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거미 클럽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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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소설'의 원조, 아시모프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아이, 로봇]/[흑거미 클럽], 아이작 아시모프, 1940~1973.


"'당신은 '초자연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오, 핸리?'
헨리는 대답했다.
'이렇다 할 일정한 견해는 없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 있으면 믿고 있을 뿐입니다.'
'좋아! 당신은 신뢰할 수 있겠소. 여기 있는 편견과 선입관에 젖은 '합리주의자'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소.'"
- [흑거미 클럽], <뚜렷한 요소(The Obvious Factor)>, 아이작 아시모프, 1972.


마을 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 숲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전집]을 선택했더랬고, 그 '전집'을 따라 다른 출판사인 <북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전편을 읽었다.

그러나 솔직해 지자면 지난 6개월 동안,
난 아직 군대간 아들이 없는 자리가 허전하여 다른 복잡한 책이 읽혀지지 않고 있고,
격주 토요일 마을 뒷산 종주 후 마을 도서관에 들러 '미스터리' 숲을 마저 거니는 게 아직 좋다.

SF와 '미스터리' 소설의 '가교'라는 생각에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 1920~1992)의 '본격파' 추리소설로 불리는 [흑거미 클럽(Tales of the Black Wodowers)](1972~1973)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대출했건만, 또 다시 나는 마을 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 책장 앞을 서성인다.

어쨌거나,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른바 '로봇 3원칙'을 담은 SF 로봇소설 시리즈로 유명하다. 

난 그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먼저 미스터리 소설을 쓰고 그 공력으로 나중에 SF 로봇소설을 쓴 줄 알았다. 그러나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던 만 19세 청년이었던 아시모프가 1940년대 초 당시 처음 발표한 소설 <로비>가 최초의 로봇소설이었고 이후 글쓰기에만 매진하던 천재 아시모프가 1970년대에서야 비로소 '심심풀이' 삼아 추리소설을 써봤다는 건 이제야 알게 되었다.

왜 '심심풀이'라 생각했느냐면,
그의 1970년대 추리소설 [흑거미 클럽]은 여타 미스터리 추리소설처럼 심각한 '살인사건'이나 복잡한 트릭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매우 '단순'하면서 독자의 허를 찌르는 가벼운 사건들을 실험적으로 다루는 단편소설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 닮아 있다.

'흑거미(The Black Widowers) 클럽'은 부인들은 배제한 채 매달 전문직 남성들이 모이는 사교모임인데, '홀아비들(widowers)' 모임으로 자칭하며 매월 돌아가며 '호스트'를 지정하여 그가 초대손님을 초청하고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모임은 저녁 만찬과 디저트 시간을 곁들이는데, 회원 여섯 명에게 그림자처럼 식사 시중을 드는 '헨리'라는 정체불명의 급사가 매번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푸는 방식이다.

[흑거미 클럽]의 12가지 에피소드 중 살인사건은 한 번 나오는데(<일요일 아침 일찍>), 나머지 이야기들은 초대손님이 소개하는 이야기 중 '거짓말'(<회심의 미소>, <사실을 말한다면>, <뚜렷한 요소> 등), 시험 부정행위(<가짜 Ph>)와 성서 또는 문학(셰익스피어 전집)과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을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어느 나라 대표?>, <가리키는 손가락>, <이상한 생략> 등)에 관한 회원들의 자유분방한 해석 이후 급사 헨리가 연역해내는 추리의 결과물이다. 즉, 회원들의 복잡한 추리들이 대부분 소거되고 남은 힌트 중 헨리가 '단순'한 핵심 포인트를 잡아내어 등장인물과 독자들의 허를 찌른다.

첫 단편 <회심의 미소(The Acquisitive Chuckle)>(1972)에서 사기꾼 같은 동업자를 속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은 인물로 소개되는 급사 헨리는 회원 중 누구도 그의 정체는 모르지만, 본인은 '탐정'도 했었음을 암시하는 60대 초로의 신사로 추정된다. 그는 모임 시간 내내 음식을 세팅하면서 초대손님과 회원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항상 마지막에 질문 몇 가지를 하고는 그 동안 펼쳐진 추리의 곁가지들을 소거하면서 '단순'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그렇다면 이로써 킹, 퀸, 룩, 나이트, 폰이 나온 셈이로군요. 여섯 종류의 말 가운데 남은 건 비숍(주교) 뿐입니다...'
...
헨리는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애트웃 씨가 가지고 계신 체스의 네 비숍을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샌더슨 씨는 애트웃 씨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시어 팔거나 버리거나 또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 마이크로 필름은 비숍들 가운데 하나 속에 들어 있을 겁니다..."
- [흑거미 클럽], <이상한 생략(The Curious Omission)>, 아이작 아시모프, 1972.


아시모프의 추리는 복잡하지 않다.
SF 로봇소설의 선구자답게 '마술'이나 '미신', '초자연'이나 '신비주의'는 배격하는 '합리주의자'다.


"나로서는, 모든 '불가능성'이 제거된 다음에 남는 게 '초자연'이라면 그것은 누군가가 허위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 [흑거미 클럽], <뚜렷한 요소>, '후기', 아이작 아시모프, 1973.


급사 헨리의 겸손한 자세 배후에는 아시모프의 철저한 '합리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이 관점은 그의 로봇소설의 근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지구에서만 사용하는 로봇을 판매했어요. 내가 일하기 전에 말이에요. 물론 말을 못하는 로봇이었죠. 그 후에 인간과 좀더 비슷한 로봇이 나오면서 반대운동이 시작되었어요.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놓고 로봇과 경쟁하는 걸 당연히 반대하고, 이런저런 종교집단들은 미신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반대했지요. 어리석고 생각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었지만, 분명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 [아이, 로봇], <이야기의 시작>, '수잔 캘빈 박사 회고', 아이작 아시모프, 1950.


19세 또는 20세의 아시모프가 처음 쓴 소설은 <로비(Robbie)>(1940)라는 로봇소설이다. 

SF작가로 데뷔한 아시모프는 그러므로 철저한 '합리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생화학를 전공한 그는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과학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의 첫 작품은 한참 동안 발표되지 않았다지만, 그의 유명한 '로봇 3원칙'을 담고 있으며, 1950년까지 단편소설로 씌여진 연작 로봇소설 [아이, 로봇(I, Robot)]의 첫 단편이 된다. 

1982년생 수잔 캘빈 박사가 75세가 되는 2057년이 이 로봇 연작소설의 첫 장 <이야기의 시작>이다.

로봇 생산업체 'U.S.로보틱스'의 주요인사로서 로봇심리학자인 그녀는 로봇의 역사에 관해 취재 중인 유력언론인 '행성 신문'의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 로봇 연작 이야기를 이어간다.

* '로봇 3원칙' + '제0원칙'
-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 제0원칙 : 로봇은 '인류(인간 개개인보다는)'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류'를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 (제1원칙보다 우선)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의 역할은 위 '로봇 3원칙'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문제적 상황에 빠진 각각의 로봇을 조사하는 일이다. 
2050년대 당시는 이미 첫 이야기 <로비_소녀를 사랑한 로봇>(1940) 당시처럼 아이의 보모 역할을 했던 로봇 초창기와 달리 지구에서는 로봇을 사용하지 못하게 세계적 법제화가 된지 오래된 시점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지구만이 아니라 전 우주적으로 식민지 확대가 진행되는 중으로 외계행성의 광물과 에너지 등을 수집하는 어려운 작업에 로봇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곳곳의 로봇들이 위의 '로봇 3원칙'과 충돌하는 행동을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U.S.로보틱스'의 임원진인 수학자 및 공학자와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 박사가 투입되어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연작으로 서술된다. 


"... 자료를 입력하고 계산에 들어간 결과, 초공간 이동에 대비한 최소한의 휴지기, 즉 인간의 죽음에 대한 방정식이 나온 거예요. 연합 측 기계는 바로 여기서 완전히 부서진 겁니다. 하지만 전(수잔 캘빈) 브레인(로봇)에게 죽음의 중요성을 이미 많이 낮춰 놓았어요. '제1원칙'은 절대 어길 수 없기 때문에 전부 없앤 건 아니지만 브레인이 방정식을 다시 보게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브레인에게는 휴지기가 끝나면 인간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죠. 우주선이라는 물질과 에너지 자체가 온전하게 돌아온 것처럼 말이에요. 바로 이게 흔히 말하는 '죽음'이고, 극히 순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거예요. 모두 이해하시겠어요?"
- [아이, 로봇], <브레인 - 개구쟁이 천재(Escape!)>, 아이작 아시모프, 1950.


아시모프의 SF 로봇 연작소설 [아이, 로봇]은 그의 첫 작품인 1940년작 <로비(Robbie)_소녀를 사랑한 로봇>부터 마지막 작품 <피할 수 있는 갈등(The Evitable Problem)>이 발표된 1950년까지 10년간의 단편집이다.

1950년에 엮어서 출간한 이 연작소설은 그럼에도 20세기 중반에 창작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미래'적이다.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금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생생하나, 과학 전공자의 이야기답게 '신비주의'적이지 않고 매우 '합리주의'적인 사고와 예측에 기반하고 있다. 로봇 두뇌의 주요 구성방식인 '양전자' 같은 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로봇 3원칙'의 철저한 주입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로봇 두뇌 제조 방식을 전제로, 우주 각 곳에서 활약하는 로봇들의 자생적 '고민'과 갈등을 묘사한다. 천재 로봇 '브레인'이 제작한 우주선에 탄 인간은 은하계 너머 공간이동까지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시공을 초월하며 일시적 '죽음'까지 경험하게 된다. 
양자역학적이기도 한데, 무려 1950년에 아시모프가 발휘한 대단한 상상력이다.

마치 2020년대 AI 로봇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1940~1950년대의 아시모프는 생생하게 묻고 있는 듯 하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창조한 무한능력의 피조물과 잘 어울려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고 말이다.


"... (바이어리 검사가 로봇이라는) 심리적인 증거를 대려면 그 사람의 언행을 연구해야 하는데, 만일 그 사람이 양전자 로봇이라면 '로봇공학 3원칙'에 따라야 합니다. 양전자 두뇌는 '세 가지 원칙' 없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아이, 로봇],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Evidence)>, 아이작 아시모프, 1946.


아이작 아시모프는 [흑거미 클럽](1972~1973) 같은 실험적 추리소설도 쓰기는 했지만 '미스터리' 작가는 아니다. 

그래도 SF 과학소설 류인 [아이, 로봇](1940~1950)에는 여러 로봇들이 처한 문제적 행동의 원인을 추적하는 일종의 '미스터리'적 상황들이 계속 전개된다. 그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미스터리적 요소는 바로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1946)에서 대도시 시장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스테판 바이어리 지방검사가 정교하게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로봇'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등장하는 설정이다. 물론 단편의 제목처럼 그는 '로봇'으로 추정되지만, 소설 어디에도 그가 로봇이라는 '증거(원제;evidence)'는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정적들의 의혹에 찬 흑색선전을 꺾고 '뉴욕'으로 보이는 대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스테판 바이어리 검사는 연작 소설의 마지막 단편인 <피할 수 있는 갈등>(1950)에서는 더 큰 지도자인 '세계 조정자'가 되어 '동부'와 '열대', '유럽'과 '북부'의 4개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 중앙정부의 수장 역할을 한다. 


"해답은 당신도 알고 있어요.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슈퍼 컴퓨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세요, 바이어리 씨. 그들 역시 로봇이고, 따라서 '제1원칙'을 지켜야 해요. 하지만 '슈퍼 컴퓨터'는 한 인간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일해요. 따라서 '제1원칙'은 이렇게('제0원칙'이) 되겠지요.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류를 모른 척 해서도 안된다.' 바로 이거예요, 바이어리 씨...
...
사실 인류는 주도권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경제현상, 변덕스런 날씨와 전쟁의 운에 따라 늘 죄지우지되었지요. 그런데 '슈퍼 컴퓨터'는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있고,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슈퍼 컴퓨터'가 '인간을 위한 사회'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처럼 이 모든 요소를 처리할 테니까요. 인류 경제의 완벽한 통제라는 가장 거대한 무기를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으니까요."
- [아이, 로봇], <피할 수 있는 갈등(The Evitable Conflict)>, 아이작 아시모프, 1950.


지구의 운영을 수학적 계산과 예측 모델을 통해 조정하는 궁극의 로봇 '슈퍼 컴퓨터'의 '오류'처럼 보였던 문제들은 사실 거대한 두뇌 '슈퍼 컴퓨터'가 로봇 문명진보와 이에 저항하는 인류의 저항('인간을 위한 사회')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여태껏 도달한 궁극의 로봇 문명이 단 번에 뒤집어지는 일이 없도록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노회해진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에 의해 밝혀진다.

인류는 로봇의 창조자로서 '전지전능'한 '주인' 또는 '신'과 같은 '주도권'의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리하여 피조물인 로봇에게 그 '주인'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다분히 투쟁해야 하는 것 같지만, 
역시 사실 인류는 이 지구 또는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쥔 '주인'도 '신'도 된 적이 없었던 것이라고 수잔 캘빈 박사는 회고한다. 

그리고 이제, 1950년대에 내다 본 백년 후의 미래인 2050년대가 되면 이 '슈퍼 컴퓨터'라는 종결자 형태로 진화한 로봇 문명이 세계를 결국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수잔 캘빈 박사가 인터뷰의 마지막에 예고한 미래 예측으로서, 그로부터 몇 년 후 82세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된다.

[아이, 로봇](1940~1950)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생각해 본다.

AI 로봇 문명이 급속도로 진보하고 있는 2026년 현재의 인류에게 던지고 있는 듯한,
20세기 중반의 '로봇소설'의 원조, 아이작 아시모프의 질문에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

1. [흑거미 클럽(Tales of the Black Widowers)](1972~1973), Isaac Asimov, 강영길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4.
2. [아이, 로봇(I, Robot)](1940~1950), Isaac Asimov, 김옥수 옮김, 오동 그림, <우리교육>,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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