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일기 - 바닷가 시골 마을 수녀들의 폭소만발 닭장 드라마
최명순 필립네리 지음 / 라온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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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내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가고파의 노래를 나즈막히 부르게 되는 그곳

바로 마산이다. 

마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사춘기 여고시절을 보냈다.

서울로 공부를 하러 떠나오게 되고,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게 되자 고향을 자주 찾지를 못했다.

하지만 마산에는 나의 어릴적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가끔 찾아 갈때마다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반겨주는 것이 '어릴적 추억'이었다.


내가 이 책이 눈에 들어온게 된것은 사실 두가지 이유에서 였다.


이 책의 저자인 최명순 필립네리 수녀님은 마산에 있는'진동 요셉의 집'에서 아름다운

생태공동체에서 생활하신다. 

마산이라는 곳도 반가운데 게다가 진동이라니..

진동은 마산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렸을때는 정말 깡촌이었다.

그곳에 아버지가 사둔 농지가 좀 있어서 부지런한 엄마는 그곳에 주말농장처럼 각종 채소와

고구마 감자 같은 것을 심고놓고 일꾼으로는 빵점짜리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내가 자란 고향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이렇듯 어릴적 추억이

터져나오다니 나도 놀라웠다. 


또 한가지는 저자가 수녀님이라는 점이다. 

나는 카톨릭 재단인 성지여중, 여고를 다녔다. 수녀님이 교장선생님이셨고, 

담임 선생님도 얼굴이 무척이 이쁘신 (하지만 굉장히 무서운..) 수녀님이셨다.

6년을 수녀님들과 학교 생활을 함께 해서 그런지, 지금도 길가다 수녀님들을 뵙게 되면

괜히 정겨워서 한번 더 뒤돌아보곤 한다.


내 고향 마산에서 낯설지 않은 수녀님이 쓰신 에세이라니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는건 

당연한거 아닐까..(이것이 학연, 지연이면 뭐 어쩔 수 없다 ㅎㅎ)


최명순 수녀님은 일흔다섯의 연세에 마산의 요셉의 집에서 닭을 돌보며 지내고 계신다.

닭을?? 이라고 의문점이 먼저 들었다.

키워서 잡아 드실려고 하시는건가? 자업자족 하실려고? 

하지만 이곳 공동체에서는 친화경으로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닭을 키우고 그 닭이 싸놓은 닭똥으로 또 농사를 지으신다.

그것이 지칠대로 지친 지구를 살리는 작지만 큰 실천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며

소박하고 청렴하게 생활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서 아하! 싶었다.


좁아터진 양계장에서 밤낮없이 알을 조명을 받으며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알낳기만을 강요당하는 스트레스 가득한 닭이 아니고,

마당을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고, 

땅을 파서 지렁이와 벌레를 잡아 먹고, 수녀님이 키우시는 채소잎을 

먹고 자라는 건강한 닭들이 낳은 건강한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고 

그 병아리를 다시 닭으로 키우는..


닭들을 돌보는 일이 처음부터 쉬웠겠는가.

익숙치 않은 일을 맡았지만 매일 매일 작은 닭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면밀히 

살펴며 일기를 쓰듯 기록한 것이 이 책 '닭장일기'다.

마치 갓난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가 매일 매일 아이들의 상태를 기록하는 유아수첩처럼

병아리에게 이름을 붙이고 '병아리 엄마'같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기록하였다.


수녀님은 이렇게 소박한 일상을 기록해 나가며 우리네 인생 이야기도 하신다.

장애를 가진 병아리를 거둬서 살뜰히 살피시면서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님마음을

안타까워 하시기도 하고 실수로 비싼 청계를 깨트려서 몇일을 일반 계란으로

대체하시며 누구에게든 예기치 않을때 일어날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75세의 수녀님으로부터

담담하게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속에서 큰 울림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많이 지쳐있다.

젊었을때야 그 속도에 맞출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버겁게 느껴진다.

내 삶을 뒤돌아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고 쫓기듯 내달려와 헐떡이고 있다.


5G세상에 2G보다 더딘 속도지만 지극히 정상적이며 건강한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 살아가는 소박한 삶이 답답하기는커녕

솔직히 부러웠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조금 더 일을 한 후에 은퇴를 하게 되면 자연속에서 지내며

소박하고 검소하며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세상을 온통 바이러스가 뒤덮어,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그리운 이들과도

함께하지 못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해로운 생명체는 인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은 오만하고

유해했다.

지금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큰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욕심을 줄이고,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애써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을 돌보는 작은 일로부터 인생을 이야기하고 지구를 걱정하며 비약적으로 커져버렸지만

결국 우리은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주신 책이지 않나 싶다.


PS 수녀님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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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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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건, 겸손과 고독, 그리고 고단함이었다.

그녀는 왜 '작가'라고 하지 않고 '쓰는 사람'이라고 하였을까..

완성을 향해 느리지만 매일 매일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작가의 담담함이 

엿보이는 제목에 무척 끌렸다.


나는 쓰는 사람이다.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시나리오도 쓴다.

내게 번번이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한 것도 

가장 강렬한 기쁨과 행복을 준 것도 모두 문학이었다. 

지금은 읽고 쓰는 일이 내 인생의 전부다.

그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어서 너무 멋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가난하고 무명하고 그리고 자주 우울하다.

그리고 먹고 사는 일이 아무리 고단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세상을 읽고 사람을 쓰는 전업 작가로 살겠다.

프롤로그에서 이 부분을 읽었을때 나는 이미 이은정이라는 작가에게 반해있었다.

세상을 읽고 사람을 쓰는 전업 작가..

글을 쓰는 직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에게도 큰 행복임에 틀림없다.


그런 사람이 쓴 책이라면 기꺼이 내 시간을 들여 밤을 새면 읽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내 퍼석한 마음에 물기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수분을 뿌려줄것 같았다.


첫 에피소드부터 마음이 따뜻해진다. 

바닷가로 이사를 가고 싶어 시골 어촌의 작은 마을에서 마음에 딱 드는 집을 발견했다.

매매로 나온 그집을 살 형편이 안되었지만 눈에 밟힌 그집을 구경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에

주인과 덜컥 약속을 잡게 되고, 그 집이 마음속으로 쏙 들어온 작가는 은행 대출을 

알아보겠다고 하고 나섰지만 은행에서 퇴짜를 맞는다.

속상한 마음에 돌아섰지만 그집으로 다시 찾아가 기다리실것 같아서 다시 찾아왔노라고

말한다.

주인 아주머니는 계약하지 않을거면서 다시 돌아와 인사를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전세도 좋고 월세도 좋으니 여기 와 살라고...


기적 같았던 그때의 기억은 내 인생에 아주 큰 교훈을 남겼다.

비록 지금도 가진 것은 없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늘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했다 

살다보면 거짓과 위선과 척하는게 당장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느리고 더디지만 진실이 승리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은 쉽게 속여도 내 자신마저 속일 수는 없는 법,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정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체면인지

자존심인지 우리는 그렇게 못하고 살고 있다.

작가의 첫번째 에피소드 [기적은 가까이에 있다]는 짧지만 아주 강력한 메세지를

전해준다. 


어촌 마을에서 지내는 소소한 일상과 친구이야기, 가족이야기, 이웃 이야기등

80개의 에피소드를 화려하진 않은 수려한 필체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슴 따듯한 문체로 들려주는 작가 이은정의 글을 읽으면서 

내내 행복함을 느꼈다. 

흔히 지나치 쉬운 평범한 일들이 작가의 눈과 마음을 통과하면 우리의 지리멸렬한 일상도 

눈부시게 빛나고 반짝이게 되는 신비로운 마법을 보는 듯하다.

사물을 살피고 관찰하는 세심한 시각과 마음을 가져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인 작가를 진지하게 동경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상을 곱씹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흘려버리지 말고, 차분히 시간을 들여 음미해보는 연습을 

하며 일기를 쓰듯 글을 써보기도 한다면 조금이라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음.. 아무래도 그건 다음 생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노래를 취미로 한다는 가수를 만난적이 있다.

본명이 아닌 예명으로 활동하는 분이셨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도 

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노래 실력이 신통찮은 것 같지 않은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건 노래에 미치지 않고 

취미로 하고 있어서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적이 있다. 


선천적으로 천재성을 타고 났다는 천재도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에디슨이 말하지 않았던가.

작가 이은정은 전업작가로 오로지 글 쓰는 일에 촛점을 맞추고 현재 진행형으로

99% 노력중일 것이다.

어떠한 일에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전력한다는 자에게만 느껴지는 기운이 

그녀의 글에서 느껴진다. 따뜻한 진심 같은거 말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면 글을 쓴다는 일이 녹녹하진 않을 것이다.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한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춥고 배고픈 일임이 틀림없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파는 고집스러움이

그녀의 글에 절심함으로 알알이 박혀있어서 한번 읽으면 오래도록 기억속에서 

박혀 있을듯하다.


어제까지 무명 작가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나는 그녀를 알았으니 이제 이은정 작가는

적어도 나에게는 유명 작가다.

오며가며 참새 방앗간 들리듯 들리는 서점에서 이은정 작가의 책이 눈에 띄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책을 집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펜을 잡고 세상을 읽고 사람을 쓰는..

가슴이 뭉클거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음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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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제주 - 언택트 관광지부터 SNS 속 힙플레이스까지! 요즘 제주의 모든 것, Season2 ’22~’23 프렌즈 국내 시리즈
허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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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면 휴가를 받아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일년중 가장 호사스러운 일주일을 보내기 위해, 적금을 넣고, 계획을 세우고, 휴가 날짜를 잡고

휴가지에서 어울리는 옷과 모자를 사고..

그러한 즐거움을 빼앗긴지 벌써 두 번의 여름이 지났다.


언텍트 시대의 여행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인파가 많은 곳은 가급적 피해다니는게 상책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이름난 관광지보다는 조금 덜 알려진 좀 더 깊숙하고

한적한 곳으로의 여행을 선호하게 된다.


이럴때 여행 분위기를 한껏 음미할 수 있는 비행기를 타고 떠날 수 있는 

국내 관광지의 메카인 제주도는 다시 한번 여행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언텍트 관광지뿐만 아니라 요즘 SNS에서 핫한 핫플레이스까지 제주도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아낸 여행 가이드북이 프렌즈 시리즈에서 나왔다.

2020년 11월에 초판을 찍고 21년 7월 23일에 개정판이 나왔으니, 좀더 업그레이드한

최선 정보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넘기면서 417P에 이토록 많은 정보를 실을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빽빽하게 정보를 넘치도록 담고 있어서, 정보가 부족하여 못가보았네 하는 말은 

안 나올듯 하다.

또한 제주도뿐만 아니라 제주도 주변의 우도, 가파도, 마라도등 7개의 섬에 대한 정보도

빠트리지 않고 싣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이라면 제주도뿐만 아니라 주변 섬 여행도 함께 해보며

섬이 주는 독특한 매력에 빠져볼만하다.


제주도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은 패키지나 학교나 단체등에서 간 여행이라 이름이 알려진 관광지 

위주로 여행이 많았을 것이다. 자유여행이나 제주 한달살이가 유행하는 요즘 나만의

개성있는 제주 여행을 만들어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꼼꼼하고 정확하고 방대한 여행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프렌즈 제주는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제주도를 지역별로 나누어 각 지역별로 관광지, 식당, 숙소등을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이나 테마파크, 휴양림등은 입장료및 운영시간, 홈페이지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으니 일일히

체크해야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수 있다. 

제주 올레길, 자전거길, 드라이브 지도도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제주도를 걸어서, 자전거로 차로 얼마든지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엑티비티한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숱한 오름을 오르는 고행보다는

한적한 바닷가를 드라이브 하며 빼어난 경관과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까페에서

차 한잔을 하며 자연을 느끼고 제주도에서만 맛 볼수 있는 음식으로 

여행을 채우고 싶어하는 스타일인데, 이 책에는 이름도 생소한 제주도에서만 맛 볼수 

있는 향토 음식과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를 비롯한 향토 술, 쇼핑 아이템까지

꼼꼼하게 모아두어서 제주도를 참맛을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을듯 하다.


제주도의 역사와 설화에 대한 설명도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소소한 지식이지만 여행지에서 얻는 역사적, 인문학적 지식들은 여행의 즐거움과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이고 결국 자기 자신의 지적 재산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방대한 정보로 가득하여 첫 페이지부터 정독하는 것은 쉽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정보를 목차에서 찾아서 차근히 메모하며 여행 정보를 짠다면

실패하지 않는 멋진 여행스케쥴이 완성될듯 하다.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제주도를 보고 느끼고 맛볼 수 있으니

이만한 여행친구가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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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기에 더욱 빛나는 일본문학 컬렉션 1
히구치 이치요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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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일 전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 저번에 읽던 책..다 읽었으면 나 좀 빌려주라"
"응? 무슨 책?"
"그거, 너 책 읽다가 갑자기 울었던 그 책말야"

아이고..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나이에 책 읽다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니말이다. 
그랬다. 아주 오랫만에 내 마음을 휘저은 책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서점가에 일본의 작품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히가시노 게이고, 에쿠니 카오리등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속속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현대의 일본문학 작품을 살펴보는 것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재미와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좀더 앞선 근현대 작품을 읽어보는 것 또한 일본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그래서 찾아서 읽게 된 책이 작가와 비평사에서 나온 [짧았기에 더욱 빛나는]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창작의 혼을 태우며 짧은 생을 살다 간 
여섯명의 천재 작가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이 책은 일본 문학사에 길이 빛날 천재 작가들의 단편들을 소개하고 있다.
1900년 무렵, 가난하고 고단했던 시대상은 작가들의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못먹고 못입던 시절, 가난의 상징처럼 폐결핵은 흔해빠진 병이었고,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이 호의호식하지 못하는 일이다보니 아쉽게도 
많은 작가들이 폐결핵으로 요절하는 경우들이 많았고 불안한 현실을 비관하다가
자살하는 경우들 많았다.

이 책에 소개된 6명의 작가들은 폐결핵이나 지병, 또는 자살로 20대에 또는 30대에 
요절을 한 작가들의 단편 2편씩을 소개하고 있다. 



히구치 이치요(1872~1896년)  24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그녀는 5천엔 지폐에 얼굴이 실려있다.
그만큼 그녀가 일본 문학에 끼친 영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기적의 14개월'이라고 불리는 1895년 섣달그믐을 발효한 후 1년 남짓한 기간중에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표작들이 쏟아졌다. 
일본 최초의 여류직업 작가였고, 중국의 작가 위화는 그녀를 19세기 가장 
위대한 여성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는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1892~1927) '그저 막연한 불안'으로 35세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본 최고의 문학 작가이다. 
일본에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상을 주는 '아쿠다카와상'이라는게 있다.
작가의 이름을 딴 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 문학사에서 그의 발자취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지이 모토지로(1901~ 1932) 지병으로 31살에 세상을 떠났다.
"밤하늘에 별처럼 순수하며 단단하고, 독창적이며 그 자체로도 충분히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을 남겼다"라고 평가받고 있다.

나카지마 아쓰시(1909~1942) 천식에 의한 심장발작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1920년 한문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경성으로 이주와서 경성중학교를 다녔고 이러한 가정환경으로 
[호랑이 사냥],[순사가 있는 풍경]등 조선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

다자이 오사무(1909~1948) 신분과 사상사이에서 좌절하고 약물 중독과 자살미수를 
반복하다 39세에 애인과 함께 자살하였다. 그의 작품 [사양]은 사양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인간실격]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의 일본 젊은층에서도 다자이 오사무의 광팬들이 많다고 한다.

미야자와 겐지(1896~1933) 37세의 나이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일본의 국민적 작가로 사랑받은 동화작가이며 국외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번역소개되고 있다.
 

총 6명의 작가와 12편의 단편, 그리고 각 작가에 대한 소개및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익숙치 않은 일본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여러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의 원픽은 뭐니뭐니해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밀감'이라는 작품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피로와 권태로움으로 모든것이 우울해 보이는 산골 마을의 기차 안.
모든 것이 회색인 그 곳에 낡고 꽤재재한 옷을 입고, 온통 살같이 트고 
두 뺨은 눈에 거슬릴 정도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동상 걸려 시커먼 손을 한 계집 아이가 이등칸에 올라탄다.
누가보다도 시골뜨기였다.
손에는 3등칸 차표인 빨간색 차표를 꼬옥 쥐고 커다린 보따리를 끌어안고 있다.
이등칸과 삼등칸도 구별못하는 미련함이라니,'나'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 
기차가 출발을 하고 터널을 막 빠져나올려고 하는 그 참에 
그 아이는 내 앞으로 와 기차의 창문을 열어젖힌다.
창문으로 시꺼먼 연기가 한가득 기차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기침을 한다.
터널을 막 빠져나온 기차는 어느 산골짜기 가난한 마을의 건널목을 지나고
있었고 기차 건널목 울타리 너머로 얼굴이 빨간 사내아이 셋이 조르르
늘어서 기차를 향해 손을 들고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이었다. 
창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던 계집아이가 
동상 걸린 손을 쭉 뻗어 힘차게 흔드는가 싶던 바로 그때,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따스한 햇살에 물든 밀감 대여섯 개가 
기차를 지켜보던 아이들 머리 위로 흩어져 내렸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해질녘 철길 옆에서 남의 집살이를 
떠나는 누이를 배웅하러 나온 어린 동생들에게 품에서 밀감을 몇개를 꺼내
힘껏 던지는 어린 계집 아이. 
아마 그 밀감 몇알은 고된 남의 집 살이를 떠나는 딸아이가 안스러워 
할머니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챙겨준 사치스러운 간식거리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배웅 나와준 남동생들에게 던져주고 가는 누나의 마음은 햇살을 닮아
빛나는 밀감같았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저속하고 따분한 인생을 겨우 잊을 수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나를 보고 친구는 당황해했다.
나는 설명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입을 뗀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그걸 쓴 작가 이름이 뭐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고 하는 일본 작가야"
"참 대단한 작가구나"

그리고 우리는 밀감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한편의 문학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준 일이었다.
책이라면 고개부터 절래절래하던 친구가 이제부터 책과 좀 친해질려나..

작가와 비평사에서 일본문학 컬렉션으로 처음 발간된 책이라는데
앞으로 2편, 3편도 기대가 된다.
새로운 작품을 읽는 즐거운 흥분이 한동안 내 마음속에서 요동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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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 한 마리
사쿠라 모모코 지음, 권남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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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루코는 아홉살] 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의 케이블 방송에서 더빙으로 방송될때

저렇게 일본적인 애니메이션을 한국판으로 둔갑시켜서 방송이 가능할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을때 [치비마루코 짱]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TV에서 장기적으로 방송이 되었고, 일본의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취급받으면서 고향을 떠나온 많은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애니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시즈오카라는 시골이 무대가 된것도 이색적이었고

지금은 흔치 않은 3대가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배경 또한

점점 핵가족화가 되어 개인주의가 만연한 일본의

중장년층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작가인 사쿠라 모모코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마루코라는 캐릭터를 만들었고

공전의 히트를 치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그후 몇편의 에세이를 집필했고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들게 되었다.


한국어로 더빙된 [마루코는 아홉살]은 당시 초딩과 중딩이었던 우리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한국인이라는 청국장을 먹을줄 알아야해'하는 무리하게 끼워맞춘듯한

극중 대사를 열심히 되내이며 일본 여행중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낫또 정식'을 굳이 먹겠다는 아들 녀석을 보며

대중매체의 힘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아무튼 마루코는 그 이름 그대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일본어로 마루는 둥글다.. 라는 뜻이다)

귀엽게 생긴 외모하며 아버지의 이야기, 언니의 이야기등 작가의 어릴적 추억이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했고 또 에세이로 탄생이 되었다.




도미 한마리는 작가의 어릴적 추억담과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순서없이 추억담과 경험담을 싣고 있는데 일본이라곤 하지만 문화적으로 유사점이 많아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또한 만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위트도 에세이에서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읽는 내내 쿡쿡 웃음이 터지곤 했다.


글과 함께 실린 일러스트는 만화가로 세상에 이름을 먼저 알린 작가의 솜씨이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이들은 낯익은 그림체에 분명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22개의 에피소드가 실려있고 각 에피소드에 대한 그 이후의 일들은 23편에 싣고 있어서

그 뒤가 궁금한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내가 참 재미있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영어 회화 공부]였는데 영어를 공부하고자

마음 먹은 작가가 영어책과 카세트 테이프를 구매한 후 교재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존'과

여자 주인공'앤'의 인물에 대한 탐구(?)를 읽다가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웃었다.

영어 교재에 나오는 남녀의 관계를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세상 제멋대로에 뻔뻔한 '앤'과

그런 여자와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다니는 한심한 남자 '존'을 상상해내다니

세상에 이런 발칙하고도 재치있는 생각을 할 수있단 말인지..

그녀의 천재성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역시 작가는 사물을 파악하고 보는 시각이 다르다 싶다.


또한 [답안지 처리]라는 에피소드에서는 수학 시험을 완전 망쳐

12점이라는 천인공로할 점수를 받은 작가가 고민 끝에

푸세식 화장실에 답안지를 잘게 찟어서 버렸다는 에피소드다.

찟는다고 찟어서 버렸지만 12점이라는 점수가 뒤집어지지 않아

점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행여 엄마한테 들킬세라 소변이라도 눠서 어떻게

해볼려고 했지만 어린아이라 그 정도의 양이 안되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 완전 범죄인줄 알고 공소시효가 지나 잊고 있었던

범인들에게 과거의 추억을 꺼내주고 박장대소하게 하는 글이었다.


[집중력]이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만화 그리기에 너무나 몰입해 있던 작가가

어시스턴트와 함께 작업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뽀옹.. 하고 방귀를 뀌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2분여 뒤에나 깨닫고

사과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사람사는 모양새는 비슷해서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일인데 작가의 필력과

글의 내용을 담박에 이해할 수 있는 일러스트가 더해져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이렇듯 유쾌한 이야기를 가득 담은 에세이는 읽고 있는 동안 만화책을 보는 듯

술술 잘 읽혀졌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어른들에게 툭 한번 던져주면 단박에 도서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인 사쿠라 모모코는 2018년 53세의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섭섭함이 밀려온다

이번에 21세기북스에서 그녀의 작품 3편을 동시에 발간을 하였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2권 더 있다니 그나마 위안을 삼아볼까 한다.




* 이 책은 21세기북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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