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 세상의 기준에 좌절하지 않는 어른의 생활법
양승렬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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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
- [논어], 김영 평역, 2014. /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양승렬, 2024


"사회가 혼란해지자 몇몇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위한 대책과 사상을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들을 학파로 구분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불렀습니다. '제자'는 많은 스승을, '백가'는 다양한 학파를 뜻합니다. 이들 중에서 이른 시기에 사람들에게 크게 인정받으며 우뚝 선 사람이 '공자'였습니다. 공자가 유명세를 떨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학설을 주장하며 스승을 자처했습니다. 그 중에는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공자는 그들을 '이단(異端)'으로 지칭했습니다."
-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2-37>, 양승렬, 2024.


중국 춘추전국시대 분열의 역사적 시작점은 다양성의 시작이기도 했다. 바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었다. 분열과 혼란의 시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사상, 시대개척의 대책들이 발전했다. 
중국의 긴 역사에서 대륙통일의 반복이 그들의 지향점이었다면, 그 시간의 1/3은 분열과 혼란의 시간들이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를, 5호16국 시대는 '다문명'의 충돌과 혼합을, 5대10국은 한 단계 진보하는 거대문명의 중간 분열 과정을, 현대 국공내전은 진보사상의 승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 문명에서 '다양성'의 출발은 기원전의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였고, 그 시작은 바로 '공자'였다.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
- [논어(論語)], <2편. 위정>

기원전 5세기 공자의 유가는 수세기 전 주나라의 예법에 따른 정치사회를 추구했고, 그 기본은 현실 정치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인간들의 내면적 성품인 '인의(仁義)'를 기반으로 '덕치(德治)'의 정치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주의적이면서 한편으로 현실주의적 사상이었다. 이것이 '유교(儒敎)'가 아닌 '유가(儒家)'다. 이러한 '유가' 사상에 대한 반박으로 쟁명한 사상들이 '제자백가'였고, 공자는 '인의'와 '덕치'를 가볍게 여기는 다른 사상들을 '이단(異端)'이라 하여 "열심히 외쳐봐야 해로울 뿐(攻乎異端, 斯害也已)"이라고 하였다.


"[논어]는 공자가 제자 및 당시 사람들과 응답한 것, 제자들이 서로 나눈 대화와 스승의 말을 접해 들은 것을 제자들이 각기 기록하였다가 공자가 죽은 뒤 문인들이 서로 모아 논찬한 것인데, 그래서 이 책을 [논어(論語)]라 한다."
- [한서], <예문지>, 반고.


국문학자 김영 교수가 2014년 편역한 [논어] <서장>에 나오는 반고의 [한서] <예문지>가 설명한 [논어]다. 공자는 비슷한 시기 서양의 소크라테스처럼 글을 남기지 않고 '말'을 남겼다. 소크라테스가 제자 플라톤의 저서로 남았듯, 공자의 말씀도 3천명에 이르렀다는 수많은 제자와 문인들의 기록인 [논어]로 남았다. 

[논어(論語)]는 스승이자 선현이며 군자의 모범으로서 공자의 '말(語)'을 후학들이 '논평(論)'한다는 의미로 총 20편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공자가 가장 중요한 기본태도로 삼았던 배움에 관한 <1편. 학이>부터 그 다음의 중요한 실천인 정치를 <2편. 위정>에서 다룬다. 제자들과의 다양한 대화는 <3. 팔일>, <4. 이인>,<5. 공야장>, <6. 옹야>, <7. 술이>, <8. 태백>, <9. 자한>, <10. 향당>, <11. 선진>, <12. 안연>, <13. 자로>, <14. 헌문>, <15. 위령공>, <16. 계씨>, <17. 양화>, <18. 미자>, <19. 자장>을 거쳐 마지막편 <20. 요왈>로 마무리된다.


"[논어]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소재가 '말과 실천'입니다. 말은 늘 조심히 바르게 하고 행동이 앞서야 한다는 가르침이 반복됩니다... [논어]를 구조적으로 살펴 보면 가장 첫 문장은 배우고 익히는 실천의 즐거움을 말하고, 마지막 문장은 말의 중요성으로 끝납니다."
-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2-57>, 양승렬, 2024.


[논어]에는 공자가 가장 앞세운 '인(仁)'이 100번 넘게 나온다고 하는데, 이를 기반으로 '지식'이나 '배움'을 아우르는 '학(學)'과, 그것이 경지에 오른 이상적 '군자(君子)', 이들의 '말과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가 핵심 주제어라고 할 수 있겠다.

[논어]의 첫 문장은 다음의 유명한 글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논어], <1편. 학이>

때때로 혹은 수시로, 아니면 때에 알맞게 배우면 좋고, 친구가 멀다 않고 오면 즐거운데, 남이 몰라준다 서운해하지 않는 군자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선행기언, 이후종지(先行其言, 而後從之)"
- [논어], <2편. 위정>

그 다음으로 이 군자가 말을 앞세우지 않고 당당히 실천하면서 그에 따라 말을 하는 모습은 공자가 살던 혼란한 시대 '정치'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 [논어], <14편. 헌문>

이런 공자를 당대 사람들은, 현실에서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실천하려는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으로 칭한다.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
- [논어], <12편. 안연>

이런 사람은 "자신을 이겨내고 '예'를 중시(克己復禮)"하면서 '인(仁)'을 실천한다.

"아욕인, 사인지의(我欲仁, 斯仁至矣)"
- [논어], <7편. 술이>

이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 속에서 바로 닿는" 것이 역시 '인'이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 [논어], <2편. 위정>

'군자'는 그렇다고 모든 걸 아는 척 하지 않는다. 공자는 고지식하다는 선입견과 달리 말을 아끼고 실천을 중시하며 겸손하게 평생  배움의 태도를 견지했다고 한다. 공자에게 '지식'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 하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이었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 [논어], <1편. 학이>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 [논어], <15편. 위령공>

그러므로, 공자에게 '과오'는 "즉시 인정하고 고쳐야 하는 것(過則勿憚改)'이었으며, 그렇지 못한 것 자체가 '과오'였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논어], <15편. 위령공>

'극기복례' 못지 않게 유명한 [논어]의 가르침이 "내게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인데, 이 또한 '군자'의 중요한 실천 덕목이다.

그러나 공자 자신을 비롯하여 '군자'는 완성형이 아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늘 공부하고 배우며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한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논어], <2편. 위정>

"생각없이 공부만 하면 어둡고(學而不思則罔), 배움없이 잔머리만 굴리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

"군자태이불교, 소인교이불태(君子泰而不驕, 小人驕而不泰)"
- [논어], <13편. 자로>

그렇게 '군자'는 언제 어디서든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면서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게 되는데, 이런 '군자(君子)'와 정반대로 사는 사람들은 '소인(小人)'이 된다.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 [논어], <4편. 이인>

'인'을 실천하는 군자는 항상 '의(義)'를 염두에 두고 깨우치려 애쓰는 반면, 소인배들은 항상 '이익(利)'만을 앞세운다.

안중근 의사가 잘린 손가락 인장을 찍은 [논어] 인용글은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보라(見利思義)"는 문장이었다. 그는 식민 현실에 처할 "나라의 위기를 보며 목숨을 바쳤다(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 [논어], <14편. 헌문>

어려운 가정형편에 15세에 공부를 시작했으나 30세에 인격적으로 독립(而立:이립)하고 40세에는 흔들림 없던(不惑:불혹) 공자, 50세 천명을 알고(知天命:지천명), 60세에는 유연함의 극치를 이룬(耳順:이순) 후 70세 인생 말년에 무엇을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從心所欲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 그가 했던 또 하나의 멋진 문장이 있다.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 [논어], <9편. 자한>

'지인용(知仁勇)'을 갖춘 '군자'는 '흔들림 없고(不惑)', '근심 없이(不憂)', 두려움 없는(不懼)' 사람이라는데, 참으로 이상주의적이다. 이는 맹자가 계승하고자 했던 공자 사상의 요체라 할 수 있다.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 [논어], <16편. 계씨>

내가 [논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위 문장인데, 군자가 실천하는 정치는 결국 "부족함이 아닌 공평하지 못함을 근심(不患寡而患不均)"하는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이다.

작가 양승렬 선생은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소재로 하여 [논어]의 가르침을 2부 20장 총 64편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공자의 2,500년 동안의 가르침은 물론 조선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논어]를 깨우친 작가 본인의 교훈이 어우러져 홀로 머리맡에 두고 하루 한 편, 한 문장씩 곱씹어볼 만한 좋은 책이다.


***

1. [논어(論語)](기원전 5세기~), 김영 평역, <청아출판사>, 2014.
2.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양승렬, <한빛비즈>, 2024.
3. [백가쟁명(百家爭鳴) - 이중톈 중국사 6](2014),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5.
4. [맹자(孟子)], 조관희 평역, <청아출판사>, 2014.
5. [불변과 만변(不變與萬變)](2021), 거젠슝, 김영문 옮김, <역사산책>,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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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6 : 백가쟁명 이중톈 중국사 6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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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비판'은 '비판의 무기'를 대신할 수 없다
- [백가쟁명], 이중톈, 2014.


"그런데 노선의 선택은 아주 분명했다. 대체적으로 도가는 천도(天道)를, 묵가는 제도(帝道)를, 유가는 왕도(王道)를, 법가는 패도(覇道)를 중시했다. 천도를 중시하여 태곳적으로 돌아가려 했고 제도를 중시하여 요순시대로 돌아가려 했으며 왕도를 중시하여 상나라, 주나라 시대로 돌아가려 했다. 이것들은 모두 과거로의 회귀였다. 오직 패도를 중시해야 다가오는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법가가 승리를 거뒀다."
- [백가쟁명], <6. 제도와 인성>, 이중톈, 2014.


중국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중국의 역사에서 '유년기'를 지난 '청춘기' 정도 될 수 있겠다. 주나라로부터 '국가' 문명을 매개로 덕치와 예치의 제도적 틀이 갖춰졌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사상이 다양해지고 혼란해지기도 했던 '사춘기' 같기도 했다.

춘추시대의 낭만과 덕망은 '유가'의 시조인 공자의 눈에는 혼돈과 분열의 시대였기에 오래 전 통일의 시대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아 주공단이 정초한 '덕치(德治)'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지만, 이미 '이익'에 눈을 뜬 분열의 동시대 사람들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은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은, 기원전의 수백년에 걸친 이 치열한 사상투쟁이 공자 이후의 묵자와 노자 및 장자의 공자에 대한 반박으로부터 촉발되었다는 말이다.

공자는 '인(仁)', 즉 '사랑'에 기반한 인간관계와 '덕(德)'으로 다스려지는 사회를 꿈꾸었지만, 
노동과 자치를 중시한 묵자는 공자의 '인애'가 신분제 질서에 갇힌 '사랑'이라면서 남녀노소와 국경을 초월한 '겸애'로 대체하며 '평등'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이에 노자는 더 나아가 '물'과 같은 유연함과 '무위'로써 자연과 합일을 추구했고 장자는 '소요유'를 통해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극단의 '자유'를 중시했다.
맹자는 공자의 '인'에 더하여 '의(義)', 즉 정의로운 '대장부'의 삶을 통해 공자를 계승했다.
반면 순자는 전국시대 백가쟁명의 총아로서 인간의 악을 방비하는 '법가'를 예비하면서 공자를 이어가고자 했다.
그렇게 춘추전국시대 백가쟁명의 마무리는 '법가'의 대명사 한비자가 맡게 된다.

'괴력난신'의 귀신도, 전지전능한 종교적 신도 믿지 않고 오로지 현세적 인간관계로서 정치만을 중시한 공자는 '인의'와 '덕치'를 강조한 '이상주의자'로서 "안되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실천하고자 했던(知其不可而爲之;지기불가이위지-[논어])" 불세출의 사상가였지만 제후귀족 중심의 신분제를 벗어나지 못한 다분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공자를 비판한 묵가의 묵자는 '노동'에 기반하며 차별없는 '겸애'를 실천하는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군주국가를 건설하자는 일종의 기원전의 '사회주의'로 분류될 수 있다.
당시로서 유일한 국가권력 형태로서 군주제를 역시 지향하되 '무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군주를 말한 노자와, 이런 것 저런 것 다 필요 없이 극단의 자유를 주장한 장자는 두 가지 형태의 '무정부주의'의 면모도 보인다.
공자를 두 방향으로 계승한 맹자와 순자를 거쳐 한비자는 세상 가장 못 믿을 것이 '인간'임을 설파하며 '법'과 '제도'로서 인간 사회의 처절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며 그 주체로서 강력한 군국주의를 강조한 '국가주의자'였다.


"법가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동은 커녕 소강도 이미 지나가버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단지 세상을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만 있어도 성공이었다. 그러면 누가 다스릴 것인가? 군왕이 다스리는 것이 옳았다. 또한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법에 따라 다스려야 했다."
- [백가쟁명], <2. 이상적인 사회>, 이중톈, 2014.


'중국사 시리즈' 통사 36권을 집필 중인 중국의 대중역사가 이중톈도 중국의 '사춘기' 또는 '청춘기'로서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을 피해갈 수 없다. 다만, 이중톈 답게 군더더기 없이 요점과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추리소설을 엮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중톈의 중국사 시리즈' 제6권 [백가쟁명(百家爭鳴)](2014)은 유가는 무엇이고 묵가와 도가, 그리고 법가는 무엇인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그 사상들의 정의와 기원 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라 치면 수백수천 페이지를 써도 모자랄 것이며 대중역사서가 될 수도 없을게다. 이중톈은 다만, '백가쟁명'의 문을 연 공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 무기'로서 '인애'와 '덕치'의 사상을 주장했고, 이를 반박한 묵자의 '사회주의'는 '겸애'와 '노동'을, 다른 한편의 '무정부주의' 노자와 장자는 '무위'와 '자유'를 통해 공자가 시작한 유가 사상이라는 '무기'에 대한 '비판'을 행했다는 식으로 역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상대를 죽여야만 나의 생존이 보장되는 전국시대에 들어 선 후, 공자의 뒤를 이어 유가의 전통을 계승하는 맹자는 '선을 지향'하는 사회를 꿈꾸는 정의로운 대장부였지만, 이런 맹자의 '이상주의'를 비판하며 인간의 본래적인 '악을 방비'하는 사회제도를 주장하는 순자를 거친 한비자는 법가의 '집대성자'([백가쟁명], <6장>)로서 전국시대의 끝장과 함께 '백가쟁명'을 마무리한다.

기원전 6세기 공자의 유가가 '백가쟁명'의 시작이었다면, 기원전 3세기 법가의 '한비자'는 그 길고 긴 사상투쟁의 끝이었다.


"한비가 서민의 검을 든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한비는 전국시대 말기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때 역사는 이미 귀족과 군자의 시대에서 평민과 소인의 시대로 바뀐 상태였다. '이상주의'가 잦아들고 '공리주의'와 '실용주의'가 대두되었다, 상앙에서 한비를 거쳐 결국 법가가 우위를 점하고 새로운 시대의 대변인이 된 것은 그런 시대정신의 소산이었다.
하지만 '이상주의'는 언제나 필수 불가결했다. 사실상 꼭 실현될 보장이 없었던 그 이상들이 역설적으로 중국 문명이 아시리아 문명과 로마 문명처럼 제국의 붕괴와 함께 쇠망하는 일이 없도록 보장했다."
- [백가쟁명], <1. 세상을 구원하라>, 이중톈, 2014.


전국시대 분열의 종말과 함께 진시황의 중국 최초 통일과 한나라의 통일국가 문명 정초 과정에서, 그렇다면 법가의 '승리'가 과연 '덕치'와 '법치'의 대립으로 정리된 '백가쟁명'의 결론이었을까.

공자와 묵자, 노자/장자는 각자의 주장을 통해 오랜 옛날의 '좋은 시절'로 돌아가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묵자가 돌아가고 싶어했던 요순시대든, 공자가 꿈꾼 주공의 덕이든, 노장자의 자연적인 원시사회든, 이 모든 지향점들은 '과거'에 불과했다. 이익투쟁도 모르고 도둑도 없던 그 '대동사회'는 이중톈에 의하면 사회발전이 더디었으니 이익이랄 것도 없었고 물자도 부족했으니 훔칠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옛날 옛적'이었던 것이다.  반면, 서로 죽이거나 죽어야 하는 전국시대에는 극단적인 이익투쟁의 문명시대로서 당시의 형벌 위주의 '법치'로서 인간 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양면삼도(兩面三刀-[한비자])'가 필요한 시대였다. '양면삼도'의 '양면(兩面)'은 '상'과 '벌'이고, '삼도(三刀)'는 '권세'와 '권모술수', 그리고 '법'이다. 처절하고 잔혹한 전국시대를 끝낸 것은 유가와 묵가, 도가의 '과거'가 아니라 법가와 병가의 '현실'과 '미래'였다.

그러나 이중톈은 말한다.
'백가쟁명'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법가와 병가, 술가와 같은 '양면삼도'적 현실과 그들이 대비한 '미래'가 분명 존재하지만,
'인의예지'와 '덕치'라는 '이상주의'가 중국문화의 흐름 속에 도도히 흐른다고 말이다.

일본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교환양식D'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역사로서, 평등하고 자유로웠던 원시 상태인 '교환양식A'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자본-네이션(민족/인민)-스테이트(국가)'의 교환양식 역사에서의 현재적 '삼위일체' 요소들이 융합된 '미래'의 형태로 복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식 사상투쟁 또한 그렇다.
현재의 구체적 치열함을 기반으로 하면서 인류 역사가 일궈온 과거의 '이상주의'를 복원하는 미래가 유보되는 한, '덕치(德治)'와 '법치(法治)'가 대립하는 '백가쟁명'의 결과 또한 아직 오지 않은 지속되는 미래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무기의 비판'도 '비판의 무기'를 대신할 수없다. 치국의 논쟁을 예로 든다면, (전제주의인) 진시황과 한무제가 제자백가의 칼과 권한을 빼앗았어도 문제는 진정으로 해결되지 못했다. 안 그랬으면 훗날 (민권혁명인) 신해혁명이 일어났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300년 간의 '백가쟁명'은 사실상 결론을 내지 못했다."
- [백가쟁명], <6. 제도와 인성>, 이중톈, 2014.

***

1. [백가쟁명(百家爭鳴) - 이중톈 중국사 6](2014),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5.
2.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이상수 지음, <길>, 2001.
3. [세계사의 구조 -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2015),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비고>,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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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2 : 국가 이중톈 중국사 2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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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론'적 '키워드'로 본 '국가론'
- [국가], 이중톈, 2013.


"국가의 비밀은 바로 '도시'에 있다... 
'자유'는 '도시'의 특징이었다...
새로운 유형의 거주지가 필요했다. '안전'도 보장되고 충분한 '자유'도 누릴 수 있는.
그런 새로운 거주지는 바로 '도시'였다... 시민들의 관계는 혈연을 초월했다...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두 가지가 새롭게 생겨났다. 하나는 가족, 씨족, 부족을 초월한 '공공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관계된 '공공업무'였다... '공공규범'이 바로 '법률'이고, 공공권력은 '공권력'이며, '공공기관'은 '국가(國家)'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에게 가장 중대한 일은 어떻게 공권력을 다루느냐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을 누가 누구에게 주고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 [국가], <2. 도시는 말한다>, 이중톈, 2013.


이것이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의 '국가론'이다. 

'자유'와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이 '가족'과 '씨족(부족)'을 초월한 '시민'이 되면서 '공공'적 '권력' 관계인 '공권력'을 어떻게 위임하고 또 다루는가에 관한 이론. 
결론은 '문명의 전화'인 '문화'의 대표적 매개로서 '국가(國家)'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다.

이중톈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인도 및 미국까지 동서고금을 횡단하며 중국의 '국가론'을 정립하고자 하는데, 그의 '중국사 이야기' 제2편인 이 책 [국가(國家)](2013)는 본격적인 중국의 국가 문명인 주나라 이전인 하나라와 상(은)나라의 고대 원시 부족연맹국가 단계까지의 이야기다.

원래 나는 중국의 대중역사가 이중톈의 '중국사 이야기' 제2권인 [국가]까지 읽을 생각은 없었다. 
'공적 권력'인 '국가'와 '사적 권력'인 '자본',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더욱 강고해지는 '독점 자본'의 결합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를 살아온 나의 '국가론'은, 경제적 관계인 하부구조가 정치사회적 상부구조인 '국가'를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구성체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람시와 알튀세르 등으로부터 진화한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향처럼 하부구조인 경제체제에 대한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립성'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어느 정도의 '경제결정론'적 '국가론'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천재적인 마르크스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자연변증법'과 같이 우주만물에 적용하고 역사유물론을 '사회구성체론'과 '역사발전단계론'과 같이 도식화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대중적 노동자 철학으로 정식화함으로써 다수 노동계급을 기존의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던 '고전철학'의 진정한 상속자로 규정했던 엥겔스를 더 좋아하기도 했다. 
19세기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엥겔스)은 구체적 현실에 기반한 '실천철학(그람시)' 또는 '새로운 철학적 실천(알튀세르)'의 분기점이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2010)을 읽으면서 사회구성체적 '상부구조'만이 아니라 독립적 사회구성 요소로서의 '국가론'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고, 아마도 이중톈이라면 '초월론'적 이동(횡단)비평인 '트랜스크리틱'으로 '국가론'을 설명해줄 것 같았다.

중국인 이중톈이 서술하는 '국가론'의 결론은 결국, 현대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인 '인의'와 '덕치'의 유가 이념에 기반한 중국 문명의 전파다. 
그러나 그의 책 [국가]를 통해 내가 읽어낸 것은 각종의 '초월론'적 '키워드(핵심어)'로 엮어낸 문명전파의 도구로서 '국가론'이었다.


"... 종교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첫째는, '안전'한 느낌이다. 신의 도움과 비호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유'로운 느낌이다. 진정한 믿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아이덴티티'다.
... 종교는 국경없는 '국가'다."
- [국가], <4. 종교를 거부하다>, 이중톈, 2013.


이중톈은 사회구성체론처럼 역사 흐름의 '경제적' 배경 같은 것을 바탕에 깔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식의 '구체적 현실'보다는, 마치 칸트식의 '선험적' 또는 '초월론'적 개념을 중심으로 '국가'의 기원을 추적한다.

그 구체적 현실의 역사를 초월하여 원래부터 존재한 듯 이중톈에 의해 선별된 [국가]의 '키워드(핵심어)'들을 나열하면 이렇다.

'자유'와 '안전', '부락'과 '도시', '독립'과 '평등', '종교'와 '과학', '샤머니즘'과 '토템',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인간'.

씨족과 부락이라는 혈연집단을 이루던 인간들이 '자유'와 '안전'을 추구하며 '도시'를 형성하고, 그 도시들로 모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혈연적 조직을 떠나 개인들 간의 수많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인간'들은 비로소 '부족(씨족)민'이 아닌 '시민'이 되는데, 이런 '도시'의 성벽과 영토경계선을 기준으로 초기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형문자인 한자에서, '지역'과 '영역'을 의미하던 '역(或)'이 도시성벽 테두리를 뜻하는 '구(나라 국/에워쌀 위;囗)'와 합쳐져 '국가(國)'가 되었다.

어느 시대나 '도시'를 보면 '국가'가 보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시 종교인 '샤머니즘'과 '토템'은 특정 국가의 상징으로 전화된다.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는 다신교의 형태로, 중국의 경우는 종교나 신이 아닌 조상으로. 그리고 현대 국가는 법률의 형태로.

중국에서 '샤머니즘'은 '예악(禮樂)'이 되어 '예(禮)'는 '안전'과 '질서'를, '악(樂)'은 '자유'를 상징했단다. 또한 중국에서 '토템'은 하나라의 '들소'와 은(상)나라의 '새(제비)'를 거쳐 종교나 신이 아닌 '하늘(天)'로 진화되었다. 이렇게 '국가'가 '천하'라는 거대한 '가정'이 된 중국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조상'으로부터 '조국(祖國)'이 유래된다.
이 '종교'의 키워드는 동양의 중국 한나라로부터 유학의 '조상'과 '하늘'로 정초된 한편, 동시기 서양의 로마에서는 '법률(로마법)'로 자리를 잡는데, 이것이 현대 '국가'의 핵심어인 '법치주의'의 기원이다.

이중톈은 '중국사 이야기' 제9편 [두 한나라와 두 로마](2014)를 통해 '트랜스크리틱'한 국가 문명을 다시금 서술하기도 했다.

이중톈에 의하면 이 모든 이데올로기들은 인간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비록 그리스 소도시국가에서만 우연히 나타난 형태였지만, 이중톈은 '민주주의'는 "인류 보편적 인성과 가치에 부합"하기에 "언젠가 결국 모습을 드러낸다"([국가], <3장>)고 말한다.
18세기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현대 국가 문명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중톈의 중국사 서술은 진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식상하지 않다.
마치 추리소설 기법처럼 작은 실마리를 쫓아 거대한 역사적 실체의 비밀을 추적하는 식이다.

그의 '국가론' 또한 마찬가지다.
위에서 열거한 '형이상학'적이고, '선험적'인 듯, '초월론적 가상'인 듯한 핵심 '키워드' 개념들을 쫓고 횡단하며 서로 엮어내는 '트랜스크리틱'을 통해 '국가'의 비밀을 파헤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토템은 과연 어떻게 '법'으로 변한 것일까?
그 비밀은 '인간'에게 있다...
... 인격이 법률에서 표현한 것은 바로 '권리', 즉 '신분권'이었다... 시민권이 없으면 로마인이 아니고 자유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이덴티티'의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한 자유인이 시민권을 부여받기만 하면 로마인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것은 국가의 통치를 용이하게 만들기도 했다."
- [국가], <5. 토템이여 안녕>, 이중톈, 2013.


그러나 나는,
이중톈의 재미진 중국사 시리즈 제3권 [창시자]를 아직 읽을 생각은 없다.
[창시자]는 중국의 본격적인 국가 문명의 '창시자'인 주나라 주공 단의 이야기라는데, 은(상)나라의 인신공양 문명을 문화적으로 대체한 [주역]의 비밀을 담은 이 장대한 이야기는 리숴의 [전상(翦商)](2022)을 통해 충분히 읽었다.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중국 국가문명의 시작 이야기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 이중톈이 과연 어떻게 서술했을지 문득 궁금해질 때,
그 때가 이중톈의 중국사 이야기 제3권 [창시자]를 펼쳐볼 참이다.

***

1. [국가(國家) - 이중톈 중국사 2](2013),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3.
2.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3.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4. [트랜스크리틱](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5. [도시로 보는 유럽사], 백승종, <사우>, 2020.
6.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메디치>, 2018.
7. [두 한(漢)나라와 두 로마(Roma) - 이중톈 중국사 9](2014), 이중톈, 한수희 옮김, <글항아리>, 2016.
8. [상나라 정벌(翦商/전상/Conquest of the Shang Dynasty)](2022), 리숴(李碩),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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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 옮김 / 비고(vigo)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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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과 '비평'의 '초월론적' 이행
- [트랜스크리틱], 가라타니 고진, 2010.


"칸트의 '비판(비평)'은 끊임없는 '이동'을 포함하고 있어서 결코 안정된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라고 부른다."
- [트랜스크리틱], <2-1. 마르크스 - 이동과 비평>, 가라타니 고진, 2010.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1941~)은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고전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을 초월하여 총자본의 '유통과정'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이 자본의 자기증식과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고전적 '생산양식'을 넘어 '교환양식'의 틀에서 '세계사의 구조'를 서술한 책이 [세계사의 구조](2015)였다. 

[세계사의 구조]는 자본주의 체제를 초월하는 대항운동을 지향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요 저작이라고 하는데, 그가 잘 쓰는 비평의 한 방식인 '소행(溯行)', 즉 '거슬러 오르는' 비평의 방식에 따라 나도 가라타니 고진의 직전 저작인 [트랜스크리틱](2010)으로 역주행해 보았다.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이라는 영역의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트랜스코딩, 즉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고,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는 기획이다... [자본론]은 손쉽게 자본주의로부터의 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손쉬운 출구가 왜 있을 수 없는지를 제시함으로써만 이에 대한 실천적 개입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나는 형이상학 비판과 같은 것보다는 인간적 이성의 한계를 가차없이 드러냄으로써 실천적인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한 명의 사상가(칸트)를 의식하게 되었다. [자본론]은 헤겔과의 관계 속에서 읽는 것이 상식이지만, 나는 [자본론]에 비견될 수 있는 책은 딱 하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마르크스와 칸트를 엮기로 마음을 먹게 된 이유 중 하나다."
- [트랜스크리틱], <서문>, 가라타니 고진, 2010.


[트랜스크리틱]은 2010년도에 출판되었지만, 헤겔을 넘어서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비판적 작업을, 헤겔 이전의 사상가 임마누엘 칸트의 비판적 사고로부터 영감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적 헤겔 비판을 다시금 수행하고자 했던 가라타니 고진의 오랜 작업이었다. 이것이 '근대 관념론 사변철학의 종결자' 게오르그 빌헬름 헤겔을 사이에 두고 그 이전의 임마누엘 칸트와 그 이후의 칼 마르크스를 횡단하는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동비평)이라고 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이 창안한 개념이다. 다른 말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국가론'을 테마로 한 '초월론적 비평'이 '트랜스크리틱'인 것이며, 이러한 발상을 토대로 '캐피털(자본)-네이션(민족)-스테이트(국가)'의 '삼위일체'적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생산양식'을 넘어 '교환양식'의 틀로 관통하여 보려는 시도가 10여년 후의 [세계사의 구조](2015)인 것이다.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 사회구성체론에 의하면 '경제(자본)'라는 하부구조(토대)가 '국가(정치/시민사회)'라는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의 경향이 있다. 이는 1867년 [자본론]을 저술할 당시의 마르크스 본인의 사상이라기 보다는 마르크스 사후에 그의 비판적 사상을 '보편 사상'으로 정립하려는 엥겔스와 독일 사회민주당의 도식화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시각이다. 
[트랜스크리틱]에 의하면, 19세기부터 정식화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교조적 도그마는 마르크스 본연의 사상이 아니다.
사민주의는 결코, '자본-네이션-국가'의 자본주의적'삼위일체' 매듭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이며, '노동가치론'(생산양식)에 갇힌 노동조합 운동처럼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기제가 된다.

마르크스가 극복하려는 헤겔주의는 엥겔스와 카우츠키, 루카치 같은 그의 동지 및 후예들이 정리한 것과 같이 하나의 구성적인 완전한 사고의 체계를 유물론적으로 뒤집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그 결말이 20세기에 명멸했던 현실 국가사회주의 체제였다. 현실 공산당 정권 역시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민주의나 영국의 노동조합 운동과 다르지 않게 국가권력의 탈취와 중앙집권적 국가소유의 계획경제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인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 매듭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화하거나 존속시켰다. 
체제의 외부를 지향하는 가라타니 고진이 마르크스주의적 헤겔 극복을 넘어 칸트로 '거슬러 오른(소행)' 이유다. 


"...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초월론적'이라는 말을 굳이 버리지 않는다. 다만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트랜스크리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초월론적'인 태도는 강한 '시차'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강한 시차'... 그것은 '안티노미(이율배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 [트랜스크리틱], <1-1. 칸트 - 칸트적 전회>, 가라타니 고진, 2010.


가라타니 고진의 칸트적 '트랜스크리틱'은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경제결정론적 사회구성체론이나 노동가치론의 완결된 사상체계를 읽는 것이 아닌, 칸트의 '안티노미(이율배반)' 모순의 '시차적 관점(parallax view)'에 의해 완결된 사상일 수 없는 '물자체'의 '초월론성'이다. 경험론일 수도 없고 합리론일 수도 없이, 그렇다고 모순되는 양자의 조정과 절충도 아닌, 이율배반(안티노미)의 '사이'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관념론도 유물론도 아닌 그 '사이'에서 '시차적 관점'을 이룬다. 

모순이 결합하고 통일되어 궁극의 체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며 변화하는 '비판(비평)'적 사고다.
이것이 '트랜스크리틱'이다.

자본의 운동에서 '생산과정'의 결과인 '상품'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의 '초월론적 가상'으로서 '화폐'의 우위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화폐'가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에서 우선이고 '상품'은 그 부수적 요소라는 '전위적' 사고방식이 칸트식의 '초월론적 가상'이며 이런 횡적인 비평이 바로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이다.


"칸트나 마르크스는 끊임없이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칸트의 비판... '초월론적 비판'이란 어떤 안정된 제3자의 입장이 아니다. 그것은 트랜스버셜(횡단)한, 또는 트랜스포지셔널(전위)한 '이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칸트와 마르크스의 트랜스센덴털(초월)하거나, 트랜스포지셔널한 비판을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유통과정'을 중심에 둔 대항운동은 완전히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이며, 그렇기에 그 어떤 '자본-네이션-스테이트(국가)'도 건드릴 수가 없다. [자본론]은 이런 시점에 논리적 근거를 부여하고 있다. 분명 가치형태에서의 비대칭적 관계(상품과 화폐)는 자본을 낳지만, 그런 비대칭적 관계에는 자본관계를 종식시키는 '트랜스포지셔널'한 모멘트가 있음을 [자본론]은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이 지점을 활용하는 일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트랜스크리틱'인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서론>, 가라타니 고진, 2010.


교조적이지 않은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어느 한 체계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는 '비판(비평)'적 사고다. 이를 가라타니 고진은 헤겔을 넘어 칸트로 역주행하는 '트랜스크리틱'이라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마르크스)가 '가치'로서 발견한 것은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체계만이 아니라) '복수체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가치'에는 이미 '잉여가치', 즉 화폐가 자본으로 바뀌는 비밀이 포함되어 있다... '잉여가치'란 개별자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사회적 총자본은 '일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총자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본론]을 '국민(폴리티컬) 경제학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본론]이 자본주의를 (단일체계로서의) '폴리스(국민국가)'가 아니라 (복수체계로서의) '세계'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 것에 있다."
- [트랜스크리틱], <2-3. 마르크스 - 가치형태와 잉여가치>, 가라타니 고진, 2010.


그리하여 가라타니 고진이 발견한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이 완성한 일국 국가론의 '법철학'을 비판하고, [자본론]에서 일국이 아닌 세계적 총자본의 운동과 그 '유통과정'에서 '잉여가치'를 발견하며 고전적 '노동가치론'까지 초월하고 넘어선다. 가라타니 고진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단초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도 읽고 있다. 즉, 상부구조로서의 국가론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 요소로서의 국가(정치사회)의 발견이다. 1848년 2월 혁명을 배반한 나폴레옹 3세의 보나파르티즘이나 이후 파시즘을 만든 것은 계급투쟁을 은폐한 보통선거권이었다는 [브뤼메르 18일]의 단서를 쫓아 권력 위임에 관한 현대적 선거제와 추첨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는 고전적 사회구성체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헤겔의 법철학이 완성한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를 벗어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어소시에이션)'의 반자본주의적 대항운동과 노동-소비자 운동을 비롯한 갖가지 마이너리티 운동의 자유로운 연대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잉여가치'는 '상품'의 '생산'이라는 '고전경제학'이 아니라 '유통'과 '판매'로서 발생한다는 '중상주의'적 관점을 수차례 강조하는데, '생산과정'에 국한된 '노동자'가 화폐를 매개로 '소비자'가 되는 양태에 주목하고 비폭력적인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투적 노동운동보다 높게 본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과 거의 같은 주체라 할 수 있겠다.

'트랜스크리틱'에 의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새롭게 읽히는데,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이상적 평균'(알튀세르)으로서의 영국이라는 일국의 '단일체계'를넘어선 세계 자본주의라는 '복수체계'를 전제로 개별 자본의 '생산과정'을 넘어 총자본의 '유통과정'을 통한 '잉여가치'의 창출로 이해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고자 하는 '생태사회주의'(사이토 고헤이)의 측면도 고려될 수 있다.

'트랜스크리틱'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물론, 국가론 일체가 현대화된다.

그렇게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와 마르크스 사이의 '트랜스크리틱'이라는 '이동'과 '비평'을 무기로 미래의 '교환양식'으로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회(어소시에이션)'로 이행한다.


"... 자본과 국가에 대한 내재적인 투쟁과 초출적인 투쟁은 (생산과정을 넘어선) '유통과정', 즉 '소비자=노동자'의 장에서만 연결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개개인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환양식D로서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란 어디까지나 (다중을 이루는) 그런 개개인의 주체성에 근거한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2-4. 마르크스 - 트랜스크리티컬한 대항운동>, 가라타니 고진, 2010.

***

1. [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에 관하여](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2. [세계사의 구조 -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2015),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비고>, 2024.
3. [자본론](1867~),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4.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5.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6. [프랑스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7.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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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고(vigo)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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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양식'의 구조적 세계사
-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책은 '교환양식'을 통해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재검토함으로써 현재의 '자본-네이션-국가(스테이트)'를 넘어서는 전망을 여는 시도다... 새롭게 '헤겔(법철학) 비판'을 시도한다는 것... 나는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시 파악하기로 했다...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다시 하는 것... 헤겔이 관념론적으로 파악한 근대의 사회구성체와 그것에 도달한 '세계사'를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유물론적으로 계속 전도시키면서 헤겔이 파악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사'를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으로 보는 시점이 불가결하다."
- [세계사의 구조], <서문>, 가라타니 고진, 2015.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다소 도식적이지만 '역사발전단계설'을 통해 일체의 계급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과학적 사회주의'다.

인류 최초의 자유롭던 유동적 사회인 원시 공동체에서 국가와 계급의 출현과 함께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를 넘어 근현대 자본주의를 거치고 이후 다수 노동자민중의 국가권력 전유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오히려 다수 민중의 직접적인 '민주주의'적 권력체제 형태로 계급의 철폐와 국가의 소멸을 완성한다는 '역사발전단계설'이다. 계급투쟁과 계급지배의 현실태로서 국가가 소멸된 공산주의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인류의 미래였다. 

이러한 역사의 필연적 발전 과정에서는 인간의 '노동'에 기초한 생산력(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인 생산관계의 상호작용이 필수요소다. 이 둘은 변증법적 관계로 일정 기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둘러싼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견인하지만 계급 불평등이 심화되면 특정 생산관계는 생산력 발전을 저해하는 상호 모순의 관계가 된다. 이러한 변곡점에서 노예제나 봉건제 같은 특정 생산양식은 새로운 생산양식, 즉 새로운 정치경제체제로 이행한다. 봉건제를 이은 자본주의체제는 생산력 발전의 최고 수준을 담보하는 한편 소수 자본가들의 생산수단 사적독점이 다수 노동계급을 소외시키면서 계급투쟁의 대단원을 기록한다는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과 '생산'의 관점에 철저한 '노동가치론'에 기반한다. 

다수의 '자유'를 위해서 '평등'이 전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를 소멸시키기 위해 우선 국가권력을 잡아야 한다. 국가를 지양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이 모순적 정치상황이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복지국가든, 사민주의 정당이든 '혁명'이라는 계기만 제외한다면 동일한 정치사상이 된다.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1941~)은 칸트주의적 초월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다. 마르크스 철학의 헤겔 극복 작업을 칸트 철학에서 찾는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The Structure of World History)](2015)라는 제목의 그의 주저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생산양식(Modes of production)' 이론을 넘어서는 '교환양식(Modes of Exchange)' 이론을 제시한다.

인류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생산양식'에만 국한된 '평등'에서만 멈춰서면 안되고 생산과 유통, 소비 일체를 아우르는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세계사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산양식'을 넘어선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세계사의 구조'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 [세계사의 구조(The Structure of World History)의 부제는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From Modes of Production to Modes of Exchange)'다.


"내가 여기서 쓰려는 것은 역사학자가 다루는 '세계사'가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복수의 기초적 '교환양식'의 연관을 '초월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사에서 일어난 '세 번의 이행'을 구조론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네 번째 이행', '세계공화국으로의 이행'에 관한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 [세계사의 구조], <서설 : 교환양식론>, 가라타니 고진, 2015.


가라타니 고진 또한 나름대로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발전단계설'을 지지한다. 다만, 기존의 원시 공동체와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와 근현대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미래의 공산주의 등의 '생산양식' 개념을 넘어, 각 시기별 '교환양식'의 단계적 개념으로 구분한다.

- 1부. 미니세계시스탬(교환양식A) : 원시 공동체 유랑(유동성) 이후 정착사회인 씨족(부족)사회는 '증여'와 주술 중심의 상호(호수) 사회 / '네이션'(부족 또는 씨족)의 최초 출현
- 2부. 세계=제국(교환양식B) : '국가(스테이트)'의 등장으로 '폭력' 또는 강제에 기반한 국가중심주의와 절대왕권의 '주권' 개념과 '주술'을 넘어선 '보편종교'의 확립 / 부르주아 시민혁명으로 등장하는 '국민국가'와 '네이션(인민/민족)'의 진화 및 강화
- 3부. 근대세계시스템(교환양식C) : 절대왕정의 중상주의(상업자본주의)를 넘어선 산업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한 '자본'의 부상 /  자본의 '제국화' 또는 '세계화'와 '국민국가(스테이트)'와의 모순
- 4부. 현재와 미래(교환양식D) : '자본'의 '제국화'와 '국민국가(스테이트)'간 모순을 극복하는 '세계공화국' / 칸트의 루소적 근대 시민국가와 프루동과 마르크스 등 사회주의자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회(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건설을 통한 상호(호수)주의적이고 증여적인 '교환양식A'의 회복

원시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를 통해 생산력이 최고로 발전한 상태에서 계급 불평등과 국가를 지양하면서 '공동체주의(코뮤니즘/공산제)'를 현대적으로 복원한다는 칸트식 '규제적 이념'이다. 즉, 논리적으로 완벽하여 필연적 결론에 도달하는 '구성적 이념'이 아닌, 일관성과 경향성을 지닌 좌표적 개념으로 끊임없이 그에 수렴해 나가는 '규제적 이념'인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 생산양식) 관점은 최초의 단계에 존재하는 '평등성'을 중요하게 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유동성(자유)'이라는 사상을 무시한다. 즉, '코뮤니즘'을 '유동성(자유)'이 아니라 '부의 평등'이라는 점으로만 보는 사고가 되기 쉽다.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과 같은 결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 [세계사의 구조], <1-2. 증여와 주술>,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교환양식A-B-C'들은 각 시기단계별로 하나씩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기마다 각각의 교환양식이 '네이션-국가(스테이트)-자본'의 형태로 복합되어 있으며, 원시 공동체는 '교환양식A(증여)'가, 고대 노예제와 중세 봉건제 또는 아시아적 전제주의와 유럽의 절대왕정 등은 '교환양식B(국가)'가, 근현대 산업자본주의 체제는 '교환양식C(자본)'가 우세한 시기다. 미래의 '세계공화국(교환양식D)'은 이 모든 '교환양식'들이 혼재하지만 '증여'와 '상호(호수)주의'적인 '교환양식A'의 현대적 복원을 기획한다.


"호수(상호/증여) 원리에 기초한 세계시스템, 즉 '세계공화국'의 실현은 쉽지 않다. '교환양식A,B,C'는 집요하게 존속한다. 바꿔 말해 '네이션-국가-자본'은 집요하게 존속한다. 아무리 생산력(인간과 자연의 관계)이 발전해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 '교환양식'에서 유래하는 그와 같은 존재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한다면 '교환양식D' 또한 집요하게 존속한다... 칸트가 말하는 '규제적 이념'이란 그런 것이다."
- [세계사의 구조], <4-2. 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2015.


이 과정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1,2차 세계대전의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국민국가(자본-국가-네이션)'간 대전쟁 후 결성된 국제연맹과 국제연합(UN)에 희망을 건다. 국가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연대 못지 않게 국가들간의 연대가 미래의 '세계공화국' 건설의 필수요소다.

'생산양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환양식'까지 아우른다는 것은, 생산과 노동의 노동자계급을 넘어 총자본의 입장에서 역시 노동 못지않게 잉여가치와 자본증식을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소비자'로서의 '다중(다수 대중)'에 주목하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주의적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현대화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틀 하트의 '제국' 및 '어셈블리' 개념을 지지한다.

이렇게 '노동'을 넘어 '소비'와 '유통'까지 아우르는 '교환양식' 관점에 입각한 가라타니 고진의 사회구성체는 '노동'과 '생산양식'에 머물던 마르크스주의적 경제결정론을 극복한다. 하부구조(토대)의 경제적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시되던 상부구조로서 정치적 '국가'의 자율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즉, '자본'을 키운 것은 '국가'이며,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의 현대적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교환양식D(코뮤니즘/어소시에이션)'로서 '교환양식A(증여/호수)'를 복원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과 헤겔의 근대적 국민국가주의를 넘어선 칸트의 '목적의 나라'다.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도덕적 정언명령은 마르크스가 헤겔을 넘어선 그 이상의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제,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을 역주행하여 칸트식으로 마르크스를 읽고 접속시키는 [트랜스크리틱](2010)을 읽어봐야겠다.

***

1. [세계사의 구조 -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2015),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비고>, 2024.
2. [트랜스크리틱](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3.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1848),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4.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5. [제국(Empire)](1998),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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