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 폭력이 펼쳐지는 시대마다 누가 숨은 이득을 챙기는가
던컨 웰던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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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과 '제도'로 풀어 낸 전쟁의 역사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던컨 웰던, 2025.


세상 모든 것이 '역사'로 수렴된다고 믿는 내게, 
미술과 전쟁 또한 '역사' 이야기가 된다. 

'역사'를 고리타분하다 생각하고 책을 잘 팔리게 하기 위해 달지 말아야 할 제목 속 단어 중 하나로 '역사'가 포함되는 슬픈 문명의 시대에, '역사'를 좋아하는 나는 그러므로 대중적일 방도가 없다. 시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를 넘어서니, 당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경제학에서는 특히 전쟁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바로 '유인(incentives)'과 '제도(institutions)'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들어가며>, 던컨 웰던, 2025.


경제학을 '사회적 생산'과 '개인의 교환' 중 하나로 당파를 정하여 선택적으로 이해하는 또 한편의 나는 '정치경제학'은 선호하지만 주류 경제학은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은 없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던컨 웰던(Duncan Weldon:1982~)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전쟁'의 역사를 해석해 내는데, 
그의 키워드는 '유인(incentives)'과 '제도(institutions)'다.

국역 제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다. 실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어쓴 전쟁의 '역사' 이야기지만, 재미없는 '역사'를 제목에 넣은 대신 사람들의 주목을 확 잡아끄는 '돈'이라는 단어로 상쇄하고자 한 느낌이다. 내용은 '돈의 역사'도 '역사' 속 '돈'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학살극을 일으킨 다양한 '유인' 중에는 '돈'도 있을 수 있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 속 폭력 전문가 집단의 조직화된 권력형태인 '국가'의 '제도'의 본질적 토대는 경제적 관계이겠지만 역시 '돈'이 다는 아니다.


"영국 역사에서는 '보물'이 집중적으로 묻힌 시기가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로마의 통치가 끝난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이며, 두 번째는 그보다도 훨씬 많은 '보물'이 묻힌 17세기 중반이다. 17세기 중반 잉글랜드는 내전으로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렸다. 오늘날 전쟁의 대가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이는 '피와 보물(blood and treasure)'이라는 표현도 이 시기에 널리 퍼졌다. 당시에는 말 그대로 사방에서 '피'가 낭자한 가운데, 많은 사람이 '보물'을 땅에다 묻어 재산을 지키고자 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들어가며>, 던컨 웰던, 2025.


던컨 웰던의 '경제학적 전쟁사'인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2026)의 원제는 [피와 보물(Blood and Treasure)](2025)이다.

경제적 '유인'으로 '전쟁'이 발생되고 이 전쟁의 대가로 남는 '피와 보물'은 '제도'로 발현되며, 이 '제도'는 또 다른 '유인'을 낳고는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 일련의 과정이 '전쟁의 역사'가 된다. 
17세기 중반 영국 내전 중에 사람들은 '피'의 전쟁 후를 기약하며 수많은 '보물'을 땅에 묻었지만, 결국 대부분의 묻힌 '보물'들은 전쟁의 승자가 차지했을 것이다. 이들은 '보물'이라는 전쟁의 대가를 '유인'으로 '피'의 전쟁을 치렀고, '피와 보물'을 가지고 '제도'를 만들고는 이 '제도'를 무기로 다시금 '전쟁의 역사'를 쓴다. 

다시 강조하지만, 제1장 바이킹부터 마지막 17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펼쳐내며 저자 던컨 웰던이 말하는 '유인(incentives)'은 '경제적'인 것만 뜻하지 않고, '제도(institutions)'는 국가기구 등의 물적 기반 뿐만 아니라 문화와 문명 등도 포함한다. 

경제학자인 저자가 풀어내는 '전쟁의 역사'에서 '유인'과 '제도'는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숙련된 장궁병을 다수 보유하기 위해서는 잉글랜드처럼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상명하달식으로 정책을 추진해 궁술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했다. 통치자들은 사실상 장궁병을 보유할지 말지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 궁술을 익히는 문화를 주입할지 말지를 놓고 선택해야 했던 셈이다... 이 사례에서 한 국가가 특정 기술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좌우한 것은 그 국가의 '제도(institutions)'였다.
...
대외 안보와 대내 안보 중 어느 쪽을 우선할지는 통치자가 어떤 '유인(incentives)'에 따라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었다. 통치자는 누구를 가장 두려워했는가? 자국의 귀족들이었는가, 아니면 이웃 나라들이었는가?"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3. 군사력의 모순 - 왜 일부러 질 낮은 무기를 사용했을까 1066~1450>, 던컨 웰던, 2025.


11~15세기 유럽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했던 영국(잉글랜드)은 중앙집권적 국가제도를 통해 모든 장정들에게 쇠뇌보다 장궁을 훈련시키면서 효율적으로 많은 전쟁을 이겼다. 반면 국내 귀족들의 군사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던 당시 유럽 대륙의 프랑스를 위시한 국가들은 영국과의 전투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질(효율성) 낮은 무기'인 쇠뇌를 고수했다. 왕권에게는 대외 전투보다 반란과 내전이 더 무서웠던 거다. 조선 말 고종도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외세보다 동학농민혁명군을 더 두려워하여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자국의 민중반란을 진압했다.


"... 군인들이 전장에서 얻은 부로 인간의 지식을 확장하게끔 이끈 것은 이러한 '제도(institutions)'적 틀에 기반한 '유인(incentives)' 체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
부유한 군인들은 전쟁에서 얻은 부로 자적 활동이 꽃피우도록 자금을 댔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6. 르네상스 - 이탈리아 전쟁의 진정한 승자들 1422~1559>, 던컨 웰든, 2025.


15~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유인'과 '제도'로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승전의 대가로 전취한 '피와 보물'로써 또 다른 '제도'를 지향한 지식과 학문의 발전이 견인한 결과다. 
귀족군부 가문정권의 과시욕과 사치욕이 새로운 인문학을 후원하고 르네상스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흔히 그래왔듯, 전쟁은 국가의 주요 결정권자들을 움직이는 '유인(incentives)'의 구조를 바꿔놓았으며 새로운 '제도(institutions)'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11. 미국 남북전쟁 - 해밀턴 모멘트와 달러의 탄생 1790~1865>, 던컨 웰던, 2025.


18~19세기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과정에서도 지금의 미합중국을 만든 중앙은행과 국가부채 통합 등의 노력으로 점차로 다져지는 미국 달러화 또한 전쟁의 주요한 '유인'과 '제도'였다.


"경제학은 잘만 활용하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유인(incentives)'의 역할과 '제도(institutions)'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의 관점을 받아들이면, 어떤 사건이 벌어진 원인을 설명하고, 겉보기에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의 의미를 적절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16. 베트남전쟁 - 경제학자의 그릇된 판단이 끼친 폐해 1955~1975>, 던컨 웰던, 2025.


미국의 월트 휘트먼 로스토라는 경제학자는 도식화된 주류경제학을 주장했던 인물로서 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폭격과 대학살만을 고집한 군사정책을 주장했고 그와 같은 군사전략은 결국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전으로 귀결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부터 본격화된 대규모 폭격의 '총력전'의 역사로 진화했고, 현대 '총력전'은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 산업발전의 힘을 배경으로 한 국가를 대폭격 한 방으로 끝장낼 수 없게 했다. 제2차 대전 일본의 원자폭탄 투하는 일제 항복의 계기가 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현대전에서 로스토 식의 대폭격은 국가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건과 국제원조의 계기로 작용했고 전쟁은 오히려 장기화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정부가 경제 전반에 새로운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은 같았지만, 두 나라는 민간이 주도하는 '민주 국가'의 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독일에서는 군의 요구를 무엇보다 우선했으며, 민간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
이렇듯 '총력전'은 단순히 군수물자 생산을 극대화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총력전'의 핵심은 더 많은 군사 자원을 확보하면서도 민간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13. 세계대전 - 승패는 더 이상 무력이 결정하지 않는다 1914~1945>, 던컨 웰던, 2025.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후 전국민 개병제를 토대로 진행된 '총력전'에서, 자본주의 산업혁명과 결합한 경제력은 현대전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전쟁의 승패는 더 이상 무력이 아닌 경제력(재건력)이 좌우한다.

경제학적 '유인(incentives)'과 '제도(institutions)'는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다. 

경제학자 던컨 웰던은 이를 '피와 보물(Blood and Treasure)'로 은유하고 있다.

***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Blood and Treasure)](2025), Duncan Weldon, 윤종은 옮김, <윌북>,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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