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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 옮김 / 비고(vigo) / 2024년 6월
평점 :
'이동'과 '비평'의 '초월론적' 이행
- [트랜스크리틱], 가라타니 고진, 2010.
"칸트의 '비판(비평)'은 끊임없는 '이동'을 포함하고 있어서 결코 안정된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라고 부른다."
- [트랜스크리틱], <2-1. 마르크스 - 이동과 비평>, 가라타니 고진, 2010.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1941~)은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고전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을 초월하여 총자본의 '유통과정'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이 자본의 자기증식과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고전적 '생산양식'을 넘어 '교환양식'의 틀에서 '세계사의 구조'를 서술한 책이 [세계사의 구조](2015)였다.
[세계사의 구조]는 자본주의 체제를 초월하는 대항운동을 지향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요 저작이라고 하는데, 그가 잘 쓰는 비평의 한 방식인 '소행(溯行)', 즉 '거슬러 오르는' 비평의 방식에 따라 나도 가라타니 고진의 직전 저작인 [트랜스크리틱](2010)으로 역주행해 보았다.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이라는 영역의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트랜스코딩, 즉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고,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는 기획이다... [자본론]은 손쉽게 자본주의로부터의 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손쉬운 출구가 왜 있을 수 없는지를 제시함으로써만 이에 대한 실천적 개입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나는 형이상학 비판과 같은 것보다는 인간적 이성의 한계를 가차없이 드러냄으로써 실천적인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한 명의 사상가(칸트)를 의식하게 되었다. [자본론]은 헤겔과의 관계 속에서 읽는 것이 상식이지만, 나는 [자본론]에 비견될 수 있는 책은 딱 하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마르크스와 칸트를 엮기로 마음을 먹게 된 이유 중 하나다."
- [트랜스크리틱], <서문>, 가라타니 고진, 2010.
[트랜스크리틱]은 2010년도에 출판되었지만, 헤겔을 넘어서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비판적 작업을, 헤겔 이전의 사상가 임마누엘 칸트의 비판적 사고로부터 영감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적 헤겔 비판을 다시금 수행하고자 했던 가라타니 고진의 오랜 작업이었다. 이것이 '근대 관념론 사변철학의 종결자' 게오르그 빌헬름 헤겔을 사이에 두고 그 이전의 임마누엘 칸트와 그 이후의 칼 마르크스를 횡단하는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동비평)이라고 하면서 가라타니 고진이 창안한 개념이다. 다른 말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국가론'을 테마로 한 '초월론적 비평'이 '트랜스크리틱'인 것이며, 이러한 발상을 토대로 '캐피털(자본)-네이션(민족)-스테이트(국가)'의 '삼위일체'적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생산양식'을 넘어 '교환양식'의 틀로 관통하여 보려는 시도가 10여년 후의 [세계사의 구조](2015)인 것이다.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 사회구성체론에 의하면 '경제(자본)'라는 하부구조(토대)가 '국가(정치/시민사회)'라는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의 경향이 있다. 이는 1867년 [자본론]을 저술할 당시의 마르크스 본인의 사상이라기 보다는 마르크스 사후에 그의 비판적 사상을 '보편 사상'으로 정립하려는 엥겔스와 독일 사회민주당의 도식화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시각이다.
[트랜스크리틱]에 의하면, 19세기부터 정식화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교조적 도그마는 마르크스 본연의 사상이 아니다.
사민주의는 결코, '자본-네이션-국가'의 자본주의적'삼위일체' 매듭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이며, '노동가치론'(생산양식)에 갇힌 노동조합 운동처럼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기제가 된다.
마르크스가 극복하려는 헤겔주의는 엥겔스와 카우츠키, 루카치 같은 그의 동지 및 후예들이 정리한 것과 같이 하나의 구성적인 완전한 사고의 체계를 유물론적으로 뒤집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그 결말이 20세기에 명멸했던 현실 국가사회주의 체제였다. 현실 공산당 정권 역시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민주의나 영국의 노동조합 운동과 다르지 않게 국가권력의 탈취와 중앙집권적 국가소유의 계획경제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인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 매듭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화하거나 존속시켰다.
체제의 외부를 지향하는 가라타니 고진이 마르크스주의적 헤겔 극복을 넘어 칸트로 '거슬러 오른(소행)' 이유다.
"...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초월론적'이라는 말을 굳이 버리지 않는다. 다만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트랜스크리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초월론적'인 태도는 강한 '시차'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강한 시차'... 그것은 '안티노미(이율배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 [트랜스크리틱], <1-1. 칸트 - 칸트적 전회>, 가라타니 고진, 2010.
가라타니 고진의 칸트적 '트랜스크리틱'은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경제결정론적 사회구성체론이나 노동가치론의 완결된 사상체계를 읽는 것이 아닌, 칸트의 '안티노미(이율배반)' 모순의 '시차적 관점(parallax view)'에 의해 완결된 사상일 수 없는 '물자체'의 '초월론성'이다. 경험론일 수도 없고 합리론일 수도 없이, 그렇다고 모순되는 양자의 조정과 절충도 아닌, 이율배반(안티노미)의 '사이'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관념론도 유물론도 아닌 그 '사이'에서 '시차적 관점'을 이룬다.
모순이 결합하고 통일되어 궁극의 체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며 변화하는 '비판(비평)'적 사고다.
이것이 '트랜스크리틱'이다.
자본의 운동에서 '생산과정'의 결과인 '상품'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의 '초월론적 가상'으로서 '화폐'의 우위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화폐'가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에서 우선이고 '상품'은 그 부수적 요소라는 '전위적' 사고방식이 칸트식의 '초월론적 가상'이며 이런 횡적인 비평이 바로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이다.
"칸트나 마르크스는 끊임없이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칸트의 비판... '초월론적 비판'이란 어떤 안정된 제3자의 입장이 아니다. 그것은 트랜스버셜(횡단)한, 또는 트랜스포지셔널(전위)한 '이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칸트와 마르크스의 트랜스센덴털(초월)하거나, 트랜스포지셔널한 비판을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유통과정'을 중심에 둔 대항운동은 완전히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이며, 그렇기에 그 어떤 '자본-네이션-스테이트(국가)'도 건드릴 수가 없다. [자본론]은 이런 시점에 논리적 근거를 부여하고 있다. 분명 가치형태에서의 비대칭적 관계(상품과 화폐)는 자본을 낳지만, 그런 비대칭적 관계에는 자본관계를 종식시키는 '트랜스포지셔널'한 모멘트가 있음을 [자본론]은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이 지점을 활용하는 일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트랜스크리틱'인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서론>, 가라타니 고진, 2010.
교조적이지 않은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어느 한 체계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는 '비판(비평)'적 사고다. 이를 가라타니 고진은 헤겔을 넘어 칸트로 역주행하는 '트랜스크리틱'이라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마르크스)가 '가치'로서 발견한 것은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체계만이 아니라) '복수체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가치'에는 이미 '잉여가치', 즉 화폐가 자본으로 바뀌는 비밀이 포함되어 있다... '잉여가치'란 개별자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사회적 총자본은 '일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총자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본론]을 '국민(폴리티컬) 경제학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본론]이 자본주의를 (단일체계로서의) '폴리스(국민국가)'가 아니라 (복수체계로서의) '세계'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 것에 있다."
- [트랜스크리틱], <2-3. 마르크스 - 가치형태와 잉여가치>, 가라타니 고진, 2010.
그리하여 가라타니 고진이 발견한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이 완성한 일국 국가론의 '법철학'을 비판하고, [자본론]에서 일국이 아닌 세계적 총자본의 운동과 그 '유통과정'에서 '잉여가치'를 발견하며 고전적 '노동가치론'까지 초월하고 넘어선다. 가라타니 고진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단초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도 읽고 있다. 즉, 상부구조로서의 국가론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 요소로서의 국가(정치사회)의 발견이다. 1848년 2월 혁명을 배반한 나폴레옹 3세의 보나파르티즘이나 이후 파시즘을 만든 것은 계급투쟁을 은폐한 보통선거권이었다는 [브뤼메르 18일]의 단서를 쫓아 권력 위임에 관한 현대적 선거제와 추첨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는 고전적 사회구성체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헤겔의 법철학이 완성한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를 벗어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어소시에이션)'의 반자본주의적 대항운동과 노동-소비자 운동을 비롯한 갖가지 마이너리티 운동의 자유로운 연대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잉여가치'는 '상품'의 '생산'이라는 '고전경제학'이 아니라 '유통'과 '판매'로서 발생한다는 '중상주의'적 관점을 수차례 강조하는데, '생산과정'에 국한된 '노동자'가 화폐를 매개로 '소비자'가 되는 양태에 주목하고 비폭력적인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투적 노동운동보다 높게 본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과 거의 같은 주체라 할 수 있겠다.
'트랜스크리틱'에 의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새롭게 읽히는데,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이상적 평균'(알튀세르)으로서의 영국이라는 일국의 '단일체계'를넘어선 세계 자본주의라는 '복수체계'를 전제로 개별 자본의 '생산과정'을 넘어 총자본의 '유통과정'을 통한 '잉여가치'의 창출로 이해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고자 하는 '생태사회주의'(사이토 고헤이)의 측면도 고려될 수 있다.
'트랜스크리틱'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물론, 국가론 일체가 현대화된다.
그렇게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와 마르크스 사이의 '트랜스크리틱'이라는 '이동'과 '비평'을 무기로 미래의 '교환양식'으로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회(어소시에이션)'로 이행한다.
"... 자본과 국가에 대한 내재적인 투쟁과 초출적인 투쟁은 (생산과정을 넘어선) '유통과정', 즉 '소비자=노동자'의 장에서만 연결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개개인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환양식D로서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란 어디까지나 (다중을 이루는) 그런 개개인의 주체성에 근거한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2-4. 마르크스 - 트랜스크리티컬한 대항운동>, 가라타니 고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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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에 관하여](2010), 가라타니 고진, 윤인로 옮김, <비고>, 2024.
2. [세계사의 구조 -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2015),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비고>, 2024.
3. [자본론](1867~),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4.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5.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6. [프랑스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7.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마티>,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