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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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선언
-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1839.


6개월 전 읽었던 [두 도시 이야기](1859)는 내가 읽은 찰스 디킨스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아마도 영문학사에서 19세기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1812~1870)는 16세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표적 작가일 것인데, 막상 영문학 전공자인 나는 어릴적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1843)을 읽은 게 그의 작품의 전부였다.

영어가 좋아서 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영자 신문사를 한 달도 안되어 그만두고 이후 학부 시절 내내 영문학 공부를 하지 않았던 건, 스무살이 되어 보니 '노동계급'의 아들인 내가 '한가하게' 영어 공부나 할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생각해서였다. 시대는 군사독재가 이어지던 1980년대도 아닌, 소련이 무너진 후인 1990년대 초였지만,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승리로 인해 '계급 착취'는 더욱 고도화되고 한층 더 정교해졌다고, 나는, 그리고 '우리'라는 것이 당시에 있었다면, 소수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말이 길었질 뻔 했지만, 결국 영문학과를 다니면서도 나는 찰스 디킨스를 읽지 않았다. 아니 읽을 생각을 못했다. 한때 '사실주의' 소설에 빠지게 되었던 이십대 중후반의 시절에서 조차도 그랬다.

그러다가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는 유명한 첫 문장에 이끌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펼쳤을 때는, 난 이미 '사실주의' 소설을 언급하던 문학청년이 아니라 오십줄에 접어든 회사원 아저씨였다.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에 관한 내 서평 블로그에 찰스 디킨스 연구자 한 분이 댓글로 올린 설문에 답하는 동안, 찰스 디킨스를 읽지 못했던 영문학도인 나 자신이 아쉬워서라도 디킨스의 작품 하나는 더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거였다.

그렇게 고른 게,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1839)였다.

"미덕이 어떻게 더러운 스타킹을 외면하고, 악덕이 어떻게 작은 리본들과 화려한 복장과 결혼하여, 마치 혼인한 부인들이 그 이름들을 바꾸듯이 자기 이름을 '로맨스'로 바꾸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추하고 역겨운) 것들을 볼 수 없다고 하는 '우아한 취향'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전향시킬 의도가 없다. 나는 그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으며, 그들의 승인을 안달하며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비천한 배경의 작품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현실에서 실재하면서 거짓 광채로 둘러싸인 무언가에 대해, 그것의 추하고 역겨운 모습의 실체를 보여줌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 [올리버 트위스트], <저자 서문>, 찰스 디킨스, 1841.

1839년에 한 권의 소설로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1837년부터 2년간 한 월간지에 실렸던 연재소설의 단행본이었는데, 1841년의 <저자 서문>에서 디킨스는 이 소설과 자신의 작풍에 대한 세간의 비평을 의식한 듯 작심하고 본인의 소설관을 피력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작가 본인은 현실의 인간사를 미덕이나 교양 따위로 포장하지 않을 것이며 '추하고 역겨운' 그 모습 그대로 묘사하겠다 선언한다. 

얼핏 들으면 '사실주의(Realism) 선언' 같지만, 
사실은 '벌레스크(Burlesque) 선언'이다.

"저자의 몇몇 친구들은 이렇게 외친다. '보라, 신사 양반들이여, 주인공은 악한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적이다.' 당대의 젊은 비평가들, 사무원들, 초보 견습생들은 그것을 저속하다 평하면서 한편으론 앓는 소리를 낸다."
- [올리버 트위스트], <저자 서문> 중 'Henry Fielding' 인용문, 찰스 디킨스, 1841.

<저자 서문>을 시작하면서 찰스 디킨스가 인용한 작가는 18세기 영국의 소설가 헨리 필딩(Henry Fielding : 1707~1754)이다. 헨리 필딩은 '기사도' 자체를 비꼬아 버린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를 따라 당대의 고귀한 신사숙녀의 미덕을 확실하게 비틀어 버린 작가였다. 그의 소설 [조셉 앤드류스(Joseph Andrews)](1741)는 내가 대학 3학년 2학기에 수강했던 '18세기 영국소설'의 교재였고 아직 내 오랜 책장에 <노튼> 출판사의 그 원서가 있었는데, 필딩은 이 책의 <서문>에서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을 정의하고 있다. 

18세기 당시는 아직 '소설(novel)'이 본격 장르로 등장하지 않았고 고전적으로 이어져 온 '서사시(epic)'가 '희곡(drama)'처럼 '희극(comic)'과 '비극(tragedy)'으로 구분되었는데, 일종의 '산문으로 된 서사시(Epic-Poem in Prose)'로서의 '로맨스(Romance)' 중 '코믹 로맨스'는 웃기는 내용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자연스러운(natural)' 특징이 있다고 헨리  필딩은 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를 따라 헨리 필딩 본인이 쓴 '소설'은 그런 '자연스럽게' 읏긴 '코믹'이 아니라 특별히 '벌레스크'로 명명하고 있는데, '벌레스크(Burlesque)'가 '코믹(Comic)'과 구분되는 특징이 바로 '부자연스러운(un-natural)' 작법이다. 상황을 묘사하되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거나 과장되게 그리면서 현실을 비웃고 비틀면서 보여주는 '사실주의'의 한 모습인 것이다.

'벌레스크(Burlesque)'는 현실을 '풍자(satire)'하는 작품이자, 우리식으로 보면 '해학극'에 해당된다.

[조셉 앤드류스]의 실제 제목은 '조셉 앤드류스와 그의 친구 에이브리엄 애덤스 씨의 모험의 역사(The History of the Adventures of Joseph Andrews and of his Friend Mr. Abraham Adams)'인데, 신사인 척 하는 주인공들의 행태를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당대 상류계층(gentry)의 위선을 보여준다. 헨리 필딩은 역시 동시대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의 조신한 숙녀 이야기 [파멜라(Pamela)]를 [샤멜라(Shamela)]로 패러디하여 비웃기도 한다. 정숙한 척 하는 '파멜라'를 '수줍음(Shy)' 또는 '창피함(Shame)' 같은 걸 떠는 척 하는 '샤멜라'로 비틀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벌레스크(Burlesque)'의 핵심 요소는 '패러디(Parody)'이기도 하다.

이렇게 18세기 작가 헨리 필딩의 '벌레스크(Burlesque)'를 앞세운 19세기 작가 찰스 디킨스의 '사실주의'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게 된다. '자연스럽게(naural)' 그리지 않고 '해학'적으로 '풍자(satire)'하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부자연스럽게(un-natural)', 어색하고 과장되게 현실을 묘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실에 접근하겠다는 선언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아무리 콧대 높은 귀족이라 할지라도 담요 한 장에 감싸인 아기라면 어떤 사회 계급의 아기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 터였다. 그러나 이제 누렇게 변색된 낡은 무명옷을 입게 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한순간에 계급이 결정되어 낙인찍혀 버렸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1장>, 찰스 디킨스, 1839.

나중에 알고 보니 귀족의 피를 물려받은 고귀한 몸이었지만 세상 나올 때부터 온갖 고난을 겪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의 탄생 장면이다. 

또한 <2부 14장>의 제목은 '앞서 나온 상황과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리 드물지 않은 결혼생활의 모습'인데, 거의 모든 장의 제목이 이렇게 긴 설명인 특징도 있지만 그 자체로도 현실의 패러디다. 즉, 올리버 트위스트가 고아로 태어난 19세기 영국의 구빈원 말단 교구관리 범블 씨가 구빈원장이 되기 위해 간호부장 코니 부인을 꼬시던 이전 장과는 달리 막상 결혼 후 구박받는 모든 남편들의 평범한 모습을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그리 드물지 않은 결혼생활'이라 제목을 통해 길지만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어린이들의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페이긴은 시종일관 '친절한 유대인 노인'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되고 여주인공 낸시의 일관된 순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종국에 때려죽이는 최강 악당 사익스는 그 무슨 나라를 구한 영웅 비슷하게 용모를 묘사하기도 하는 식이다.

"... 이런 상황 전개는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인 명상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가장 훌륭한 귀족에서부터 가장 비천한 자선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아름다운 본성'은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5장>, 찰스 디킨스, 1839.

구빈원을 나와 장의사 소어베리의 집으로 팔려간 후 그 집에서 만난 자선학교 학생이자 나중에 우연히 다시 만나는 악연인 노아로부터 비천한 고아라며 놀림을 받는 장면에서, 사실 노아는 불쌍한 자선학교에서 조차 왕따를 당하는 더더욱 불쌍한 신세지만 구빈원 고아인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노아 본인보다 조금이라도 더 불우한 사람을 보면 언제든 자기가 당한 것 이상으로 괴롭혀줄 용의가 충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되는 '아름다운 본성'에 대해 쓰고 있다.

"비록 올리버가 '철학자들'의 손에 키워지긴 했지만, 자기보호가 자연의 제1법칙이라는 '아름다운 공리'에 대해 이론적으로 잘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이런 일에 잘 대비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터라, 올리버는 더더욱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올리버 트위스트], <1부 10장>, 찰스 디킨스, 1839.

이런 묘사는 많은 인간들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팔아먹고 등쳐먹는 또 다른 '아름다운 본성'에 관해 논평하는 디킨스의 문장인데, 소매치기인 '미꾸라지' 일당을 따라 나가 처음 도둑질 현장을 목격하고는 무서워서 도망치는 올리버를 쫓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함께 '도둑 잡아라!'를 외치는 소매치기 '미꾸라지' 일당의 임기응변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논평의 시작에서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키운 고아원과 구빈원의 막장 인생들이 고귀한 '철학자들'로 소개되고 있다.

19세기까지 이어진 영국소설의 '벌레스크'적 전형이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추리소설의 계보를 논한 [범죄소설의 계보학](2018)에서 추리소설의 선조격인 범죄소설의 초기 형태로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언급하기도 한다. 

중범죄자들을 격리수감하고 교수대에 매달던 '뉴게이트' 교도소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수없이 언급되는데, 악당 사익스도 다녀온 듯 하고 페이긴은 결국 여기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19세기 '뉴게이트 소설'이란 중범죄자들을 경계하라고 국가권력이 펴낸 범죄자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일종의 영웅담이 되어버린 역설 자체였다. 당시 지배계급의 위선을 비웃던 다수 민중들의 '벌레스크'이자 '사실주의'적 독법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알고 보니 귀족의 자손인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의 모험' 이야기로서 결국 주인공의 태생적 신분을 추적해 가는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범죄소설'도, '뉴게이트 소설'도, 본격적인 '추리소설'도 아니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19세기 초기 자본주의 영국 사회에서 비천한 바닥생활을 하던 빈민들의 모습을 과장되고 부자연스럽지만 '패러디'와 '역설'을 통해 사실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이었던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원전의 완역본으로 읽어야 그 '벌레스크'의 진면모를 알 수 있다.
옮긴이 유수아 선생의 번역은 마치 원서를 읽는 듯 생생하고, 찰스 디킨스 원서의 삽화를 그린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 : 1792~1878)의 삽화와 함께 읽으니 더욱 그럴 듯 하다.

***

1.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1839), Charles Dickens, 유수아 옮김, <현대지성>, 2020.
2. [Joseph Andrews & Shamela](1741), Henry Fielding, <Norton>, 1987.
3.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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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로마 세계의 그리스도교화에 관하여 비아 제안들 시리즈
피터 브라운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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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나, '혁명'이나...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피터 브라운, 1995.


"...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고대 후기'라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대부분 자신을 그리스도교인이라 여겼지만, 자신들의 후예들처럼 현재의 자신과 과거(이교 세계)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호한 현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부록 : 배우는 삶>, 피터 브라운, 1995.


1.

이번 대선에서 쿠데타 내란 세력을 압도적으로 제압하고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면 세상이 얼마나 바뀌게 될까,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거대 보수 양당이 반 세기 이상 지배한 우리의 정치사회 역사에서 집권당의 교체로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종 잊혀진다.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를 보듯 거대 양당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개표 방송을 관람하지만, 지금껏 세상을 바꿔 온 건 대다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거대 양당 중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정치를 스포츠 경기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다수 민중들을 조직하고 스스로를 대표하게 만드는 진보정당이 언제나 필요한 이유다. 정치인 한 명의 개인기와 대표성으로 생래적 차이인 세대와 젠더를 갈라치기하면서 정치적 야욕을 채우려는 포퓰리스트들이 아무리 설쳐대도, 생물학적 차별이 아닌 사회적 계급 관계에 기초하여 다수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진보정당의 포퓰리즘은 항상 정당하다.


2.

"... 그(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일은 '권위(Authority)'와 관련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주장(그리스도교의 이분법적 '승리 서사')을 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동료 성직자들은 무엇이 '이교'이며 그 영향이 교회 생활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판단할 '권위', 권한을 자신들에게 돌렸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1. 그리스도교화 - 서사와 과정>, 피터 브라운, 1995.

보통 '혁명'은 단 번에 세상을 확 바꿔 버리는 것으로 인식된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소비에트 혁명 등 역사적 대혁명들은 그러한 단 칼의 '승리 서사'로 기록되었는데,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 과정 또한 그러하다.


'고대 후기(Late Antiquity)' 전문가인 영국 출신의 미국 역사가 피터 브라운(Peter Brown : 1935~)의 1995년 저작 [권위와 성자들(Authority and the Sacred)](1995)은 국역판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2025)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반가톨릭적 '이단'의 상상력을 담은 책 몇 권을 읽었던 탓도 있었지만 이 얇은 책을 선뜻 읽게 된 이유는 실은 국역판 제목에 끌려서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고대 로마 후기였던 4세기에 그리스도교가 공식화되었을 때,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와 같이 다신교적 전통을 이어왔던 신앙을 패배시키고, 이후 중세 유럽의 유일교이자 '보편적 종교' 즉 '가톨릭'이 되었던 '그리스도교'가 단 번에 승리했다는 '혁명'적 서사가 알고 보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의 교리적 원천이 되었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와 같은 신학자들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서 전통적 이교를 단 칼에 척결한 그리스도교의 혁명적 '승리 서사'를 대표한다. 그러나 '고대 후기'는 물론 역시 '아우구스티누스' 전문가로 알려진 역사가 피터 브라운은 이 책에서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바꾸어 갈 때' 결코 단 번에 '혁명'적으로 바꾼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고대 다신교를 믿던 다수 로마 민중들은 물론 신흥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은 '배교자' 황제 등과 동떨어진 '혁명'은 없었다는 말이다. 피터 브라운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기존의 전통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제국에 맞게 과감하게 바꾸고 조합해 권력의 상징 체계를 만들어낸 것'(같은책, <1장>)이라면서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적 전통과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현장에서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민중 문화에 스며들어 궁극에는 '고대(antiquity)' 자체를 '만악의 어머니'로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그 고대 사회 대전환의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고대 후기 종교 '혁명'의 주도권을 철저히 독점하고자 했다.

이 책의 원제인 [권위와 성자들] 중 그 <1장>은 '권위(Authority)'에 관한 이야기다.


"... 예측불가능한 '폭력'은 고도의 통치체제에 입각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영속적이고 통제된 '폭력'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 '폭력'을 행사해야 한다면, 그 '폭력'은 반드시 전통적인 상류층이 독점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예측불가능한 외부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2. 불관용의 한계>, 피터 브라운, 1995.

흔히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화의 '승리 서사'는 고대의 전통적 '이교'에 대한 단호한 '불관용'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피터 브라운은 이 책의 <2장. 불관용의 한계>에서 사실 당시 로마 제국의 관심은 '종교'나 '철학' 같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징세'라는 다분히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사안에 있었으며, "종교 문제에서 (그리스도교의) 불관용 정책에 힘을 실어줄 여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같은책, <2장>)고 말한다. 

로마 제국의 광범위한 통치와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각 지역의 세금만 제대로 걷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교 황제라 해도, 그의 대리인으로서 파견된 주교 조차도, 지역의 '이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타협했다는 이야기다. 단, 이 '관용'의 주체는 여전히 그리스도교 권력자들이어야 했기에, 다수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이교 신전 파괴 등의 '혁명'적 행위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 책의 <2장>에서 말하는 '불관용의 한계'는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의 단호한 '불관용'이 실은 그들의 '승리 서사'와 다르다는 점을 증명한다.


"... '성자들(the Sacred)'은 큰 어려움 없이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고대 이교적) 신전을 파괴하고, 공적 제의를 강제로 폐지하는 등 거친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전환 과정에서 '성자'는 지역 사람들의 자발성과 동의(헤게모니)를 끌어내는 요소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 '성자들(the Sacred)'은 하늘과 땅의 간극을 연결하는 기도의 가교가 들어설 수 있는 상상 세계를 마련하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3. 거룩함의 중재자 -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의 성자>, 피터 브라운, 1995.

고대 후기 "불관용의 한계"(같은책, <2장>)를 여실히 보여주는 종교적 타협의 현장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그리스도교의 주요 교부들은 여전히 이분법적 '승리 서사'를 주장했지만, 각 지역의 '이교도'인 민중들과 함께 했던 '성자들(the Sacred)'은 그럴 수가 없었다.

기둥 위에서 살아간 4~5세기의 시메온 같은 성자들과 각종 은둔 성자들은 하느님의 유일신 세계관만이 아닌 고대의 여러 신들이 각자 천상을 분할지배한다는 다신론적 '문두스' 세계관 및 지역의 이교적 주술과 마법, 치료법 등을 받아들여 민중들과 함께 했다. 피터 브라운이 말한 '성자들(the Sacred)'은 '성인(Saint.)'과는 다르다. 피터 브라운의 '성자들'은 '순교'나 '박해' 대신 '민중들'과 함께한 수도자 또는 각지의 은둔 신부 같은 이들이었다.

결국 이 '성자들'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 스며들어 다수 민중들의 '자발적 동의', 즉 '헤게모니'를 그리스도교의 '권위'에게가져다 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이 책의 원제 [권위와 성자들]에서 '성자들(the Sacred)'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승리 서사'가 결코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피터 브라운의 책 [권위와 성자들(Authority and the Sacred)]의 국역판 제목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가 참으로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은, 고대 후기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 과정에서 언급되는 '승리 서사'의 허구성을 정확하게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다수의 힘과 함께 녹아들어 '마침내 바꾸어' 가는 과정이지, 단 한 번의 건곤일척 '승리 서사'가 아닌 것이다.


3.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도 난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그 어떤 '혁명'적인 상황이나 인물이라도 단 한 번의 대선으로 '승리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거대 보수 양당은 다수 민중들의 의지를 독점하면서 집권 후에는 새로운 세상이나 사회 대전환으로부터 등을 돌려 왔다. 거대 양당의 유일한 목적은 장기적 정권 재창출 단 하나다. 그들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상생 관계일 뿐이다.

그 와중에서 생래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생물학적 세대나 젠더의 차이를 '혐오'와 차별의 더러운 전장으로 만들며 개인의 정치력을 확장하려는 청년 정치인은 그냥 젊은 파시스트일 뿐이다. 그 젊은이도 나이가 들 것이고 그렇게 늙은 정치인은 '태극기 부대' 못지 않게 위험하다.

노동의 현장에서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을 철폐해야 하는 진보정치 세력은 이번 대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항상 필수불가결한 정치적 조건이다. 
정치란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보는 '이상'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고대 후기'가 아닌 지금의 '헤게모니'는 소수가 아닌 다수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나 '혁명'이나,
거룩하고 위대한 단 한 번의 '승리 서사'는 없다.

***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로마 세계의 그리스도화에 관하여(Authority and the Sacred : Aspects of the Christianisation of the Roman World)](1995), Peter Brown, 양세규 옮김, <비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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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가면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1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최상안 옮김 / 한길사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인쇄술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 [구텐베르크의 가면],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8.


"Insignia Naturae Ratio Illustrat."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오로지 이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읽을 책이 없어 아버지 방에서 찾은 시오노 나나미의 [세 도시 이야기]를 읽다가 뒷부분 부록을 통해 출판사 <한길사>에서 발간한 책소개를 보았다. 그 속에서 역사 미스터리 추리물 작가로 보이는 독일의 작가 필리프 반덴베르크(Philipp Vandenberg : 1941~)를 발견하고는 바로 호기심이 일어 그의 책을 검색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2000년도에 <한길사>에서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 두 권, 2001년에 [파라오의 음모](1990)와 [구텐베르크의 가면](1998) 두 권, 총 네 권이 번역되어 있었고, 알라딘 서점에서는 그나마 2001년에 출판된 후자의 두 권은 품절이었다. 검색능력이 다소 미숙한 나는 사실 반덴베르크의 작품들이 각각 몇 년도에 발표되었는지 조차도 찾지를 못했는데, 어느 날 밤 동네 선배 이진 형과 술을 마시다가 내가 소개한 반덴베르크를 검색 천재 이진 형이 구글의 독일어 검색결과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까지 하면서 찾아본 결과 그의 작품들이 발표된 연혁들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 이미 [미켈란젤로의 복수]를 읽고 있던 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술 작품을 소재로 삼은 두 권을 구매하였고 이어서 읽어볼 예정이라 이진 형에게 추천했고, 형은 반덴베르크의 작품들 중 유독 [구텐베르크의 가면]이 끌린다고 했는데 나는 그 책은 절판되어 중고서점에서나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진 형은 5천원을 내게 주면서 배송비 포함 중고책으로 대신 구매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중고 원가 1천7백원에 배송비 3천원 포함 4천7백원에 구입하고 3백원의 이문을 남긴 책이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구텐베르크의 가면](1998)이었던 거다.

필리프 반덴베르크가 쓴 역사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일관된 주제가 있다. 
바로 로마 바티칸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견고한 가톨릭 보편종교의 체제에 계속 도전했던 잊혀진 기록들과 그 비밀결사 운동에 관한 이야기다. 가톨릭의 권위는 오랜 세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은폐시켰지만, 이들은 바티칸의 지하서고에서, 바티칸의 정통 경전이 전하지 않는 '외전'에서 끊임없이 암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 중근세에 교황청에 의해 '이단'으로 숙청당한 수많은 기사단과 어쩌면 지금도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처럼 예수의 '성혈'과 '성배'를 찾으며 세계 권력의 배후로 활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시온수도회와 프리메이슨,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퇴마신부가 소속된 장미십자회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음모 단체고 반덴베르크가 배경으로 삼은 이름 모를 '이단' 조직들은 서구의 역사 속에서 천년의 왕국을 이어온 기독교의 권위가 강력했던 만큼 그에 저항한 수많은 '이단'들이 존재했음을 반증한다.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에서 '유대 카발라 신비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에서 단테와 다 빈치 등 시대의 천재들로 이어져 온 '오르페우스 기사단'으로 표현된 이 흐름은 [구텐베르크의 가면](1998)에서는 '보니 호미네스(Boni Homines: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라는 단체로 등장하고 있다.

'보니 호미네스'의 비밀 은어는 'Insignia Naturae Ratio Illustrat(인시그니아 나투라이 라티오 일루스트라트)'인데, 그 의미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오로지 이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의 라틴어다. 가톨릭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성(Ratio)으로 세계관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함께 한 '르네상스'의 인문학 정신이다.

구텐베르크는 15세기 유럽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의 개발을 통해 최초로 [성경]을 대량 인쇄하여 보급함으로써 궁극에는 중세 가톨릭의 견고한 성채에 커다란 균열을 낸 종교개혁 또한 가능하게 했다. 

'구텐베르크'의 본명은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로서 처음에는 교황의 대리인인 독일 마인츠 지역의 대주교로부터 라틴어 성경의 대량 인쇄를 의뢰받으며 스스로를 자신의 상속 지역인 '구텐베르크'의 장인으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기에는 이런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독일어는 물론 각국의 토착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대량으로 인쇄하고 다수 민중들에게 보급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술이 인류의 인문학적 문명사에서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구텐베르크의 가면]의 원제는 '거울 제조업자(Der Spiegelmacher)'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구텐베르크', 즉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가 아니다. 주인공은 그의 거울 제조업 스승인 미헬 멜처인데, 나중에는 마인츠 대주교 성의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는 미헬 멜처가 자신의 제자 겐스플라이슈(구텐베르크)에 의해 배신 당하고 결국 금속 인쇄기술도 빼앗기고 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풀어내는 액자식 구성이다. 이러한 구성은 반덴베르크의 전작인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1993)에서도 동일하게 채용된 서술방식이다.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 생각에 그걸 금지시키는 일은 소용이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마인츠에서 인쇄를 금지시킨다 해도 쾰른이나 슈트라스부르크, 뉘른베르크 같은 다른 곳에서 인쇄할 것이므로 아무 소득이 없을 듯 하옵니다. 게다가 인쇄기술 자체는 책의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기술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 나쁜 것이죠. 대주교님, 1백 권이든 3백 권이든 원하시는 대로 저에게 [성서]를 인쇄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구텐베르크의 가면], <마인츠 - 쓰라린 사랑의 고통>,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8.


원래 독일 마인츠 지방에서 납과 주석 등을 가공하여 거울을 제작하는 장인이었던 미헬 멜츠는 우연히 빛을 반사하는 거울의 기능을 신의 성광을 비추는 마술이라 사람들이 믿게 만들며 유명해졌고, 미헬 멜처의 제자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는 처음에는 스승을 사기꾼이라 비난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입장을 바꿔 함께 거울 제조업을 더 키워보자 꼬드기는데 결국 스승을 제끼고 마인츠의 거울 제조업 독점을 위해 멜처의 공장에 불을 지른다. 여차저차의 복잡한 사유로 딸 에디타와 함께 당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건너간 미헬 멜처는 동서양의 문명이 교차하는 그 곳에서 우연히 중국인들의 도기 활자를 이용한 인쇄기술을 배우게 되고 본인의 전공인 금속 가공 기술을 접목시켜 금속 활자를 통한 인쇄기술로 발전시킨다.

이 과정에서 교황을 암살하려던 에우게니우스 교황의 조카 체자레 다 모스토의 의뢰를 받아 면죄부 10만 장을 대량 인쇄하게 되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필경사가 면죄부 한 장을 베껴 쓸 시간에 수백수천 장의 인쇄본을 찍는 미헬 멜처의 금속 활자 인쇄술을 '악마의 기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사연을 안고 베네치아로 도주한 멜처에게 어느 날 황야의 '예언자'를 자칭하는 수도승이 한 명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이단' 조직 '보니 호미네스'의 단장 풀허 폰 슈트라벤이었다. 여기서 다시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단골 소재인 '제5복음서'가 등장한다. 
제5차 십자군 원정 때 프리드리히 대왕 휘하의 십자군이 흑해 인근 동굴에서 '사해 문서'와 같은 구약의 기록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예수가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는 기록이었던 것이고, '예슈아'로 알려진 그 실존 인물 '예수'는 본인은 '예언자'이지 신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면서 가짜 죽음 쇼까지 벌이고 도주한 후 몇 십 년을 더 살다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 아닌 인간에 불과했다는 이 '제5복음서'의 기사는 정통 가톨릭의 '4대 복음서(마가-마태-루가-요한복음)'에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서 '이단' 조직 '보니 호미네스'는 '제5복음서'를 담은 이 새로운 [성경]을 대량 인쇄하여 수많은 민중들에게 보급하려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멜처의 금속 인쇄술을 장악하고자 한다.

결말에서는 딸은 물론 면죄부 등과 결별한 미헬 멜처가 고향인 독일의 마인츠로 돌아와서 다시금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와 동업하여 본인의 공장에서는 '제5복음서'를 비밀리에 인쇄하는 한편, 겐스플라이슈의 구텐베르크 공장에서는 마인츠 대주교의 주문을 받아 정통 [성경]을 대량 인쇄하는데, 결국 또 다시 겐스플하이슈의 배신으로 인하여 '제5복음서' 인쇄는 중단되고 인쇄술 일체를 겐스플라이슈에게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미헬 멜처는 '이단'의 [성경]을 인쇄했다는 이유로 감금되는데 면죄부와 '이단' 성경 등의 대량 인쇄를 의뢰받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멜처는 '인쇄술은 인쇄술일 뿐이며, 책의 내용이나 의도와 무관한 기술에 불과할 뿐'이라는 순수한 과학기술적 주장을 견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시 위에 인용한 '인쇄술은 책의 내용과 무관하며 인쇄술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걸 나쁘게 이용하는 인간이 나쁘다'는 겐스플라이슈의 말은 스승이자 동업자인 미헬 멜처의 '제5복음서' 인쇄를 마인츠 대주교에게 밀고하며 인쇄술 독점을 꿈꾸던 그가 인쇄술이라는 '악마의 기술'을 아예 금지시키겠다는 대주교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에 대해 반박한 말이었다. 이미 인쇄술은 새로운 문명의 대세가 되었으니 그 기술의 진보는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인쇄술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므로 이 신문명을 이용하여 가톨릭 성서의 대량 인쇄와 보급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물론 구텐베르크가 되고자 하는 겐스플라이슈의 의도는 금속 활자 인쇄술의 장악이었던 것이었고 가톨릭이라는 당대 최고 권위를 등에 업고 인쇄술 자체를 독점하겠다는 겐스플라이슈는 이 때부터 본인이 '구텐베르크의 장인'으로 승인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인쇄술의 '창시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된다.

한편, '이단'의 [성경]을 인쇄하던 그의 스승 미헬 멜처는 마인츠의 지하 감옥에 갇히면서 수십 년 후에 오래전의 이야기를 감방벽의 뚫린 구멍을 통해 건넌방 죄수에게 구술하게 되는데, 그 시점에는 이미 배신자 구텐베르크는 금속 활자 인쇄술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남기고는 알콜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라는 인쇄술의 대가는 먼저 가고, 실질적인 인쇄술의 창시자 미헬 멜처는 아무도 모르는 지하 감방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아 지난 이야기를 남기는데 이 기록은 '제5복음서'처럼 언제 누구에게 전해질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15세기 중반 당시에는 그 주체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겐스플라이슈)였든 미헬 멜처였든,
"인쇄술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소설 세 권을 읽어보니 '제5복음서'와 '이단'이라는 일관된 주제와 액자식 구성의 동일한 이야기 방식에 진부함이 없지 않았는데, 1998년작 [구텐베르크의 가면]은 주인공 미헬 멜처의 콘스탄티노플과 베네치아를 거친 마인츠로의 여행 과정에서 전개되는 딸 에디타에 대한 부녀지간 사랑과 아름다운 여인 시모네타 등과의 애정 행각 등은 지루함을 한층 배가시키는 군더더기 같은 점이 다소 있기도 했다. 한편, 소설의 주된 내용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겐스플라이슈)의 배신과 인쇄술 독점과 장악 과정은 정작 마인츠를 다룬 마지막 장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발견한 내 취향저격 '이단' 역사소설가 필리프 반덴베르크를 알게 된 김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마지막 한 권 [파라오의 음모](1990)는 중고로 구입하여 마지막으로 더 읽어보고자 한다.
그리고는 이제 반가웠던 나의 취향저격 작가 필리프 반덴베르크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해야겠다.

***

1. [구텐베르크의 가면(Der Spiegelmacher)](1998), Philipp Vandenberg, 최상안 옮김, <한길사>, 2001.
2. [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1988),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3.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 제5복음서의 숨겨진 비밀](1993),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4. [파라오의 음모](1990), Philipp Vandenbeg, 박계수 옮김, <한길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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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 제5복음서의 숨겨진 비밀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3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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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티칸에 잠복된 '폭탄'
- [미켈란젤로의 복수]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필리프 반덴베르크, 1988~1993.


1.

"송형은 왜 종교 관련 책을 읽는 거요?"

동네에서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이진 선배가 물었을 때, 나는 바로 "이단" 때문이라 대답했다.

종교가 없는 내가 기독교 관련 책을 가끔 읽는 이유는, 수천년 동안 견고했던 지식의 성벽에 균열을 내는 온갖 의심과 기득권에 반하는 다른 지식에 관한 이야기에 끌렸기 때문이다. 중세의 밀교와 종교개혁, 근대의 과학과 유물론 등 가톨릭 기득권이 규정한 '이단'들은 바로 그 균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세상 만물의 운동과 진화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온갖 '이단'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 연장선 상에서 최근 우연히 발견한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독일 저널리스트 필리프 반덴베르크(Philipp Vandenberg : 1941~)다.

필리프 반덴베르크는 독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다가 기자가 되었고 1973년에 [파라오의 저주]라는 소설로 작가가 되었다. 이후 저널리스트다운 현장조사와 문학 및 미술사 전공자다운 연구를 통해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기득권 주류 역사 속 이면의 이야기들을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도에 번역된 반덴베르크는 21세기 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2003)가 인기를 끌기 전 20세기에 수많은 '이단'들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으로 상징되는 정통 가톨릭의 권위에 균열을 내는 반덴베르크의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을 읽어보았다.


2.

"예언자들 중 가장 지식이 풍부한 '예레미아',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하고 있는 예언자, 이 '예레미아'가 문자들의 열쇠일 것이 분명했다... 
'아불라피아(ABULAFIA)' 하고 옐리넥은 읽었다. 그렇다. '아불라피아'는 교회가 저주를 내리고 있는 카발라 추종자의 이름이었다. 카발라는 12세기 중반쯤에 서부지방에서 생겨나서 그곳으로부터 에스파냐로, 나중에 이탈리아로 전파되었고, 교회에 무서운 손상을 입혔던 유대 밀교였다."
- [미켈란젤로의 복수], <저주받은 이름>, 필리프 반덴베르크, 1988.

피렌체 출신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제단화를 그렸을 때, 일찍이 열네살부터 붓 대신 끌을 잡기로 결심했던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조각가인 본인에게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게 한 사실에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는 신약성서를 그리라는 교황의 요청과 달리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창세기부터 아담과 이브의 창조와 추방, 노아의 대홍수 같은 구약성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렸고 둘레를 그리스식 남녀 예언자들로 장식했다. 일반적으로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세속적인 '복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덴베르크는 '미켈란젤로의 복수'라는 모티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12세기 유대 밀교 카발라와 신비주의를 덧입혀 가톨릭 교리 전체에 도전하는 거대한 프로그램을 역추적하여 구성해 낸다. 16세기 초에 작업한 시스티나 천장화가 복원 완료된 것이 1989년인데 그 과정에서 '지식'의 예언자 '예레미아'로부터 시작하여 알파벳 여덟 글자가 그림 곳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처음에는 'A-I-F-A-L-U-B-A'로 알려진 이 기호 배열의 해석을 위해 교황청에서는 교리 담당 옐리넥 추기경을 중심으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조직하는데, 바티칸의 비밀서고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서에 반하는 사실들이 드러난다.

연구 결과 동방의 예언자 '예레미아'는 본래 글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썼기에 문자의 배열은 뒤집어져야 했고, 그에 따라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숨겨져 있다가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아이파루바(AIFALUBA)'는 사실 '아불라피아(ABULAFIA)'였으며, '아불라피아'는 13세기에 교황 니콜라우스 3세에 의해 화형당한 유대 카발라 신자였다는 것이다.

1978년도에 32일간 재위하고는 급사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비밀유품에서 발견한 미켈란젤로의 문서들 속에서 카발라 신비주의자 '아불라피아'의 기록을 발견한 교리(이념) 담당 옐리넥 추기경은 그 내용의 폭발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한편, 바티칸의 정치적 실세인 국무 추기경과 경제적 실세인 재정담당 추기경은 '아불라피아'와 미켈란젤로가 알고 있던 비밀을 덮고 가톨릭 권력의 유지를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를 암살하기까지 한 바 있다. 믿거나 말거나 32일 교황인 요한 바오로 1세는 이 엄청난 '비밀'을 다루기 위해 종교회의를 소집한다는 발표 하루 전 선종했다는 것이다.
옐리넥 추기경이 안고 가려던 '폭탄'은 이미 바티칸이 2천년 동안 안고 있던 '진실'이었다.

"... 문서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느님, 여기 씌어 있는 것이 사실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니콜라우스 3세 교황이 감추고자 했던 바로 그 진실이었다. 그러니까 미켈란젤로가 카발라 추종자들에게서 들었던 바로 그 진실이었다. 그리고 교황청이 너무나도 두려워서 나치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진실이었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가 신앙문제 종교회의를 열 계획을 세우게 만든 바로 그 진실이었다."
- [미켈란젤로의 복수], <다 이루었도다>, 필리프 반덴베르크, 1988.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유품에서 나온 미켈란젤로의 유품에서는 카발라 교도 '아불라피아'의 기록이 발견된다. 아불라피아는 이 기사를 통해 역시 카발라 교도 시몬 벤 예루킴이 예수의 시체를 옮겨 자신의 무덤에 매장하였는데 카발라교에서 예수의 시체를 훔친 이유가 예수의 신격화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함이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또한 이 '진실'은 나치의 손에도 들어갔고 결국 바티칸이 나치 전범들의 남미 이주를 지원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단다.

원제가 [시스티나의 음모]인 반덴베르크의 이야기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는 또 다른 소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로 이어진다.


3.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저서인)... [그림에 대하여]... 신적인 그림에 대한 암시... '그 모양은 독수리와 장미에 둘러싸인 곳, 가슴에는 비밀을 품고, 넉넉한 연단(녹을 방지하는 도료) 아래서 종려나무를 쓰러뜨릴 힘을 가진 것'이라고 되어 있어요. 미술사가들은 여러 세대가 지나도록 이 묘사가 뜻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다가 마지막에 이 그림이 사라졌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사라졌다고 생각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실은 [장미원의 성모]였던 것이죠."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단테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3.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의 원제는 [제5복음서]다. 

내용은 전작 [미켈란젤로의 복수(시스티나의 음모)]와 이어지지 않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미켈란젤로의 복수]는 옐리넥 추기경의 진실 추적이 액자식 구성처럼 예언자 '예레미아'를 자처하는 반신불구의 수도승의 이야기로서 전해지며, 화자인 '예레미아' 수사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아 진실 은폐를 위해 바티칸에 의해 감금된 옐리넥 추기경으로 암시된다. 
한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제5복음서)]은 전혀 이어지지 않는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그 소재와 주제는 동일하다.

미국의 독일 출신 비교문학자 마르크 포시우스 교수가 프랑스 파리의 박물관에 진열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장미원의 성모]에 황산을 뿌린 이유는 성모의 목에 처음 그려진 여덟 보석의 목걸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1999년에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 숨겨진 문자를 알리기 위해 염산을 뿌린 페터 뎀프의 [보쉬의 비밀]처럼 20세기에는 명화들에 대한 의심에 찬 테러들이 횡행했던 것 같다. 

아무튼, 미술사 전공자답게 반덴베르크는 전작의 미켈란젤로에 이어 이번에는 미켈란젤로의 르네상스 라이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속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을 다룬다.

아마도 첫번째 [암굴의 성모]로 추정되는 그림 [장미원의 성모] 속 성모 마리아의 목에 원래 그려진 목걸이는 루비와 자수정 등 8가지 보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보석들의 첫 글자 배열은 또 하나의 이름을 지칭한다. 그 이름은 '바라바(Barabbas)'다. 성경에서는 빌라도 총독이  예수를 고발한 유대 랍비들에게 '나사렛 예수'와 폭도 '예수 바라바' 중 누구를 살릴 것인지 물었고 유대인들은 '복음서'에서 '강도' 또는 '폭도'로 부른 '바라바'를 살리고 '나사렛 예수'를 죽이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유대 이름 '예수'는 흔했지만 여기서 예수와 바라바 모두 '예수'였던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에서도 이 '바라바'라는 역사속 유령같은 인물을 쫓아 바티칸의 대응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을 종횡무진하는 모험담까지 전개되지만, 오랜 '진실'을 담은 주제는 하나다.

"난외주석들에는 이 구절들이 나타난 여러 복음서의 장절들이 표시되어 있다고 보아야겠죠. 그러니까 '바라바(Barabbas)'는 이 '다섯번째 복음서'의 저자를 뜻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사실만으로는 이 이름을 둘러싸고 있는 폭발력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바라바'라는 이름은 어떤 비밀스러운 의미를 감추고 있는게 분명해요. 그것은 일종의 '코드' 같아요. 오직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 말을 아는 거죠. 마치 놀라운 의미를 가진 비밀로 들어가는 열쇠 같은 것 말예요."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제5복음서>,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3.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는 마가(마르코)-마태(매튜)-루가(루크)-요한(존)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쓴 예수의 생애인데, 마리아의 수태고지 및 예수의 수난과 처형, 그리고 부활을 전하는 기사들이다. 이들은 가톨릭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서 신격화하는 사명을 담은 이야기들로서 예수 사후 수십년 지나서 씌어진 기록들이다.
그런데 단테는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이어지던 천재들의 신비로운 비밀결사 '기사단'은 '바라바'라는 예수와 동시대 인물의 기록을 담은 양피지 문서를 토대로 또 하나의 복음서인 '제5복음서'를 계승하면서 전승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제5복음서'는 '4대 복음서'의 원본이다. 당대의 천재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 단테 사후 15년이나 지나서 첫 필사본이 나온 것이라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 그림에 숨겨진 목걸이 등은 '제5복음서'의 저자이자 예수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바라바'의 존재와 그가 전하고자 했던 예수 이야기를 세상에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속 인물들의 모험을 통해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실은, '제5복음서'의 저자인 '예수 바라바'는 '나사렛 예수'와 그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의 '아들'이었다는 것인데, '바라바'가 '성혈'이자 '성배' 그 자체가 되는 이 '진실'은 가톨릭 권력의 상징인 바티칸이 2천년 간 은폐해야 했던 가장 무서운 잠복된 '폭탄'이기도 하다.

[제5복음서]를 통해 반덴베르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름아닌 '예수의 부활'은 거짓이며, 예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진실'이었던 것이다.

***

1. [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1988),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2.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 제5복음서의 숨겨진 비밀](1993),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3. [보쉬의 비밀(Das Geheimnis des Hieronymus Bosch)](1999), Peter Dempf, 정지인 옮김, <생각의 나무>, 2006.
4. [성혈과 성배](1982), 헨리 링컨/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5.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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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4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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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티칸에 잠복된 '폭탄'
- [미켈란젤로의 복수]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필리프 반덴베르크, 1988~1993.


1.

"송형은 왜 종교 관련 책을 읽는 거요?"

동네에서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이진 선배가 물었을 때, 나는 바로 "이단" 때문이라 대답했다.

종교가 없는 내가 기독교 관련 책을 가끔 읽는 이유는, 수천년 동안 견고했던 지식의 성벽에 균열을 내는 온갖 의심과 기득권에 반하는 다른 지식에 관한 이야기에 끌렸기 때문이다. 중세의 밀교와 종교개혁, 근대의 과학과 유물론 등 가톨릭 기득권이 규정한 '이단'들은 바로 그 균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세상 만물의 운동과 진화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온갖 '이단'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 연장선 상에서 최근 우연히 발견한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독일 저널리스트 필리프 반덴베르크(Philipp Vandenberg : 1941~)다.

필리프 반덴베르크는 독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다가 기자가 되었고 1973년에 [파라오의 저주]라는 소설로 작가가 되었다. 이후 저널리스트다운 현장조사와 문학 및 미술사 전공자다운 연구를 통해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기득권 주류 역사 속 이면의 이야기들을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도에 번역된 반덴베르크는 21세기 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2003)가 인기를 끌기 전 20세기에 수많은 '이단'들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으로 상징되는 정통 가톨릭의 권위에 균열을 내는 반덴베르크의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을 읽어보았다.


2.

"예언자들 중 가장 지식이 풍부한 '예레미아',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하고 있는 예언자, 이 '예레미아'가 문자들의 열쇠일 것이 분명했다... 
'아불라피아(ABULAFIA)' 하고 옐리넥은 읽었다. 그렇다. '아불라피아'는 교회가 저주를 내리고 있는 카발라 추종자의 이름이었다. 카발라는 12세기 중반쯤에 서부지방에서 생겨나서 그곳으로부터 에스파냐로, 나중에 이탈리아로 전파되었고, 교회에 무서운 손상을 입혔던 유대 밀교였다."
- [미켈란젤로의 복수], <저주받은 이름>, 필리프 반덴베르크, 1988.

피렌체 출신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제단화를 그렸을 때, 일찍이 열네살부터 붓 대신 끌을 잡기로 결심했던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조각가인 본인에게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게 한 사실에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는 신약성서를 그리라는 교황의 요청과 달리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창세기부터 아담과 이브의 창조와 추방, 노아의 대홍수 같은 구약성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렸고 둘레를 그리스식 남녀 예언자들로 장식했다. 일반적으로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세속적인 '복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덴베르크는 '미켈란젤로의 복수'라는 모티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12세기 유대 밀교 카발라와 신비주의를 덧입혀 가톨릭 교리 전체에 도전하는 거대한 프로그램을 역추적하여 구성해 낸다. 16세기 초에 작업한 시스티나 천장화가 복원 완료된 것이 1989년인데 그 과정에서 '지식'의 예언자 '예레미아'로부터 시작하여 알파벳 여덟 글자가 그림 곳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처음에는 'A-I-F-A-L-U-B-A'로 알려진 이 기호 배열의 해석을 위해 교황청에서는 교리 담당 옐리넥 추기경을 중심으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조직하는데, 바티칸의 비밀서고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서에 반하는 사실들이 드러난다.

연구 결과 동방의 예언자 '예레미아'는 본래 글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썼기에 문자의 배열은 뒤집어져야 했고, 그에 따라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숨겨져 있다가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아이파루바(AIFALUBA)'는 사실 '아불라피아(ABULAFIA)'였으며, '아불라피아'는 13세기에 교황 니콜라우스 3세에 의해 화형당한 유대 카발라 신자였다는 것이다.

1978년도에 32일간 재위하고는 급사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비밀유품에서 발견한 미켈란젤로의 문서들 속에서 카발라 신비주의자 '아불라피아'의 기록을 발견한 교리(이념) 담당 옐리넥 추기경은 그 내용의 폭발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한편, 바티칸의 정치적 실세인 국무 추기경과 경제적 실세인 재정담당 추기경은 '아불라피아'와 미켈란젤로가 알고 있던 비밀을 덮고 가톨릭 권력의 유지를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를 암살하기까지 한 바 있다. 믿거나 말거나 32일 교황인 요한 바오로 1세는 이 엄청난 '비밀'을 다루기 위해 종교회의를 소집한다는 발표 하루 전 선종했다는 것이다.
옐리넥 추기경이 안고 가려던 '폭탄'은 이미 바티칸이 2천년 동안 안고 있던 '진실'이었다.

"... 문서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느님, 여기 씌어 있는 것이 사실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니콜라우스 3세 교황이 감추고자 했던 바로 그 진실이었다. 그러니까 미켈란젤로가 카발라 추종자들에게서 들었던 바로 그 진실이었다. 그리고 교황청이 너무나도 두려워서 나치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진실이었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가 신앙문제 종교회의를 열 계획을 세우게 만든 바로 그 진실이었다."
- [미켈란젤로의 복수], <다 이루었도다>, 필리프 반덴베르크, 1988.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유품에서 나온 미켈란젤로의 유품에서는 카발라 교도 '아불라피아'의 기록이 발견된다. 아불라피아는 이 기사를 통해 역시 카발라 교도 시몬 벤 예루킴이 예수의 시체를 옮겨 자신의 무덤에 매장하였는데 카발라교에서 예수의 시체를 훔친 이유가 예수의 신격화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함이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또한 이 '진실'은 나치의 손에도 들어갔고 결국 바티칸이 나치 전범들의 남미 이주를 지원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단다.

원제가 [시스티나의 음모]인 반덴베르크의 이야기 [미켈란젤로의 복수](1988)는 또 다른 소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로 이어진다.


3.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저서인)... [그림에 대하여]... 신적인 그림에 대한 암시... '그 모양은 독수리와 장미에 둘러싸인 곳, 가슴에는 비밀을 품고, 넉넉한 연단(녹을 방지하는 도료) 아래서 종려나무를 쓰러뜨릴 힘을 가진 것'이라고 되어 있어요. 미술사가들은 여러 세대가 지나도록 이 묘사가 뜻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다가 마지막에 이 그림이 사라졌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사라졌다고 생각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실은 [장미원의 성모]였던 것이죠."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단테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3.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1993)의 원제는 [제5복음서]다. 

내용은 전작 [미켈란젤로의 복수(시스티나의 음모)]와 이어지지 않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미켈란젤로의 복수]는 옐리넥 추기경의 진실 추적이 액자식 구성처럼 예언자 '예레미아'를 자처하는 반신불구의 수도승의 이야기로서 전해지며, 화자인 '예레미아' 수사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아 진실 은폐를 위해 바티칸에 의해 감금된 옐리넥 추기경으로 암시된다. 
한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제5복음서)]은 전혀 이어지지 않는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그 소재와 주제는 동일하다.

미국의 독일 출신 비교문학자 마르크 포시우스 교수가 프랑스 파리의 박물관에 진열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장미원의 성모]에 황산을 뿌린 이유는 성모의 목에 처음 그려진 여덟 보석의 목걸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1999년에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 숨겨진 문자를 알리기 위해 염산을 뿌린 페터 뎀프의 [보쉬의 비밀]처럼 20세기에는 명화들에 대한 의심에 찬 테러들이 횡행했던 것 같다. 

아무튼, 미술사 전공자답게 반덴베르크는 전작의 미켈란젤로에 이어 이번에는 미켈란젤로의 르네상스 라이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속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을 다룬다.

아마도 첫번째 [암굴의 성모]로 추정되는 그림 [장미원의 성모] 속 성모 마리아의 목에 원래 그려진 목걸이는 루비와 자수정 등 8가지 보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보석들의 첫 글자 배열은 또 하나의 이름을 지칭한다. 그 이름은 '바라바(Barabbas)'다. 성경에서는 빌라도 총독이  예수를 고발한 유대 랍비들에게 '나사렛 예수'와 폭도 '예수 바라바' 중 누구를 살릴 것인지 물었고 유대인들은 '복음서'에서 '강도' 또는 '폭도'로 부른 '바라바'를 살리고 '나사렛 예수'를 죽이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유대 이름 '예수'는 흔했지만 여기서 예수와 바라바 모두 '예수'였던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에서도 이 '바라바'라는 역사속 유령같은 인물을 쫓아 바티칸의 대응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을 종횡무진하는 모험담까지 전개되지만, 오랜 '진실'을 담은 주제는 하나다.

"난외주석들에는 이 구절들이 나타난 여러 복음서의 장절들이 표시되어 있다고 보아야겠죠. 그러니까 '바라바(Barabbas)'는 이 '다섯번째 복음서'의 저자를 뜻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사실만으로는 이 이름을 둘러싸고 있는 폭발력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바라바'라는 이름은 어떤 비밀스러운 의미를 감추고 있는게 분명해요. 그것은 일종의 '코드' 같아요. 오직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 말을 아는 거죠. 마치 놀라운 의미를 가진 비밀로 들어가는 열쇠 같은 것 말예요."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제5복음서>, 필리프 반덴베르크, 1993.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는 마가(마르코)-마태(매튜)-루가(루크)-요한(존)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쓴 예수의 생애인데, 마리아의 수태고지 및 예수의 수난과 처형, 그리고 부활을 전하는 기사들이다. 이들은 가톨릭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서 신격화하는 사명을 담은 이야기들로서 예수 사후 수십년 지나서 씌어진 기록들이다.
그런데 단테는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이어지던 천재들의 신비로운 비밀결사 '기사단'은 '바라바'라는 예수와 동시대 인물의 기록을 담은 양피지 문서를 토대로 또 하나의 복음서인 '제5복음서'를 계승하면서 전승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제5복음서'는 '4대 복음서'의 원본이다. 당대의 천재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 단테 사후 15년이나 지나서 첫 필사본이 나온 것이라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 그림에 숨겨진 목걸이 등은 '제5복음서'의 저자이자 예수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바라바'의 존재와 그가 전하고자 했던 예수 이야기를 세상에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속 인물들의 모험을 통해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실은, '제5복음서'의 저자인 '예수 바라바'는 '나사렛 예수'와 그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의 '아들'이었다는 것인데, '바라바'가 '성혈'이자 '성배' 그 자체가 되는 이 '진실'은 가톨릭 권력의 상징인 바티칸이 2천년 간 은폐해야 했던 가장 무서운 잠복된 '폭탄'이기도 하다.

[제5복음서]를 통해 반덴베르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름아닌 '예수의 부활'은 거짓이며, 예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진실'이었던 것이다.

***

1. [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1988),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2.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 제5복음서의 숨겨진 비밀](1993), Philipp Vandenberg, 안인희 옮김, <한길사>, 2000.
3. [보쉬의 비밀(Das Geheimnis des Hieronymus Bosch)](1999), Peter Dempf, 정지인 옮김, <생각의 나무>, 2006.
4. [성혈과 성배](1982), 헨리 링컨/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5.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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