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듯이
김혜영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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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친구들과 소통하고 있는 SNS에 소식을 올렸다.

책 표지를 찍은 사진과 새해 첫날 작가의 싸인이 담긴 책을 받았다는 나의 자랑질에 "제목 좋은데.."라는 친구의 댓글이 달렸다.

그제서야 다시 한번 책 제목을 들여다 봤다.

"더듬듯이​" .. 그리고 몇번을 입속에서 그 단어를 굴려본다..

더듬듯이..더듬듯이..!!

​손으로 더듬다는 것은 시각이나 후각보다 더 민감한 촉각을 이용하는 거라서 임팩트가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충 할 수가 없다. ​

이 책의 저자인 정혜영 작가는 글을 쓰는 것을 더듬듯이 해야한다고 했다.

자신의 글에서만큼은 오류 없이 독자와 함께 호흡하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관찰하고 더듬는 것이 글 쓰는 작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이 유독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작가의 재치있는 책에 대한 "안내서"였다.

[이런 분은 부작용을 주의하세요]라는 작가의 깜찍한 경고는 부작용을 감내하면서라도 읽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들께 권장합니다]라는 추천글에서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재치있고 센스있고 말재주 좋은 친구를 만난듯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넘긴다.

​40대 중반의 동년배의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랄때가 많았다.

어려운 이야기도 없고 생소한 이야기도 없다.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정감간다.

나하고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다른 세상에서 온듯한 작가의 글이 아닌..

지금이라도 사람없는 한적한 까페에 마주앉아 차 한잔 시켜놓고 깔깔대고 웃으며 거리낌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감대 100%의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듯했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래요"라고

공감의 표시를 했다.

친구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오해 할 만큼 부모님의 연세가 많았다는 것..

그래서 젊은 부모님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는 작가의 말에 몇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나두 그랬어요"라는 공감의 표시이다.

이제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세상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지만 정작 부모님은 두분다 돌아가시고 안계셔서 맏이인 나는 명절만 되면 명치끝이 묵직해진다.

내가 젊은 부모님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것은..내가 미처 어른이 되기도 전에

나이 많으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책은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하루종일 종종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을 실었다.

소소하지만 하나하나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들의 이야기들이 작가의 글을 통해

비로소 알록달록 색깔을 띄게 되었고 햇볕에 반짝이는 보석이 되었다.

책을 읽고 있으니 웬지 모를 행복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주리가 틀리도록 밋밋하고 재미없는 내 일상도

사실은 꽤나 얘기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지내고 있는 나와 닮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라는 동질감이 살짝 나를 흥분시킨다.

이 책을 읽다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거나 옷소매에 눈물을 찍어내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분에게 우리네 인생도 더듬듯이 그렇게 보내보자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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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잔의 시놉시스
이석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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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대할 때면 내가 모르는 외국어로 쓰여진 책을 앞에 놓은 것 마냥 어렵다.
나에게 시의 이미지는 학창시절 국어책에 나오던 시를 해부하듯 갈기갈기 찟어
한마디 한마디 한줄 한줄을 해석하던 국어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마치 토막낸 생선구이를 잔가시 하나 허용치 않고 발라내는 집요함이랄까..
그렇게 속절없이 접시위에 오롯이 발려진 허망한 살점들은
물끄러미 보고 있으며 이게 어떤 생선이였는 조차 가물거린다.
나는 시가 토막난 생선구이 같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국어 수업시간에 해체되고 해부되어진 시는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런 시를 대할때의 당혹감이란 감수성 많은 그때의
나에게 참 당혹스러운 일이였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시를 어렵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
나는 내가 들어서 좋은 곡이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먹어서 좋은 음식이 최고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봐서 마음에 드는 영화가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읽어서 내 마음을 울리는 시가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석규 시인의 '빈잔의 시놉시스'는 내가 공감하고 이해하는

진짜 시다.
시인의 ​가슴을 태워서 만든 시다.
시를 쓰는 시인의 고뇌가 보인다.
그래,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아침으로 가는
파도를 타고
지금 막 생각난 詩의 한 구절을
질걸질겅 씹습니다.
그 구절 앞세워 섬에 갑니다.
날마다 詩 한 줄 쓰려고
그가 부재인 섬을 바라보며
난 빈 배를 탑니다.
파도치는 뱃머리 아직 견딜만 합니다.
​      < 바다에서 中>​
시 한구절 질겅질겅 씹어 단맛, 쓴맛, 신맛까지 마지막 맛까지 알아보기 위해
입안에서 씹고 또 씹는다는 그 구절이 나에게 와서 박혔다.
시인은 머리속에서 또 가슴속에서 그 시 한구절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둥글렸다 늘렸다 붙였다 뗐다 온갖 짓을 다 했을 것이다.
녹녹치 않는 시를 짓는 작업을 매일 매일 고행하듯 해내고 있을 시인의 작업이
​고단해 보이지만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대장장이의 쇠망치 처럼 그의 시도 매일매일 담금질에 단단하고 반짝이는 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야들야들하고 보들보들한 시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처음 그의 시를 대했을때는 조금 거친듯한 느낌을 받았다.
휘리릭 읽고 쉽게 넘어가는 시가 아니라는 것을 시집 몇장을 넘기면서
알게 되었고 질겅질겅 씹어보며 맛을 볼려고 했다.
그러자 그의 시들에서 온갖 맛들과 냄새가 나오기 시작했다.
달큰하기도 하고 짭짤하기고 하고 비릿한 바다냄새가 났다가 시큼한 땀냄새도 났다.
한편 한편 시를 나 나름대로 음미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한 사내는 아구찜 집을 열심히 찾아가다가 복국집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쉬지 않고 아구찜 집으로 내달아 가오
마, 전어 축제할 때 한 번 더 오이소 그러면어쩌다가 멀어진 그대
국화꽃 꽃마울에 냉틈 올라타고 내게로 막 내달아 가오
 <마산 어시장 中>
이것저것 다 마땅치 않아
무작정 걷다보니
벚꽃이 그대 같고
나는 나무 같아서
그댈 올려보느데
바람이 세게 불고
벚꽃이 떨어지고
술이 고프고
달이 떠올랐다
<진해 벚꽃 장 中>
세상 모두가
제자리를 지키기는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이윽고 밤이 와 하늘에 멍석을 깔면
멍석의 세포마다 별이 박혀 반짝이고
닻이 풀닌 나의 배는
멀리 와서 그리워할 것을 그리워하느니.
<등대 中>
제목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의 고향은 마산이다.
마산에서 자랐고 대학을 서울로 오기까지 ​푸른 바다를 원없이 보고 자랐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서 지내게 된 서울생활은 즐거움과 버거움이 공존하는 공간이였다.
해질녁 한꺼번에 외로움이 몰려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때
문득 바다 냄새가 미치도록 그리워 버스를 타고 영동대교를 몇번이나 건너다녔는지 모른다.
퍼석거리던 내 마음이 강에서 뿜어내는 축축한 습기로 노골노골 해질때까지..
나에게 바다는 고향이고 그리움이다.
나는 시인의 시에서 잠시 잊고 지내던 그리움의 맛을 보았다.
거친듯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와 비릿한 바다 내음.
혀가 호강하는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회 한점을 먹을 수 있는 마산 어시장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봄이면 온 사방이 온통 분홍빛이였던 진해 벚꽃장
어릴때 가족들과 함께 갔던 진해 군항제에서의 사람들의 웅성거림와
아빠 엄마와 함께 먹던 짜장면의 그 놀라운 맛과
가슴이 짜릿하도록 아름다웠던 분홍 벚꽃..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이 턱 막혔다.
​나는 내가 공감 할 수 있는 시를 그의 시집에서 찾았다.
공감할 수 있는 시가 나에겐 진짜 시다.
​어렵게만 느꼈던 시가 시인을 통해 조금은 야들하게 느껴졌으니
나에겐 가장 소중한 시집이 되었다.
두고 두고 조금씩 그의 시를 음미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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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 - 가족이라는 기적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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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모예스의 신 장편소설 -원 플러스 원

조조 모예스의 전 작에 대한 명성은 듣고 있었지만 정작 전 작인 "미 비포 유"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써는 그녀의 이름도 그녀의 차기작인 원플러스원도 낯선 작가의 낯선 작품이였다.

꽤나 두툼한 책을 받아 들었을 때는.. 이걸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 몇 페이지는 다짜고짜 돌입부로 들어간 느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부자 거래로 궁지에 몰린 에드의 이야기로 자신의 회사에 쫓겨나게 생긴 지독히 난감하고 억세게 운이 나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고 이 사람이 저 사람하고 어떻게 아는 사이이고 저 사람은 이런 일을 하고 이 남자는 이런 성격의 남자이고..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 조연인지를 파악하고 정리하는데 나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파악되었을때 부터는 소설도 가속도가 붙어 읽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싱글맘으로 두 아이의 엄마닌 제스 ..그녀는 아들인 니카와 딸인 탠지를 보살피고 있다.

넉넉치 않은 그녀의 살림이 그녀를 외소하게 만들어 가고 빠듯한 생활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녹녹치 않은 생활의 버거움이 나한테도 느껴진다.

투잡을 하면서 침이나 흘리고 잠만 자는 덩치큰 개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녀의 팍팍함이 ​왜 그렇게 짠하던지..

가족이라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 힘이 되기도 하지만 또 굴레가 된다..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모든것을 인내하며 씩씩하게 버텨낸다.

수학 천재인 탠지의 수학경연 대회 참가를 위해 스코틀랜드로 떠나는 이들 가족 앞에에드가 나타나고 고맙게도 에드의 도움으로 그들은 스코틀랜드로 함께 떠난다.길고 긴 여정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가며

하나의 완전체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가면서 가슴 저릿하면서도 훈훈한 ​감동은 준다.

못말리는 철부지 같은 이들 때문에 깔깔 웃다가 가슴 뭉클해지도 하며..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조조 모예스의 필력에 감탄을 삼키며 그녀가 만들어 내는 지독히도 따뜻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전 작인 "미 비포 유"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여 내친김에 그녀의 전 작도 읽을 예정이다. 내가 이렇게 원플러스원에 감동 받게 된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사실 나는 이 글의 주인공이기도 한 싱글맘 제스와 놀랍도록 ​닮은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녀도 제스와 다름없는 두 아이들 둔 싱글맘이다. 아이들을 위해 그녀 또한 본 직업 외에 주말이나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중학생이 된 딸과 초등학생인 아들..그리고 하루종일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개털을 흩뿌리고 다니는 재패니스 스피치..숫컷 한마리

그녀의 삶의 무게도 만만찮아서 가끔 늦은 퇴근길에 나에게 전화해서 버거운 그녀의 생활에 대해 넋두리를 하면서 눈물을 짓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의 넋두리를

묵묵히 들어주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몇마디의 위로와..

주말에도 일을 하러 나간 엄마의 빈 자리를 대신해서 가끔 그녀의 집으로 가서 산더미처럼 쌓인 설겆이와 빨래를 대신해주고 쇼파에 덕지덕지 묻은 개털을 청소기로 빨아내거나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주는게 고작이였다.

그러면서 그녀가 어서 빨리 듬직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받고 사랑하며 안정되기를 기원했는데..몇년 후 기적같이 그녀 앞에 성공한 사업가가 나타났고​ 둘은 재혼을 하였고 지금은 양쪽 집의 아이들 둘씩 ..4명의 아이의 엄마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랬다.. 조조 모예스의 작품이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하고 전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로 등극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서 줏어온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일어 날 수 있고 또 일어나길 바라는 그런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노력하는 모든이들에게 마법처럼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독자들로 하여금 찬사를 받는게 아닌가 싶다.

연일 바깥 기온이 영화 10도를 오르락 거리는 칼날 같은 추위속에

가슴 한켠에서 부터 따뜻한 오렌지색 불빛 하나가 켜지는 소설을 만난듯 하여

마음만큼은 춥지 않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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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22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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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위대한 사상가..그를 지칭하는 수 많은 수식어들이 이해가 되었던 책이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웬지 모르게 어렵고 쉽게 접근 할 수 없는...나하고는 좀 거리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건 그의 작품들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였을 것이다.

가벼운 내용에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며 읽을 수 있는 여타의 작가들의 작품과 달리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한페이지를 넘기는데 많은 시간과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낯선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시대적 배경 또한 한 몫을 했다.

이 책의 첫장을 넘기기 전에 나는 깊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부터 사람들이 대문호라고 하는 그의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는 나의 경건한 의식 같은 것이였다. 그리고 천천히 한장 한장 그의 작품들을 음미하며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가장 큰 교훈 한가지..

그것은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나름의 나이가 필요하다는 점이였다.

내가 조금 더 나이가 어렸을때 읽었던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어렵다고만 느껴졌고 책을 읽으면서도 뿌였고 희미하게 모자이크 처리된 영화를 보는 듯 선명하게 그의 작품들이 그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중년이 되서 다시 읽게 된 그의 작품들에게선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애환과 고뇌와 번민과 인간의 욕망들이 느껴졌다.

비교적 선명한 영상들이 머리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젊었을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에 대한 애환을 이 만큼의 나이가 들어서 알게되듯 톨스토이의 작품 또한 젊었을때 몰랐던 깊이와 향기가 느껴졌다.

여전히 책을 넘기는 속도는 더뎠지만 작품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강렬하고도 뚜렷한 메세지를 온 몸으로 느끼며 작품 속으로 몰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1850년대의 전쟁터의 참담한 현장의 모습을 담아낸 [습격][세바스또뽈 이야기] [세죽음] 은 암울한 전쟁터의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서럽도록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조곤조곤 이야기 해주고 있다.

죽음의 전쟁터로 향하는 그길에서 보는 푸르스름한 달, 한밤의

자연이 깨어있는 소리들..평온하기만 한 그 자연속에 인간의 불안과 죽음의 기운을 그려내는 그 묘한 대비에 가슴이 저릿해진다.

1870년대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그린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는 한때 어느 정치인이 이 말을 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잘 표현한 그의 수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1880년대의 작품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꼬집는 작품으로 불교의 가르침과도 일맥 상통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이다.

이 책에 수록된 13편의 단편은 어느것 하나 허투루 읽을 수 없는 깊이와 교훈을 담고 있다. 새롭게 알게 된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이렇게 한권으로 읽을 수 있어서 무척 의미 깊었던 책이였다.

내친 김에 그의 작품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한 권을 다 읽기까지는 비교적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만큼 강하게 뇌리에 박힐 수 있는 작품 또한 그리 흔치 않을테니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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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맨 -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이 있다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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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선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낯선 곳에서 보고 느끼게 될 새로운 경험들..길지 않은 여행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도 좋으리라.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독일청년 파비안의 여행은 좀 독특하다.

자기의 능력과 기술을 담금질 하기 위해 떠나는 세계여행, 계획된 것이란 없다.

무모하다 싶은 용기 하나로 성큼 세상 밖으로 떠나는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독자는 이 베짱 좋은 청년에게 매료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할 때즈음 남들은 좀 더 나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때 엉뚱한 이 청년은 중세시대 장인들이 세계를 떠돌며 기술을 연마하던 "수년여행"에서 그 영감을 얻게 된다.

달랑 30만원을 들고 처음 찾은 중국 상하이에서 문화적인 차이와 지독한 고독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찐한 정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장벽을 넘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짦게는 한달, 길게는 수개월동안 세계 여러나라, 여러 도시에서 머물며

자신의 전공을 살려 건축보조, 사진촬영, 디자인등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하며

숙식을 제공 받는다. 보수는 없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단기 일자리에 보수도 없으니 설렁설렁 일을 해도 될법도 하건만 그는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기뻐하며 때로는 몇일을 밤을 새기도 하고, 도저히 불가능할거 같은 어마어마한 양의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이 순간순간 밀려오지만 "수련자"로써의 허트러지지 않도록 매 순간 마음을 다 잡는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어느 외국 청년의 지독히도 운좋은 해외 여행기쯤으로 생각하였다.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하고,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 머물고 있는 그 나라 관광도 좀 하며 재미있게 보낸 2년 2개월의 여행기쯤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중간도 채 읽기 전에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거저 오는 행운이란 없구나.. 하는 것이였다. 주인공인 파비안이 설령 운 좋게 일자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나는 곧 떠날 사람이니 내 맡은 일이나 하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을 했다면 그에게 다음, 그 다음의 여행지에서 일자리를 잡는 행운이란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 외에도 일을 찾아서 하는 그의 열정과 성실성이 결국 그를 성장하게 했고 함께 일한 사람들과의 신뢰감을 얻게 했고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게 되었고 비로소 자기의 스펙이 되는 것이라는 걸..

중국,말레이시아,인도, 이집트, 에티오피아,호주, 미국,쿠바,도미니카 공화국, 롤롬비아를 여행했던 2년 2개월 동안 그는 검고 투박한 흑연이 아닌 투명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된 것이다.

쉽게 부서지는 흑연과 달리 단단하면서도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지만 세계여행을 하며 수련 여행이라는 혹독한 방법은 택하여 자신을 담글질해 온 파비안은 그렇게 단단하고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고국인 독일로 되돌아 왔다.

떠나기 전 자신을 걱정하고 비웃기까지 했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보람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성숙시켰다.

"삶은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선물일 수도, 부역일 수도 있으나 어찌되었든 최선을 다해

제 몫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그의 말이 긴 여운이 되어 나의 등을 떠민다.

지리멸렬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그의 수련여행은 젊었을때의 한때의 객기가 아닌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고맙고도 매서운 충고였다.

재미와 교훈과 감동을 가져다 준..특별한 여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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