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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깟디마 The Muqaddimah - 이슬람 역사와 문명에 대한 기록
이븐 칼둔 지음, 김정아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3월
평점 :
'과학'으로서 '역사학'의 시초
- [무깟디마], 이븐 칼둔, 1377.
'사합키란' 티무르는 '세계정복'을 위해 1,700만 명을 학살했지만, 칭기스 칸 몽골 대제국의 계승을 표방하며 학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현대의 학살자 히틀러의 '신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과 비슷한 것이었을는지 모르겠으나 '세계정복자' 미치광이들의 대규모 살육전은 한편으로 아시아와 유럽 일대의 문명과 문화교류의 흔적을 역사책에 남기기도 했다.
학문을 장려한 티무르가 말년에 독대를 요청하여 딱 한 번 만났다는 이슬람권 최고의 역사학자가 있다.
바로,
이븐 칼(할)둔(Ibn Khaldun : 1332~1406)이다.
"이 시대의 역사학자들은 정치원리, 사물의 성질, 민족, 지역, 시대에 따라 그 생활방식, 성품, 관습, 교파, 학파, 주요 상황 등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황도 포괄적으로 숙지해야 한다. 역사학자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하고 어떤 상황에서 유사함과 차이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각각의 사건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지식'으로 완벽하게 무장하고 각 사안의 '기원'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 이후의 단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과 '근거'에 따라 전승되어 온 기록이나 보고를 면밀히 검토하고 조사해야 한다. 만약 그런 기록이나 보고가 역사학자 스스로 정한 요구들을 모두 충족시키면 그것은 '옳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사학자는 이를 '그른 것'으로 간주하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 [무깟디마], <서론>, 이븐 칼둔, 1377.
이븐 칼둔이 당대 '사힙키란(세계정복자)'의 대명사였던 티무르에게 어떤 지혜의 말을 전했는지 알 수는 없다. 역사책은 티무르의 초청으로 이 두 사람이 한 번 독대한 사실만을 전했고, 이븐 칼둔은 티무르가 죽은 이듬해에 사망했다.
작가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2018)를 통해 알게 된 이슬람 역사가 이븐 칼(할)둔은 이슬람권에서 '역사학의 아버지' 급이다.
즉, 역사학자의 연구방법으로 당대 '인문주의'와 '과학적 방법'의 결합을 제시했고, 그로 인해 역사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정초했다. 적어도 이븐 칼둔 이후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역사학은 더 이상 이야기의 단순한 서술이나 노래(서사시)의 전승만이 아닌, 인간의 '합리적 사고'와 '논리'를 기반으로 하여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고 분석하며 '인문학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역사적 사실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하나의 '사회과학'이 되었다.
물론, 역사서술 내내 알라신을 칭송하는 이븐 칼둔 당시의 '과학적 방법'이라고 해봐야 '연금술' 따위를 위시한 '신비학'이었겠지만, 이븐 칼둔 당시는 근대 과학의 이전 시대였다. 중세 당시는 '신학'도 '과학'이었다.
우리가 지금 아는 '과학'이란, 르네상스 이후 근대의 '과학'이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옳음'을 취하고 '그름'을 과감히 기각하는 '과학적 탐구방법'은 같은 것이다.
"... 역사적 정보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하는 법칙은 바로 인간의 사회, 즉 문명에 대하여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문명 자체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상황, 기대하지 않았으나 나타나는 상황,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의심할 바 없는 '논리'적인 입증을 통해서 역사적인 정보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법칙'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명'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더라도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옳은 잣대를 가지게 되고, '역사가'는 그 잣대를 이용해서 자신이 기록하는 정보에 대해 진리와 정확성을 심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제1권>([무깟디마])의 목적이다."
- [무깟디마], <권두언>, 이븐 칼둔, 1377.
14세기 북아프리 튀니지 출신의 이슬람 역사학자 이븐 칼둔은 [충고의 서(Kitab al-ibar)] 7권을 썼다는데, 그 중 '서문'격인 <제1권>을 [무깟디마(The Mugaddimah)](1377)라고 부른다.
우리 말로는 [역사서설]로 번역되는데, 보통명사 '무깟디마'는 '서문' 또는 '서설'이겠지만, 역사학에서 [무깟디마]는 이븐 칼둔의 [역사서설]로 알려졌다.
이븐 칼둔은 그의 역사책 [충고의 서] 7권 중 <제1권> [무깟디마]에서 <서문>과 <권두언>을 통해 '역사학' 일반에 대한 규정과 '과학적 연구방법'을 소개한 후 <1부>에서 역사학의 기본 토대로서 '인간의 문명 일반'을 다룬다. 철저한 중세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기후조건과 주술, 꿈 등이 인간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장황하게 기술하고, <2부>부터 <6부>에 걸쳐 민족과 권력, 유목과 도시 문명, 경제(재무/징세)와 문화(철학/지식/교육) 등에 관해 상세한 서술을 이어간다.
내가 읽은 결론부터 말하면,
알라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기에, 인류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최초의 스승'이자 철학자로부터 배울 것은 불가지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식('철학적 진리')이 아니라 그의 '논리학'적 사고방식일 뿐이며, 그러한 '과학(논리)적 방법'에 따라 철저하게 역사를 연구하되, 역시 세계의 본질이나 역사의 진리는 오직 알라신만이 알고 인도한다는 '인샬라(신의 뜻대로)'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가 이븐 칼둔의 [무깟디마]에서 얻을 것은 '역사학'의 '과학적 연구방법',
그것 단 하나 뿐이다.
"인간의 성품에는 완고함이 있기 때문에 그 완고함을 꺾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투쟁하기 위해서 '아싸비야(al-asabiyyah)'를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 [무깟디마], <2부>, 이븐 칼둔, 1377.
모든 게 알라로 귀결되는 [무깟디마]의 구조 속에서 인류사의 잡다한 항목들이 장황하게 다뤄지고 [충고의 서(書)]라는 제목의 <서설>답게 '알라'의 이름으로 무차별하게 '충고'되고 있다.
그나마 [무깟디마] 또는 [역사서설]이라는 이븐 칼둔의 고전 역사책에서 '과학적 연구방법'의 중요한 핵심 개념 하나는 언급해야 하겠다.
바로,
'아싸비야(al-asabiyyah)'다.
"지도력은 어느 집단에서 지도자가 되거나 다른 이로부터 복종을 받은 것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자신의 지배를 강요할 정도의 힘은 아니다. 그러나 왕권은 지배권이나 강제적인 지배력을 의미한다. 만약 '아싸비야'를 지닌 자가 남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지위에 오르거나 우두머리가 되어 추종자를 갖게 되면 지배권과 강제력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그런 권력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아싸비야'의 도움 없이는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없다. 왕권을 '아싸비야'의 궁극적인 목표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무깟디마], <2부>, 이븐 칼둔, 1377.
'아싸비야'는 아랍어로 '부족주의' 또는 '연대의식'이라는 의미다.
이븐 칼둔이 [무깟디마] 내내 수천, 수만 번 언급하는 '아싸비야'는 혈통적 종족주의 연대의식으로써, '왕권'을 쟁탈하는 정치력이고 최초의 무력만이 아닌 '지도력'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지속시키는 이데올로기와 같다.
물론 모든 권력이 그러하듯,
'창업'-'독재'-'축재와 사치'-'평화'-'부패와 쇠락'의 역사적 소단계를 거치며 4대를 제대로 넘기지 못할 수도 있는 이 '아싸비야'는,
프랑스 현대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식으로 보면 권력투쟁에서 상부구조로서 자율성을 가진 주요한 이데올로기이며,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 식으로 보면 다수 민중을 지배하는 자본과 국가권력의 현상태로서 '강제의 철갑을 입은 헤게모니'와도 같다.
이븐 칼둔이 역사학을 '역사과학'으로 진화시킨 증거 중의 하나가 '아싸비야'라는 역사 분석과 서술의 요소에서 나타난다.
"아마도 우리 다음에 오는 이는 '알라'로부터 올바른 생각과 분명한 지식을 허락받은 이로서, 우리가 기술한 것보다 훨씬 더 심층적으로 이 '문제들('문명'의 본질과 그에 관계된 모든 사항들)을 다룰 것이다. 어떤 학문을 새로이 고안하는 자는 그 문제가 다루는 모든 것을 열거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그 학문의 주제와 세부사항을 다양하게 하고 관련사항들을 다룰 것이다. 그러면 그 이후 후학들이 문제를 부가하고 차츰차츰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무깟디마], <맺음말>, 이븐 칼둔, 1377.
'과학적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그의 동료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2권>을 내는 '서문'에서 "선학들이 해답을 본 곳에서 마르크스는 문제(질문)을 보았다"고 썼다.
역사를 '과학'으로 만들었던 '과학적 사회주의' 관점에서 '역사'는 '해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문제제기'였다.
비록 이븐 칼둔은 '알라신'의 종교에 묶인 중세의 '과학'으로 '역사'를 보았지만,
'역사'를 보는 그의 '과학'적 시선 만큼은 '역사과학'의 '서설'(무깟디마)로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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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깟디마(The Mugaddimah)](1377), 이븐 칼둔(Ibn Khaldun), 김정아 옮김, <소명출판>,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