을 못하는 로봇이었죠. 그 후에 인간과 좀더 비슷한 로봇이 나오면서 반대운동이 시작되었어요.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놓고 로봇과 경쟁하는 걸 당연히 반대하고, 이런저런 종교집단들은 미신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반대했지요. 어리석고 생각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었지만, 분명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 [아이, 로봇], <이야기의 시작>, '수잔 캘빈 박사 회고', 아이작 아시모프,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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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또는 20세의 아시모프가 처음 쓴 소설은 <로비(Robbie)>(1940)라는 로봇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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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작가로 데뷔한 아시모프는 그러므로 철저한 '합리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생화학를 전공한 그는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과학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의 첫 작품은 한참 동안 발표되지 않았다지만, 그의 유명한 '로봇 3원칙'을 담고 있으며, 1950년까지 단편소설로 씌여진 연작 로봇소설 [아이, 로봇(I, Robot)]의 첫 단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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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생 수잔 캘빈 박사가 75세가 되는 2057년이 이 로봇 연작소설의 첫 장 <이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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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생산업체 'U.S.로보틱스'의 주요인사로서 로봇심리학자인 그녀는 로봇의 역사에 관해 취재 중인 유력언론인 '행성 신문'의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 로봇 연작 이야기를 이어간다.

* '로봇 3원칙' + '제0원칙'
-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 제0원칙 : 로봇은 '인류(인간 개개인보다는)'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류'를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제1원칙보다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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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의 역할은 위 '로봇 3원칙'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문제적 상황에 빠진 각각의 로봇을 조사하는 일이다. 
2050년대 당시는 이미 첫 이야기 <로비_소녀를 사랑한 로봇>(1940) 당시처럼 아이의 보모 역할을 했던 로봇 초창기와 달리 지구에서는 로봇을 사용하지 못하게 세계적 법제화가 된지 오래된 시점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지구만이 아니라 전 우주적으로 식민지 확대가 진행되는 중으로 외계행성의 광물과 에너지 등을 수집하는 어려운 작업에 로봇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곳곳의 로봇들이 위의 '로봇 3원칙'과 충돌하는 행동을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U.S.로보틱스'의 임원진인 수학자 및 공학자와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 박사가 투입되어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연작으로 서술된다. 


"... 자료를 입력하고 계산에 들어간 결과, 초공간 이동에 대비한 최소한의 휴지기, 즉 인간의 죽음에 대한 방정식이 나온 거예요. 연합 측 기계는 바로 여기서 완전히 부서진 겁니다. 하지만 전(수잔 캘빈) 브레인(로봇)에게 죽음의 중요성을 이미 많이 낮춰 놓았어요. '제1원칙'은 절대 어길 수 없기 때문에 전부 없앤 건 아니지만 브레인이 방정식을 다시 보게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브레인에게는 휴지기가 끝나면 인간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죠. 우주선이라는 물질과 에너지 자체가 온전하게 돌아온 것처럼 말이에요. 바로 이게 흔히 말하는 '죽음'이고, 극히 순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거예요. 모두 이해하시겠어요?"
- [아이, 로봇], <브레인 - 개구쟁이 천재(Escape!)>, 아이작 아시모프,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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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SF 로봇 연작소설 [아이, 로봇]은 그의 첫 작품인 1940년작 <로비(Robbie)_소녀를 사랑한 로봇>부터 마지막 작품 <피할 수 있는 갈등(The Evitable Problem)>이 발표된 1950년까지 10년간의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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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엮어서 출간한 이 연작소설은 그럼에도 20세기 중반에 창작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미래'적이다.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금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생생하나, 과학 전공자의 이야기답게 '신비주의'적이지 않고 매우 '합리주의'적인 사고와 예측에 기반하고 있다. 로봇 두뇌의 주요 구성방식인 '양전자' 같은 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로봇 3원칙'의 철저한 주입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로봇 두뇌 제조 방식을 전제로, 우주 각 곳에서 활약하는 로봇들의 자생적 '고민'과 갈등을 묘사한다. 천재 로봇 '브레인'이 제작한 우주선에 탄 인간은 은하계 너머 공간이동까지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시공을 초월하며 일시적 '죽음'까지 경험하게 된다. 
양자역학적이기도 한데, 무려 1950년에 아시모프가 발휘한 대단한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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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2020년대 AI 로봇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1940~1950년대의 아시모프는 생생하게 묻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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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당신들이 창조한 무한능력의 피조물과 잘 어울려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고 말이다.


"... (바이어리 검사가 로봇이라는) 심리적인 증거를 대려면 그 사람의 언행을 연구해야 하는데, 만일 그 사람이 양전자 로봇이라면 '로봇공학 3원칙'에 따라야 합니다. 양전자 두뇌는 '세 가지 원칙' 없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아이, 로봇],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Evidence)>, 아이작 아시모프,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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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는 [흑거미 클럽](1972~1973) 같은 실험적 추리소설도 쓰기는 했지만 '미스터리' 작가는 아니다. 

그래도 SF 과학소설 류인 [아이, 로봇](1940~1950)에는 여러 로봇들이 처한 문제적 행동의 원인을 추적하는 일종의 '미스터리'적 상황들이 계속 전개된다. 그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미스터리적 요소는 바로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1946)에서 대도시 시장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스테판 바이어리 지방검사가 정교하게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로봇'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등장하는 설정이다. 물론 단편의 제목처럼 그는 '로봇'으로 추정되지만, 소설 어디에도 그가 로봇이라는 '증거(원제;evidence)'는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정적들의 의혹에 찬 흑색선전을 꺾고 '뉴욕'으로 보이는 대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스테판 바이어리 검사는 연작 소설의 마지막 단편인 <피할 수 있는 갈등>(1950)에서는 더 큰 지도자인 '세계 조정자'가 되어 '동부'와 '열대', '유럽'과 '북부'의 4개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 중앙정부의 수장 역할을 한다. 


"해답은 당신도 알고 있어요.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슈퍼 컴퓨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세요, 바이어리 씨. 그들 역시 로봇이고, 따라서 '제1원칙'을 지켜야 해요. 하지만 '슈퍼 컴퓨터'는 한 인간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일해요. 따라서 '제1원칙'은 이렇게('제0원칙'이) 되겠지요.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류를 모른 척 해서도 안된다.' 바로 이거예요, 바이어리 씨...
...
사실 인류는 주도권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경제현상, 변덕스런 날씨와 전쟁의 운에 따라 늘 죄지우지되었지요. 그런데 '슈퍼 컴퓨터'는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있고,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슈퍼 컴퓨터'가 '인간을 위한 사회'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처럼 이 모든 요소를 처리할 테니까요. 인류 경제의 완벽한 통제라는 가장 거대한 무기를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으니까요."
- [아이, 로봇], <피할 수 있는 갈등(The Evitable Conflict)>, 아이작 아시모프,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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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운영을 수학적 계산과 예측 모델을 통해 조정하는 궁극의 로봇 '슈퍼 컴퓨터'의 '오류'처럼 보였던 문제들은 사실 거대한 두뇌 '슈퍼 컴퓨터'가 로봇 문명진보와 이에 저항하는 인류의 저항('인간을 위한 사회')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여태껏 도달한 궁극의 로봇 문명이 단 번에 뒤집어지는 일이 없도록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노회해진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에 의해 밝혀진다.

인류는 로봇의 창조자로서 '전지전능'한 '주인' 또는 '신'과 같은 '주도권'의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리하여 피조물인 로봇에게 그 '주인'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다분히 투쟁해야 하는 것 같지만, 
역시 사실 인류는 이 지구 또는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쥔 '주인'도 '신'도 된 적이 없었던 것이라고 수잔 캘빈 박사는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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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1950년대에 내다 본 백년 후의 미래인 2050년대가 되면 이 '슈퍼 컴퓨터'라는 종결자 형태로 진화한 로봇 문명이 세계를 결국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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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수잔 캘빈 박사가 인터뷰의 마지막에 예고한 미래 예측으로서, 그로부터 몇 년 후 82세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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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1940~1950)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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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 문명이 급속도로 진보하고 있는 2026년 현재의 인류에게 던지고 있는 듯한,
20세기 중반의 '로봇소설'의 원조, 아이작 아시모프의 질문에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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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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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거미 클럽(Tales of the Black Widowers)](1972~1973), Isaac Asimov, 강영길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4.
2. [아이, 로봇(I, Robot)](1940~1950), Isaac Asimov, 김옥수 옮김, 오동 그림, <우리교육>,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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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미 클럽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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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소설'의 원조, 아시모프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아이, 로봇]/[흑거미 클럽], 아이작 아시모프, 1940~1973.


"'당신은 '초자연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오, 핸리?'
헨리는 대답했다.
'이렇다 할 일정한 견해는 없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 있으면 믿고 있을 뿐입니다.'
'좋아! 당신은 신뢰할 수 있겠소. 여기 있는 편견과 선입관에 젖은 '합리주의자'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소.'"
- [흑거미 클럽], <뚜렷한 요소(The Obvious Factor)>, 아이작 아시모프,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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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 숲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전집]을 선택했더랬고, 그 '전집'을 따라 다른 출판사인 <북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전편을 읽었다.

그러나 솔직해 지자면 지난 6개월 동안,
난 아직 군대간 아들이 없는 자리가 허전하여 다른 복잡한 책이 읽혀지지 않고 있고,
격주 토요일 마을 뒷산 종주 후 마을 도서관에 들러 '미스터리' 숲을 마저 거니는 게 아직 좋다.

SF와 '미스터리' 소설의 '가교'라는 생각에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 1920~1992)의 '본격파' 추리소설로 불리는 [흑거미 클럽(Tales of the Black Wodowers)](1972~1973)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대출했건만, 또 다시 나는 마을 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 책장 앞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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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른바 '로봇 3원칙'을 담은 SF 로봇소설 시리즈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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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먼저 미스터리 소설을 쓰고 그 공력으로 나중에 SF 로봇소설을 쓴 줄 알았다. 그러나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던 만 19세 청년이었던 아시모프가 1940년대 초 당시 처음 발표한 소설 <로비>가 최초의 로봇소설이었고 이후 글쓰기에만 매진하던 천재 아시모프가 1970년대에서야 비로소 '심심풀이' 삼아 추리소설을 써봤다는 건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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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심심풀이'라 생각했느냐면,
그의 1970년대 추리소설 [흑거미 클럽]은 여타 미스터리 추리소설처럼 심각한 '살인사건'이나 복잡한 트릭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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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매우 '단순'하면서 독자의 허를 찌르는 가벼운 사건들을 실험적으로 다루는 단편소설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 닮아 있다.

'흑거미(The Black Widowers) 클럽'은 부인들은 배제한 채 매달 전문직 남성들이 모이는 사교모임인데, '홀아비들(widowers)' 모임으로 자칭하며 매월 돌아가며 '호스트'를 지정하여 그가 초대손님을 초청하고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모임은 저녁 만찬과 디저트 시간을 곁들이는데, 회원 여섯 명에게 그림자처럼 식사 시중을 드는 '헨리'라는 정체불명의 급사가 매번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푸는 방식이다.

[흑거미 클럽]의 12가지 에피소드 중 살인사건은 한 번 나오는데(<일요일 아침 일찍>), 나머지 이야기들은 초대손님이 소개하는 이야기 중 '거짓말'(<회심의 미소>, <사실을 말한다면>, <뚜렷한 요소> 등), 시험 부정행위(<가짜 Ph>)와 성서 또는 문학(셰익스피어 전집)과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을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어느 나라 대표?>, <가리키는 손가락>, <이상한 생략> 등)에 관한 회원들의 자유분방한 해석 이후 급사 헨리가 연역해내는 추리의 결과물이다. 즉, 회원들의 복잡한 추리들이 대부분 소거되고 남은 힌트 중 헨리가 '단순'한 핵심 포인트를 잡아내어 등장인물과 독자들의 허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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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 <회심의 미소(The Acquisitive Chuckle)>(1972)에서 사기꾼 같은 동업자를 속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은 인물로 소개되는 급사 헨리는 회원 중 누구도 그의 정체는 모르지만, 본인은 '탐정'도 했었음을 암시하는 60대 초로의 신사로 추정된다. 그는 모임 시간 내내 음식을 세팅하면서 초대손님과 회원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항상 마지막에 질문 몇 가지를 하고는 그 동안 펼쳐진 추리의 곁가지들을 소거하면서 '단순'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그렇다면 이로써 킹, 퀸, 룩, 나이트, 폰이 나온 셈이로군요. 여섯 종류의 말 가운데 남은 건 비숍(주교) 뿐입니다...'
...
헨리는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애트웃 씨가 가지고 계신 체스의 네 비숍을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샌더슨 씨는 애트웃 씨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시어 팔거나 버리거나 또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 마이크로 필름은 비숍들 가운데 하나 속에 들어 있을 겁니다..."
- [흑거미 클럽], <이상한 생략(The Curious Omission)>, 아이작 아시모프,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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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추리는 복잡하지 않다.
SF 로봇소설의 선구자답게 '마술'이나 '미신', '초자연'이나 '신비주의'는 배격하는 '합리주의자'다.


"나로서는, 모든 '불가능성'이 제거된 다음에 남는 게 '초자연'이라면 그것은 누군가가 허위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 [흑거미 클럽], <뚜렷한 요소>, '후기', 아이작 아시모프,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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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사 헨리의 겸손한 자세 배후에는 아시모프의 철저한 '합리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이 관점은 그의 로봇소설의 근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지구에서만 사용하는 로봇을 판매했어요. 내가 일하기 전에 말이에요. 물론 말을 못하는 로봇이었죠. 그 후에 인간과 좀더 비슷한 로봇이 나오면서 반대운동이 시작되었어요.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놓고 로봇과 경쟁하는 걸 당연히 반대하고, 이런저런 종교집단들은 미신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반대했지요. 어리석고 생각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었지만, 분명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 [아이, 로봇], <이야기의 시작>, '수잔 캘빈 박사 회고', 아이작 아시모프,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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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또는 20세의 아시모프가 처음 쓴 소설은 <로비(Robbie)>(1940)라는 로봇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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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작가로 데뷔한 아시모프는 그러므로 철저한 '합리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생화학를 전공한 그는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과학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의 첫 작품은 한참 동안 발표되지 않았다지만, 그의 유명한 '로봇 3원칙'을 담고 있으며, 1950년까지 단편소설로 씌여진 연작 로봇소설 [아이, 로봇(I, Robot)]의 첫 단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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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생 수잔 캘빈 박사가 75세가 되는 2057년이 이 로봇 연작소설의 첫 장 <이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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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생산업체 'U.S.로보틱스'의 주요인사로서 로봇심리학자인 그녀는 로봇의 역사에 관해 취재 중인 유력언론인 '행성 신문'의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 로봇 연작 이야기를 이어간다.

* '로봇 3원칙' + '제0원칙'
-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 제0원칙 : 로봇은 '인류(인간 개개인보다는)'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류'를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제1원칙보다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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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의 역할은 위 '로봇 3원칙'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문제적 상황에 빠진 각각의 로봇을 조사하는 일이다. 
2050년대 당시는 이미 첫 이야기 <로비_소녀를 사랑한 로봇>(1940) 당시처럼 아이의 보모 역할을 했던 로봇 초창기와 달리 지구에서는 로봇을 사용하지 못하게 세계적 법제화가 된지 오래된 시점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지구만이 아니라 전 우주적으로 식민지 확대가 진행되는 중으로 외계행성의 광물과 에너지 등을 수집하는 어려운 작업에 로봇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곳곳의 로봇들이 위의 '로봇 3원칙'과 충돌하는 행동을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U.S.로보틱스'의 임원진인 수학자 및 공학자와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 박사가 투입되어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연작으로 서술된다. 


"... 자료를 입력하고 계산에 들어간 결과, 초공간 이동에 대비한 최소한의 휴지기, 즉 인간의 죽음에 대한 방정식이 나온 거예요. 연합 측 기계는 바로 여기서 완전히 부서진 겁니다. 하지만 전(수잔 캘빈) 브레인(로봇)에게 죽음의 중요성을 이미 많이 낮춰 놓았어요. '제1원칙'은 절대 어길 수 없기 때문에 전부 없앤 건 아니지만 브레인이 방정식을 다시 보게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브레인에게는 휴지기가 끝나면 인간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죠. 우주선이라는 물질과 에너지 자체가 온전하게 돌아온 것처럼 말이에요. 바로 이게 흔히 말하는 '죽음'이고, 극히 순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거예요. 모두 이해하시겠어요?"
- [아이, 로봇], <브레인 - 개구쟁이 천재(Escape!)>, 아이작 아시모프,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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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SF 로봇 연작소설 [아이, 로봇]은 그의 첫 작품인 1940년작 <로비(Robbie)_소녀를 사랑한 로봇>부터 마지막 작품 <피할 수 있는 갈등(The Evitable Problem)>이 발표된 1950년까지 10년간의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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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엮어서 출간한 이 연작소설은 그럼에도 20세기 중반에 창작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미래'적이다.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금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생생하나, 과학 전공자의 이야기답게 '신비주의'적이지 않고 매우 '합리주의'적인 사고와 예측에 기반하고 있다. 로봇 두뇌의 주요 구성방식인 '양전자' 같은 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로봇 3원칙'의 철저한 주입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로봇 두뇌 제조 방식을 전제로, 우주 각 곳에서 활약하는 로봇들의 자생적 '고민'과 갈등을 묘사한다. 천재 로봇 '브레인'이 제작한 우주선에 탄 인간은 은하계 너머 공간이동까지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시공을 초월하며 일시적 '죽음'까지 경험하게 된다. 
양자역학적이기도 한데, 무려 1950년에 아시모프가 발휘한 대단한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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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2020년대 AI 로봇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1940~1950년대의 아시모프는 생생하게 묻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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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당신들이 창조한 무한능력의 피조물과 잘 어울려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고 말이다.


"... (바이어리 검사가 로봇이라는) 심리적인 증거를 대려면 그 사람의 언행을 연구해야 하는데, 만일 그 사람이 양전자 로봇이라면 '로봇공학 3원칙'에 따라야 합니다. 양전자 두뇌는 '세 가지 원칙' 없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아이, 로봇],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Evidence)>, 아이작 아시모프,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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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는 [흑거미 클럽](1972~1973) 같은 실험적 추리소설도 쓰기는 했지만 '미스터리' 작가는 아니다. 

그래도 SF 과학소설 류인 [아이, 로봇](1940~1950)에는 여러 로봇들이 처한 문제적 행동의 원인을 추적하는 일종의 '미스터리'적 상황들이 계속 전개된다. 그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미스터리적 요소는 바로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1946)에서 대도시 시장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스테판 바이어리 지방검사가 정교하게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로봇'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등장하는 설정이다. 물론 단편의 제목처럼 그는 '로봇'으로 추정되지만, 소설 어디에도 그가 로봇이라는 '증거(원제;evidence)'는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정적들의 의혹에 찬 흑색선전을 꺾고 '뉴욕'으로 보이는 대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스테판 바이어리 검사는 연작 소설의 마지막 단편인 <피할 수 있는 갈등>(1950)에서는 더 큰 지도자인 '세계 조정자'가 되어 '동부'와 '열대', '유럽'과 '북부'의 4개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 중앙정부의 수장 역할을 한다. 


"해답은 당신도 알고 있어요.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슈퍼 컴퓨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세요, 바이어리 씨. 그들 역시 로봇이고, 따라서 '제1원칙'을 지켜야 해요. 하지만 '슈퍼 컴퓨터'는 한 인간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일해요. 따라서 '제1원칙'은 이렇게('제0원칙'이) 되겠지요.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류를 모른 척 해서도 안된다.' 바로 이거예요, 바이어리 씨...
...
사실 인류는 주도권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경제현상, 변덕스런 날씨와 전쟁의 운에 따라 늘 죄지우지되었지요. 그런데 '슈퍼 컴퓨터'는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있고,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슈퍼 컴퓨터'가 '인간을 위한 사회'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처럼 이 모든 요소를 처리할 테니까요. 인류 경제의 완벽한 통제라는 가장 거대한 무기를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으니까요."
- [아이, 로봇], <피할 수 있는 갈등(The Evitable Conflict)>, 아이작 아시모프,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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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운영을 수학적 계산과 예측 모델을 통해 조정하는 궁극의 로봇 '슈퍼 컴퓨터'의 '오류'처럼 보였던 문제들은 사실 거대한 두뇌 '슈퍼 컴퓨터'가 로봇 문명진보와 이에 저항하는 인류의 저항('인간을 위한 사회')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여태껏 도달한 궁극의 로봇 문명이 단 번에 뒤집어지는 일이 없도록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노회해진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에 의해 밝혀진다.

인류는 로봇의 창조자로서 '전지전능'한 '주인' 또는 '신'과 같은 '주도권'의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리하여 피조물인 로봇에게 그 '주인'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다분히 투쟁해야 하는 것 같지만, 
역시 사실 인류는 이 지구 또는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쥔 '주인'도 '신'도 된 적이 없었던 것이라고 수잔 캘빈 박사는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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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1950년대에 내다 본 백년 후의 미래인 2050년대가 되면 이 '슈퍼 컴퓨터'라는 종결자 형태로 진화한 로봇 문명이 세계를 결국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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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수잔 캘빈 박사가 인터뷰의 마지막에 예고한 미래 예측으로서, 그로부터 몇 년 후 82세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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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1940~1950)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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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 문명이 급속도로 진보하고 있는 2026년 현재의 인류에게 던지고 있는 듯한,
20세기 중반의 '로봇소설'의 원조, 아이작 아시모프의 질문에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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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거미 클럽(Tales of the Black Widowers)](1972~1973), Isaac Asimov, 강영길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4.
2. [아이, 로봇(I, Robot)](1940~1950), Isaac Asimov, 김옥수 옮김, 오동 그림, <우리교육>,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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