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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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사에 지쳐갈때쯤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며 내 마음 같은 글을 읽을 때면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글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때가 많다.

이쁜 글로 자신을 포장하기 급급한 에세이도 있고, 비루했던 과거사를 돌려막기 하듯

써내려간 에세이도 있다. 읽다보면 살짝 지치는 에세이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작가 민혜님의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라는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의 과감하고 솔직한 글쓰기에

놀라웠다. 글이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쏟아내야 독자들에게 울림이 커진다.

이 에세이는 제법 큰 울림통을 가진 관악기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작가가 경험했고 느꼈던 점들을 가감없는 문체로 써내려가고 있다.

평생을 함께 하던 남편이 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작가의 혼족 생활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혼자사는 사람들만의 공감대인 자유와 고독을 느낄 수있다.

작가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60대 언저리만큼 살아온 작가의 연륜이 더해져

가벼움보다 진중함과 한줄한줄 수려한 문체로 쉽게만 써내려간 글은 아닌듯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멈춰 뒤로 되감기하듯 다시 읽어보고 음미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에세이 집에서 내에게 가깊은 생각을 해주게 했던 부분들을  잠깐 소개하고 싶다.

편의 유품을 정리다 발견한 알약 두개.

집안의 약들은 약통에 다 들어 있는데 서랍속의 작은 상자속에 또 다른 작은 상자속에

숨어 있던 약이 이상해서 약에 쓰여진 글씨를 읽어보니 비아그라였다.

순간 궁금증과 함께 남편에 대한 울컥함에 잠시 뒤걸음질 쳤다는 작가의 글은 동년배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듯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비아그라 두 알, 이 작은 알약이 주는 파장이 크다.

오만 상념의 발기가 도무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일련의 음습하고 통속적 연상은 새털처럼 날아가는데 한 존재의 가슴에 드리웠을

내밀한 욕망과 외로움의 무게만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색정이란 삶의 본령이자 에너지 같은 것. 그는 꺼져가는 자기 육신을 이 마법의 알약을

통해 되살리고 싶었던 것일까.

-비아그라 두 알 중-


작가가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이야기다. 그녀의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 맞은 편에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 네모 박스같은 담배가게가 난데없이 생겼다.

가게에서 담배를 파는 학생은 낮에는 남의 가게 담배를 팔고 밤에는 야학을 다니는 형편이 어려운

남학생이었다. 사는게 하도 버겁고 힘들어 세상을 비관하여 한강다리를 배회했다고 하는

그 청년을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따뜻한 밥을 대접하고 더운 물을 끓여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 종교를 가지게 권유했고, 동네 유지인 어르신을 대부로 세워주었고 그 집의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형편이 풀리며 궁색의 티를 벗었고 대학생활도 편안하게 되었다.

그 담배소년의 형편이 좋아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작가의 가정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옹색해지기 시작했다.

십오륙년 전 어느날, 작가의 어머니는 연락이 끊겼던 그 담배 소년과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신문에서 그가 쓴 저서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모 대학의 교수로 재임하고 있었다.

학교에 연락을 하여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반가움에 가슴이 뛰었다는 어머니와 달리 그 담배 소년은

어물쩍거리며 전화를 받더란다.

"엄마가 이해하셔요. 우리 식구들을 보면 비참했던 그 시절이 상기되어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반응이 세삼 서운하셨나보다.

그리고 또 훌쩍 시간이 흐른 어느날 그 담배 가게가 있던 곳을 지나가 옛 생각이 났던 작가는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고 담배 학생 편을 섰던게 미안해서 담배학생에 대한 실망감을

부러 강하게 어필했다.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그랬겠니?"

세월만 한 약이 없다더니 어머니는 서운함을 다 잊으신것 같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한편 나는 우리가 무심코 부르던 '담배학생'이란 호칭이 그에겐 피멍이 들도록 아픈 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자각이 뒤늦게 들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란 이리 더디 올 때도 있는가..

이젠 그를 놓아줄 때가 된것 같다. 아유, 담배학생.

-아듀 담배학생 중-

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나한테도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아직 해결못한 인간 관계도 시간이 약이 되어 주길 바라며 더 늦어져도 되니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백발이 성성해졌을 때라도 무거운 마음을 털고

'그럼, 그럴 수 있지..'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

요즘은 서너집 건너 한집꼴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1인 가정은 흔하디 흔하다.

흔히 고독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혼자 살지 않더라고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순간순간 농도 짙은 고독감을 느끼고 어쩜 그 쌉쌀한 맛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고독이란 정체된 듯싶으면서도 실은 보이지 않게 꿈틀거리는 생물이었다.

나름의 맛과 감촉도 지녔다.

어느 날을 쌉쌀하면서도 달착지근하여 그대로 머물고 싶어지는가 하면, 어느 날은

날감자 맛처럼 아리고, 중증의 증상으로 덮쳐올 때면 땡감처럼 떫어 내 심신을 오그라지게도 했다.

​-고독이나 한잔 중-


나는 이 부분에 눈에 잘 띄는 형광색의 포스트 잇을 붙여놓았다.

이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 본듯한 글 한줄을 발견하면 그 책은 그냥 책이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책이 된다.


중년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독자라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거리가 많은 책이다.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이 나이가 되어 다시 한번

조용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에세이가 팔리지 않은 시대라고 한다. 에세이뿐만 아니라 핸드폰과 컴퓨터에 밀려서

활자책의 인기는 갈수록 시들해진다.

하지만 한권의 책이 주는 친근함과 묵직한 연대감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작가의 화통하면서도 섬세한 글을 읽으면 적잖은 글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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