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탐정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깜짝 놀란 책..

히가시노 게이고의 잘 꼬아만든 추리 소설들의 재미를 아는터라 

산뜻하게 출발했다가

소설이 마지막을 향해 치달을 즈음엔 조마조마함과 뒷통수를 가격당한 

반전에 배신감(?)마저 들어 책장 덮기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진짜 재미있는 책이라는 뜻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언제부터인가 그의 소설은 내게 있어 믿고 읽는 책이 되어버렸다.

일본의 고급진 전통 료칸인 회랑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이 책은 밀실, 유산상속, 가족간의 이해관계, 사랑과 복수 라는 그

렇고 그런 흔한 자료로 시작한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흔해빠진 자료로 입맛 다시게 만드는 

고급진 요리를 만들어내는

미슐링 스타 쉐프처럼 히가시노는 참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지난번에도 그의 소설을 읽으며 맘속으로 낙점해둔 범인이 보기 좋게 

탈락하면서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범인 지목을 나름 신중히 했건만 

이번에도 쭈루룩 미끄러졌다.

내 머리가 딸리는 건지, 히가시노 작가가 대단한건지 모르겠지만

장담컨데 추리소설 좀 꽤나 읽어본 당신이라도 이 소설에서 범인을 

찾긴 쉽지 않을거고

마지막의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분명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일본의 전통 료칸 회랑정의 주인이자 기업인인 이치가하라 회장이 사망했다.

회장에게는 아내도 자식도 없다. 남기고 간 막대한 유산은 

누구에게 얼마만큼 돌아갈까..

회장의 유서가 공개되는 49일제에 모인 친인척들은 각자에게 분배되어

돌아올 유산의 양에 신경이 곤두서있다.


30대의 기리유 에리코가 70대의 기쿠요 부인으로 변장을 

하고 그 자리에 간 것은 딱한가지.

동반자살로 위장된 살인사건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연인 지로에 대한 복수심에서다.

9명의 친척과 유산 관련자들이 모인 회랑정은 동반자살 건으로 

이미 사건사고가 있었던 곳인데

묘하게도 동반자살이 일어났던 당시에  회랑정에 있었던 

이들은 이번에도 함께 모이게 된것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유서가 공개되기도 전에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숨 돌릴 틈없이 연이어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이들 중에 범인이 있다. 그래야 앞뒤가 맞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모른다.

범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미끼를 이용해서 상대방이 접근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미끼란, 아까 모든 사람 앞에서 보여줬던 기리유 에리코의 유서다.


추리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은 다 갖추었다.

하지만 마지막 결론에서 뻔할것 같았던 내용은 급 유턴을 하게 되고

엔딩에서 숨이 턱하니 막히면서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내가 읽은 

최고로 슬픈 추리소설이 될것이다.


짜임새도 좋고,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도 잘 그리고 있다.

살인의 동기도 과장스럽지 않고, 복수의 당위성도 잘 표현했다.

탄탄한 소재에 군더더기 없는 장식으로 깔끔한 외관과 견고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집 한채를 만들듯 히가시노 게이고는 꽤나 군침도는 소설 한권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출간된지 30년이 지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촌스럽지 않고 

눈과 손이 가는 책으로 아직까지 우리들의 추리 세포와 감성을 

자극하며 사랑받고 있지 않나 싶다.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에 이야기를 물고 끌고나가는 

그의 재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천일동안 이야기를 이어나간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나는 또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음 작품을 찾게 될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어 에드워드 - 살아남은 아이, 유일한 생존자이자 신이라 불린 소년에게
앤 나폴리타노 지음, 공경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최근 들어 꽤 많이 듣게 되는 단어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세월호 사건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살아남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대한 민국 국민들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어릴때부터 배하고는 인연이 많은 나였지만, 세월호 이후 배를 탈 일이 생기면 다리​가 후덜거렸고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세월호 이후 오랫동안 나는 배를 탈 수 없었다.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았는데도 남의 일이 아닌냥 두려움을 느끼는데 직접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을까..

디어 에드워드 라는 소설도 큰 사고를 겪은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3년 LA행 비행기가 뉴욕에서 이륙후 추락을 하고 만다.

191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생존자는 단 한명 12살의 에드워드다. 함께 탄 부모님과 형을 잃고 소년 또한 골절상과 머리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이 어마어마한 사고는 몇날 몇일 뉴스로 전해졌고 혼자 살아남은 소년을 신으로 부르며 에디에게 열광하게 된다.

긴 시간 병원에서 생활을 한 후 에디의 유일한 친척인 이모네에서 지내게 된다.

오랫동안 불임으로 고통을 받았던 이모 레이시와 이모부 존은  에디가 겪었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공감하며

달갑잖은 언론과 대중에게 노출된 채 일상이 무너지는 에디의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애디는 옆집 소녀 쉐이와 친구가 되었고

다시 학교에도 나가게 되면서 더디지만 일상으로의 회복을 위해 한걸음씩 나가간다.

그러던 어느날 쉐이와 에디는 창고에서 수백통의 편지가 가득 담긴 백 2개를 발견한다.

이모무가 숨겨둔 그 편지들은 미국전역에서 보내온 편지들이었고 그 중에는 사고비행기에 함께 탑승했던 사고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보낸 편지들도 있었다.

안타까운 사고로 마지막 말도 전하지 못하고 소중한 이들을 잃은 이들이 에디에게 보낸 편지들은 그들의 깊은 후회와 안타까움 그리고 이렇게라도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안도감이 묻어 있다.

 

 

편지들을 읽으며 애디는 자신만의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아픔이 너무 커서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에디는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나름의 아픔을 겪었고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픈 과거를 모두 기억속에서 완전히 지워내지 않아도 그 아픔을 안고서도 새로운 미래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내며 에디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가져다 준 것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2010년 아프리키야 항공 771편 사고에서 유일한 생존자는 네덜란드 소년 한명뿐이었고 당시 소년의 나이는 아홉살이었다.

이 사고에서 영감을 얻어 디어에드워는 탄생되었으니 허구라는 소설에 실제 이야기가 더해져 읽는 내내 에디라는 소년이 실존 인물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눈만뜨면 우리는 각종 사건사고에 접하게 된다.

최근들어 바이러스의 대유행인 팬더믹 현상을 겪으며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얼마전에는 엄청한 수해로,화재로  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무방비 상태로 잃은 많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 울음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사고를 겪은 이들과 그 사고로 인해 소중한 이를 잃은 남은 사람들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깊은 슬픔과 아픈 기억들을 다 털어내지 못하여 끌어안고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면

고통속에서 마지못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 새로운 삶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내어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에디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라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망각하고 있었던 내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공기와 같아서 그 소중함을 자주 잊고 사는 가족들의 존재..사랑할 수 있을때 더욱 꼬옥

안아주며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나토미가의 참극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10
아오이 유 지음, 이현진 옮김 / 이상미디어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1,000피스 퍼즐 맞추기를 즐겨한다.

TV프로그램중에는 퀴즈프로그램에 꽤나 열광한다.

(정답률이 40%도 안되지만)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문제 풀기에 열중하며

일희일비하곤 한다.

책중에서는 추리 소설도 즐겨 읽는다. 퍼즐을 맞추듯 문제들 풀듯 사건에 한발자욱씩

접근해가는 그 방법이 참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퀴즈 프로그램처럼 범인을 맞추는 정답률은 사실 반도 못된다.

​서점에 들리면 추리 소설들을 많이 들춰본다.그리고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추리 소설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곤 한다.

기괴하면서도 은밀하고 지능적인 추리소설의 재미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일본식 추리소설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범죄는 더욱 기괴해지고 수법은 더욱 치밀해진것 같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추리보다는 과학적인 수사에 근거하여 범인을 잡는 CSI의 활약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퍼즐을 맞추듯 다각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여 사건을 풀어내는 아날로그적인 추리소설은 여전히 독자들이 입맛을 쩍쩍 다시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일본의 독자는 왜 이렇게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것이며 언제부터 추리소설의 대국이

되었는지 그 계보를 알아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 일것이다.

'아오이 유'의 '후나토미가의 참극'은 제목에서부터 고전미를 풀풀 풍기고 있다.

마치 에드가 엘렌 포우 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OO의 저주, OO의 몰락 같은 아주 오래되고 낡고, 음침하고, 피 냄새가 나는 듯해서 제목에서부터 끌렸다.


추리 소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3요소로 누가?, 어떻게?, 왜?..이 세가지를 꼽는다.

후나토미가의 참극은 이 세가지 요소를 아주 제대로 잘 섞어 놓은 추리소설이다.


이 소설이 84년 전인 1936년 춘추사의 신작 장편 탐정 소설 부분에서 1등을 작품인것을 알고는 살짝 당황했다. 비슷한 시기에 저술되어진 한국의 문학 작품을 보더라도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옛날 말투인 책이 많은데, 이 책은 전혀 그러한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젊은 독자들에 맞춰 현대의 어법과 표현으로 바꾸는 등 가독성을 높이고자 했던 출판사의

노력도 더해져 재미와 흥미를 더했다고 생각한다.

 

미후네 산 중턱에 있는 여관에서 후나토미 류타로의 아내 유미코의 시체가 발견된다.

남편 류타로도 살해된 것 같은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후나토미가의 딸 유키토의 약혼자인 다키자와 쓰네오를 체포하고

변호사의 의로를 받은 탐정 난바 기이치로는 사라하마로 가서 조사를 시작한다.



늘 그렇지만 범인과 경찰(이 소설에서는 탐정)의 두뇌 싸움은 볼만하다.

하지만 추리 소설에서는 항상 범인이 경찰보다 한수 위에 있다.

번번히 한발 앞서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을 쫓는 탐정 난바와 그의 조력자인 비밀 탐정의

등장과 함께 진척 없던 수사는 시원시원한 전개를 맞으며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춰가며 독자를 한층 들뜨게 한다.

소설의 전반부가 조용한 영국 신사 같은 느낌이라면 후반부는 좀 뜨겁고 화통한 이탈리아 남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소설속에서 꽤 중요한 단서가 되는 지명과 기차 노선도가 낯설어 초반 몰임에 조금 힘들었고 편지와 같은 인용글들의 글씨체가 적어 읽기에 다소 불편했지만 (노안이라)아이오 유의 필력으로 지루하지 않게 잘 이끌어 갔다고 생각한다.


아이오 유 작가의 원래 직업이 전기 기사라는 점과 집필 활동 기간이 총 6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은 아마츄어 작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후나토미가의 참극'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후나토미가의 참극'은 일본에서 현대 추리소설의 원형으로 평가 받고 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성경과도 같은 책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들리는 세상사에 지쳐갈때쯤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며 내 마음 같은 글을 읽을 때면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글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때가 많다.

이쁜 글로 자신을 포장하기 급급한 에세이도 있고, 비루했던 과거사를 돌려막기 하듯

써내려간 에세이도 있다. 읽다보면 살짝 지치는 에세이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작가 민혜님의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라는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의 과감하고 솔직한 글쓰기에

놀라웠다. 글이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쏟아내야 독자들에게 울림이 커진다.

이 에세이는 제법 큰 울림통을 가진 관악기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작가가 경험했고 느꼈던 점들을 가감없는 문체로 써내려가고 있다.

평생을 함께 하던 남편이 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작가의 혼족 생활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혼자사는 사람들만의 공감대인 자유와 고독을 느낄 수있다.

작가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60대 언저리만큼 살아온 작가의 연륜이 더해져

가벼움보다 진중함과 한줄한줄 수려한 문체로 쉽게만 써내려간 글은 아닌듯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멈춰 뒤로 되감기하듯 다시 읽어보고 음미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에세이 집에서 내에게 가깊은 생각을 해주게 했던 부분들을  잠깐 소개하고 싶다.

편의 유품을 정리다 발견한 알약 두개.

집안의 약들은 약통에 다 들어 있는데 서랍속의 작은 상자속에 또 다른 작은 상자속에

숨어 있던 약이 이상해서 약에 쓰여진 글씨를 읽어보니 비아그라였다.

순간 궁금증과 함께 남편에 대한 울컥함에 잠시 뒤걸음질 쳤다는 작가의 글은 동년배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듯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비아그라 두 알, 이 작은 알약이 주는 파장이 크다.

오만 상념의 발기가 도무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일련의 음습하고 통속적 연상은 새털처럼 날아가는데 한 존재의 가슴에 드리웠을

내밀한 욕망과 외로움의 무게만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색정이란 삶의 본령이자 에너지 같은 것. 그는 꺼져가는 자기 육신을 이 마법의 알약을

통해 되살리고 싶었던 것일까.

-비아그라 두 알 중-


작가가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이야기다. 그녀의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 맞은 편에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 네모 박스같은 담배가게가 난데없이 생겼다.

가게에서 담배를 파는 학생은 낮에는 남의 가게 담배를 팔고 밤에는 야학을 다니는 형편이 어려운

남학생이었다. 사는게 하도 버겁고 힘들어 세상을 비관하여 한강다리를 배회했다고 하는

그 청년을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따뜻한 밥을 대접하고 더운 물을 끓여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 종교를 가지게 권유했고, 동네 유지인 어르신을 대부로 세워주었고 그 집의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형편이 풀리며 궁색의 티를 벗었고 대학생활도 편안하게 되었다.

그 담배소년의 형편이 좋아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작가의 가정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옹색해지기 시작했다.

십오륙년 전 어느날, 작가의 어머니는 연락이 끊겼던 그 담배 소년과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신문에서 그가 쓴 저서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모 대학의 교수로 재임하고 있었다.

학교에 연락을 하여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반가움에 가슴이 뛰었다는 어머니와 달리 그 담배 소년은

어물쩍거리며 전화를 받더란다.

"엄마가 이해하셔요. 우리 식구들을 보면 비참했던 그 시절이 상기되어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반응이 세삼 서운하셨나보다.

그리고 또 훌쩍 시간이 흐른 어느날 그 담배 가게가 있던 곳을 지나가 옛 생각이 났던 작가는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고 담배 학생 편을 섰던게 미안해서 담배학생에 대한 실망감을

부러 강하게 어필했다.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그랬겠니?"

세월만 한 약이 없다더니 어머니는 서운함을 다 잊으신것 같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한편 나는 우리가 무심코 부르던 '담배학생'이란 호칭이 그에겐 피멍이 들도록 아픈 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자각이 뒤늦게 들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란 이리 더디 올 때도 있는가..

이젠 그를 놓아줄 때가 된것 같다. 아유, 담배학생.

-아듀 담배학생 중-

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나한테도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아직 해결못한 인간 관계도 시간이 약이 되어 주길 바라며 더 늦어져도 되니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백발이 성성해졌을 때라도 무거운 마음을 털고

'그럼, 그럴 수 있지..'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

요즘은 서너집 건너 한집꼴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1인 가정은 흔하디 흔하다.

흔히 고독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혼자 살지 않더라고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순간순간 농도 짙은 고독감을 느끼고 어쩜 그 쌉쌀한 맛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고독이란 정체된 듯싶으면서도 실은 보이지 않게 꿈틀거리는 생물이었다.

나름의 맛과 감촉도 지녔다.

어느 날을 쌉쌀하면서도 달착지근하여 그대로 머물고 싶어지는가 하면, 어느 날은

날감자 맛처럼 아리고, 중증의 증상으로 덮쳐올 때면 땡감처럼 떫어 내 심신을 오그라지게도 했다.

​-고독이나 한잔 중-


나는 이 부분에 눈에 잘 띄는 형광색의 포스트 잇을 붙여놓았다.

이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 본듯한 글 한줄을 발견하면 그 책은 그냥 책이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책이 된다.


중년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독자라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거리가 많은 책이다.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이 나이가 되어 다시 한번

조용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에세이가 팔리지 않은 시대라고 한다. 에세이뿐만 아니라 핸드폰과 컴퓨터에 밀려서

활자책의 인기는 갈수록 시들해진다.

하지만 한권의 책이 주는 친근함과 묵직한 연대감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작가의 화통하면서도 섬세한 글을 읽으면 적잖은 글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조건 당신 편 - 마음의 힘을 기르는 ‘외상 후 성장’의 심리학
한창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을 최근에 만났다.

반가움에 지치지도 않고 다들 몇시간을 떠들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나에게 "너 안본 사이에 말이 굉장히 과격해졌다" 하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들하고는 프리랜서 직업을 그만두고 회사에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즈음부터 못만났다. 나의 이 걸쭉한 입담을 가지게 된건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부터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동안 직장에서 뭔일이 있었지..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사탕발림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많이 힘들고 오롯이 혼자인것 같이 외로울때

이 말을 듣는다면 세상 무서울게 없을것 같다.


[무조건 당신편]은 그 달달한 제목 때문인지 어느 작가의 이쁜 글 가득한 에세이일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한창수 교수는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분으로

우리나라 정신의학계에서 선도적인 연구자로 손꼽힌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위로와 격려의 메세지를 담은 에세이라기 보다는 의학적인 방법으로

울분, 우울증, 공황장애에 대한 적절한 조언과 치료법까지 적시에 제시하고 있다.

에세이를 닮은 전문 의학서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상당히 부드러운 문체로 쓰여진 전문서적!


 

그 동안 그를 찾았던 내담자들의 사례를 예시로 적고 있다.

그런데 놀아운 것은 내담자들과 나의 경우가 많이 닮았거나, 아예 내 얘기다 싶을 만큼

비슷한 예시들이 많았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사례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고객의 갑질, 직장 상사의 괴롭힘, 직장내 따돌림, 왠쑤같은 가족들..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거나 피할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참 많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고 산다.

이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면 우울과 분노로 바뀌게 되면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없다고는 할 수는 없다.

다만 직종상 다른 회사보다는 좀 덜할 수는 있고 내 성격이 좀 더럽다보니

(성격 더러운게 장점이 될수도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다른 직장인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빨리 털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중의 무게는 100% 주관적인 것이라 사람마다 편차가 심해서

나에게는 별일 아닌 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죽을만큼 괴로운 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직장 생활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아래와 같은 처방전을 내려준다.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직장 생활이라는 건 소위 '영혼을 팔아 먹고 사는 것'이라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임금에는 실제 노동에 대한 대가뿐 아니라 감정노동에

대한 대가까지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 감정 노동에는 '고객을 상전처럼 대하는것' '고객에게 상처를 받아도 꾹 참는 것'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중략)

일터에서 만나는 진상들은 그저 자신의 복잡한 인생사 속에서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게 된, 내 인생의 엑스트라일 뿐입니다.

그런 인간들을 만났을 때에는 이렇게 되뇌어보세요.


"그런 인간한테 상처를 입고 안 입고는 내가 결정한다,"

 ​

나는 이 말이 어찌나 맘에 들었는지 소리내에 3번을 읽었다.

내 인생은 주인공은 나이고, 진상들은 엑스트라 밖엔 안된다.

그러한 덜 떨어진 인간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참 맛깔스럽고 속 시원하게 한다.


가려운데 긁어주는 듯한 속 시원한 글들이 책 곳곳에 있다.

한창수 교수님이 얼마나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는지 짐작이 된다.

그들을 상담하고 아픈 마음의 상처에 잘 낫는 연고를 발라주듯 조심스러운 조언과 처방을

책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고나 할까..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사람마냥 내 마음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혹시나 만나서 얘길 하게 된다면 아차하는 사이에 내 묵은 비밀까지 탈탈 다 털어놓고 말것같다.

나는 책을 읽으며 사례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저자의 처방에 통쾌해했다.


처방전은 격려의 말과 병원치료, 심리치료, 상담방법등등 환부의 경중에 따라 적절히

내려진다. 사방이 막힌것 같이 마음이 답답하고 주위를 둘러봐도 도무지 내 속 얘기를

꺼내놓은 사람이 없다고 느낄때, 이유없이 불쑥불쑥 화가 치밀고, 다른이들과의 관계가

숨막히도록 힘들다 싶을때, 죽고 싶을만큼 힘들어 자신을 자책하고 자해를 하는 못난짓을

하기 전에 적절한 곳을 찾아 상담을 하고 약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백번 현명하다고 말한다.



 

혼자 참고 이겨낼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셔도 됩니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될것 같으면 용기 내어 이 한마디를 꺼내보세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해보세요.

옆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상담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전화번로를 눌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시 이 책의 리뷰를 쓰기 맨 앞으로 되돌아가면 말투가 과격해진 나에 대한 친구들의

지적이 있었다. 거기에 대한 해명과 동시에 같은 경우로 분노조절이 힘든 사람들에게

나의 좀 저질스럽지만 오지게 잘 듣는 분노 조절 비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회사에 입사하여 소위말하는 조직의 쓴맛을 보기 전, 프리렌서로 일했던 나의 직업도 한몫했겠지만  

조곤조곤 말을 곱게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끔 진상을 만나기도 하고,업무상 피할수 없는 마찰이 생겨

에이전시와 껄끄러운 상태가 되기도 한다.

마음같아서는 대놓고 한소리 하고 싶지만 목소리 내어 싸워봤자

좋은 꼴을 못봤기 때문에 좋은 말로 대충 마무리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내가 아는 육두문자를 총 동원하여 분이 풀릴때까지 욕을 해준다.

속이 한결 편안해진다.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남들 앞에서 쓴소리 못하는 사람들이 써보면 효과가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입담이 과격해졌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마음이 병드는 것보다 백배 낫다.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게 욕이 되었던, 취미생활이 되었던, 가슴에 응어리지지 않도록 풀어내야 한다.

풀어내는 방법을 모를때는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꽤 큰 도움이 될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